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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인공지능(AI)으로 촉발된 글로벌 반도체 대전 

美·日·대만 민·관 합동 전력질주… 고립된 한국, 반도체 아성 흔들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칩워’ 개시한 美, 파운드리의 인텔과 메모리의 마이크론 앞세워 공세 전환
TSMC는 대만에선 최첨단 칩 개발, 일본에선 中 겨냥한 반도체 안보 무기화


▎젠슨 황(오른쪽) CEO가 이끄는 엔비디아의 시총은 구글과 아마존을 넘어섰고 애플을 위협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AI 기술에 반도체를 공급할 주체가 어디인지에 따라 향후 ‘반도체 패권’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 / 사진:엔비디아
"세계 정치는 지난 50년간 석유가 어디서 나는지에 좌우됐다. 이제는 반도체가 주인공이다. 아시아가 80%를 차지한 제조 비중을 북미와 유럽이 50%를 가져와야 한다.” 미국 최대 반도체 업체인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2월 21일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맥에너리 컨벤션센터에서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 다이렉트 커넥트 2024’를 열고 강조한 대목이다. 겔싱어 CEO는 “올해 말 1.8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반도체 양산에 나설 것”이라면서 “인텔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 리더십을 재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만과 한국 등 동아시아는 그동안 전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점유율을 대부분 차지해왔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 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파운드리 매출 중 대만 TSMC의 점유율은 59%, 한국 삼성전자는 11%였다. 인텔이 올 연말 1.8나노 반도체 양산에 성공한다면 2025년 2나노 반도체를 생산하려는 삼성전자와 TSMC의 계획을 앞설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겔싱어는 “2027년 1.4나노 반도체를 양산하겠다”면서 “우리는 결국 모든 종류의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제조하고야 말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경우 앞으로 3년이면 인텔이 TSMC·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겔싱어 CEO의 이런 호언장담은 반도체 패권을 가져오기 위해 전면적인 ‘칩워(Chip War·반도체 전쟁)’를 개시하겠다는 미국 반도체 업계를 대신한 일종의 선전포고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인텔의 행사에는 샘 올트먼 오픈 AI CEO 등 1000여 명의 잠재 고객사 고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화상으로 참석했다.

특히 행사장에 마련된 큼지막한 스크린에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가 깜짝 등장해 겔싱어 CEO의 연설을 뒷받침하는 발언을 했다. MS는 전 세계에서 AI 선두 기업이다. 나델라 CEO는 “MS가 인텔의 1.8나노 파운드리 공정의 고객사가 됐다”고 밝혔다. 50억 달러(약 6조6000억원)로 추정되는 예상하지 못한 초대형 계약 발표였다. 나델라 CEO는 “가장 발전된 고성능·고품질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인텔을 골랐다”면서 “우리 모두는 미국에서 강력한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인텔의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도 “인텔은 미국 반도체 산업의 챔피언”이라면서 “이제 실리콘(반도체)을 다시 실리콘밸리로 가져올 때”라고 강조했다. 러몬도 장관은 “모든 반도체를 미국에서 만들 순 없지만 AI 시대를 이끌 반도체 리더십은 갖춰야 한다”며 “과거 미국이 전 세계 반도체의 40%를 생산한 것처럼 미국이 글로벌 반도체 생산을 주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텔과 MS, 반도체 파운드리 동맹 맺어


▎2024년 2월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의 파운드리 서비스 다이렉트 커넥트 행사에 화상으로 참여했다. / 사진:연합뉴스
AI 시대가 도래하며 글로벌 반도체 전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대만은 물론 인도까지 정부가 직접적으로 민간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민·관 협력 체제를 구축해 반도체 산업육성과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 종주국인 미국에선 정부의 뒷배와 반도체지원법에 힘입어 인텔과 마이크론이 MS, 엔비디아 등과 함께 사실상 ‘팀 USA’를 결성했다. 러몬도 장관은 “미국이 세계 반도체를 선도하기 위해 ‘제2의 반도체 지원법’으로라도 지원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미국 정부는 인텔에 100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1980~90년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절반을 지배했던 일본 정부도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며 TSMC 공장을 유치, 반도체 부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TSMC 등 대만 반도체 업체들은 라이칭더 차기 총통의 강력한 지원 계획에 따라 대만판 실리콘밸리를 구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 반도체 굴기에 나서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최대 반도체 업체인 SMIC가 첨단 공정인 7나노 공정 반도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인도 정부도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대만 업체 등을 유치해 반도체 공장 건설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인텔은 미국의 반도체 부흥을 이끄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인텔은 반도체 설계·생산·판매를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기업’(IDM)으로 매출기준 세계 1위다. 하지만 메모리 부문에선 삼성전자에 뒤지고 있는 데다 파운드리 부문에서도 TSMC와 삼성전자에 비해 훨씬 후발주자다. 인텔은 일단 “2030년까지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2위가 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파운드리 분야에서 2위인 삼성전자를 6년 안에 제치겠다는 것이다. 겔싱어 CEO는 “MS를 포함해 150억 달러의 수주를 확보하며 인텔이 AI 시대 가장 최적화한 파운드리임을 증명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 업은 마이크론은 ‘메모리’ 약진


▎2024년 2월 일본 구마모토에서 TSMC 공장 준공식이 열렸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주도 참석했다. / 사진:TSMC
인텔이 이런 야심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올 초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ASML이 생산한 차세대 반도체 제조장비 ‘하이 뉴메리컬어퍼처 극자외선(High NA EUV)’의 첫 공급 업체가 됐기 때문이다. 이 장비는 첨단 반도체 미세화 공정의 핵심 장비인 EUV(극자외선) 장비의 성능을 개선한 것이다. 반도체 원판(웨이퍼) 위에 회로를 더 세밀하게 그릴 수 있다. 특히 이 장비는 2나노 이하 공정에 필수적이다. 인텔이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TSMC보다 먼저 1.8나노 공정을 양산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장비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MS, 아마존, 구글, 메타 등 직접 AI 반도체 설계에 나선 글로벌 빅테크기업 대부분이 미국 기업이다. 미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산업 지원에 나선 가운데, 이들 기업은 인텔에 일감을 몰아줄 가능성이 높다.

미국 반도체 업체 중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기업은 마이크론이다. 메모리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세계 3위인 마이크론은 AI 반도체에 필수적인 5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3E)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마이크론의 의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따라잡겠다는 것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처리 속도를 끌어올리는 고성능 반도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4세대인 HBM3를 양산하고 있다. 5세대인 HBM3E가 가장 최신 모델이다.

여기서 마이크론은 HBM3를 건너뛰고 바로 HBM3E 양산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CEO는 2월 26일 D램을 8층으로 쌓아 올린 HBM3E가 2분기 출시될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반도체 패키지)인 H200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메모리 업체 중 엔비디아 H200 납품을 발표한 곳은 마이크론뿐이다. 마이크론의 HBM3E 양산은 기존 HBM 업계 판도를 바꾸겠다는 승부수로 풀이된다. 트렌드 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점유율은 SK하이닉스 53%, 삼성전자 38%, 마이크론 9%로 추정된다. 현재 엔비디아는 글로벌 GPU 시장을 사실상 독식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AI용 GPU 시장점유율은 엔비디아가 80%, AMD가 20%다. 엔비디아가 마이크론과의 협력을 강화할 경우, 자칫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설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

일본은 대만과 손잡고 반도체 르네상스를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2월 24일 일본 구마모토의 작은 마을 기쿠요마치에서 열린 TSMC의 제1공장 준공식을 들 수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는 2022년 4월 86억 달러(약 11조 5000억원)를 투자해 이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해 “4~5년은 걸릴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2년 만에 완공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7000여 명의 인력이 24시간 3교대로 일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이 공장을 건설하는 데 전체 비용의 40%인 4760억 엔(약 4조2036억원)을 예산으로 지원했다. 이 공장의 운영은 TSMC가 일본 기업들인 소니·덴소 등과 함께 설립한 일본 현지 법인 JASM이 맡는다. TSMC는 구마모토 1공장에서 오는 4분기부터 12·16·22·28나노 공정의 제품을 생산한다. 일본 반도체 기업이 양산할 수 있는 최신 공정이 40나노임을 감안하면, 구마모토 제1공장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TSMC의 구마모토 제1공장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르네상스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호언했다. 일본 언론들은 TSMC의 구마모토 제1공장을 ‘레이와의 구로부네(黑船·흑선)’라고 지칭하고 있다. 레이와(令和)는 2019년부터 쓰고 있는 일본 국왕의 연호다. 구로부네는 1853년 도쿄 만에 도착해 개항을 요구한 페리 제독이 이끌었던 미 해군 함정을 말한다. 흑선은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일본은 이를 계기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뤘다. 일본 언론들이 이런 별칭으로 부르는 이유는 TSMC의 구마모토 제1공장이 세계 최강이었다가 몰락한 일본 반도체 산업을 부활시킬 수 있는 ‘제2의 흑선’이 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TSMC, 일본 반도체 산업 재건 조력자로


▎대만의 라이칭더(가운데) 신임 총통은 TSMC 반도체의 기술력을 활용해 중국의 위협을 막아내려는 방책을 숨기지 않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TSMC는 또 2027년 말 가동을 목표로 구마모토에 139억 달러(약 18조5000억원)를 투입해 제2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제2공장 건설에도 7300억 엔(약 6조5000억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TSMC는 “제1, 2공장이 모두 가동하면 구마모토는 범용제품부터 생성형 인공지능(AI) 첨단제품까지 생산하는 거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TSMC는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제3공장 건설도 검토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일본 정부는 전례 없는 대담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면서 “TSMC의 세계 전략에 일본이 중요 거점으로 명확하게 자리 잡은 것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구마모토가 위치한 규슈는 과거 미쓰비시 전기, NEC 등 일본 반도체 산업이 집중돼 있던 곳이다. 특히 구마모토는 JASM을 합작한 소니가 인근에 이미지 센서 공장을 신설하기로 하는 등 반도체 산업을 위한 기반이 튼튼한 곳이다. 대만 반도체 산업의 핵심 기업인 TSMC가 일본에 자리 잡자, 대만의 다른 반도체 기업들도 잇달아 일본 사업 확장에 나서면서 일본 반도체 산업에 활기가 돌고 있다. 지난 2년간 최소 9개의 대만 반도체 업체들이 일본에 사무소를 열거나 사업을 확장했다. 반도체 설계회사인 이 메모리 테크놀로지는 요코하마에 사무실을 열었고, TSMC의 재료 검사 업체인 머티리얼스 어낼리시스테크놀로지(MAT)도 지난해 말 규슈에 연구소를 열었다. 반도체 장비 업체 피네스 테크놀로지도 일본에 공장을 짓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2030년까지 일본의 반도체 관련 매출을 현재의 3배 수준인 15조 엔(약 132조8000억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일본은 미국과도 반도체 협력을 추진해왔다. 도요타·소니 등 8개 일본 회사가 만든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는 2027년까지 2나노 반도체를 양산하기 위해 미국 IBM에 100여 명의 기술진을 파견했다.

대만은 한국과 미국의 추격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산업의 선두 주자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총력에 나서고 있다. TSMC는 친미·반중 성향인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1월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전 세계에서 최초로 최첨단인 1나노 공정의 공장을 대만 남서부 자이현 타이바오시의 과학 단지에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나노 공장 건설에 1조 대만달러(약 42조원)가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TSMC는 타이바오시 과학단지를 관할하는 관리국에 공장 용지를 요청했다. 1나노 공정은 현존 반도체 공정을 뛰어넘는 미래 기술이다. TSMC는 현재 3나노 공정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2025년 대만 남부 가오슝에 2나노 공장 두 곳을 가동할 계획인 TSMC가 이번에 1나노 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2나노 공장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TSMC의 이런 계획이 라이 당선인과의 교감을 통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라이 당선인의 의도는 TSMC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TSMC는 2월 2일 기준 세계 시가총액 랭킹 500개 기업 중 13위를 기록하면서 아시아 최고 기업으로 등극한 바 있다.

라이 당선인은 5월 20일 총통 취임 이후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더욱 강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라이 당선인은 선거 공약으로 “대만 반도체 산업은 국제사회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확대돼야 하며, 이는 다른 과학기술 및 전통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세계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반도체의 완전한 공급망을 형성하기 위해 재료 및 장비 연구·개발(R&D), IC(집적회로)의 설계·제조·패키징·테스트 분야 등에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기반으로 AI의 산업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민주주의 국가들의 반도체 공동전선

대만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반도체 산업은 15%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24.8%에서 2023년 38.4%로 늘었다. 대만은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칩의 63%, 첨단 칩의 73%를 공급하고 있다. 특히 TSMC의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연평균 시가총액 성장률은 22.04%를 기록했으며, 지난해 대만 전체 GDP의 무려 7.9%를 차지했다.

대만 정부는 라이 당선인의 공약에 따라 반도체의 IC 설계 분야 점유율을 현재 20%대에서 40%대로, 첨단 제조공정 점유율도 80%까지 높이며 이를 위해 향후 10년간 3000억 대만달러(약 12조7000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특히 라이 당선인은 ‘타오위안·신저우·먀오리 대(大)실리콘밸리’ 계획을 추진할 방침이다. ‘대만판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이 계획은 TSMC의 연구·개발(R&D) 센터, 첨단 반도체 제조 공장이 있는 북부의 신저우 지역을 보조할 수 있는 타오위안과 먀오리 지역을 개발해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대만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는 지난해 신저우과학단지의 생산액과 근로자 규모가 각각 1조6100억 대만달러(약 65조7000억원), 17만6000명이었다면서, 이 같은 계획이 성사되면 향후 생산액이 최소한 1조 대만달러 이상 늘어나고 근로자가 2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라이 당선인은 “소재, 장비, 연구·개발, IC 설계, 제조, 웨이퍼 제조 및 테스트에 이르기까지 반도체 산업을 지속 지원해 대만이 종합 클러스터가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TSMC가 본거지인 대만에 최첨단 칩의 연구·개발과 생산을 담당하고, 해외에서는 나머지 제품을 생산하는 체제를 구축하려는 전략을 추진하는 것도 라이 당선인의 구상과 일맥상통한다. 라이 당선인은 “TSMC는 대만의 자랑이자 세계 공동의 자산”이라며 “반도체 산업은 고도로 분업화된 산업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협력이 필요하며 TSMC의 존재는 세계 문명의 진보와 미래 인류의 생활과 직결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TSMC의 구마모토 투자는 일본과 대만이 협력을 심화해 경제 안보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라이 당선인은 그동안 대만과 일본이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TSMC의 해외 생산거점 확보 전략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진행 중이다. 미국 애리조나 제1공장은 2025년 상반기 4나노 공정 제품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고, 유럽 첫 공장인 독일 드레스덴 공장은 올해 4분기 착공한다. 일본과 미국, 독일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2028년에 TSMC의 해외 공장 월간 생산량은 총 30만 개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전체 생산량의 20%다. 라이 당선인의 의도는 이처럼 TSMC를 지렛대로 민주주의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 중국의 침공 야욕에 대항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도 민·관 협력 체제 강력하게 구축해야

인도도 반도체 전쟁에 뛰어들었다. 인도는 정보기술(IT) 인재가 풍부하다는 점, 영어를 쓴다는 점, 건설비 절반을 보조금으로 지원하겠다는 당근 등을 내세워 반도체 공장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인도의 대표적인 대기업인 타타그룹 산하 타타일렉트로닉스는 대만 파운드리 업체 PSMC와 함께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고향인 구자라트주에 110억 달러(약 14조7000억원)를 들여 28나노 공정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인도 정부는 외국 기업이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해당 비용의 절반을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AI 시대로 촉발된 글로벌 반도체 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미국, 일본 등 각국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한국 역시 민·관 협력 체제를 강력하게 구축해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필요가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404호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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