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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전문기자 박정호가 만난 세상] ‘교수에서 소설가로…’ 50년 꿈 이룬 원로 언론학자 김민환 

“근대 한국 열어젖힌 동학, 우리 앞날 열어갈 키워드” 

박정호 월간중앙 기획위원
100여 년 전 ‘당사도 등대 습격 사건’ 다룬 네 번째 소설 [등대] 펴내
일제에 맞선 소안도 사람들… “일본의 진정한 사죄가 후손들 위한 길”


▎1909년 2월 전남 완도군 소안도 사람들의 항일투쟁을 다룬 소설 [등대]를 낸 작가 김민환. 100여 년 전 동학사상에서 한국의 앞날을 열어갈 지혜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소설의 책장을 덮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 섬에 가고 싶다’였다. 대체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궁금증이 샘솟았다. 아, 국토의 남쪽 끝에 이런 곡 진한 사연이 숨어 있었구나, 하는 발견의 즐거움도 있었다. 그 섬을 직접 밟고 싶은 소망을 잠시 미뤄두고, 서울을 찾은 작가와 마주 앉았다. 그 또한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 섬’을 여러 차례 둘러본 다음에야 “이런 얘기를 왜 몰랐을까. 소설로 남겨야겠구나”라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 섬은 전남 완도군에 속한 소안도다. 또 그 바로 서남쪽 아래에 있는 섬이 당사도(좌지도·자지도)다, 100여 년 전, 동학과 항일의 불길이 타올랐던 곳이다. 소안도 왼쪽으로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보길도가 있고, 그 오른편 조금 너머에는 영화 [서편제] 촬영지로 이름난 청산도가 있다. 눈을 감으면 금세라도 파도 소리가 들려올 듯한 그곳, 소설가 김민환(80·고려대 명예교수)은 한 세기 전 그곳에서 분출했던 민초의 고통과 각성을 신작 [등대]에 녹여냈다.

작가는 특히 근대 한국의 젖줄이었던 동학이 21세기 한국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탐색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물음일 수도 있다. 한 세기 전 궁벽한 섬사람들의 항일투쟁은 일촉즉발의 동북아 정세를 헤쳐가야 할 지금 우리의 과제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겁게 생각하지 마시라. [등대]는 남녘의 구성진 노랫가락을 넘나들며 옛 섬사람들의 아픔과 기쁨, 우정과 사랑을 눅진하게 들려준다.

남녘 끝자락 소안도 사람들


1904년 추석 잔치에서 마을 처녀들이 부르는 ‘강강수월래’로 소설을 시작했다.

“러일전쟁이 발발한 해다. 일제의 야욕이가속한 때다. 강할 강(强), 오랑캐 강(羌), 진짜로 강한 오랑캐가 물 건너왔다는 뜻에서다. 소설 속에서 동학접주 나성대는 소안도 서당 훈장에게 ‘이제 우리가 제대로 된 강강술래를 해야겠다’고 말한다.”

나성대는 실존 인물이다. 동학을 둘러싼 가치 충돌이 소설의 뼈대다. 당대 상황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라 역사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준다.

“나는 소설을 쓰지만 완전한 허구를 쓰진 않는다. 내 나름대로 확보할 수 있는 팩트를 최선의 버전으로 구성하려고 한다. [등대]의 주요 인물이자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1909년 당사도 등대 습격 사건의 주역인 동학도 이준화도 실재 인물이다. 시대와 인물의 교직을 생각하며 주요 캐릭터를 완성했다.”

왜 지금 다시 동학인가?

“한국의 근대는 동학이 열었다고 본다. 서구 근대 자본주의를 경험하지 않은 한국에서 근대는 반제·반봉건 운동이었다. 그 물꼬를 동학이 텄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동학이 지핀 불씨는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올랐다. [등대]는 1910년 일제에 국권을 잃을 때까지 다루지만 동학이 내건 반제·반봉건, 평등사상은 이후 3·1운동과 항일독립투쟁의 동력이 됐다.”

유가(儒家·유교)라는 기존 가치가 흔들리고 ‘사람이 하늘(人乃天)’이라는 동학의 개벽사상이 솟구치는 전환기를 다루고 있다.

“1900년대의 첫 10년 남짓이 주요 무대다. 일제의 침략과 수탈 앞에서, 즉 풍전등화의 정세 속에서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지키고 새 희망을 찾으려는 소안도 사람들의 이야기다.”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동학 창시자 최제우 선생 탄생 200주년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도 의식했나?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지난 5월 11일은 1894년 동학군이 황토현 전투에서 관군을 무찌르고 승리한 날인데, 정부에서도 2019년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5월 말 출간에 맞춰 지난 3년간 원고도 여러 번 가다듬었다.”

소안도라는 섬을 새로 보게 됐다. 1년 365일 내내 태극기가 휘날리고, 독립유공자가 22명에 이르는 항일운동의 성지로 알려졌다.

“소안도 사람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한반도 서남단 다도해 최남단에 있는 작은 섬이지만 예부터 마을마다 서당을 둘 만큼 학문에 관심이 컸다. 현재 유적 8곳이 남아 있다. 글 읽는 선비들이 많이 건너와 살았다. 지금도 소안도 군수를 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그만큼 비판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다.”

동학혁명 130돌, 최제우 탄생 200돌


▎소안도 달목공원의 대형 태극기. 부표 2420개로 만들었다. 소안도는 독립유공자만 22명에 이르는 항일운동의 성지로 유명하다.
소안도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2010년 교수 생활을 마감하고 소설을 쓰기 위해 보길도로 내려왔다. 지인을 통해 바로 옆에 1년 열두 달 태극기를 다는 소안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참 시골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항일운동이 그토록 뜨거웠던 곳을 왜 전혀 몰랐을까, 그 에너지는 무엇이었을까? 의문을 품게 됐고, 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도 가장 보수적인 유가와 가장 진보적인 동학의 만남을 주목하게 됐다.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그 만남이 역사를 낳았다고 본다. 우리의 그런 정신사를 엿본 기쁨이 대단했다.”

그러면서 당사도 등대 습격 사건과 마주쳤나?

“그렇다. 1909년 1월 1일 불을 밝힌 당사도 등대는 동북아 지배권을 강화하려는 일본의 야욕을 표상한다. 이준화 등 소안도 주민과 의병들이 그해 2월 24일 당사도 등대를 파괴하고, 일본인 등대장 등을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 저는 이 사건이 옛 등대를 무너뜨리고 새 등대를 세우려는 행동으로 이해했다.”

등대는 희망의 상징이다. 새 등대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동학정신이다. ‘주인이 된 나, 주인이 된 민족, 주인이 된 국가’쯤 된다. 우리 현대사에서 동학은 1930년대 후반으로 가면 사회주의 물결에 밀려 거의 사라진다. 지금 다시 동학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이념, 혹은 주의로서의 동학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서로 죽자 살자 싸울 게 아니라 동학으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 ‘내 마음이 네 마음(吾心卽汝心)’이라 했다. 분열을 넘어서는 지혜가 있다. 동학은 ‘오래된 새길’ ‘오래된 미래’다. 이번 소설의 핵심 대목인 소안도 훈장 셋이 갈등·화해하며 얻은 결론도 그것이다.”

소설 [등대]에서 완고한 전통주의자였던 김 훈장은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고 결국 동학정신에서 새로운 미래를 본다. 그의 깨달음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이제 우리는 오랜 사대주의를 청산해야 해. 힘 있는 나라에 기대고, 큰 나라 등 뒤에 줄 서려는 오랜 폐습을 청산해야 해. 영국 줄에 서자는 놈도, 미국 줄에 서자는 놈도, 아라사(러시아) 줄에 서자는 놈도, 왜놈 줄에 서자는 놈도 한마디로 다 쓸개 빠진 소인배 사대주의자에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이제 그 어떤 나라 앞에서도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당당하게 내 길을 가야 해, 우리가 설 줄은 우리 줄, 조선 줄 뿐이여. 그것이 대도(大道)여, 그것이 동학에서 말하는 천도일 것이고, 말이여.”

이념·정파 넘어서는 게 동학정신


▎소안도 항일운동 기념공원 중앙에 있는 소안항일운동 기념탑. 기념탑 왼쪽에 사립소안학교가, 오른쪽에 소안항일운동 기념관이 있다.
소설가 김민환은 한국 언론사를 공부한 1세대 언론학자다. 전남대·고려대에서 오랜 교직 생활을 했으며, 한국 사회의 여러 현안에 대한 쓴소리를 해왔다. 젊은 시절에 기자를 먼저 하고, 그다음에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키웠다고 한다. 지난 50여 년 못다 한 소망을 강단을 떠난 이후에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 첫 소설 [담징](2013) 이후 [눈 속에 핀 꽃](2018),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2021) 이후 이번이 네 번째 장편이다. 소설가로서 인생 2막을 열어젖힌 그는 동학정신에 빗대면 늦게나마 ‘주인공 자신’을 찾은 셈이다.

왜 저 멀리 남녘 끝 보길도까지 찾아갔나?

“서울에 있으면 그간 맺어 온 인간관계 때문에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리저리 뒤얽혀 살 수밖에 없다. 고향이 전남 장흥인데. 그곳에서도 사람들에 휩쓸릴 게 분명했다. 은퇴하면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 살자, 그러면서 소설을 쓰자고 다짐했다.”

이번에도 역사소설이다. 언론학자의 운명 비슷한 것인가?

“현대소설도 쓰고 싶지만 젊은이들의 언어를 잘 모른다. 학교에 쭉 있었지만 학생들의 대화를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사고방식의 차이일 수 있다. 한국 언론사를 전공한 만큼 우리 현대사에 친숙하다. 저널리즘을 공부하면서 소설이 되겠다 싶은 것을 작품으로 쓴 셈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첫 작품 [담징]이 대표적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신문인 한성순보 등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를 파고들면서 일본에 제지술을 전파한 고구려 담징 스님과 만나게 됐다. 담징은 국가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은 코스모폴리탄이었다. 진영 논리에 갇힌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번째 [눈 속에 핀 꽃]은 학생운동에 가담했던 나의 경험을 녹인 1960~70년대 독재정권 시절의 대학생 이야기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에선 친구 아버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혼돈의 해방정국에서 이념·정파를 넘어 큰 어른으로 살아간 봉강 정해룡 선생 일가의 비극적 생애를 돌아보았다.”

이제 학자보다 소설가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소설을 완성하는 성취감은 논문이나 전공 서적에 비할 수 없다. 요즘엔 작가, 또는 소설가라고 소개하는 게 낯설지 않다(웃음). 마치 남의 삶을 대신 사는 기분마저 든다. 그렇게 소망했던 소설을 쓰니까 건강도 좋아지는 것 같다. 주변에서 다들 얼굴이 환해졌다고 한다.”

내 인생의 문장으로 최인훈의 [광장](1960)에 나오는 ‘힘껏 산다. 시간의 한 점 한 점을 핏방울처럼 진하게 산다’를 꼽은 적이 있다.

“1962년 고2 때 결핵에 걸렸을 때 만난 문구다. 골방에서 죽느니 차라리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부딪쳐보자고 결심했다. 그때의 다짐을 잊지 않고 글을 쓰고 있다. 힘껏 쓰겠다. 쓰니까 살아 있는 것 같다. 살아 있으려면 열심히 써야 한다.”

평생 교수였다. 소설가로서 한계는 느끼지 않나?

“젊어서도 신춘문예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회를 보는 눈을 키우는 게 먼저였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로 이병주국제문학상, 노근리평화상 문학상을 받았다. 문학성 높은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스토리는 있는데 내러티브(서사)나 감성 표현이 부족한 것 같다는 얘기도 듣는다. 더 열심히 쓰는 수밖에 없다.”

소안도 청년과 일본 여성의 사랑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당사도 옛 등대. 일제의 수탈을 막으려는 소안도 주민과 의병들이 1909년 2월 이곳을 습격했다.
[등대]는 사랑 이야기다. 동학을 받아들인 개화파서 훈장의 아들 서진하와 소안도에 사는 일본 상인의 딸 시라이 미유키의 러브 스토리가 기둥 줄거리다. 조선과 일본이란 국적의 장벽에 막힌 둘의 운명적 사랑이 장사도 등대라는 일제의 야욕을 허물어뜨린다. 등대에 내포된 일제의 침탈 논리를 일러주는 주체도 미유키의 아버지다. 미유키는 나중에 미옥이란 한국 이름도 얻는다.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열어가려는 작가의 인식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서진하의 성장 과정과 등대 습격 사건에서 일본인의 역할이 크다. 낭만적, 작위적 설정이 아닐까?

“꼭 그렇진 않다. 소안도 노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일본인이 꼭 나빴던 것은 아니다. 일제의 야욕을 꿰뚫고 있는 사람도 소안도에 거주했던 일본인 소상인이었다. 실제로 소안도에서 한국 역사를 가르친 일본인 교사도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와 양심적·비판적 일본인을 분간할 필요가 있다.”

‘작가의 말’에서 일본의 사죄를 요구했다. 그것도 곡진한 사죄를 촉구했다. 일본 정부가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일본이 갑자기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충심으로 사죄해야 한다. 우리는 물론 그들의 후손을 위해서다. 남들을 짓밟는 무도한 짓을 또 저지르면 되겠는가? 그렇다고 일본을 미워해선 안 된다. 우리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일본의 속 좁은 마음을 허허 웃을 만큼 되지 않았을까. 일본 중국과 세 발로 대등하게 서는, 즉 정립(鼎立)하는 실력을 키우고, 평화를 사랑하는 이웃 사람들과 함께 미래로 나가야 한다. 한 세기 전 소안도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향후 쓰고 싶은 작품이라면.

“두 가지가 있다. [등대] 이후의 소안도, 즉 동학이 3·1운동과 항일운동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추적하려고 한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의 광주에 대해서도 쓰고 싶다. 당시 광주는 피로 물들었지만 광주를 벗어난 다른 남도 지역에선 그 비극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등대] 관련 자료를 읽으며 당사도가 임철우 원작소설을 박광수 감독이 연출한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1993)의 촬영지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서 그 영화를 다시 감상했다. 1950년 6·25 당시 외딴섬에서 일어난 이념 대립의 상처가 도드라졌다. 100여 년 전 등대 사건과도 연결됐다. 그 섬에 가고픈 마음이 더욱 굳어졌다.


▎소안도 남서쪽 당사도 전경.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를 이 섬에서 찍었다.
곁다리 하나. 소설 [등대]에 익살스러운 표현이 나온다. ‘일수거사(一水去士)’로, ‘한물간 선비’를 뜻하는 조어다. 작가는 “은퇴한 나를 가리킨 말”이라며 웃었지만, 기자에겐 섬광처럼 다가왔다. 시대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소인이 득실대는 요즘이 아닌가. 정파·진영의 늪에 빠진 정치·지식인이 대표적이다. [등대]는 중국 고전 [주역]에 내오는 ‘표변(豹變)’에 방점을 찍는다. ‘그때그때 색깔을 바꾸는’ 기회주의가 아닌 ‘잘못된 것을 바로, 과감히 고치는’ 자기혁신을 가리킨다. 앞으로 우리가 갈 뱃길을 밝히는 ‘등대’처럼 다가온다. 소설에 나오는 최제우의 깨달음을 인용한다.

‘風過雨過枝(풍과우과지) 風雨霜雪來(풍우상설래) 風雨霜雪過去後(풍우상설과거후) 一樹花發萬世春(일수화발만세춘).’ ‘바람 지나고 비 지난 가지에/ 바람 비 서리 눈이 오는구나/ 바람 비 서리 눈 지나간 뒤/ 한 나무에 꽃이 피니 온 세상이 봄이로다.’

[박스기사] '등대' 여주인공 시라이 미유키는 실제 인물?

“도쿄의 시라이 미유키 작가는 자신의 실명을 여주인공 이름으로 쓰게 하고 귀한 조언도 해주셨다.”

[등대] 말미에 달린 ‘작가의 말’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시라이 미유키는 소안도 청년 서진하가 마음에 품은 여성이다. 그와 미유키의 사랑은 한국과 일본이란 칸막이를 허무는 행위와 같다.

미유키는 독립적·주체적 캐릭터로 등장한다. 진하와의 결혼에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결혼이란 제가 남편을 택하는 일이지, 오또상이 사위를 고르는 일이 아니잖아요”라며 당당해한다. 진하가 등대를 습격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소설의 카타르시스를 쌓아가는 중심인물 중 하나다.

진화와 미유키의 관계를 걱정하던 동학도 이준화도 마침내 진하의 손을 들어준다. “그동안에 내가 껍데기만 보고 산 것이여. 어야, 동생. 내 나라도 나쁜 놈이 있고, 저 나라에도 좋은 사람이 있지 않겄는가? 좋은 사람끼라면… 나라 다르다는 것이 뭐 대수겄는가? 결단을 내려불소. 주저할 것이 한나도 없네.”

실제 인물 시라이 미유키는 한국 대중문화를 일본에 소개해왔다. 드라마 [여인천하] [장희빈] [상도] [이산] [해신] [허준] 등의 일본어 번역 자막 감수 작업에 참여했다.

김민환 작가와의 인연은 소설 [담징]이 출간된 2013년께로 올라간다, “지인을 통해서 연락을 해왔습니다. 담징이 일본에 남긴 유산에 눈을 떴다고 했어요. 담징으로 대표되는 7세기 한·일 문화교류, 불화와 반목이 가득한 양국 관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김 작가는 [등대]를 쓰면서 시라이의 도움을 받았다. “1900년대 초반의 일본인 옷차림, 일본인의 어색한 한국어 발음 등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소설 속 일본인 이름을 고민 중이라 했더니 선뜻 ‘제 이름을 쓰셔요’라고 동의해주었죠. 그렇게 양국이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좁혀갔으면 합니다.”

- 글 박정호 월간중앙 기획위원 park.jungho@joongng.co.kr /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202407호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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