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성일 칸타비노 대표 

와인을 노래하는 행복 전도사 

오승일 포브스 차장 ·사진 이원근
와인과 클래식 음악을 마음껏 즐기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와인과 오페라를 접목시킨 특색 있는 콘서트 강의로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칸타비노’다.

▎와인과 오페라를 접목시킨 특별한 강의를 펼치고 있는 김성일 칸타비노 대표. 그의 꿈은 와인과 오페라의 이상적인 조화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바리톤 & 소믈리에’.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부근에 위치한 칸타비노에서 만난 김성일 대표(48)의 와인색 명함에 적혀 있는 문구다. 소극장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칸타비노는 음악회·발표회·동호회 등 다양한 문화 모임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성악가이자 와인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 대표는 이곳에서 ‘와인과 오페라’라는 새로운 형식과 주제로 특별한 강의를 하고 있다.

1990년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이탈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와인과 인연을 맺게 됐다. 한국에 돌아와 와인 모임에서 노래를 하고 음악 모임에서 와인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는 그는 2011년 성남아트센터에서의 첫 강의를 시작으로 벌써 ‘와인과 오페라 10기’ 과정을 운영 중이다. 일반인들이 노래를 배울 수 있는 ‘성악아카데미’도 3기째 진행하고 있다.

성악가와 와인의 만남이라니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유학 시절 열심히 한 덕분에 성악가로서 원하는 만큼의 목소리를 얻을 수 있었어요. 유명 콩쿠르에서 입상도 하고 다수의 오페라 무대에도 오르며 성공적인 결과물들을 만들어냈죠. 귀국 후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뭔가 더 성취감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김 대표의 답변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 소믈리에 협회 시험을 보게 됐는데, 금방 와인에 매료된 겁니다. 글로벌 시대의 문화 키워드인 와인과 오페라의 매칭을 통해 오감을 일깨우고 문화적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면 행복지수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죠. 이론 위주의 딱딱한 강의가 아니라 마시고, 듣고, 보고, 느끼면서 감성 세포를 최대한 확장시키는 것이 제가 강의하는 주된 목적입니다.”

2008년 초 영국의 <디캔터(decanter)>지는 에든버러의 헤리엇 와트대학 에이드리언 노스 교수팀의 ‘와인과 음악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와인을 마실 때 듣는 음악에 따라 와인 맛이 60% 이상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연구팀은 250명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각자 다른 방에서 4가지 종류의 음악을 들으면서 와인을 마셔보게 했다.

실험 결과 사람들은 특정 음악을 들었을 때 해당 와인의 품질을 최대 60%까지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 와인은 웅장한 클래식 음악, 샤르도네 품종 와인은 생동감 있고 경쾌한 음악이 나올 때 훨씬 높은 점수를 얻었다.

“와인과 음식처럼 와인과 음악에도 마리아주(mariage)가 있다”고 말하는 김 대표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런 과학적인 근거는 이외에도 많이 있다”면서 “다양한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음악과 와인의 구체적인 매칭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다시피 와인은 크게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으로 구분됩니다. 화이트와인이 담백하고 명랑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반면 레드와인은 다소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어울리죠. 처음 만난 남녀 사이에는 화이트와인이, 프러포즈 같은 진지한 분위기에는 레드와인이 어울리는 것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어요. 음악도 마찬가지에요. 자본주의 이전 귀족들이 소비하던 순수(절대) 음악처럼 들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고전스러운 음악에는 화이트와인을, 인간의 희로애락·삶과 죽음·사랑을 주제로 한 신분제 이후의 음악들처럼 들어서 감동을 주는 낭만스러운 음악에는 레드와인을 곁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그 사례를 찾을 수 없는 김 대표만의 독특한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한 이탈리아인은 그의 강의에 대해 “매우 훌륭한 발상”이라고 호평하며 “우리들의 문화인 와인과 오페라를 한국인들이 더 잘 즐기는 것 같다”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자신의 강의를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동시에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과 건축, 인테리어 분야에도 적용해볼 계획이다. 다양한 예술 분야와 매칭해 와인을 음미하면 맛도 더욱 풍성해지고 만족감도 더욱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와인과 오페라의 환상적인 마리아주

이탈리아 와인 전문가답게 김 대표의 와인에 대한 열정은 끝이 없다. 1993년부터 밀라노에서 9년, 피렌체에서 2년, 로마에서 1년 등 총 12년 동안 머물며 음악 공부와 함께 와인 공부도 병행했다. 김 대표는 “학문적인 접근이라기보다는 그저 와인이 좋아서 했던 일들이었다”며 “그때의 소중한 경험들이 소믈리에가 될 수 있었던 훌륭한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피렌체의 어느 극장에서 일할 때였어요. 당시 극장에서 마련해준 첸트로 스토리코(centro storico) 지역의 오래된 집에서 살았는데 도시 보존 차원에서 전화도 마음대로 설치할 수 없는 곳이었죠. 주로 노인들이나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거주하던 이곳은 여름 휴가철이면 원주민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탓에 가게에서 와인을 아주 싸게 팔았어요. 덕분에 1유로짜리 와인들을 수도 없이 맛볼 수 있었죠. 한번에 7~8병을 따놓고 맛을 비교해 보곤 했는데 사실상 소믈리에 공부를 했던 셈입니다.”

이탈리아에는 매우 다양한 와이너리들이 존재한다. 우리로 치면 면 단위보다 더 작은 마을에서도 와인을 만든다고 한다. “포도 품종도 프랑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DNA 검사를 통해 포도 품종을 분류하는 작업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말하는 김 대표는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략 300곳이 넘는 메이저급 와이너리를 방문했다고 한다. 토스카나와 시칠리아 지역을 비롯해 이탈리아 전국을 구석구석 누비며 경험한 그의 생생한 와이너리 체험기는 개인 블로그(blog.naver.com/kimstello)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가본 와이너리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시칠리아의 플로리오(florio) 와이너리에요.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와이너리로 손꼽히는 곳이죠. 와인 시음실의 웅장한 규모도 압도적이었고 와인과 함께 내온 음식도 훌륭했지만 시음 중에 들었던 음악은 무엇보다 인상적이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음악이 와인을 음미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해요.”

이탈리아어로 ‘와인(vino)을 노래하다(cantare)’란 의미를 담고 있는 칸타비노(cantavino)는 와인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는 동아리같은 곳이다. 자신의 필명이기도 한 칸타비노의 대표답게 와인과 오페라를 주제로 한 책을 조만간 펴낼 계획을 갖고 있고, 성악아카데미 수강생들을 위한 기념 음반도 구상 중이라는 김성일 대표.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와인과 오페라를 매개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칸타비노의 모토는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해지자’는 것이에요. 음악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분야에서 융·복합이 시도되고 있는 요즘 추세에 맞춰 우리의 감각기관도 모노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오감을 총동원해 행복을 추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모든 것이 연관돼 있듯이 우리의 감각기관도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고 서로 조화시키는 방법만 습득한다면 아주 쉽게 행복이 커지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 글 오승일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이원근

201511호 (201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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