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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 PSYCHOLOGY - 패션을 보면 경영전략이 보인다 

 

글 최은경·김현경 포브스코리아 기자, 도움말 김동철 김동철심리케어 원장, 최미희 이미지디자인연구소 대표
최근 패션 전문가를 은밀히 호출하는 기업 CEO와 임원이 늘고 있다. 옷차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패션은 마음을 드러내준다. 리더의 옷차림에서 가치관, 경영전략, 직원들과 관계까지 점쳐볼 수 있는 이유다. 사소한 듯한 수트 핏이나 넥타이 색상도 ‘신의 한 수’ 혹은 ‘악(惡)수’가 될 수 있다.

▎(왼쪽부터) 블랙 터틀넥과 청바지를 고집했던 애플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그레이 셔츠, 후드 집업을 고집한다.



2012년 10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미국 NBC ‘투데이쇼’ 인터뷰에서 “나는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옷장에는 그레이 티셔츠만 20벌 정도 있다”고 말했다. 저커버그는 그 뒤로도 편한 티셔츠나 모자 달린 재킷과 집업 등을 즐겨 입었다. 그의 패션에 월스트리트도 긴장했다. 지나치게 수수한 차림이 투자자들의 미움을 살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은 패션 블로그에 ‘마크 저커버그의 30세 생일을 축하합니다. 이제는 어른처럼 옷을 입을 때가 됐어요’라는 기사를 올리고 패션 전문가의 조언을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짙은 청바지, 캐시미어 스웨터, 옥스퍼드 셔츠 등을 추천했다.

저커버그의 ‘티셔츠 패션’은 창업 전 차림을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성공한 20대의 대명사인 그에게 초심을 간직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정말로 단지 ‘편해서’ 티셔츠를 택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 그는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관되게 같은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을 보면 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가 했던 것처럼 CEO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30대의 저커버그가 앞으로 어떤 패션을 선보일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의 옷차림에 맞춰 페이스북도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경영전략 없이 패션에만 변화를 줄 리 없기 때문이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는 좀 더 격식을 차렸다. 그는 주로 화이트나 블루 계열 기본 스타일 셔츠에 블랙 재킷을 입었다. 화이트는 확산의 뜻을 담고 있다. 온라인 유통업체 CEO로서 사업이 세계 곳곳에 퍼지기를 바라는 심리가 반영된 듯하다. 블루는 신뢰감을 주는 컬러다. 베조스의 패션은 한마디로 깔끔하고 무난하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엿보이지만 융통성 없는 완벽주의자일 가능성도 있다. 옷에 구김이 거의 없는 것 역시 곧은 성격을 점치게 한다.

또 다른 IT 거물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역시 스웨터나 면바지 같은 자연스런 옷차림을 즐긴다. 약간 헐렁하게 입는 게 특징이다. 이는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이다. 또 옷차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에서 세계 최고 부자지만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얘기하는 겸손함이 느껴진다.

글로벌 IT 기업 CEO들의 패션이 주목 받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계기는 스티브 잡스의 ‘유니폼’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블랙 터틀넥 스웨터와 청바지, 그리고 뉴발란스 운동화를 가리킨다. 잡스는 신제품 발표회에서 수많은 관중 앞에 보란 듯이 청바지를 입고 섰다.

그는 굳이 옷을 잘 차려 입을 필요가 없었다. 명품 수트 부럽지 않은 아이폰·아이패드가 그의 가치를 올려줬기 때문이다. 만약 잡스가 ‘취향대로 옷을 입었을 뿐’이라고 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패션 전략은 큰 성공을 거뒀다. 사람들은 딱딱하고 계산적일 것 같은 IT 제품을 감성적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유니폼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블랙은 몰입도를 높여준다. 그래서 자신을 숨기고 전문성을 드러내야 하는 사람들이 선호한다. 고집과 강한 실행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의외로 무채색인 블랙에서 잡스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 창의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내면을 보완하고자 화려한 색상을 선호한다는 이론 때문이다. 터틀넥은 잡스가 강박적 완벽주의자인 것을 말해준다. 청바지는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빌 게이츠는 넉넉한 사이즈의 스웨터와 면바지를 즐겨 입는다. 블랙, 그레이 수트를 선호하고 노타이 차림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정태영 사장.
잡스의 옷차림에서 또 다른 심리를 읽을 수 있다. 그는 가끔 독설가처럼 보이지만 기발한 프로젝트를 언제든 수용할 준비가 돼 있었던 것 같다. 완벽한 정장 차림의 CEO에게 새 프로젝트 보고서를 건네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CEO가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소매를 팔꿈치까지 접어 올렸거나 머리를 염색한 CEO 앞에서도 한결 편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잡스의 블랙 터틀넥이 창의성 상징?

반대로 권위를 중시하는 CEO는 정장을 고집한다. 이들은 노사 협상 자리에도 정장을 입고 가 협상을 망치곤한다. CEO들이 생산 현장을 방문할 때 재킷을 벗고 점퍼를 입는 것 역시 현장 직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국내 CEO 중에서는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대표적인 ‘옷 잘 입는’ CEO로 꼽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는 CEO답게 트렌드를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한다. 수트 컬러는 블랙이나 그레이를 선호하고 노타이 차림이 대부분이다. 몸에 꼭 맞는 핏으로 나이보다 젊게 보인다.

다양한 패턴 수트도 세련되게 소화하고 편한 자리에서는 스카프를 활용하는 등 상황에 맞게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몇 년 전에는 공식석상에 찢어진 데님과 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형식을 파괴한 현대카드의 마케팅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이런 정 사장의 패션에는 대중의 구매욕구를 일으키고자 하는 마음이 숨어 있는 듯하다. 현대카드는 VVIP 카드인 ‘블랙카드’, 슈퍼콘서트 등 획기적인 아이템으로 변화를 선도해왔다. 정 사장은 이에 걸맞게 중요한 시기마다 세련된 스타일로 현대카드의 이미지를 높였다.

여성 CEO에게 패션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여성은 남성보다 몸 치장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자기 취향이 분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여성 중 한명인 마리사 메이어 야후 CEO가 이런 여성성을 잘 표현한다. 그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 블루 계열의 파격적인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선명한 컬러와 화려한 패턴의 옷을 자주 입는 것으로 알려진 메이어는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도 마다하지 않는다. 강한 남성들 사이에서 여성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한껏 과시하는 것이다. 지난해 8월 패션잡지 보그의 화보에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깔끔하고 세련된 헤어 스타일에서 역시 CEO다운 빈틈없는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메이어와 반대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쇼트 커트와 각진 수트로 ‘김성주 표 비즈니스 웨어’를 탄생시켰다. 주로 바지를 입는 김 회장에게서 강한 카리스마와 활동성이 느껴진다. 레드·블루 같은 강렬한 원색의 수트를 고급스럽게 소화한다. 잘록 들어간 허리라인은 여성성을 살려준다.

바지는 딱 붙게 입는 편이다. 큰 리본이나 코르사주로 화려하게 포인트를 주기도 한다. 남들이 잘 소화하지 못하는 아이템을 선택한 데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안다. 신제품 론칭 행사에서는 단색 옷을 입어 제품을 돋보이게 한다.


▎블루 계열 드레스를 입고 국제 행사에 나타난 마리사 메이어 야후 CEO(왼쪽부터). 김성주 회장은 코르사주 화려하게 포인트를 줬다. 클러치로 포인트를 주는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는 여성스런 스타일을 즐긴다. 블랙, 레드 컬러를 즐겨입고 사각 토드백을 자주 드는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액세서리는 여성의 권위 상징

김 회장은 대성그룹 창업자인 고(故) 김수근 명예회장의 막내딸로 재벌 집안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창업했다. 2005년 독일 패션 브랜드 MCM을 인수해 글로벌 브랜드로 키운 저력을 과시한다. 김 회장이 의도적으로 중성적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 대한 도전이거나 독일 브랜드를 인수해 키우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 하나 김 회장의 스타일은 목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목에 강렬한 컬러의 스카프를 매거나 화려한 목걸이를 한다. 깃 부분에 러플이 과하게 달린 셔츠를 입거나 코르사주를 목과 가까운 쪽에 달기도 한다. 키가 크고 목이 길어 콤플렉스를 가리기 위한 방편일 수 있다. 러플이 달린 셔츠는 옷과 액세서리의 중간 형태로 창작에 대한 의지와 안정감을 동시에 추구하는 심리를 보여준다.

패션에서 컬러는 중요한 요소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전략적인 컬러 마케팅으로 유명하다. 대외적으로 중요한 공식 업무에 임할 때는 블루색 계열을 고집한다. 그는 “블루는 단정하면서 세련미를 표현하기 좋고 행복, 청결, 명예 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아주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많은 정치인이 블루를 선호하는 이유기도 하다. 클린턴 전 장관이 200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 디자이너 나이너 맥클리모어의 블루색 바지 정장을 입고 있었다.

헤어 스타일에서도 그의 심리가 드러난다. 퍼스트레이디 시절에는 여성적인 단발머리를 고수하다 정치인으로 나서고는 진취적인 느낌의 커트를 고집했다. 각 역할에 맞는 일관된 헤어 스타일로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액세서리는 여성의 권위를 상징한다. 옷이 초라해 보일 때도 액세서리 하나로 이미지를 반전시킬 수 있다.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은 액세서리로 개성을 표현한다. 박 부회장을 나타내는 심볼은 모자다. 모자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성을 빛나게 해주는 아이템이다. 그는 베레모를 즐겨 쓰는데 챙이 없어 불편하지 않게 격식을 차리면서 멋을 낼 수 있다.

모자 외에도 화려한 액세서리를 즐겨 착용하는 편이다. 패션업을 이끄는 박 부회장이 특정아이템으로 자신만의 컨셉트를 표현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다. 남성이라면 수염을 기르거나 지팡이를 휴대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의 심볼은 브로치다. 여성 최초로 미국 국무장관이 된 올브라이트는 각국 정상을 만날 때마다 웃옷에 각기 다른 브로치를 달았다. 1994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했을 때는 자신을 뱀이라고 평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항의하는 뜻으로 뱀 모양 브로치를 했다.

2000년 6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왼쪽 가슴에 햇살 모양의 브로치를 달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북한이나 러시아를 방문할 때는 독수리와 성조기 브로치로 미국의 힘을 과시했고, 고(故)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을 만날 때는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얼룩말 브로치를 했다. 그저 장식으로 달기 시작한 브로치가 외교의 병기가 된 것이다.

가방 역시 여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이템이다. 여성들은 가방을 무기로 사용하기도 한다. 고(故) 마거릿 대처전 영국 총리는 핸드백을 카리스마 발산에 사용했다. 그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나타나 핸드백을 책상에 ‘탁’ 올려놓으면 장관들이 겁먹었다고 한다. 핸드백 안에 각종 정책과 관련한 서류가 잔뜩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사 풍자 만화가들은 대처가 핸드백으로 각료들을 때리는 모습을 그리곤 했다. ‘공격적이다’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뜻의 ‘핸드배깅(handbagging)’이란 단어가 쓰이기도 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2세 역시 가방을 꼭 갖고 다녔다. 가방에는 가족사진, 메이크업 도구 등이 들어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핸드백은 자신의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며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꼭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는 가방에서 만년필을 꺼내 사인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기 전에 명품 브랜드에 이미 기가 죽었다고 한다.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는 포인트가 되는 클러치나 사각형 디자인의 악어가죽 토드백을 선호한다. 이는 여성스러움과 빠르고 정확하게 업무를 추진하는 성격을 동시에 드러내준다. 애용하는 브랜드는 콜롬보다. 악어가죽만으로 만들어 가격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비싼 가격의 한정 판매 제품을 드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동생인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의 패션에서도 가방이 빠지지 않는다. 그는 직사각형 모양의 악어가죽 가방을 즐겨 든다. 색상은 대부분 블랙이다. 패션업에 종사하는 만큼 세련된 스타일로 경영자로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가장 즐겨 드는 핸드백은 10꼬르소꼬모에서 판매하는 블랙 리버 백. 이 가방은 ‘이서현 백’으로 불린다. 10꼬르소꼬모는 제일모직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편집 숍이다.

리더의 패션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조직의 마케팅 전략을 대신해준다. 공식석상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방패로 이용되기도 한다. CEO는 살아있는 브랜드다. 그들의 패션에서 의미를 찾는 이유다.

201408호 (201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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