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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투자의 신세계를 열다 

이현택 기자
신세계가 올해 4조1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자산(27조)의 15.2%를 투자하겠다고 나서자 유통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 신세계그룹의 전략과 정용진 부회장의 구상을 들여다봤다.

▎‘위기에 돈을 쏟아붓는 남자’, 유통가에서 정용진 부회장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올해 4조1000억 원이라는 대규모 투자는 정 부회장이 2014년 1월 7일 발표한 ‘비전 2023’의 일환이다.
4조1000억원. 숫자가 발표되던 지난 1월 28일, 서울 회현동 신세계그룹 기자실은 반신반의하는 반응과 함께 놀라움이 교차했다. 업계에서도 불신과 부러움이 갈렸다.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참여하지 않아 정부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정말 저 금액을 다 쏟아부을지 검증해야 한다”는 등 숱한 이야기가 유통업체들 안팎에서 쏟아졌다. 수치로만 봐도 놀라운 수준이다. 2015년 공정거래위원회 집계 기준 신세계그룹 자산(27조)의 15.2%를 투자하겠다고 나섰으니 말이다. 2015년 투자액 3조5000억원보다 무려 17.1%(6000억원)가 많다.

‘위기에 돈을 쏟아붓는 남자’. 유통가에서 정용진(48) 부회장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실제로 그렇다. 1997년 신세계 상무로 입사한 정 부회장은 98년 할인점 프라이스클럽 매각을 진두지휘했다. 정 부회장은 프라이스클럽 지분 매각자금 1억 달러와 카드사업을 정리해 확보한 돈으로 전국 주요 노른자위 땅을 대거 매입했다. 그때 매입한 땅이 오늘날 이마트의 주요 점포로 성장해 오늘날 대형마트 업계 독보적인 1위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2004년 센텀시티 위락단지 개발권 낙찰도 정 부회장의 작품이다. 이곳에는 세계 최대 백화점인 신세계 센텀시티점이 들어서 있다.

올해의 화두는 단연 쇼핑몰과 백화점이다. 신세계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이번 투자를 이렇게 설명했다. “신세계가 1990년대말 외환위기 직후 10년간 부동산 개발과 이마트 확장에 주력했다면, 2000년대 후반부터는 백화점 사업에 장기 투자해왔다. 4조1000억원은 그 성과를 거둬들이기 위한 막판 대규모 투자이다.”

4조1000억원의 명세서를 보면 대략 방향이 보인다. 올 연말 오픈하는 복합쇼핑몰 하남유니온스퀘어와 신세계백화점, 이마트에 각 1조원씩을 투입한다. 나머지 온라인·면세점·T커머스 강화 등 신규 채널에는 총 1조 1000억을 쓴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예상되는 곳은 신세계 강남점이다. 2월 25일 언론공개를 시작으로 화려하게 확장 오픈하는 신세계 강남점은 국내 최대 스트리트 패션 전문관인 ‘파미에 스트리트’를 비롯해 다양한 먹거리와 거대한 스케일로 타 백화점을 압도한다. 강남점과 쌍두마차격인 신세계 센텀시티점도 3월 초 확장오픈한다. 기존에 주차장으로 쓰던 부지(1만9499㎡)에 해외 패션 브랜드와 유아용품 등을 입점시킨 ‘B관’을 선보인다. B관에는 기존에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운영중이던 신세계면세점도 이전 오픈한다. 8월 문을 여는 김해점이나 하반기 중 오픈 예정된 대구점도 있다. 신세계 김해점은 연면적 14만4500㎡(약 4만3700평)에 매장면적 4만6300㎡(1만4000평) 규모고, 대구점은 연면적 29만 7500평(약 9만평)에 매장면적 9만9200㎡(약 3만평)으로 더 크다.

쇼핑몰·백화점·면세점 올해 줄줄이 오픈


하남유니온스퀘어는 단일 프로젝트로는 엄청난 액수인 1조원이 올해 투입된다. 업계에서 “이미 건물 뼈대 등이 완성됐는데 추가로 1조원을 투입한다는 이야기냐?”며 의구심을 가질 정도다. 이에 대해 신세계그룹의 한 간부는 “변화하는 트렌드를 잡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고 설명했다. 경기 하남시 신장동 하남지역사업 2지구 내 11만8000㎡(약 3만6000평) 부지에 신세계백화점·이마트트레이더스·패션전문관·극장·공연시설 등이 생긴다. 연면적만 46만㎡(13만9000평)에 이르는 초대형 시설이다.

신세계그룹의 첫 복합쇼핑몰 론칭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신세계그룹의 한 관계자는 “정용진 부회장은 백화점→대형마트→아웃렛→창고형매장으로 이어진 한국 유통업계의 차세대 동력을 복합쇼핑몰로 보고 있다”면서 “하남유니온스퀘어는 정 부회장의 비전을 엿볼 수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격인 쇼핑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신세계그룹의 쇼핑몰 법인인 신세계프라퍼티는 앞으로 하남 외에 인천·대전·안성·고양 등에 약 10여 개의 교외형 복합쇼핑몰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과 대구점 역시 일부는 복합쇼핑몰적인 기능을 띄게 될 전망이다. 센텀시티는 거대한 규모로 인해 다양한 기능이 불가피하고, 동대구 환승센터에 지어질 대구점은 본래 이마트가 들어설 예정이었으나 지역 상가와 상생을 위해 백화점이 출점했다. 지난해 6월 경기 일산 이마트타운 내에 오픈해 관심을 모았던 키덜트 가전전문점 ‘일렉트로마트’는 올해 3월 부산 센텀시티 B관에 2호점, 4월 이마트 영등포점에 3호점이 개설된다. 일렉트로마트는 일렉트로맨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워 키덜트족에게 어필할 수 있는 드론·피규어·액션카메라 등의 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가전 매장이다.

일산의 이마트타운은 오픈 당시 이마트의 고급 간편 가정식(HMR) 피코크와 먹거리를 다루는 ‘피코크 키친’, 키덜트 가전전문점 ‘일렉트로마트’, 정용진판 이케아라 불리는 생활용품점 ‘더라이프’ 등이 입점해 눈길을 끌었다. 이마트타운이라는 이름은 이마트의 모든 것이 모여 있다는 뜻으로 정 부회장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한 신세계DF도 오는 5월 서울 회현동 신세계 본점 신관에 매장을 연다. 지난해 7월 신규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자 선정에서 고배를 마신 뒤 4개월간의 와신상담 기간을 거쳐 결국 워커힐면세점의 사업권을 낚아챘다. 2월 현재 신관 내부에서 공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신세계면세점은 지난해 12월 운영 중이던 김해공항점 사업권을 반납해 ‘먹튀논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게 됐다. 성영목 신세계조선호텔 사장은 “내년 3월 확장 이전하는 부산 시내면세점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사업권을 반납했다”고 밝힌바 있다. 하지만 면세점 업계에서는 신세계가 기존에 롯데가 운영하던 김해공항 면세점에 과도한 임대료로 낙찰을 받은 뒤, 영업 적자가 심해지자 철수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해공항 면세점은 현재 새 사업자 선정 절차가 진행 중이다.

외부에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정 부회장은 최근 1~2년간 거의 모든 사내 강연에서 신세계그룹의 경쟁상대로 소셜커머스 1위 업체 쿠팡을 꼽아왔다. 쿠팡은 최저가로 물건을 공급하는 것은 물론, 자체 배송 인력 쿠팡맨을 활용한 무료 배송 서비스 ‘쿠팡맨’을 이용해 물류 업계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오프라인 유통망에서는 단연 국내 톱 규모와 역량을 자랑하지만, 신세계그룹 역시 온라인·모바일 시장에서는 갈증을 크게 느낀다. 이유는 오프라인 유통망은 현상 유지 또는 매출감소하는 실정이고, 온라인 채널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대형마트·수퍼마켓·편의점 등 오프라인 4대 주요 유통채널은 정체중이다. 2013년 120조원대를 넘어선 이후 120조원대에 머물러 있다. 백화점 업계의 지난해 판매액은 2014년 29조3220억보다 적은 28조원대로 추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각 백화점들이 아웃렛 등 부가 사업의 수익까지 합쳐서 플러스 결과를 내놓고는 있지만, 정작 기존(확장분 제외) 백화점 매장만 놓고 본다면 확실한 마이너스”라고 전했다. 대형마트의 판매 액도 2014년(47조4740억원)과 대동소이한 수준(47조 5000억원)이 될 전망이다. 지난해 마트 3사의 매장이 10곳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세다. 기업형 수퍼마켓은 소폭 증가했고, 편의점은 판매액이 연 8~9%씩 늘지만 아직은 시장규모(15조원)가 크지 않다.

“신세계 경쟁 상대는 롯데가 아니라 쿠팡”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한 신세계DF도 오는 5월 서울 회현동 신세계 본점 신관에 매장을 연다.
반면에 온라인 쇼핑은 급격히 성장했다. 지난 2010년 25조2030억원이던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지난해 54조원에 달했다. 소셜커머스만 치더라도 2011년 7900억원이던 시장이 2014년에는 5조5000억원을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는 약 8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 부회장은 “경기가 어렵고 온라인쇼핑이 대폭 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프라인 대형 매장들은 여전히 쇼핑·레저의 중요한 축이고 소비자를 이끄는 플래그십 스토어”라고 말했다. 쿠팡 등 신규 온라인 채널의 급격한 확장에 위축되는 것보다는 신세계그룹이 더 적극적으로 투자해 대응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온라인과 T커머스, 물류센터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계속한다. 온라인으로 소비의 축이 급속히 바뀌는 와중에서 투자를 소홀히 할 경우 유통 리더의 입지를 완전히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마트는 가격과 당일배송 두 가지를 축으로 비상하는 쿠팡의 양 날개를 꺾으려 하고 있다. 가격 경쟁은 기저귀 등 육아용품이 메인 타깃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이제는 본격적인 가격 경쟁을 해야하겠다는 것이 경영진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쿠팡=최저가라는 공식이 깨졌다는 환경적 변화도 한 몫했다. 소셜커머스가 더 빠른 운송을 위해 비용을 쏟아붓다보니 정작 온라인몰이나 대형마트에 비해 그리 저렴하지 않게 된 상황이다.

이마트는 또 온라인 배송분야에서 ‘신선식품 당일 배송’을 추진한다. 가공식품과 생필품 위주로 익일 배송하는 쿠팡의 ‘로켓배송’을 정조준한 전략이다. 이마트는 경기 용인에 있는 보정 온라인전용 물류센터를 통해 양재~동탄 지역 온라인 주문의 70%를 당일 배달하고 있다. 다음달에는 1500억원을 들여 경기 김포도 온라인물류전용센터를 정식 오픈한다. 이마트가 강점이 있는 ‘신선식품’ 카테고리에 당일배송 시스템을 접목하는 방식이다. 오는 2020년까지 온라인 물류센터 6곳을 열어 서울과 경기 전 지역에서 당일 배송을 실현하겠다는 포부다. 신세계그룹의 통합 온라인몰인 ‘SSG닷컴’도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 있다. SSG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쓱’이라는 말을 활용해 만든 TV CF가 인기를 끌었고, 지난해 7월 출시한 SSG페이도 앱 설치자 120만명을 돌파했다. 데이터통신만으로 방송되는 ‘T커머스’(신세계쇼핑)도 꾸준히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국내 1위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64) 회장과 ‘한류 먹거리’ 발굴에도 나선다. 정 부회장과 이 회장은 경복고 선후배로 본래 사이가 돈독했다. 이 회장은 이마트의 대표이사인 김해성(58) 부회장과도 친분이 깊다.


▎경기 하남시 신장동 하남지역사업 2지구 내 11만8000㎡ (약 3만6000평) 부지에 신세계백화점· 이마트트레이더스· 패션전문관·극장· 공연시설 등이 생긴다. 연면적만 46만㎡ (13만9000평)에 이르는 초대형 시설이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 회동을 하게 되면서다. 식음료 사업으로 분야를 확장하고자 하는 이 회장의 제의로 두 사람은 SM엔터테인먼트의 한류 콘텐트와 이마트의 식음료·유통·관광 분야 인프라·개발 역량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내기로 했다. 이에 양사는 ‘엑소 라면’ 등의 콜라보레이션 먹거리를 개발하기로 했다. SM은 ‘슈퍼주니어 너츠’ ‘엑소 찹쌀김스낵’ ‘슈퍼주니어 잼’ 등 기존에 출시한 먹거리에 추가해 이마트와 협업한 식품을 이르면 3월 초 서울 삼성동 SM 본사 지하 1층에 오픈하는 ‘한류 편의점’ SUM마켓에서 판매할 전망이다. SUM은 S와 M 사이에 U(You)가 들어있는 합성어로, ‘너와 함께 SM’이라는 뜻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세부 제품군에 대해서는 협의가 진행 중이지만, 두 회사가 합작해 먹거리를 낸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전했다. 다만 이마트는 합작하는 한류 먹거리에 ‘피코크’ 브랜드를 명기할지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신세계백화점과 SM엔터테인먼트의 합작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신세계백화점 문성현 팀장은 “SM의 기념품샵 SUM이 롯데 영플라자에 입점해 있고, SM 소속 연예인들이 다수 롯데백화점 광고모델을 했는데 신세계백화점과 협업이 쉽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비전 2023’의 일환...후계구도는 ‘아직’

올해 대규모 투자는 정용진 부회장이 지난 2014년 1월 7일 발표한 ‘비전 2023’의 일환이다. 당시 정 부회장은 앞으로 10년을 준비하고 미래 성장동력의 밑그림을 그리겠다며 비전 2023을 발표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총 10년간 투자 31조원, 총 고용 17만명(이 중 신세계 그룹 정규직은 8만명, 나머지는 협력사원)을 실현하겠다는 포부였다.

만 2년이 지난 지금 정 부회장의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2014~16년 누적 투자금액은 총 9조4000억원(예정)으로 약속했던 31조원의 3분의1을 넘겼다. 2016년까지 예정된 누적 신규 채용도 4만2400명(연간 1만4100명)으로, 당초 약속한 연간 1만7000명 신규 채용보다는 적지만 경기 침체를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것이 유통업계의 평가다. 임직원수는 2010년말 1만8610명에서 지난해 9월말 4만901명으로 119.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처음 진행했던 중소 협력사와의 상생채용박람회도 확대 진행한다. 신세계그룹 측은 “지난해 상생채용박람회가 중소 협력사 구직자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분석됐다”면서 “올해는 서울 외에도 부산, 대구 등에서 총 3차례 상생채용박람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정 부회장의 혁신 외에 관심이 쏠려있는 분야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후계구도다. 여동생 정유경 총괄사장의 면세점 사업 등 관장을 두고, 벌써부터 ‘정용진=이마트, 정유경=백화점·면세점’ 식의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 들어 신세계그룹 전략실이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으로 분리돼 일부 부서가 이마트로 옮겨가면서 여러가지 ‘설’이 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신세계그룹 측은 “오너인 이명희 회장이 건재한데 후계구도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조차 없다”는 입장이다.

- 이현택 기자

201603호 (20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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