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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친미 독립파’의 승리로 끝난 대만 총통 선거 

중국 ‘블랙리스트’ 라이칭더 당선… 대만인들은 ‘제2의 홍콩’ 거부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야권 단일화 실패하며 민진당 12년 집권 확정, 중국은 총통 선거 결과 부정
‘금기’인 톈안먼 사태 언급한 라이칭더, 승리 후 대만 독립에는 일단 선 그어


▎중국이 가장 기피하는 라이칭더가 대만 총통에 당선됐다. 향후 양안 관계에서 중국이 쓸 채찍이 무엇일지 이목이 쏠린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라이칭더는 노골적으로 ‘양국론(兩國論)’을 거론하고, ‘대만 독립’을 내세워 분열을 조장하며 무력으로 독립을 도모하려는 인물이다. 대만 독립 분자이자 평화 파괴자인 그는 대만을 전쟁 위기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대만 동포에게 심각한 재앙을 끼칠 뿐이다. 대만 독립은 전쟁을 의미하며, 대만해협의 평화와는 물과 불처럼 양립할 수 없고, 대만 동포의 이익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의 주펑롄 대변인은 대만 총통 선거에 앞서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입장을 대변해온 관영 [환구시보]와의 대담에서 라이칭더 당선인을 이렇게 비난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가장 싫어하는 대만 정치 지도자가 바로 1월 13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 라이 당선인이다. 중국은 대만 독립을 주장해온 차이잉원 현 총통보다도 라이 당선인을 더 혐오해왔다. 그 이유는 라이 당선인은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 대만 독립은 물론 민주주의 가치와 제도를 강력하게 주창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이 당선인이 2014년 타이난 시장 시절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만 독립은 대만인의 자결권을 위한 것이며 대만 내에서 완벽한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고 강조해 중국 정부 관리들과 푸단대학 관계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당시 라이 당선인은 “1989년 후야오방 총서기 서거 이후 일어난 중국의 학생운동은 애국운동”이라며 중국이 금기시하는 1989년의 6·4 톈안먼(天安門) 사태도 언급했다.

중국 정부는 푸단대학 발언 직후 라이 당선인을 ‘블랙리스트(기피인물)’에 올렸다. 중국 입장에서 라이 당선인이 승리한 것은 대만 총통 선거에서 최악의 결과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중국 관영 언론매체들은 대만 총통 선거 결과를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서도 대만 총통 선거와 관련된 글은 모두 삭제됐다.

중국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군사·경제적 압박과 교류와 협력 등 당근과 채찍을 총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만 국민들이 라이 당선인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집권 여당 민진당의 라이 당선인은 558만6000표, 득표율 40.05%를 기록하면서 467만1000표, 33.49%의 득표율을 보인 제1야당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를 물리쳤다. 제2야당인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는 369만표, 26.4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국민당 “시진핑 신뢰해야” 발언이 역풍으로


▎대만인들은 라이칭더를 뽑으면 전쟁이 벌어진다는 중국의 위협에 흔들리지 않았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대만에서 1996년 직선제 도입 후 2000년부터 민진당과 국민당이 8년 주기로 총통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집권해 왔지만, 이번에는 이런 공식이 깨지면서 민진당이 12년을 통치하게 됐다. 대만 총통의 임기는 4년이며 중임할 수 있다. 라이 당선인의 성적은 2020년 총통 선거 때 차이 현 총통이 57%(817만 표)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한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 당선인이 무난하게 승리한 것은 무엇보다 3위를 차지한 커 후보의 약진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허우 후보로서는 지난해 11월 성사됐던 국민당과 민중당 간 후보 단일화 합의가 이견으로 인해 끝내 불발된 것이 치명타가 됐다. 2030 세대의 강력한 지지를 업은 커 후보는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이어진 민진당과 국민당의 양강 구도에 균열을 만들었다.

라이 당선인의 승리 요인 중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시진핑을 신뢰해야 한다”는 국민당 출신 마잉주 전 총통의 인터뷰가 대만 국민의 표심을 흔들었다는 것이다. 마 전 총통은 1월 10일 독일 언론 [도이체 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관계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평화적 대화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 전 총통의 발언은 대만 국민들이 느끼는 ‘중국 위협론’을 희석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마 전 총통은 지난해 4월 중국을 방문해 칙사 대접을 받는 등 대표적인 친중파 정치 지도자다.

마 전 총통의 발언이 알려지자 대만 SNS에선 마 전 총통과 국민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크게 확산됐다. 네티즌들은 “독재자를 믿는다고 말한 사람이 대만을 통치했던 총통이 맞느냐”고 성토했다. 라이 당선인도 막판 선거 유세에서 “이번 선거는 시진핑을 믿느냐, 대만을 믿느냐의 선택”이라며 “중국의 선거 개입이 성공해 중국 지시를 받는 후보가 당선된다면 대만의 민주주의는 무너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허우 후보조차 “나와 마 전 총통의 중국 노선은 다르다”며 “대만의 민주주의와 자유 시스템을 지킬 것”이라며 마 전 총통을 손절했다.

‘제2의 홍콩’이냐, ‘하나의 중국’이냐


▎홍콩보안법이 시행된 이후 ‘홍콩독립’ 깃발을 든 시위는 이제 불법으로 규정돼 자취를 감췄다. 대만인들은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이 될 것’을 경계한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라이 당선인은 이번 총통 선거 운동 과정에서 홍콩 사례를 들면서 민주주의 수호를 강조해왔다. 특히 라이 당선인은 홍콩 민주화 운동이 중국 정부와 공산당에 의해 궤멸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중국을 지지하는 후보를 뽑게 되면 홍콩처럼 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을 선출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라이 당선인은 이번 총통 선거의 슬로건으로 ‘민주 대 독재의 대결’을 내걸었다. 현재의 대만을 ‘민주’로, 대만을 위협하는 중국을 ‘독재’로 설정하고, 선거에서 이겨야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허우 후보는 ‘평화냐 전쟁이냐’를 슬로건으로 내놨다. 허우 후보는 차이 총통 집권 8년간 전쟁의 위험을 평화로 바꿔야 한다면서 중국과의 대화와 교류·협력 확대를 강조했다. 라이 당선인이 승리한 것은 중국에 대한 거부감을 보여 온 대만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대만 국민들의 반중 정서가 확산된 결정적 계기는 2019년 홍콩 사태였다. 중국 공산당은 1997년 영국이 홍콩의 주권을 중국으로 이양할 때 ‘일국양제(一國兩制, 1국가 2체제)를 유지하면서 향후 50년간 홍콩의 자치를 보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홍콩에서 민주화 운동이 발생하자 이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지지율이 바닥이던 차이 총통은 홍콩 사태 이후 2020년 총통 선거에서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재선에 성공했다. 중국이 보장한다는 일국양제가 새빨간 거짓말이란 사실을 깨달은 대만 국민들이 차이 총통을 다시 선택했다. 라이 당선인도 대만 국민들의 민심을 간파하고 중국의 전쟁 위협에 맞서 대만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했다. 라이 당선인은 인터뷰나 유세 등에서 “주권이 없는 평화는 홍콩과 같은 거짓 평화”라면서 “우리에게 지금 익숙한 민주주의는 그냥 얻어진 게 아니라 중국의 일국양제에 반대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BBC 방송은 “라이칭더의 승리는 중국의 압박이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대만 국민들은 라이칭더를 뽑으면 전쟁이 벌어진다는 중국의 주장에 흔들리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대만 국민들은 라이칭더에 표를 주는 것은 전쟁에 투표하는 것과 같다는 중국의 경고를 무시하면서 민주주의를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라이 당선인도 선거결과가 확정된 뒤 기자회견에서 “2024년 지구촌 선거의 해에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첫 번째 선거에서 대만이 민주 진영의 첫 번째 승리를 가져왔다”면서 “대만이 전 세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에서 계속 민주주의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라이 당선인의 승리에서 확인된 더욱 중요한 점은 대만 국민들이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른 ‘통일’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12월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건국의 아버지’ 마오쩌둥 탄생 130주년 기념 좌담회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과 ‘92공식’을 언급하며 “조국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통일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 공산당이 중국 본토는 물론 대만·홍콩·마카오 등을 모두 중국의 영토로 규정하고, 이를 대표하는 합법적인 정부가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중국 공산당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국시(國是)로 내세우면서 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이 세운 중화민국(대만)과의 통일을 지상과제로 설정해왔다. 중국 정부가 자국과 외교 관계를 맺는 국가들에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92공식(九二共識)’은 양안의 민간기구인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와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가 1992년 합의한 공통인식을 말한다. ‘92공식’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그 표현은 각자의 편의대로 한다는 것이다. 라이 당선인은 그동안 “대만은 이미 주권국가”라면서 “주권 국가인 대만에 통일과 독립의 문제는 없으며 대만 독립 선언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라이 당선인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92공식’ 수용은 주권을 양도하는 것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반면 허우 후보와 국민당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92공식’을 인정해왔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볼 때 대만 국민들은 중국의 주장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광부의 아들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

라이 당선인은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점도 시 주석과 비교된다. 시 주석은 1953년 베이징 태생으로, 아버지는 공산당 혁명 원로인 시중쉰 전 부총리이다. 이 덕분에 베이징 최고의 엘리트 교육시설인 베이하이 유치원과 고위 간부 자제들이 다니는 베이징81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시 전 부총리가 1962년 반당 분자로 내몰리면서 시 주석은 1969년 산시성 옌촨현으로 하방(下放·지식인의 사상 개조를 위해 농촌으로 보냄)해 7년간 어려운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전 부총리가 복권되면서 시 주석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부친의 후광으로 시 주석은 당 요직을 차지했고, 푸젠성·허베이성·저장성을 돌며 행정 경험을 쌓았다. 2007년 상하이 당서기에 임명된 시 주석은 10개월 만에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고, 같은 해 제17차 당 대회에서 국가부주석으로 승진했다. 이어 2012년 제19차 당 대회에서 국가주석에 올랐다.

반면 라이 당선인은 1959년 타이베이현(현 신베이시)의 시골 해안 마을 완리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95일 만에 아버지가 광산 사고로 숨졌다. 어머니가 라이 당선인을 비롯해 여섯 자녀를 홀로 키웠다. 어려운 형편에도 수재 소리를 들으며 1978년 국립대만대학 의학원 재활학과에 입학했고, 졸업한 뒤에는 물리치료사로 일했다. 이후 국립성공대학 의대 학사후의학과에 진학해 1991년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받았다. 의사로 일하다 미국에 유학해 하버드대학교 공공보건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과 관계 강화와 대만 정체성 강조


▎대만 총통 선거가 의도대로 됐지만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은 발언을 조심하고 있다. 대만 문제에 강경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이후 귀국해 타이난시에서 내과 의사로 일하던 라이 당선인이 정치와 인연을 맺은 건 1994년이었다. 당시 민진당 소속으로 타이완성 성장 선거에 출마한 천딩난 전 법무부장(장관)을 도운 것을 계기로 정치에 열망을 갖게 됐다. 1998년 타이난시에서 입법위원(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내리 4선을 했다. 2010년에는 타이난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연임에 성공해 2017년까지 시장을 지냈다. 2012년엔 업무 수행차로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 현장에서 직접 부상자를 구한 일로 ‘인의(仁醫)’라는 별명도 얻었다. 라이 당선인은 2017년 당시 경제 성적 부진과 정전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린취안 행정원장(국무총리)의 뒤를 이어 행정원장에 임명됐다. 2019년 총통 선거를 1년 앞두고 라이 당선인은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던 차이 현 총통에게 반기를 들고 당내 경선을 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경선에선 패했지만, 라이 당선인은 차이 총통의 러닝메이트로서 부총통이 됐다. 지난해 1월 15일 차이 총통이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민진당 주석직을 물려받았다.

라이 당선인은 앞으로 차이 총통의 노선을 계승하면서도 미국과의 관계 강화와 대만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라이 당선인은 2011년 타이난 시장 시절 중국식 한어병음 표기를 거부하고 대만식 통용병음이나 웨이드-자일스식 표기법을 쓰도록 조례를 제정했다. 영어 공용화에도 적극적이다. 타이난 시장 시절 공용어로 영어를 추가했고, 행정원장 시절에도 대만 공용어에 영어를 포함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다만 라이 당선인은 대만 독립 문제에 대해선 일단 중국을 의식해 현상 유지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라이 당선인은 “대만은 이미 주권국이기 때문에 총통에 당선되더라도 독립을 선포하지 않겠다”면서 “중화민국이란 국호도 유지하겠다”는 유화적 입장을 보였다. 경제 정책에서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 확대 기조를 유지해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라이 당선인은 반도체·인공지능(AI)·군수·보안·통신 등을 ‘5대 신뢰 산업’으로 지정하고 육성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또 ‘신남향정책’을 심화해 나가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신남향정책이란 대만이 싱가포르와 베트남 등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남아시아 6개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18개 국가들과 긴밀한 경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이라는 말까지 들었던 이번 대만 총통 선거 결과, 미국은 중국에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됐다. 미국은 지난 8년간 친미파인 차이 총통이 이끄는 대만을 중국을 견제하는 지렛대로 활용해 온 만큼 라이 당선인이 취임한 이후에도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더욱 높일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미국은 중국이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가할수록 무기 수출을 확대하는 등 적극적으로 군사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은 양안 관계에 있어 평화와 안정유지, 이견에 대한 평화로운 해법 모색, 강압과 압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약속한다”면서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미국과 대만 관계는 경제와 문화, 대인 교류 등 다방면에 걸쳐 확장되고 깊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조만간 비공식 대표단을 대만에 파견할 계획이다.

반면 중국 정부는 이번 대만 총통 선거 결과를 사실상 부정하는 등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대만을 담당하는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은 라이 당선인의 승리가 확정된 지 두 시간 만에 발표한 담화를 통해 “대만의 선거 결과는 민진당이 섬(대만) 안의 주류 민의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며 “이번 선거는 양안 관계의 기본 구도와 발전 방향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담화는 또 “조국은 결국 통일될 것이고, 필연적으로 통일될 것이라는 점은 더욱 막을 수 없다”며 대만이 수복해야 할 중국 영토의 일부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도 성명을 통해 “이번 선거 결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만해협에서 물리적 충돌 발생할까


▎2023년 6월 대만해협에서 중국 군함 루양 3호가 미국 구축함 앞을 지나고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이 일단 대만을 경제적으로도 강하게 압박하면서 무력시위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3월 초 양회(兩會)와 대만 총통 취임일인 5월 20일 사이에 압박 조치를 대거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문공(文攻·말로 공격), 무하(武嚇·무력으로 협박), 경제 제재, 반(反)분열법 개정안 마련 등 중국 내 입법 등 4가지 수단으로 대만을 옥죌 것이 분명하다. 다만 중국은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 의거한 대만 상품의 관세 혜택을 완전히 없애는 등의 극단적 조치는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과의 경제 교류 전면 차단으로 인한 영향력 약화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사회 일각에선 중국이 대만에 대해 무력으로 통일을 시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라이칭더가 당선될 경우 대만해협에는 전쟁 위험이 고조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해왔다. 주쑹링 베이징연합대학 대만연구원 소장은 “대만 문제에 대한 시 주석의 견해는 분명하다”며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에반 메데이로스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앞으로 4년은 미·중과 양안 관계가 결코 안정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402호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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