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저성장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는 중견기업의 성장에 있다.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선 한국형 히든 챔피언이 늘고 있다. 정부도 2020년까지 글로벌 전문기업 300곳을 육성하는 ‘월드클래스 300’프로젝트를 선보였다.
‘한국 경제의 허리’로 불리는 중견기업은 모두 2505개다. 지난해 12월 18일 중소기업청은 2012년 말 기준으로 조사·분석한 ‘2013년 중견기업현황’을 발표했다.이는 2011년 1422개보다 무려 1083개나 늘어난 수치다. 2009년 바뀐 새 중견기업 기준이 2012년부터 적용되면서 중소기업이 대거 중견기업으로 편입됐기 때문이다.자기자본 1000억원 이상, 3년 평균 매출액이 1500억원 이상인 기업은 유예 기간 없이 바로 중견기업이 됐다. 이로 인해 늘어난 중견기업수는 871개에 이른다.
그렇다면 중견기업이란 뭘까. 중소기업기본법상 중소기업범위(현행 제조업 기준 종업원수 300명 미만, 자본금 80억원 이하, 3년 평균 매출액 1500억원 미만 기업)를 벗어난 동시에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2013년 기준 삼성·현대차 등 62개 기업집단)에 속하지 않는 기업이다. 공공기관과 금융·보험업종도 대상에서 제외된다.중견기업의 평균 매출액은 2279억원이며 평균 근로자수는 397명이다. 매출액이 1000억원 미만 기업이 1093개(43.6%)로 가장 많고, 1조원 이상 기업은 77개(3.1%)로 조사됐다.총 매출액은 560조원이다. 2011년 373조원에 비하면 50.1%나 증가했다. 이는 삼성·SK·현대자동차 등 3대 대기업의 매출액 569조6000억원과 비슷한 수치다. 수출액은 703억3000만 달러로 전체 수출 비중의 12.8%를 차지한다.올해 중견기업 환경이 확 바뀐다. 1월 ‘중견기업 성장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이하 중견기업특별법)’이 발표됐고, 7월 22일 시행된다.앞으로 중견기업으로 성장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받는다.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뒤에도 일정기간 중소기업에만 적용되는 금융 지원과 조세 감면 혜택을 받는다. 그동안 중소기업들은 성장을 기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을 겪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경우 77개의 지원혜택을 못 받기 때문이다.이 법안을 추진한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은 신년 기자감담회에서 “중견기업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성장 사다리인 동시에 건전한 경제 생태계를 지탱하는 경제의 허리”라고 강조했다. 특히 맨손으로 시작해 중견기업을 일궈낸 경영자의 기업가 정신이 한국의 저성장 국면을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추재욱 중견기업연합회 조사통계팀 연구원은 “중견기업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요건은 글로벌화”라고 얘기했다. “중소기업이 국내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면 중견기업은 해외로 눈을 돌려 시장을 넓혀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독일의 히든 챔피언같은 글로벌 전문기업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히든 챔피언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3위를 차지하는 강소기업을 말합니다. 독일은 1300여개 히든 챔피언 덕에 유럽 금융위기 속에서도 굳건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현재 국내에서도 한국형 히든 챔피언을 키우고 있다. 중소기업청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주관하는 ‘월드클래스 300’이다. 이 사업은 정부가 2020년까지 글로벌 전문기업 300개를 육성하기 위해 경쟁력 있는 중소·중견기업을 선정해 적극 지원한다. 2011년부터 시작해 지난해까지 총 100개 기업을 뽑았다.자격 요건이 까다롭다. 매출액 400억원 이상, 1조원 미만 기업을 대상으로 최근 3년간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중이 평균 2% 이상이거나 최근 5년간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이 15%이상인 기업이다. 선정되면 이점이 많다. 인력확보, 시장개척, 투자확대, 컨설팅 등 다양한 범위에서 정부와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는다.지난해엔 모두 33개 기업이 월드클래스 300에 뽑혔다. 이 중 중견기업은 가온미디어, 골프존, 농우바이오, 도루코, 신영, 명화공업 등 19곳이다. 모두 기술력과 실적면에서 성과가 좋은 기업이다. 산업별로 보면 자동차 부품과 전자 부품분야에 선정된 기업이 각각 4개씩 가장 많다. 자동차 부품 기업 중 매출액이 가장 큰 기업은 신영이다. 2012년 기준 9000억원.이곳은 강호갑 회장이 경영하는 자동차 차체부품 전문기업이다. 측면차체, 후륜패널 등이 주력 부품이며 고객사는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포드, GM, BMW 등이 있다. 신영의 시작은 1999년 부도 위기에 몰린 신아금속을 강 회장이 인수하면서부터다. 그는 종업원 230명 전원을 고용 승계했고, 생산설비를 새롭게 구축했다.강 회장은 설비기술을 중시한다. 직접 연구개발에 매달려 고급기술을 적용한 설비를 만들었다. 예전보다 강도는 3~5배 높아진 반면 무게는 25% 줄었다. 해외 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이다. 2003년 현대차와 함께 미국에 진출했고, 2008년에는 러시아에 두 개의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2012년 기준 수출액은 2095억원이다.전자부품에선 방송수신기기(셋톱박스) 전문기업 가온미디어 성과가 눈에 띈다. 지난해 1~3분기 누적액은 2117억원으로 2012년 같은 기간 대비 94% 증가했다. 가온미디어의 경쟁력은 기술이다. 전체 인원 198명중 65%가 R&D에 투입했다. 이 뿐이 아니다. 매년 매출액의 7%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한다.이를 통해 인터넷 프로토콜(IP) 하이브리드와 안드로이드 스마트박스, 홈게이트웨이 등 차세대 셋톱박스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선점했다. 특히 지난해 개발한 Btv 스마트는 안드로이드 젤리빈 운영체제(OS)를 적용한 최초의 스마트 셋톱박스다. 기존 셋톱박스가 지원하지 않는 구글의 다양한 부가서비스는 물론 사용자가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원하는 앱을 자유롭게 다운로드 받아서 사용할 수 있다.이 밖에 게임회사가 처음으로 월드클래스 300에 뽑혔다. 주인공은 국내 1세대 게임 개발사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다. 박관호 위메이드 의장이 2000년 창업한 회사로 온라인 게임 ‘미르의 전설’ 시리즈를 히트시켰다. 2011년 미르의 전설은 게임 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 최대 누적매출액 2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2012년 본격적으로 뛰어든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도 성과가 좋다. 지난해 선보인 윈드러너 게임은 최단기간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지난해 1~3분기 누적액은 1805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