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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EDITION 13th (1) 배우 황정민 

한국영화 주도하는 수퍼파워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
1999년 최고 흥행영화 <쉬리>의 단역배우가 이제는 한국 영화를 이끄는 최고 흥행배우가 됐다.

▎황정민은 연기의 스펙트럼이 한층 넓어지면서 남녀노소의 더 많은 관객과 만나게 되었다.
2016년 현재 ‘한국 최고의 흥행 배우’는 단연 황정민(46)이다. 지금 추세라면 <검사외전>도 전국 관객 1,000만 명을 넘길 듯한데, 그렇게 된다면 그는 놀라운 기록의 소유자가 된다. 2014년 <국제시장>, 2015년 <베테랑>에 이어 2016년 <검사외전>까지 3년 연속 ‘천만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천만 영화’가 흔해졌다고 해도 이런 흥행력은 쉽지 않다. 황정민은 언제부터 이런 ‘수퍼파워’를 지니게 된 것일까? 어쩌면 최근 몇 년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며, 여기엔 물에 잠겨 있는 긴 단련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가장 큰 미덕은 ‘다산성’이다. 1999년 <쉬리>의 단역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후 <검사외전>까지 그는 3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올해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가 개봉 예정이니, 그는 15년 이상 매년 두 편씩 영화를 찍은 셈이다. 정재영이나 설경구처럼, 황정민은 쉬지 않고 일하는 전형적인 ‘워크호스’(workhorse) 스타일의 연기자이며 내구성 좋은 ‘아이언 맨’ 같은 배우다. 최근 그가 거두고 있는 성과는 공력의 세월이 빚은 결과이기에 티켓 파워가 한 동안 더 유지되지 않을까 싶다.

황정민은 천천히 움직이는 배우였다. 데뷔 후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로 좀 더 얼굴을 알렸고, <로드 무비>(2002)로 청룡영화제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바람난 가족>(2003)의 ‘쿨’한 연기로 첫 흥행을 견인하며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그는 2005년이 되어서야 제대로 자신의 캐릭터를 지니게 된다. 두 편의 영화가 주목할 만하다. 먼저 <달콤한 인생>(2005)이다. 조커처럼 입 주변에 칼자국이 있는, 비열한 표정으로 “인생은 고통”이라고 말하는 조폭 백 사장은 이후 황정민이 변주하는 터프한 캐릭터의 시작이다. 그리고 같은 해 <너는 내 운명>(2005)이 나온다. 한 여자를 운명으로 여기고 죽을 것처럼 사랑하는 석중이라는 남자. 백 사장의 정반대 지점에 있는 순정남이다. 극단적으로 다른 이 두 캐릭터는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날줄과 씨줄이 되는데, <신세계>(2013)의 정청이 백 사장의 후예라면 <국제시장>의 덕수는 석중의 형제 같은 인물이다.

3년 연속 ‘천만 영화’의 주인공

흥미로운 건, 그 무게중심이 서서히 전자에서 후자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동안 그가 흥행을 일군 캐릭터들이, 형사로 등장했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 <사생결단>(2006), <부당거래>(2010)나 탐정으로 나온 <그림자 살인>(2009)처럼 거친 남성성을 기반으로 했다면, 2012년 <댄싱 퀸>을 기점으로 그 성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그는 순박한 정치 지망생으로 등장하는데, 극중 이름 역시 ‘황정민’이라는 건 상징적이다. <댄싱 퀸>은 황정민이 캐릭터에 배우 자신의 이미지를 효율적으로 투영하기 시작한, 즉 대중과의 거리를 대폭 좁힌 본격적인 첫 영화다. 이전의 황정민이 ‘개성 있는 배우’였다면, <댄싱 퀸> 이후 그는 ‘공감 주는 배우’가 되었다.

‘우직함’ 주는 캐릭터에서 ‘멀티’한 배우로

그러면서 그는 <너는 내 운명> 이후 접어두었던 신파의 세계로 다시 걸어 들어가고, 그의 캐릭터가 지닌 ‘우직함’은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정의하며 동시에 관객을 이끄는 강력한 이미지가 된다. <댄싱 퀸> 이후 그의 행보를 보자.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오로지 서민을 위한 정치를 이야기하는 시장 후보였던 그는, <신세계>에선 언더커버로 조직에 잠입한 경찰을 ‘브라더’라며 형제애로 대한다. <전설의 주먹>(2013)에선 딸을 위해, <남자가 사랑할 때>(2013)에선 연인을 위해, <국제시장>에선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헌신한다. <베테랑>에선 억울한 일을 당한 서민을 위해 재벌 3세에게 끝장을 보자며 달려들고, <히말라야>(2015)에선 산에서 죽은 동료를 위해 다시 그곳으로 간다. <검사외전>에선 누명을 벗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긴 싸움을 벌인다.

이 캐릭터들은 모두, 가끔은 맹목적으로 보일 만큼, 하나의 목표를 위해 걸어간다. 이 대원칙 속에서 그는 범죄 느와르부터 멜로와 코미디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좀 더 ‘멀티’한 배우가 되었다. 이전의 황정민이 내포를 확장하기 위해, 즉 캐릭터의 정체성과 그 의미를 명확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댄싱 퀸> 이후 ‘황정민이라는 개념’은 외연을 확장해간다. 우직함’이라는 캐릭터의 동질성은 유지하되, 좀 더 다양한 종류의 영화와 만나는 전략인 셈이다. 이처럼 스펙트럼이 한층 넓어지면서 남녀노소의 더 많은 관객과 만나게 되었다.

<댄싱 퀸> <국제시장> <히말라야>를 제작한 윤제균 감독의 JK필름과, <신세계> <남자가 사랑할 때> <검사외전>을 제작한 한재덕 대표의 사나이픽처스를 만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황정민 현상’은, 때를 기다리며 내공을 다진 배우가 좋은 인연을 만나 거대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

201603호 (20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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