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김동식 연재소설] ‘디지털 감성작가’ 김동식 단편소설(4) 

천벌 발전소 


▎ 사진:getty images bank
수십 년간 한 나라를 지배한 독재자가 아주 잠깐 권력을 놓고 물러났다. 대형 스캔들을 방어하는 방편이었고, 어차피 그의 최측근이 뒤를 이었다. 몇 년 뒤에 다시 돌아올 게 뻔했는데, 이변이 일어났다. 벼락을 맞아 사망해버린 거다.

뉴스를 접한 국민 사이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말은 ‘천벌을 받았다’였다. 얼마 지나자, 정말 그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게 되었다.

“엥? 시체 위로 번개가 계속 친다는데?”

독재자의 시체 위로 번개가 계속해서 내리꽂힌다는 믿기 힘든 소식이었다. 거의 1분 간격으로 번개가 쏟아지는 바람에 시체를 수습해야 할 사람들이 아예 접근조차 못 하고 있었다. 이 모습은 곧 영상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게 과학적으로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조작이 아니라 진짜라고?”

“진짜 천벌이네! 이건 정말로 하늘이 노한 거야!”

어떤 이들은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천벌을 보겠다며 황급히 찾아갔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이고 저놈이 드디어 벌을 받는구나!”

독재자 시체 이용한 ‘번개력 발전소’

멀리서도 번쩍번쩍하는 하늘의 모습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기에 가장 완벽한 길잡이였다. 정말 많은 국민이 이 기현상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정부에서 황급히 통제하려 했지만, 인파의 힘을 막기가 힘들었다. 수십만 명이 몰려들었고, 정부는 떨었다. 누군가 이들을 주도하여 정권 전복이라도 꿈꿀까 봐서 말이다. 결국 군대까지 동원되었지만, ‘천벌’이라는 개념을 탑재한 대중의 힘을 이기긴 힘들었다. 겨우 100미터 접근 금지 라인을 긋는 데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현 국가의 수장은 크게 당황했다. 단지 임시로 맡아둔 것이었지만, 흘러가는 꼴을 보면 미래가 불안하지 않은가? 발 빠른 손절이 이루어졌다.

“그는 명백한 독재자였습니다! 모든 죄에 관한 전면 조사에 들어가겠습니다!”

독재 정권을 상대로 수십 년 만에 정의가 승리하다니? 시민들은 환호했고, 또 의기양양했다.

“하늘이 정의의 편이다. 만약 누구든 또 다른 독재자가 나타난다면 저 벼락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실제로 권력자들은 몸을 사리게 될 수밖에 없었다. 과학적으로 전혀 이해가 안 가는 현상 앞에서는 돈도 권력도 소용이 없었다. 자 그러면, 모든 상황이 순리대로 흘러가는 와중에 한 가지 문제가 남았다.

“근데 저 시체를 어떻게 처리하지?”

놀랍게도 독재자의 시체는 크게 손상되지도 않았다. 마치 계속해서 벌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온전한 형태로 번개를 받아들였다.

“그래도 한 나라의 수장이었는데, 장례는 치러야 하지 않나?”

“미친 소리!”

장례 얘기를 꺼낸 사람들은 돌 맞는 걸 각오해야 했다. 살아있으면 모르되, 이미 죽은 독재자의 예우 따위 챙겨줄 이유가 없었다. 현 권력층도 적극적으로 독재자를 적대해야만 유리한 판국이었으니, 국장 같은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다만 장례는 몰라도 시체를 수습하긴 해야 할 것 같았는데, 방법이 난감했다. 1분 간격으로 번개가 치는데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첫 번째 시도는 1분 사이에 재빨리 시체를 옮기는 행위였다. 하지만 번개가 시체를 따라다닌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되었다. 피뢰침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옆에 피뢰침을 설치해도 시체에 먼저 맞은 다음에야 옮겨갔다. 그러면 시체를 원격으로 소각하는 건 어떨까? 고민이 되는 사이, 시민들은 말했다.

“뭘 치우나? 그냥 천벌의 상징으로 그 자리에 그냥 두고 구경거리로 남기지.”

많은 이가 공감했는데, 누군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우리나라는 석유도 안 나고, 가스도 안 나는 소국인데, 번개가 생겼네요? 독재자의 시체를 이용하여 ‘번개력 발전소’를 짓는 게 어떻겠습니까?”

독재자의 몸에 떨어지는 천벌을 이용하여 전기를 만든다? 순식간에 과학자들이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사실 번개는 발현 즉시 공기 중으로 에너지가 퍼져서 전력을 모으기가 힘들지만, 그건 무작위일 때 얘기죠. 만약 일정 간격으로 한 점에 떨어지는 번개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국민은 크게 흥분했다. 그동안 국가를 좀먹은 독재자였기에 이 행위 자체에 큰 울림이 있었다. 농담처럼 시작된 번개력 발전 프로젝트는 결국 엄청난 추진력으로 진행되었다. 전국의 석학이 모여 발전소를 디자인했는데, 생각보다 간단한 구조였기에 순식간에 지어질 수 있었다. 한 달도 안 되어 기본 골조가 완성되었고, 곧장 독재자의 시체가 이동되었다. 그날 생중계는 장관이었다. 1분 간격 틈틈이 독재자의 시체를 옮기는 과정에서 번개의 길이 이어졌으니, 먼 곳에서 하늘을 보면 벼락의 길이 이어지는 광경이었다. 마침내 발전소의 핵에 독재자의 시체가 놓이고, 발전소가 가동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죽은 독재자를 칭찬하는 국민들

“국민 여러분! 성공입니다! 전력 응집이 됩니다! 어마어마한 전력입니다!”

과학자들의 예상보다 번개의 순도가 높았는지 아니면 알 수 없는 비밀이 있는지 몰라도, 번개로 만들어지는 전력의 양은 장난이 아니었다.

“전국의 모든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보다 독재자의 시체 하나로 만들어진 전기가 훨씬 더 큽니다!”

충격적인 결과에 전국이 흥분했다. 자원이 없는 작은 소국에서 전기 수출국으로 변모할 수도 있을 정도의 엄청난 일이었다.

“국민 여러분! 에어컨을 펑펑 트십시오! 우리나라는 이제 전기 걱정이 없는 나라입니다!”

무한에 가까운 전기는 온갖 장밋빛 미래를 그리게 했다. ‘독재자발’ 공짜 전기가 전국으로 송전 되면서 전국의 가정이 환해졌다. 시민들은 통쾌하게 즐겼다.

“독재자 전기로 만드니까 밥맛도 더 좋은 것 같네!”

“아유 에어컨 시원하다~ 그놈이 죽었을 때 속이 다 시원하더니, 에어컨도 참 시원하네~”

국민은 크게 만족했다. 심지어 독재자를 칭찬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그놈은 평생 죄를 짓더니 죽어서야 도움이 되는구나.”

“내 생에 그놈이 고마워질 줄은 몰랐네? 하이고 고맙다~”

과연 독재자발 전기가 언제까지 공짜일 줄은 몰라도, 일단 당장은 이 무한한 전력을 누렸다. 한데 얼마 뒤, 문제가 생겼다.

“긴급 속보입니다! 버, 번개가 멈췄습니다!”

독재자의 시체 위로 쏟아지던 벼락이 멈춰버린 거다. 물론 언젠가 멈추지 않겠느냐 예상을 한 적이 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멈춰버리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와중에 새로운 뉴스가 혼란을 더했다. 번개가 가끔 한 번씩 내려친다는 뉴스가 말이다. 왜지? 사람들은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완전히 멈췄으면 그냥 발전소를 포기했겠지만, 조금씩 떨어지니까 미칠 것 같았다. 어떻게든 다시 천벌이 예전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국가는 원인과 해결을 찾기 위한 연구에 들어갔다. 사실 처음 천벌 현상이 일어났을 때부터 많은 학자가 천벌 현상을 연구하고 있었으니, 거기서 조금만 연구 방향성을 틀면 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로 발표된 내용 중에 이러한 게 있었다.

“저런 천벌을 받을

“그가 수십 년간 독재를 펼치면서 얼마나 많은 이가 천벌을 바랐겠습니까? 혹시 천벌을 바라는 사람의 기원 한 번 당 천벌 한 번이 이루어진 거 아니겠습니까? 1분에 한 명씩이니까 한 달 43,200명, 1년 518,000명. 인구 비율적으로 꽤 연관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다 지금은 진심으로 천벌을 바랐던 사람들의 숫자가 다 끝나버린 거 아닐까요? 간간이 번개가 치는 것은 최근에 천벌을 바라게 된 사람들의 기원이 이루어진 것이고요.”

꽤 일리가 있었기에 한 가지 방법이 시도되었다. 방송으로 독재자의 악행을 자세히 재조명하여 내보내기 시작한 거다. 피해자들의 인터뷰가 쏟아지고, 묻혔던 진실들이 파헤쳐졌다. 수십 년의 독재 동안 펼쳐진 인면수심의 악행들이 낱낱이 알려졌다. 국민은 분노했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저런 천벌을 받을!”

그러자 놀랍게도 발전소의 하늘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천벌이 돌아왔습니다! 다시 1분 간격으로 번개가 내려치고 있습니다!”

무한한 전력이 다시 돌아오자, 정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독재자의 악행을 광고했다. 감정 이입이 쉽도록 드라마와 소설 등의 창작물로도 적극 권장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작은 국가였던 이 나라는 최고의 수출품을 발명했다. ‘독재자의 악행’이라는 수출품을 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에 그 독재자의 악행이 알려졌다. 전 세계 인류가 독재자의 끔찍한 짓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말했다.

“저런 천벌을 받을!”

※ 김동식 - 1985년 성남 출생. 부산 영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06년부터 서울 성수동 주물 공장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다. 2016년부터 인터넷에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고, 2017년 12월 27일 초단편 소설집 [회색인간]을 내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2018년 제13회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사회 분야)을 수상했고, 강연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02407호 (2024.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