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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평양리포트] 문재인 회고록 팩트 체크 

“북핵 협상 실패는 모두 미국 탓이라는 변명문” 

“대담 형식으로 쓰인 회고록… 주관적 견해 가득하고 곳곳에 미화(美化)”
“북한의 속내 파악 못하고 매번 휘둘리기만… 결과는 정권 재창출 실패”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진열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 대통령의 회고록은 역사가 짧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은 회고록이 없다. 나라의 초석을 세운 대통령들이 회고록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일은 우리 역사의 불행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백담사 유배와 구속 등으로 회고록을 남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그런대로 체계적인 회고록이 발간됐다.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회고록이 발간됐다. 일부는 언론사가 최소 6개월 이상 인터뷰한 내용을 신문에 연재한 후에 회고록 형태로 발간됐다. 미국과 달리 재임 당시부터 회고록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전직 대통령의 소회와 구술에 의존했다. 외교 문헌과 육하원칙에 따른 체계적인 기록은 미흡했다. 대통령도 한 인간으로서 가진 소회와 특정인에 대한 애증 등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깊이가 부족했다.

주관적인 견해와 개인적 소회로 점철된 회고록

역대 국내 대통령들의 회고록은 주관적인 견해의 나열이거나 미화(美化) 성격이 강하다. 회고록은 제삼자가 작성하는 평전(評傳)과 다르다. 아무래도 여야 간의 격렬한 대립으로 통합의 정치를 하기가 용이하지 않고 5년 단임 대통령이라 회고록은 과거 정책의 홍보와 변명이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데 주력한다. 회고록은 자기 시선으로 보고 1인칭으로 이야기하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만 이야기한다. 평전이면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져서 크로스체크하는 것이 필수다. 일반적으로 외교·안보 및 북한 관련 부분은 상대국이나 당사국 지도자 등이 관련돼 있고 외교적 마찰을 고려해 공식적 기록을 중심으로 기술한다. 상대국 지도자와의 사적인 감정은 제외하고 협상 당시의 양측 입장과 대응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발간한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는 공식적인 외교문서를 토대로 기술한 정통 외교·안보 분야 회고록이라기보다는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이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기술돼 사건과 정책에 대한 감성적 의견과 소회로 평가된다. 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미국 대통령들의 회고록이 사료나 당시 외교문서 등을 토대로 치밀하고 꼼꼼하게 기록된 것과는 대조된다. 특히 본인이 데리고 일을 했던 차관급 대담자가 문 전 대통령에게 묻고 질의하는 형식이라 기존 단독 회고록과는 결이 다르다. 각주로 첨가한 합의나 문서도 거의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다. 대담자인 최 전 차관은 이 책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있고 대한민국 외교·안보정책의 원재료로 사용되기를 희망했지만 평가는 현재와 후세의 학자와 역사가들의 몫이 될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 집필 계기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이룬 일과 이루지 못한 일의 의미와 추진 배경, 성공과 실패의 원인과 결과를 성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며 “설명에 필요한 범위 안에서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책에 담긴 생각들은 물론 주관적인 생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공식적인 기록이나 문서를 인용하지 않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거두절미한 채 일부만 소개하거나 부분적으로 모호한 이야기 등을 나열해 과연 역사적 사료로서 의미가 어느 정도일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김정은을 미화하고 북한의 핵 개발과 대남정책을 내재적 입장에서 지나치게 옹호하고 대변해 일반 국민들이 향후 김정은의 의도와 대남정책을 오판할 가능성이 큰 만큼 세부적인 지적과 반박은 불가피하다. 통상적으로 과거 북한 최고 지도자의 행태나 관행, 평양의 선전과 실제 행동 등에서 평가할 때 회고록은 김정은에 대해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판단하거나(본인이 밝히기는 했지만) 감성적으로 해석해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속칭 북한 입장에서 접근하는 ‘완벽한 내재적 접근법’에 기반하고 있다. 북핵 협상 실패는 모두 미국 탓이라는 입장이다. 김정은 발언의 녹취 파일이 없는 만큼 사실관계 확인은 한계가 있다.

비평은 크게 세 부분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째는 김정은과 관련해 느낀 점이나 소회·견해, 둘째는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관계, 마지막으로 북핵 정책 관련 부분이다. 회고록에 나온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하고 팩트 체크와 함께 미국 당국자 등 제 삼자의 증언 등을 토대로 평가하고자 한다. 문 전 대통령이 불쾌하게 표현한 아베 전 총리 등 한·일 관계부분과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 등 북한과 직접 관련돼 있지 않은 부분은 평가에서 제외했다.

문 전 대통령은 전체적으로 미·북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데 대해 미국 책임론을 강하게 지적했다. 트럼프는 의지가 있었는데 펜스 부통령,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보좌관 등 근본주의자들이 강하게 반대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아니다. 대통령이라도 참모들과 소통하고 협의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다.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의 서울 답방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조차도 미국의 남북관계 속도 조절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은이 서울에 가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솔직히 남한의 경호가 안심이 안 되고 서울에서 반대 시위 등에 직면하는 등 득보다 실이 많아 답방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편이 더 합리적인 의견일 것이다.

“김정은은 시종일관 솔직하고 예의 발랐다. 그들의 고충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자신들의 전용기로 갈 수 있는 부분이 범위가 좁다. 김정은은 남·북 공동 정상회담에 대해 자신에게 상의해왔다. 김정은이 기자회견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고 내게 물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와서도 자기가 잘했냐고, 이렇게 하면 되는 거냐고 내게 물었다.” (118~119, 190쪽).

협상 장소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정하는 것은 협상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전용기를 이유로 들었다고 솔직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측은지심인지 상대의 전략을 간파하지 못하는 것인지 정상회담의 성격을 오해했다. 상대의 고단수 전략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결과다. 문 전 대통령은 전용기를 내세워 자신들에게 유리한 장소를 정하려는 김정은의 전략에 가스라이팅 당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자체에 감지덕지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김정은 전략에 매번 가스라이팅 당했다고 봐야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경남 양산시에서 운영하는 평산책방에 친문인사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방문했다. / 사진:연합뉴스
기자회견을 자신에게 물었다고, 판문점 만찬 때는 바깥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고 해서 김정은이 예의가 바르다고 평가했는지 의문이다. 기자들을 상대해본 적 없는 독재자 입장에서 문 전 대통령이 기자들을 잘 관리해달라는 의미를 전달했는데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했다. 개인 간 사담이 주제가 아닌 남북정상회담에서 예의 여부는 지엽적인 문제다. 각자의 국익을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하고 관철했는가가 핵심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김정은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발언에 불과하다.

“청와대 내 집무실과 김 위원장의 집무실을 연결하는 직통전화가 연결됐다. 5월 26일 번개 남북정상회담에서 내가 그 전화를 가동하자고 독촉했죠. 김정은 위원장은 집무실이 노동당 청사에 있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 출근하고 대부분 지방을 다니기 때문에 없을 때가 많고, 보안도 염려되니 확실히 보안이 지켜지는 이메일로 하자고 했다. 이메일은 자기가 지방 현장에 가도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주고받을수 있다.” (224쪽).

수많은 해커를 양성하고 남한은 물론 전 세계를 해킹하는 등 사이버 범죄 수법에 대해서 정통한 김정은이 정상 간의 소통을 이메일로 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보안에 관해 극도의 경계심을 갖고 있는 김정은이 직통보안 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이메일로 정상 간의 소통을 하자고 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발언이다. 그럴 것이면 왜 직통전화를 설치했는지 의문이다. 세계 정상들 간에 이메일로 소통하는 경우는 없다. 코미디 같은 이야기다. 전화가 이메일보다 도·감청이 어렵다는 것은 상식의 문제다. 김정은은 문 전 대통령이 자기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방어벽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진심으로 소통하자고 생각했는지 의문이다. 스마트폰 시대에서 소통의 의지만 있다면 어디에서든 통화가 가능한 세상이다. 이메일 소통 언급은 본말이 전도된 지엽적인 이야기다.

“김정은이 언젠가 연평도를 방문해서 포격사건으로 고통받은 주민을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당장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놀라웠다.” (295쪽).

연평도 포격전은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쯤, 북한이 아무런 선전포고도 없이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의 대연평도를 향해 포격하자 우리 해병대가 피격 직후 북한 영토를 향해 대응사격을 가한 사건이다. 선대 지도자인 김정일의 군사행동에 대한 남한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 아들인 김정은 자신이 현장을 방문해 위로한다는 발언은 선대의 선군정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 과거 2008년 8월 금강산관광 당시 북한군의 총격에 민간인 박왕자 씨가 사망했지만 북한은 선군정치 원칙을 내세워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필자는 당시 현대아산 관계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북한에서는 군대의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사과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김정은의 발언이 실제 존재했는지 혹은 다른 의도로 언급했는데 문 전 대통령이 비틀어서 왜곡 표현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실제 이런 발언은 북한의 최고지도자 행태로 봐서 가능하지 않다. 다음은 트럼프와의 관계에 관한 부분이다.

“김정은이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1년 만인 2021년 5월 친서를 보내왔다. 김정은이 그 일(남북연락사무소 폭파)이 미안했던지 연락사무소를 군사분계선 일대에 다시 건설하는 문제를 협의해보자고 제안했다.” (348쪽).

김정은은 미안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행동을 위장하기 위해 변환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대한민국 예산 600억원이 투입된 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배상 요구도 못했던 문 전 대통령의 난처한 입장을 변명하는 발언에 불과하다. 군사분계선 일대에 용도도 분명치 않은 연락사무소를 거액을 투자해 새로 건설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전혀 현실성이 결여된 발언이다. 김정은의 뜬금없는 발언이 무슨 대단한 사과인 양 인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내게 주도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여러 번 당부했고, 치프 니고시에이터(chief negotiator, 수석협상대표)가 돼달라고 부탁했다.”(47쪽).

文도 난처했던 北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문재인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18년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20년 6월 발간된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2019년 6월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서 트럼프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근처에 없기를 바랐지만, 문 전 대통령은 완강하게 참석하려 했다”고 했다. 또한 “김정은은 문 전 대통령을 위한 시간도, 존경심도 없었다”고 했다”고 썼다(500쪽). 가능한 한 문 전 대통령이 미·북 대화에 개입하는 것을 트럼프가 원치 않았으며 지나치게 북한에 양보하려고 해서 판문점 회담 등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자칭 ‘운전자론’을 내세워 과잉 중개자 역할을 하려는 시도를 시간이 갈수록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진실은 무엇일까?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북한에서는 우리가 판문점 북·미 회동에 함께 가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더 좋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미국 측에서는 내가 가는 걸 꺼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334쪽). 결국 수석협상대표가 돼달라는 트럼프의 주장과는 앞뒤가 맞지 않고 북한의 속내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백악관 재입성을 노리는 트럼프의 측근들이 대거 집필에 참여한 책 [미국 안보를 위한 아메리카 퍼스트 접근법(An America First Approach to U.S. National Security)]이 5월 9일 출간됐다. 이 책에서 모건 오테이거스 전 국무부 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에 대해 “트럼프는 문 전 대통령의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가 원했던 것보다 더 북한에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며 “문 전 대통령이 너무 북한에 양보하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고의로 그를 싱가포르 회담에서 배제시켰다”고 했다.

“트럼프는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비핵화를 하려고 해도 프로세스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노하우가 없으니 한국이 그 방안을 강구해서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외교부, 국정원의 최고전문가들이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로드맵을 작성해서 트럼프에게 전달했다. 트럼프는 평화 프로세스의 내용과 로드맵을 전화로 설명하면 페이퍼로 정리해서 보내 줄 수 없느냐고 부탁하기도 했다.”(46쪽).

미국은 대북 협상에 관해서는 우리보다 한 수 위다.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키기 위해 유엔대표부 채널을 비롯해 한국보다 더 많은 협상 경험과 자료를 축적했다. 대북 협상 채널은 유엔·베이징·스웨덴 대사관 채널 등 다양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평양을 직접 방문해 억류자를 구출하기도 했다. 미국이 노하우가 없다고 한국에 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은 한국의 속내를 알고 싶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가 문 전 대통령의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궁금해하기보다 문 전 대통령의 지나친 요구를 에둘러 거부하는 발언에 불과하다.

‘하노이 노딜’의 진실? 김정은의 오판이 원인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당시 트럼프와 미국 협상팀은 북한의 제안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도 나중에 내게 후회한다는 말을 하며 미안해했다. 하노이 노딜은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 아니라 존 볼턴 등 미국 대통령 참모들 때문이다.” (55쪽).

남북한 정상 간에 38회의 친서 교환이 진행됐지만 트럼프와 김정은 간 친서도 2018년 4월 1일부터 2019년 8월 5일까지 모두 27통이 교환돼 양측은 이미 충분한 소통을 하고 있었다. 김정은은 폼페이오 등 미국 고위 관료들과의 협상에 대해 불신했고, 문 전 대통령이 트럼프와의 협상에 끼어드는 것도 원치 않았다. 김정은은 그러한 의사를 트럼프에게 보내는 친서에서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각하의 의중을 충실히 대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폼페이오와 설전을 벌이기보다는 각하와 직접 만나 비핵화를 포함한 중요한 현안들에 관해 심층적으로 의견을 교환함이 더 건설적입니다(2018.9.6.)’,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각하와 직접 조선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길 희망합니다(2018.9.21.)’ 등이다. 김정은은 트럼프를 충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로 평가하고 그와 직접 담판만 성공하면 트럼프를 자신들의 의도대로 유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참모들로부터 영변핵은 북한핵 중에서 비중이 50%도 안 되는 만큼 영변 비핵화만으로 현금 거래를 차단하는 대북 제재를 확실히 해제할 수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북한은 하노이에서 영변핵 포기와 유엔안보리 제재 11건 중 민생 분야 5건의 해제를 교환하는 안을 제안했다. 영변핵은 북한핵 개발의 성지(聖地)이지만 현재 북한 핵의 50%가 안 된다. 분강·강선 등 다른 핵시설의 폐기는 언급하지 않고 무조건 현금 거래를 푸는 5건의 해제는 전체 제재를 무력화시킨다. 미국 당국자들은 부분 비핵화로 대북 제재 전체를 무력화시키는 거래를 할 수 없었고, 트럼프는 이러한 사실을 전부 인식하고 있었다. 트럼프는 김정은의 제안을 받고 “당신은 협상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You are no ready for the deal)”고 언급하고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트럼프는 회담이 노딜로 종료된 데 대해 후회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 하지도 않은 발언을 기정사실화해 인용하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부분 비핵화로 대북 제재를 해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사전에 참모들로부터 충분히 인지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북한의 의도를 간파했다. 참모들이 반대해서 협상이 노딜로 끝난 것이 아니다. 북한은 김정은이 개인적으로 트럼프를 유혹하면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트럼프가 합의안에 서명할 것이라고 오판했다.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 오간 친서들은 트럼프 측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의문 부호를 떼지 않았으며 동시에 안보적 대가를 주는 것에 대해서 매우 절제돼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文의 내재적 대북정책, 정권재창출 실패 불러


▎사진은 역사적인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장면.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나 한반도의 미래를 두고 회담했지만, 북·미 간 갈등은 더욱더 깊어져 빛이 바랬다. / 사진:연합뉴스
“김정은이 그런 표현을 썼다. 핵은 철저히 자기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사용할 생각 전혀 없다. 우리가 핵 없이도 살 수 있다면 뭣 때문에 많은 제재를 받으면서까지 힘들게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겠는가. 딸 세대한테까지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할 수 없는 것 아니냐. 핵을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김일성 주석의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달라진 것은 없다. 군사적 위협이 제거되고 안전이 보장된다면 북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 (184쪽).

김정일은 2000년 6·15 정상회담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遺訓)’이라고 단골 멘트를 해 남측을 기만했다. 최근 김정은은 “유사시 핵 무력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김정은의 비핵화 발언은 핵을 개발하고 실전 배치하는 정책을 방어하는 상투적 궤변에 불과하다. 김정은은 2022년 핵무력 법제화를 비롯해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심지어 5대 주관적 평가 조건 하에서는 선제공격 가능까지 밝혔다. 올해 들어 한반도 ‘두 국가론’을 내세워 남한 역시 적국이기 때문에 핵공격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문 전 대통령은 시종일관 회고록에서 국민들은 보수 정부가 안보와 국방을 잘하고 한·미 동맹이 강화된다는 허황된 말에 현혹되지 말고 ‘정치세력’을 선택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그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속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내재적인 대북정책으로 민주당은 재집권하는 데 실패했다.

※ 남성욱 -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을 지냈다.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지낸 뒤 후학 양성과 북한 문제 연구에 전념해오고 있다. [김정은의 핵과 경제](2022, 박영사), [북한 여성과 코스메틱](2017, 한울아카데미), [한반도 상생프로젝트](2009, 나남) 등 북한 문제에 관한 다수의 책을 펴냈다.

202407호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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