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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의 이면에 담긴 국제정치 함수 

이란은 사우디의 핵 개발과 이스라엘 수교를 원치 않는다 

고립 우려한 이란이 ‘아브라함 협정’ 깨기 위해 하마스 배후 조종한 정황 증거 넘쳐
재선 앞둔 바이든 확전 방지하며 조정에 총력… 이스라엘은 하마스 궤멸 작전 돌입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의 피해는 무고한 시민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전쟁이 촉발되자 ‘가장 이득을 보는 국가는 이란’이라고 중동 전문가들과 서방 언론들은 보고 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배후에는 이란이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를 막기 위해 이란의 사주를 받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최정예부대인 알 쿠드스(아랍어로 예루살렘)가 8월부터 하마스와 협력해 육·해·공 3개 방면에서 이스라엘을 급습하는 작전을 짰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당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이란 대사관에서 알 쿠드스군의 사다르 이스마일 카니 사령관을 비롯해 헤즈볼라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 하마스의 군사 책임자 살레 알 아룰리,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이슬라믹 지하드의 알나칼라 등이 최소 격주로 모여 이스라엘 공격과 이후의 일들을 논의했다면서,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도 최소 두 차례 회의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이어 IRGC가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 대원 500명을 대상으로 9월부터 10월 초까지 이란에서 훈련을 시켰다고도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이란은 하마스가 로켓을 제조할 수 있도록 기술적 도움을 줬으며 하마스 대원들을 훈련시켰다”고 보도했다. 마크 폴리메로풀로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중동 대테러 담당관은 “육지·바다·하늘과 국경을 넘나든 복잡한 공격, 이를 위해 필요했을 훈련·인원·통신·무기의 규모는 이란의 개입이 있었음을 시사한다”며 “특히 패러글라이더 공격은 가자지구 밖에서 훈련해야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나 카티브 영국 런던대 중동연구소장은 “이런 규모의 공격은 수개월 동안의 계획을 거쳐야만 가능하다”며 “하마스는 이란의 명시적인 사전 동의 없이 단독으로 전쟁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은 이해관계 달라

하마스가 이란의 의도대로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유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수교할 경우, 자칫 팔레스타인 내에서는 물론 아랍에서도 고립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그동안 이스라엘과의 수교 문제에 대해 이해관계자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와 집권당인 파타당의 지지를 얻으려는 행보를 보였다. PA와 파타당은 이스라엘 파괴가 목적인 하마스와 달리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고 협상하려는 온건파다.

PA와 파타당은 요르단 강 서안을 통치해왔다. 반면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지배해왔다. 파타당과 하마스는 앙숙관계다. 하마스로선 파타당과 사우디의 이런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해왔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자신의 업적으로 삼고자 공을 들여왔다. 하마스의 입장에선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미국의 중재로 관계를 개선하는 등 이른바 ‘중동 데탕트(detente·긴장 완화)’에 합의할 경우 자칫하면 고립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임으로써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존재감을 보이는 동시에 미국의 중재로 이뤄진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 움직임을 막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수교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미국과 이스라엘에 통보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은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와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 간의 패권 다툼의 관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저지하기 위해 이란이 정교하게 계획한 ‘빅 픽처(big picture)’라는 것이다. 중국의 중재로 최근 외교 관계를 복원한 양국은 지난 1400년간 종교적으로 대립해온 말 그대로 ‘영원한 맞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양국이 대립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시리아와 예멘 내전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사우디는 반군을, 이란은 정부군을 각각 지원해왔다. 예멘 내전에선 사우디는 정부군을, 이란은 후티 반군을 각각 지원해왔다. 사우디는 수니파인 아랍 온건국가들 및 왕정 국가들과 연대해 협력해왔고, 이란은 레바논·시리아·이라크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를 구축해왔다.

특히 양국은 핵 문제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왔다. 이란이 핵 개발에 적극 나서자, 사우디는 미국의 이란 제재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사우디는 또 이란 핵 개발을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온 이스라엘과도 협력했다. 게다가 미국이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해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외교 관계를 맺도록 중재에 나서자 사우디는 이를 은밀하게 지원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2020년 9월 15일 바레인·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하고 국교를 수립했다. 이후 아브라함 협정에 따라 모로코와 수단이 이스라엘과 수교했다. 때문에 이란은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수교할 경우, 자칫하면 중동 지역에서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왔다. 이란과 하마스는 아브라함 협정이 사우디·이스라엘 수교로 확대되지 않도록 방해해야 할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빈 살만이 영어로 인터뷰한 배경


▎2023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폭스뉴스]와 영어로 인터뷰하며 외교전을 펼쳤다. / 사진:폭스뉴스 캡처
주목할 점은 이란으로서는 사우디의 핵 개발을 저지하려는 속셈이 있다는 것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미국에 이스라엘과의 수교 전제조건으로 △상호방위조약 체결 △원전 건설 목적의 우라늄 농축 허용과 기술 지원 등을 제시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탈석유 경제 정책과 최첨단 도시인 네옴시티 건설 등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해왔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이런 야심 찬 계획의 핵심은 무엇보다 에너지 다변화와 무탄소 에너지 전환을 위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다.

특히 무함마드 왕세자는 원전 건설을 추진하면서 이른바 핵연료 사이클(생산~농축~재처리)을 모두 자체적으로 갖추겠다는 의도를 보여 왔다. 그 이유는 이란의 핵 보유를 상당히 경계해왔기 때문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의 핵무기 보유와 관련해 “안전 보장과 중동에서의 힘의 균형을 위해 그들이 핵무기를 갖는다면 우리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미국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2019년 이후 4년 만이다. 게다가 무함마드 왕세자가 공개적으로 아랍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어떤 나라든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나머지 다른 국가들과 전쟁을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9월 20일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찾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사우디가 제시한 수교 조건을 논의했다. 이와 관련, [WSJ]는 네타냐후 총리가 사우디에 민간 핵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방안을 미국 정부와 협상하도록 실무진에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WSJ]는 사우디에 우라늄 농축시설 건설을 허용하되 시설운영·통제권은 미국이 갖도록 하는 게 이스라엘의 복안이라고 전했다. 이 방안이 실현된다면 사우디는 이란에 이어 우라늄 농축을 하는 두 번째 중동 국가가 된다.

미국 싱크탱크인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마크 두보위츠 대표는 “사우디의 우라늄 농축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지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반대해온 네타냐후 총리의 급진적 정책 변화”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이스라엘과 사우디와의 삼각 동맹을 통해 이란에 맞서는 강력한 안보 체제를 중동 지역에 구축하는 것이 자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란으로선 이런 3각 안보체제 구축이 자국을 옥죄기 위한 전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에란 레르만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이란은 사우디가 핵 개발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하마스를 부추겨 이스라엘 공격을 감행했다”고 분석했다.

사우디는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을 직시하며 상당히 곤혹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하마스가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 협상에 재를 뿌림으로써, 사우디는 외교적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국가라는 말을 듣고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우디 왕실의 주요 인사가 이란의 ‘앞잡이’ 노릇을 한 하마스를 이례적으로 비판했다. 투르키 알 파이살 사우디 왕자는 10월 17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라이스대학에서 연설을 통해 하마스에 대해 “연령, 성별을 가리지 않고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면서 “이는 민간인을 해치지 말라는 이슬람 명령에 위반된다”고 비난했다.

투르키 왕자는 1979년부터 2001년까지 사우디 정보기관인 알 무카바라트 알 암마의 국장을 지냈으며 정계에서 존경받는 원로 정치인이자 전직 외교관이다. 영국 [BBC] 방송은 투르키 왕자의 발언에 대해 “사우디 왕실 고위 인사로서는 이례적으로 솔직했다”며 “이는 현재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 대한 사우디 지도부의 생각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도~중동~유럽을 잇겠다는 미국의 계획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초강경 태세로 하마스 진압을 외치고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게다가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으로 무함마드 왕세자가 추진해온 ‘비전 2030’ 프로젝트가 자칫하면 실패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무함마드 왕세자가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무엇보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등을 통해 중동 지역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수교할 경우, 중동 지역에선 평화 체제가 구축될 수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건설을 추진해온 네옴시티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이집트·요르단에 둘러싸인 아카바 만에 가깝다. 네옴시티의 고지대에서 2029년 열리는 동계아시안게임을 위해서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무함마드 왕세자의 비전 2030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여 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사우디로서는 이스라엘과의 수교가 필요하지만,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에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무하마드 왕세자가 10월 10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과의 전화 통화에서 “팔레스타인 국민 편에 서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중재해온 미국은 양국이 협상을 재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10월 24일 무함마드 왕세자와 전화 통화를 갖고 양국의 수교 협상 재개를 타진했다. 두 정상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중동 지역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는 데 일단 합의했다.

특히 두 정상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종료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논의했다. 이와 관련, 백악관은 “두 정상은 위기가 가라앉는 즉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했으며, 이는 최근 몇 달 동안 사우디와 미국 간에 이미 진행 중인 작업을 기반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미국이 추진해왔던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관계 정상화 중재를 계속 하겠다는 것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사우디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에 여전히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남북으로 분리된 가자지구


▎하마스의 배후로 의심받는 이란은 라이시 이란 대통령을 필두로 반(反)이스라엘 시위를 펼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실제로 무함마드 왕세자는 10월 30일 자신의 친동생인 칼리드 빈 살만 국방장관을 미국에 파견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확전 방지와 사우디와 이스라엘 수교 협상 재개 문제를 논의하도록 했다. 칼리드 장관은 2017~2019년 주미대사를 지냈다. 백악관은 “칼리드 장관과 설리번 보좌관이 전쟁 이후 평화 체제 수립 방안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면서 “두 사람은 이번 회동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지속가능한 평화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특히 백악관은 “이는 그동안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사우디 간에 최근까지 진행돼온 일의 연장”이라고 밝혀,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전제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이 여전히 추진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으로서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 카드를 이용해 이란이 중동 지역 패권을 차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9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제시한 인도와 중동(UAE·사우디·이스라엘), 유럽을 잇는 철도·해운 수송로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 계획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맞서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을 건설하는 것이다.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수교와 평화체제 구축의 변수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중동 지역으로 확대된다면, 이런 구상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미국은 물론 사우디와 이스라엘도 확전을 방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면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면 이슬람권 전체가 분노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사우디도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를 궤멸시키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정예부대를 동원해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분리해 북부 지역과 가자시티를 포위했다. 이에 따라 가자지구는 사실상 북부와 남부로 양분됐다.

가자지구의 중앙에는 북부와 남부를 가로지르는 ‘와디(Wadi, 평소에는 마른 골짜기이지만 큰비가 내리면 하천이 돼 물이 흐르는 강) 가자’라는 곳이 있다. 이스라엘군의 이런 전략에 따라 하마스는 북부 지역과 가자지구의 사실상 수도인 가자시티에 고립됐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가자시티와 북쪽 지역을 떠나 남쪽의 안전지대로 대피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해왔다. 가자지구에선 현재 전체 인구의 60%에 해당하는 140만 명이 피란길에 올랐고, 이 중 상당수가 와디 가자 이남으로 이동했다.

이스라엘군 수석 대변인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11월 5일 “우리 군이 가자시티를 완전히 포위했으며, 오늘부터 북(北) 가자와 남(南) 가자가 생겼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하마스와 전쟁을 3단계로 치르겠다며 1단계를 공습, 2단계를 지상군 투입과 하마스 격멸, 3단계를 새 안보 체제 구축(대체 정권 수립)으로 천명해 왔다.

이스라엘군의 가자시티 시가전 성패는 하마스와의 땅굴 전투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가자지구에는 ‘가자 메트로(metro)’라고 불리는 지하터널이 있다. 가자지구의 면적은 360㎢로 우리나라의 세종시보다 조금 넓다. 길이는 40㎞, 평균 너비는 8㎞로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은 직사각형 모양이다. 가자지구의 땅굴망은 마치 지하철 노선처럼 연결돼 있다. 하마스가 2005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가자 메트로의 총 길이는 300마일(483㎞), 깊이는 지하 30~40m인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의 지하철(316㎞)보다 훨씬 길다.

또 땅굴의 입구는 이스라엘군의 정찰과 탐지를 피할 수 있도록 주로 주택, 모스크, 학교 같은 건물의 맨 아래층에 만들었다. 하마스는 땅굴에 지도부의 은신처와 지휘 사령부를 만들었으며 로켓 등 각종 무기와 탄약, 식량, 식수, 연료 등을 비축해놓았다. 심지어 각종 통신선과 무기 수송용 철로를 설치해 놓았다.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하마스 대원 3만5000~4만 명이 3~4개월 동안 전투를 계속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무기와 식량들을 땅굴에 비축해놓은 것으로 추정했다. 때문에 가자시티 전투는 장기적 소모전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군과 하마스 대원들의 가자시티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시가전이 될 것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시가전 특성상 민간인 피해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민간인 피해가 커질수록 국제 여론이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이라크 모술의 악몽 되살아나나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시티 시가전은 이라크군의 모술 전투와 비교할 때, 민간인의 피해가 훨씬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라크 제2도시인 모술에선 2016년 10월 16일부터 2017년 7월 20일까지 미군과 이라크군 등 연합군이 이슬람 수니파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미군의 첨단 화력 지원을 받은 이라크군은 병력 10만 명을 동원해 모술을 완전히 포위하고, IS 대원 6000여 명과 전투를 벌였다.

당시 이라크군은 미로처럼 얽힌 도시에서 주민들을 ‘인간 방패’로 삼아 저항하는 IS 대원들과의 전투에서 상당히 고전했다. 당초 3개월이면 끝날 것이라던 전투는 9개월이나 계속됐다. 이라크군 8200여 명이 전사했고, 민간인이 9000명에서 1만1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으며, 건물 1만3000여 채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는 등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이스라엘군이 모술의 경우와 달리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가자시티 시가전에서 승리할 경우, 미국의 중재로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어찌됐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중동 지역 국제질서에서 엄청난 변곡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312호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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