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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평양리포트] 김정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북한의 반미(反美) 외교전략 연대 성공할 수 있을까 

러시아 비호 속 중국과 협력 강화하고 국제 연대 확대
“대북제재 무력화 동시에 ‘미국 저항의 축’ 구축” 시도


▎왼쪽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6·25 남침 이후 북한에게 이러한 국제정세는 없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북한의 재래식 무기가 인기 상품이 됐다. 재래식 무기 생산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의 전략적 가치가 급등해 북한외교의 만조기가 형성됐다. 러시아는 5월 8일 북한과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한과의 양자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그들과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더욱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했다. 북한에 대해선 “우리의 훌륭하고 매우 유망한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무기는 북·러를 결합시키는 최고의 아이템이다.

그동안 중국은 물론 러시아와도 관계가 여의치 못했던 북한은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이단아였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당시 북한은 핵실험 20분 전 중국에 관련 통보를 했다. 이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제멋대로(悍然)’라는 단어를 사용해 북한을 비난했다. 이 단어는 냉전 시대 중국이 적국인 ‘미 제국주의’를 비난할 때 사용한 비외교적인 단어였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관계는 없다. 북한을 야단치던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올라감에 따라 자세를 바꾸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좌(左) 러시아, 우(右) 중국을 등에 업고 한·미·일에 대응하는 신냉전 구도의 형성이 최선의 외교 전략이 됐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중에서 평양을 방문한 정상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5월 15~16일 베이징 방문 이후 무더위 속 적절한 시점에 14년 만에 평양을 다시 찾는다면 1961년 ‘조·소(朝蘇) 우호 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 체결 이후 북·러 간 최대의 빅 이벤트가 될 것이다.

국제정치 이단아에서 협력 대상으로 부상

지난 1989년 미국의 상업정찰 위성에 의해 영변 핵시설이 탐지돼 북한은 비핵화의 압박과 국제 제재 속에서 죽지 않을 만큼 ‘그럭저럭(muddle through)’ 버텨왔다. 그동안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핵 개발을 해왔기 때문에 2022년 눈물까지 흘리며 핵무력 법제화와 비핵화 불가 입장을 밝혔다. 김정은은 핵무기 개발 목표는 물론이고 그 방향성까지 헌법에 상세하게 명문화해 향후 비핵화 협상 불가 원칙을 분명히 했다. 핵무기 고도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동시에 비핵화 문제는 영구적으로 한·미 등과 흥정할 대상이 아님을 시사했다.

그동안 북한은 핵무기 개발 대가를 톡톡히 치러왔다. 2016년 4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11건의 유엔안보리 제재결의안 중 민생에 관련된 5건은 확실하게 김정은의 금고를 압박했다.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영변 비핵화 조건으로 5건의 해제를 요구할 정도로 북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목줄을 조여 왔던 유엔 대북제재도 서서히 나사가 풀리고 있다. 3월 28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 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는 4월 30일 종료됐다. 전문가 패널은 대북제재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 집단으로 제재 위반 혐의를 추적하고 조사하는 데 특화됐다. 일각에서는 대북제재를 감시할 카메라를 러시아가 부쉈다고 해석했다. 사실상 범죄자가 CCTV를 파손한 격이다. 지난 2009년 설치된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북한과 우방국들이 유엔 제재를 위반하며 핵 개발을 하고 불법적 수출입 및 금융 거래 등을 해온 사례를 폭로했다. 2022년 위성 사진을 판독해 북한이 2018년 파괴된 풍계리 핵시설을 복원하는 정황과 2020년 북한 정보기술(IT) 노동자들의 ‘외화벌이’ 및 사이버 해킹 등을 밝혀내 국제사회의 경각심을 높였다. 각종 제재를 위반하고 김정은의 고급 외제 차,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명품 가방 등이 북한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사례도 발표함으로써 김정은과 측근들을 압박하는 역할도 했다.

대북제재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표현대로 북한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다. 모래주머니가 풀어질 경우 거침없는 북한의 행보는 핵무기를 앞세워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흔들 것이다.

러시아가 전문가 패널 임기를 종료시킨 것도 이처럼 패널의 혁혁한 감시 역할 때문이다. 북한과 제재 위반에 해당하는 불법적 무기거래를 지속해야 하는 러시아로서는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눈엣가시’ 같은 기구를 없앨 필요성이 높아졌다. 북한은 2023년 9월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러시아가 사용할 포탄 100만 발, 최신 미사일 수십 발 등 무기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과의 모든 무기 거래는 유엔안보리 결의의 정면 위반이다. 전문가 패널은 3월 20일 러시아와 북한의 무기거래를 자세히 파악해 알림으로써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제재 위반을 지적했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오늘의 거부권 행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격을 이어가는 데 사용할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북한과 결탁했다는 패널 보고를 덮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었다”고 비난했다.

물론 패널이 없어진다고 해서 대북제재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재가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 사라져 북한의 제재 위반에 대해 명확한 실상을 파악하기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전문가 패널은 객관성 유지를 위해 미국·중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 상임이사국과 한국·일본·싱가포르 등 총 8국이 파견한 전문가 8명으로 구성해 운영됐다. 전문가 패널이 해체되면서 한국과 미국이 자체적으로 파악한 제재 위반 현황을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하지만 북한과 러시아 등에서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치부해 버릴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는 점에서 대응 방안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서히 나사 풀리는 유엔의 대북제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물한 전용차 ‘아우루스’를 이용하는 모습. / 사진:조선중앙통신TV
한·미·일 등 유엔 50개 회원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의 활동이 끝난지 하루 만에 5월 초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요지는 북한의 대량파괴무기(WMD) 및 탄도미사일 개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분석에 계속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한·미·일 주도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이행 여부를 감시할 수 있는 대체기구 설립이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현재 한국, 일본과 긴밀히 협력하고 나머지 회원국들과도 의견을 나누고 있다”며 “매우 긴급하게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체기구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중·러가 다른 말을 할 수 없도록 북한이 제재를 어기고 있다는 확실한 팩트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확대해야 한다. 확실한 물적 증거 확보를 위한 한·미·일의 정보협력 공동체 가동은 매우 중요하다.

한편 북·러의 군사와 정보협력의 밀월은 가속화되고 있다. 러시아 정보당국 수장인 세르게이 나리시킨 대외정보국(SVR) 국장이 3월 25~27일 평양을 방문해 리창대 북한 국가보위상과 회담했다. 양국의 군사협력을 한 단계 강화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군사정찰위성과 전투기 개량 기술 등을 협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곧 4차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으며 러시아의 기술지원이 협의되고 있다.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의 3차 위성 발사 성공은 러시아의 기술 지원에 따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SVR은 러시아 대통령 직속의 해외 첩보 기관이고 국가보위성은 북한의 공안·첩보기관이다. SVR은 연방보안국(FSB)과 함께 러시아의 양대 정보기관으로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 북한이 나리시킨 국장의 방문을 전격 공개한 것은 2011년 이후 13년 만이다. 통상적으로 정보기관 수장의 방문은 비공개가 원칙이나 긴밀한 양국 관계를 과시하기 위해 나리시킨 국장이 평양을 떠난 지 하루 만에 공개했다. 조선중앙TV는 3월 16일 김정은과 김주애가 푸틴이 선물한, 개발비만 1700억원이 들었다는 ‘아우르스’를 타고 온실공장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러시아판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아우르스는 무게가 7톤이고 방탄유리와 화학 공격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북·러 밀월을 상징적으로 과시하는 장면이었다.

정보기관 수장의 방북은 양측의 군사협력 강화 이외에 푸틴 대통령의 향후 방북 및 무기 추가 거래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푸틴 대통령이 이미 방북을 약속한 만큼 구체적인 방문 일정 등을 협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전 정지 작업으로 북한 경제대표단이 3월 27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알렉산드로 코즐로프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 등과 회담하는 등 북·러의 협력이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미·일에 대항하는 북·중·러 공조 가능성


▎북한이 새로 개발한 극초음속 활공비행 전투부를 장착한 새형의 중장거리 고체탄도 미사일 ‘화성포-16나’ 형의 첫 시험발사 모습. / 사진:연합뉴스
다음은 중국과의 협력 강화다. 북·중 관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뜨거운 북·러 관계에 비해 다소 소강상태였다. 평양과 베이징의 관계는 평양·모스크바 관계와 비교해 온도 차가 있다. 2023년 7월 전승절 70주년 기념행사 때 김정은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는 거의 모든 일정을 함께하면서도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끄는 중국 당정 대표단은 이동 중에 시진핑 주석의 친서를 전달받는 등 상대적으로 소홀히 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5년간 정상 교류가 끊기면서 양국 간에는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겉으로는 북·중 정상이 축전 등을 주고받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얻는 것은 거의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서 북한이 국경의 문을 열자마자 중국은 자국에 체류 중인 북한 노동자를 돌려보냈는데, 이들을 대체할 인력을 중국 정부가 수용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노동자 파송이 필요하지만, 중국은 북한 노동자를 받지 말도록 한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와 국제사회의 요구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2017년 북한이 잇단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의 우려를 키워 대북제재가 강화됐고 이듬해인 2018년 중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직접 투자를 금지했다.

김정은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상호 방문 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3월 26일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리부위원장은 연회 연설에서 올해 북·중 수교 75주년을 계기로 “전통적 친선을 발양시키고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하며 실무적 협조를 확대하고 친선적 교류를 심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양국은 수교 70주년이었던 2019년 각급에서 다양한 교류를 진행한 바 있다. 특히 1월 김정은이 방중하고 6월엔 시 주석이 답방하면서 한 해 두 차례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북한은 중·러를 사이에 두고 시절인연(時節因緣)에 따라 시계추 외교를 해오고 있다. 문제는 삼국이 하나로 뭉쳐 한·미·일에 대응하는 신냉전 구도를 형성할 것인지가 외교가의 관심 포인트다. 중·러 양국은 동북아 전체 차원에서 큰 그림 외교를 전개하기 때문에 북한을 두고 경쟁한다는 관점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북·러의 밀착이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추론은 한계가 있다. 다만 북·중·러의 밀착은 한·미·일 밀착과 거울에 비친 그림자처럼 비례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는 없다. 북·러 정상회담이 무기거래를 넘어 북·중·러 연합훈련과 군사 공조 확대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국정원은 러시아가 북한에 중·러 군사훈련 참가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2023년 7월 전승절 행사 참석 후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북·러 연합훈련 가능성을 두고 “왜 안 되겠는가”라며 “우리는 이웃”이라고 언급했다는 러시아 언론 보도도 있지만 아직은 러시아의 희망 사항이나 향후 중·러와 북한의 이익이 공유하는 지점은 반미(反美)가 될 것이다. 미국의 압력을 피하고 워싱턴에 반격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다면 3국의 공조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북·중·러 연합훈련 시나리오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전략핵을 한·미·일에 대항할 핵심축으로 공식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북한은 중·러로부터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동시에 재진입 기술 등 실제 작전 수행에 필요한 기술 이전을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북한이라는 변수가 능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동북아 체스판이 완벽한 ‘강 대 강’ 경쟁 구도로 변질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 북·중·러 합동 군사협력은 양날의 칼이다. 중·러의 큰 형님들과 움직이는 것이 장점이 있지만 주체 외교의 독자노선 상실로 이어질 경우 득보다 실이 커질 수 있다. 평양 외교가는 적당한 등거리 외교가 실익이라는 판단도 배제하지 않는다.

한·미·일 삼각 협력 이완 위해 일본과 물밑 접촉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월 22일(현지시각) 뉴햄프셔주 라코니아에서 유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편 북한은 한·미·일 삼각 협력의 이완을 위해 일본과도 물밑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 평양이 갑(甲)이고 일본이 을(乙)인 형국으로 김여정의 발언으로 볼 때 도쿄가 물밑에서 평양에 북·일 정상회담을 요청하는 형국이다. 김여정은 일본이 전향적인 결단을 한다면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할 수도 있는 등 북·일 관계가 급진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새해 초 김정은이 일본 지진과 관련해 위문 전문을 보내며 북·일 간 관계 개선 의지를 보인 데 이어 2탄이다. 생뚱맞아 보이는 김여정의 제안은 시간상으로는 한국과 쿠바 수교에 대한 외교적 고립을 타개하기 위한 물타기 전략일 수도 있지만, 오랜 기간 물밑 접촉의 산물이다. 2월 5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중의원에 출석해 김정은의 전문에 대해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협상을 진행한다는 관점에서 김정은의 의도를 신중하게 분석할 것”이라며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묘한 반응을 보였다. 김여정은 2월 25일 한술 더 떠 기시다 총리가 김정은에게 만남을 제안했다고 돌연 공개했다. 그러더니 바로 다음 날 “조·일(북·일) 수뇌 회담은 우리에게 있어 관심사가 아니다”라며 말을 바꿨다.

양측이 외교적인 수사로 입장을 포장하지만 밀당을 시도하는 도쿄의 속내는 국내정치에서 불가피한 납치문제의 해결이다. 북한이 일본과의 핫라인을 가동하는 것은 한·미·일 3각 협력 고리를 약화시키고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서다. 특히 납북문제 해결을 원하는 일본을 통해 워싱턴 선언 구상에 균열을 시도한다. 북핵 용인과 북·일 수교에 따른 일본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 등도 검토한다.

양측의 연결고리인 납치문제의 쟁점은 숫자 맞추기다. 일본의 공식 납치 피해자 수는 12건에 17명이지만 일본 민간단체들은 ‘700명 이상의 실종 사건’이 북한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해왔다. 반면 북한은 13명의 납치를 인정하면서 이 중 8명은 사망하고, 5명을 일본으로 돌려보냈으며, 4명은 북한에 입국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 어느 국가를 상대로도 ‘결코 늦지 않는 외교’를 추진해왔다. 일본은 1972년 닉슨의 핑퐁 외교 이후 신속하게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해서 시장 선점에 주력해왔다. 4월 선거 패배로 입지가 더욱 좁아져서 겨우 2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기시다 총리의 돌파구 전략은 가속화할 것이다. 일본 벚꽃 외교의 특성상 평양과의 물밑 접촉은 지속할 것이다. 한·쿠바 수교 및 외교공관의 축소로 노선 변경을 모색하는 북한외교는 일본 후지산을 통해 대북제재의 철책을 흔들려고 시도하고 있다.

니카라과 등 제3세계 국가와 ‘반미 연대’ 형성

북한의 반미 연대 외교는 중·러를 넘어 제3세계 국가들과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중남미의 니카라과가 재정난을 이유로 서울에 있는 주한 대사관을 폐쇄하기로 하면서도 평양에 새로 대사관을 개설하기로 했다. 북한과 니카라과가 ‘반미 연대’로 손을 잡을 것이다. 도쿄에 있는 주일 니카라과 대사관에서 한국 관련 업무를 보기 때문에 한국과 단교는 아니다. 인구 661만 명의 니카라과는 중남미에서 베네수엘라와 함께 대표적인 반미 국가다. 특히 오르테가는 2021년 야권 탄압으로 5선 가도에 오른 인물로 종신 집권을 노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2017년 최룡해 국무부위원장을 오르테가의 네 번째 대통령 취임식에 보냈고, 지난해 7월 산디니스타 혁명 44주년을 맞아 김정은 명의의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북한으로서는 ‘형제의 나라’ 쿠바가 지난 2월 한국과 전격 수교한 것이 ‘또 다른 형제의 나라’ 니카라과를 더욱 끌어당기는 계기가 됐다. 북한과 니카라과 관계 개선은 1970~80년대 이뤄진 군사·인적교류 재개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러시아·중국·북한·이란 등을 주축으로 한 ‘반미 권위주의 사슬’이 확대된다는 의미다. 한편 북한은 이란에 대외경제상 윤정호 동지를 단장으로 하는 경제사절단을 파견했다고 4월 24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북한 고위급 인사가 이란으로 향하는 것은 2019년 박철민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이후 처음이다. ‘반미 연대’로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는 한편 러시아에 이어 중동에서도 ‘어둠의 무기상’으로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중동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배후의 무기 공급자 역할을 시도한다. 이란과의 군사협력을 기반으로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시리아 정부군 등 친이란 세력 등이 무기 고객이 될 것이다. 반미 연대하의 거래 고객을 대담하게 확보하고 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반미 연대를 확대하며 대북제재를 무력화시키는 동시에 과거 1970년대 비동맹 외교 시절의 제3세계 외교를 연상시키는 ‘미국 저항의 축(axis of protest)’을 구축하고 있다. 반미 연대의 최종 목적은 일차적으로 대북제재 해제다. 다음은 핵보유국의 위치에서 한·미·일 3국으로부터 다양한 양보를 받아내는 것이다. 김정은의 복안이 현실이 될지 여부의 일차 분수령은 우선 미국의 11월 대선이 될 것이다. 트럼프의 당선 시나리오는 동북아 안보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고 호리병에서 탈출한 램프의 요정 지니가 될 것이다. 그다음에 발생할 복잡한 시나리오는 여러차례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 남성욱 -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을 지냈다.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지낸 뒤 후학 양성과 북한 문제 연구에 전념해오고 있다. [김정은의 핵과 경제](2022, 박영사), [북한 여성과 코스메틱](2017, 한울아카데미), [한반도 상생프로젝트](2009, 나남) 등 북한 문제에 관한 다수의 책을 펴냈다.

202406호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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