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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OES OF PHILANTHROPY - “손에 쥔 게 있다면 기부는 당연한 것” 

 

조득진 포브스 차장 사진 전민규 기자
민남규 자강산업 회장은 포브스아시아가 선정한 ‘2014 기부 영웅’에 올랐다. 지난봄 고려대에 50억원 기부를 약정한 그는 후원을 즐긴다. 타고난 DNA이기도 하지만 일부러 감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을 운영하지만 기부에서만큼은 대기업 오너 못지 않다. 민남규 회장은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5억원씩 기부를 약속했으니 더욱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며 웃었다.



이태 전 일이다. 민남규(68) 자강산업 회장은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학장과 마주 앉았다. 고려대에 강당을 지어 기부하는 등 평소 학교 발전에 관심이 많았던 민 회장은 학과(농화학과) 후배이기도 한 학장에게 불쑥 물었다. “학장님, 우리 단과대가 나서서 고려대를 글로벌 3대 대학에 들게 하려면 지원금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한 2000억원 정도 모으면 될까요?”

잠시 고민하던 학장은 대답했다. “글쎄요. 그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민 회장은 바로 받아쳤다. “그럼 학장님이 나서서 모아보시면 어떨까요? 죽을 때 돈 짊어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기부한 분들을 예우해 명예를 주면 되잖아요.”

이 제안을 실천하는 몫은 고스란히 민 회장에게 돌아왔다. 지난해 학장이 그를 찾아와 연구센터 건립을 제안한 것. 2030년까지 세계 20위권에 들어가는 학교를 목표로 노벨상 수상자를 모셔 연구센터를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고려대에 50억원을 기부키로 한 약정은 그렇게 결정됐다.

민 회장은 “50억원을 낼 테니 학교와 매칭 펀드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100억원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끌어오면 200억원 정도는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노벨상 수상자가 센터장으로 있는 200억원 규모의 연구센터 10개가 만들어지면 2030년까지 갈 것도 없다.”

민 회장은 지난 4월 3일 ‘고려대학교 발전기금’ 기부를 약정했다. 매년 5억원씩 10년간 기부하며 기부금은 ‘KU-오정 에코리질리언스센터’ 설립에 사용된다. 연구센터는 기후 변화와 원전사고 등 예측이 불가능한 충격에 대응하는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생태-사회적인 복원성 전략 연구가 주과제다. 특히 기부자와 대학이 공동으로 설립기금을 출연한 이번 기부는 대학에선 이례적인 시도다. 고려대는 기부자를 예우하기 위해 민 회장의 아호인 ‘오정’을 센터이름에 붙였다.

지난 7월 15일 오후 케이디캠 안산공장에 만난 민 회장은 “오늘 상반기 결산 회의가 있어 국내 공장장과 해외 법인장들이 모였는데 ‘기부 영웅’ 선정 축하 인사를 받았다”며 “나는 일부에 알려진 것처럼 기부천사가 아니다. 그저 저 좋아 개인 돈을 내놓는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표정엔 자부심이 엿보였다.


▎민남규 회장은 요즘 판소리에 푹 빠졌다. 실력도 늘어 모임에서 분위기를 돋울 정도다(왼쪽 사진). 지난 4월 3일 고려대에서 ‘고려대학교 발전기금’기부약정식을 가졌다. (왼쪽부터) 기부 동반자인 아내 황영희 남웅전자 대표, 민 회장, 김병철 고려대 총장.
아내도 통큰 기부자

민남규 회장은 자강산업, 케이디캠, 주식회사 자강, JK머티리얼즈 등을 경영하는 중소기업인이다. 모두 플라스틱 관련 기업으로 국내 9개 공장, 해외 2개 공장에서 500여 명 직원이 근무하며 지난해 2500억원 매출을 올렸다. 1974년 창업한 주식회사 자강(옛 고려화학공업)이 모태다. 자강산업은 삼성전자 협력사 모임인 ‘협성회’ 중 플라스틱 분야에서 가장 오랜 기업이다.

주로 세탁기·냉장고·에어컨 등 가전제품의 외장을 생산한다. 최근엔 자동차 부품, 농업용 필름도 만든다. 케이디캠은 플라스틱 첨가물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꼽힌다. 플라스틱 성형물엔 생산성을 높이는 첨가물이 들어가는데 케이디캠은 특히 PVC 액상안정제에서 아시아 최대 기업이다. 2017년 글로벌 탑을 노린다.

그는 주변에서 ‘기부를 즐기는 사람’으로 통한다. 특히 음악 영재 지원, 산악인 후원, 대학 장학금 조성, 지역 주민단체 후원 등 기부 영역이 다채롭다. 우선 단과대 교우회장으로 활동하며 모교 발전에 대한 관심이 많다. 경기도 김포(현 부천시 오정동) 출신의 그는 9대째 살아오던 집이 10여 년 전 개발 수용되면서 보상비가 나오자 이를 고려대에 기부했다. 기부금은 오정 대강당 건설에 쓰였다. 최근엔 고려대 석·박사 과정에 입학할 아프가니스탄 농과대학 출신 학생 2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약정했다. 그들은 한국에서 콩 재배기술을 배워 굶주린 조국에 콩 농사를 확산시킬 계획이다.

민 회장은 문화에 관심이 많아 여러 해 전부터 문화·예술인을 후원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대표적이다. 그는 “SERI CEO 클래식 과정에서 하우스콘서트를 갔다가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조성진을 처음 봤다”며 “피아노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의 무한한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그 만남 이후 매년 2000만원씩 6년째 후원하고 있다. 그 사이 조성진은 일본 하마마쓰 국제피아노 콩쿠르 우승, 차이콥스키기념 국제콩쿠르 피아노부문 3위에 오르면서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음악에 관심이 많아 이시형 박사가 세운 세로토닌드럼클럽 회장을 맡아 청소년의 정서순화와 인성교육에도 힘쓴다. 오는 8월 서울에서 열리는 ‘2014 제10회 세계합창 심포지엄’ 조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엔 판소리에 푹 빠졌다. 2009년부터 국립극장에서 토요일마다 아내와 함께 판소리를 배운다. 엊그제도 김동길 박사를 중심으로 한 지인들 모임에서 신곡을 발표했다.

그는 “북한에서 결핵 퇴치 운동을 벌이는 인요한 연세대 교수와의 좌담 후 식당에서 저녁 먹다가 한 곡 뽑았다”며 “심청전에서 심봉사가 심청이를 공양미 삼백 석에 팔고 돌아와 뺑덕어미를 만나는 장면인데, 뺑덕어미 역할은 아내가 맡았다”고 말했다. 몇 해 전엔 직원 결혼식의 주례를 보다가 축가가 펑크 나자 즉석에서 판소리 ‘사랑가’를 부르기도 했다. 그는 “넉살도 늘고 주위도 즐거우니 좋은 일”이라고 했다.

민 회장은 기부 정신의 원천을 선친에게서 찾았다. “기부 영웅에 선정됐다는 말을 듣고 자녀들에게 카톡으로 소식을 알리는데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나 울컥했다”며 “김포에서 전답을 부치시던 아버지는 콩 한 쪽도 이웃과 나눠 먹는 분이셨다”고 했다. “나야 나름 여유가 있어 기부를 하지만 아버지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나눔을 행하셨다. 그러면서 늘 기뻐하셨다. 아마 기부 DNA는 선친께 물려받은 것 같다.”

기부금 사용 투명히 하고, 기부자 예우해야

민 회장은 83㎡(25평) 공장에서부터 시작해 갖은 고생을 한 자수성가형 오너다. 고려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군복무 후 취업이 막막했다고 한다. 마침 주임교수가 지인들과 함께 경영하는 플라스틱 회사에 자리가 있어 취직했다. 비닐 만드는 회사였는데 2년 뒤 부도가 나면서 문을 닫았다.

하지만 구매·자재·회계 등 모든 분야를 경험한 그를 기존 거래회사들이 응원해 줬고, 옛 동료를 모아 창업에 나섰다. 아버지께 ‘유산 주실 거 미리 주시라’, 이모를 만나 ‘정기예금 이자 맞춰 줄 테니 빌려 달라’ 해서 모은 돈으로 공장을 임대해 직원 기숙사와 사무실, 기계 2대를 들여다 놓으니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때가 1974년 28세 때 일이다. 첫 애를 가진 만삭의 아내는 사무실 구석 책상에 앉아 전화도 받고 경리업무도 봤다.

민 회장은 “기부의 가장 큰 동력은 가족들의 지지”라며 “사업하는 아내가 나보다 더 통 크게 내는 때도 있다”고 말했다. 아내 황영희 남웅전자 대표의 기부활동도 만만치 않다. 황 대표는 매년 모교인 수도사대부고에 1000만원씩 장학금을 낸다. 자택이 있는 경기도 용인시 풍덕천동에 2000만원을 들여 어린이놀이터도 만들었다. 지난봄엔 풍덕천1동 주민자치센터 체육시설 교체 비용으로 성금 2000만원을 내놓기도 했다. 민 회장은 “아내가 동네 주민자치위원으로 반찬 만들기 등 봉사활동에 재미를 들이더니 이젠 주민자치위원장까지 맡았다”며 웃었다.

기업 규모에 비해 기부금이 다소 부담스러운 수준. 민 회장은 “5년 전 우리 회사는 윤리경영을 선언했다. 그 전에 무자료 거래, 비자금 조성이 관례였지만 이를 없애자고 마음을 모았다”고 말했다. 명절 때마다 거래처에 상품권 등을 선물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모든 비즈니스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했다. 이를 통해 영업비를 줄였고, 대신 그 비용을 기부나 사회공헌에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덕을 쌓으니 행운도 붙는 것일까. 올해 그의 회사는 겹경사를 맞았다. 우선 공장 2곳을 추가로 매입했다. 자강산업 광주공장과 맞붙어 있던 회사가 있었는데 공장을 접으며 민 회장에게 매입을 부탁한 것. 한 블록 안에 위치한데다 마침 광주공장 수주량이 늘어 추가 설비가 필요했던 차였다. 5년 전부터 준비한 우즈베키스탄 진출도 눈앞에 다가왔다.

지난 5월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합작 제안을 해 온 것. 정부 출연 화학공사가 30%, 자강산업이 60%를 투자해 농업용 그린하우스 필름 생산 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올해 안에 설비를 가동하는 것이 목표다. 민 회장은 “우즈베키스탄을 시작으로 이름에 ‘탄’자 들어가는 나라에 진출할 계획이다. 사업할 게 많은 지역”이라며 “나는 늘 운이 따르는 편”이라고 말했다.

창업한 지 벌써 40년. 줄곧 플라스틱을 만들다보니 철학도 생겼다. 그는 “플라스틱은 인류를 행복하게 해주는 제품이란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플라스틱의 매력은 일상에서의 유용성이다. 괴변 같지만 플라스틱이 없었으면 지구상에 나무는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여기지만 플라스틱은 거의 모두 재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플라스틱이 워낙 저렴해 수거에 대한 매력이 떨어진다. 기업과 정부가 협력해 수거 시스템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고민이 생태의 복원성을 연구하는 ‘KU-오정 에코리질리언스센터’ 설립기금 기부로 이어졌다. 그는 “등산을 좋아해 지금도 꾸준히 산에 오르는데 눈에 보이는 플라스틱은 죄다 주워 온다”며 “내가 플라스틱 만들어 돈을 벌고 있으니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솔선수범하겠다”고 말했다.

민 회장은 “기부는 수혜 대상이 명확해야 하며 제대로 전달되고 제대로 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부를 명예롭게 여기는 분위기 형성도 필요하다고 했다. “몇 해 전 오스트리아 빈 대학을 간 적이 있다. 캠퍼스 안에 동상이 100개 남짓 세워져 있어 학교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대부분 기부자들의 동상이라고 했다. 기부자들을 명예롭게 해 줌으로써 기부문화를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문화가 필요하다.”




201408호 (201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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