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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의 CEO를 위한 창조적 삶 (2) 손지애 전 아리랑TV 사장 

영어에 승부를 걸었던 도박이 통했다 

배영대 문화 선임기자
운명은 바람처럼 다가온다. 국내의 작은 영어잡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여성 최초의 아리랑 TV 대표에 이르기까지. 동양인 최초의 CNN 서울지국장을 지내기도 했던 손지애(52)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를 만나 숨은 노력과 도전의 스토리들을 들어봤다.

▎동양인 최초의 CNN 서울지국장을 지내기도 했던 손지애 씨.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 손지애. CNN. 서울』이란 책을 펴냈다. / 김영사 제공
뉴욕타임스 서울기자→CNN서울지국장→서울G20 준비위원회 대변인→청와대 해외홍보비서관→아리랑TV(국제방송교류재단) 대표. 그러고 보면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30년이다. 아리랑TV 대표를 그만둔 2014년 중반부터 1년간은 미국캘리포니아 남가주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방문학자로 ‘30년 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거기서도 멈춤은 없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손지애. CNN. 서울』이란 책을 들고 돌아왔다. 책 속에는 끝없는 도전으로 존경받는 멘토의 자리에 선 그녀의 노력과 도전의 과정이 솔직하게 담겨있다.

김일성 사망 보도 인연이 CNN 서울지국장으로

1985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직후 손 씨가 택한 첫 직업은 국내의 작은 영어잡지사 기자였다. 뭔가 일이 잘 풀리는 인생을 보면 시대의 흐름이 운명의 순풍처럼 작용하는 듯하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영어로 기사를 쓰는 일은 대단히 알아주는 직업은 아니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외국의 관심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기 시작했다. 88 서울올림픽이 계기였다. 세계가 한국에 주목했다. 국제 언론사들이 한국에서의 활동을 넓히며 한국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손씨 역시 적극적으로 국제 언론사에 노크를 했고, 그러던 어느날 희망 1순위였던 뉴욕타임스에서 같이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 “영어에 승부를 건 도박이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국가적 비상상황이 개인의 운명엔 역설적으로 순풍 역할도 한다. 무더웠던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의 갑작스런 사망. 전 세계의 관심이 한반도에 집중된 순간, 미국의 보도채널 CNN에는 이 소식을 서울에서 타전할 기자가 없었다. 뉴욕타임스 서울주재기자인 그에게 CNN 본사에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서울 상황을 생방송으로 전해줄 수 있는지 물었고, 그는 잠시 망설이다 수락했다. 김일성 사망과 서울 상황에 대해선 이미 머릿속에 정리돼 있었고, 단파방송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에서 프리랜서로 일한 경험도 있었다. 첫 생방송이 나가고 몇 시간 후 CNN 애틀랜타 본부에서 다시 그를 찾는 전화가 왔다. 당시만 해도 방송기자는 신문기자에 비해 권위가 떨어지는 직업이었다. 전통 깊은 뉴욕타임스에서 볼 때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방송의 미래를 예감하고 그는 새로운 길찾기에 나섰다. 초등학교 시절 공무원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가서 5년간 살며 배운 영어는 그에게 ‘황금열쇠’였다. 영어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진로탐색의 기준도 영어실력 활용이었다. 영어잘하는 비결에 대해 그는 “외국어는 평생을 활용해야 하는 소통수단이므로 자기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과 접목할 방법을 찾는 게 최선이다. TV 드라마, 스포츠, 인터넷게임, 여행, 음악 등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했다. 그를 만나 나눈 대화는 CNN으로 옮길 무렵부터 시작해 국제 언론의 보도 경향에 대한 이야기로 확대됐다.

책 제목인『손지애. CNN. 서울』은 CNN 뉴스 보도할 때의 마지막 멘트인데, 손지애라는 사람을 세계적으로 알린 계기였군요. 94년 김일성 사망이라는 국가적 비상상황이 손지애 개인에게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네요.

영어에 승부를 건 도박의 수확이 가장 컸던 날이죠. 그전에 했던 일은 모두 그날을 위한 준비라고도 할 수 있어요.

국제 언론의 한국 관련 보도는 북한발 위기가 많은데, 한국의 뉴스밸류 기준은 뭔가요?

한국 뉴스의 밸류는 북한을 빼면 굉장히 낮아져요. 북한이 잠잠해지면 특파원 수가 줄어들정도죠. 전 세계에 북한 같은 나라가 없어요. 잊어버릴 때쯤 되면 뭐가 또 일어나고. 북한이 참 외국인 기준으로 보면 특이한 나라이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나라죠. 또 우리나라처럼 군사적인 대치상황에서 경제가 발전한 나라가 없죠. 그래서 북한 발 한국 위기의 뉴스가치가 커지는 겁니다.

통일 전 독일도 그런 상황이었는데.

동독은 핵무기 개발하고 그러지 않았잖아요. 한국은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도 하고, 이산가족 휴먼스토리도 있고, 북한에서 수많은 사람이 굶어죽기도 하고, 또 남북한이 화해한다고 하고. 외국에서 볼 때는 북한이 참 특이하고 관심이 가는 나라예요.

기자에게도 조국은 있죠. 국제 언론에서 일하는 한국출신 기자들은 어느 나라 입장을 반영하나요?

CNN의 경우 미국 언론이니까 미국 시청자를 생각해야 해요. 사실이나 객관성에서는 미국 사람보다 더 경계해야 해요. 그러면서 한국인이니까 한국 뉴스를 더 상세하게 알려주길 원해요. 그러다가 상세하게 하기위해 한국 쪽에 좀 치우쳤다 하면 그건 또 안 된다고 해요.

북한발 한국 위기 때마다 바빠지는 외신


▎손 씨는 아리랑국제방송 대표 시절에는 젊은이들에게 글로벌인재가 되기 위해 영어공부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중앙포토
미국의 관심을 반영한 기사의 예를 들면.

예컨대 핵무장은 안 된다는 거죠. 또 김정일 시대를 예를 들면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났다하는 이상한 리더십의 모습에 대한 호기심에 부응하는 것도 있고요.

한·일관계 보도는 어때요.

한·일 관계는 조금 달라요. 미국은 한국과 일본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니까. 그리고 일본에 별도의 지국이 있잖아요. 예컨대 독도문제를 다룰 때 제 기사에서는 독도라고 하지만, 일본특파원은 다케시마라고 하는 식이죠.

그럴 경우 본사에서 취사 선택을 할 때는 어떻게 하죠.

한·일간 긴장관계를 본사에서도 알기 때문에 신경을 써요. 일본해(Sea of Japan)냐 동해(East Sea)냐 표기 문제와 관련해서도 본사에서 고생을 해봐서 균형을 잘 잡으려고 하는 편이에요.(웃음)

북한 뉴스가 한국의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텐데, 청와대비서관이나 아리랑TV 대표를 맡으며 그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외국 언론에서 한국은 어쩌다 다뤄집니다. 평상시 인맥을 잘 유지해서 무슨 일이 터졌을 때 바로 신뢰 관계 속에 한국에 대한 지식을 정확하게 얘기해줄 수 있어야 그들 언론에 정확히 반영돼요. 서울주재 특파원이 대개 한 명인데, 북한이 주 업무이긴 하지만 예컨대 안숙선 명창 취재, 황우석 줄기세포 취재, 삼성 신제품 출시 취재 등도 혼자서 다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특파원들이 물어보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죠.

기자, 청와대비서관, 방송사 사장 등을 지냈는데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직종은?

엄마요.

엄마 일을 잘할 수 없었을 텐데요.

그래도 남는 게 엄마인 것 같아요. 청와대비서관은 정권이 바뀌면 사람이 바뀌고, CNN도 제 뒤에 다른 사람이 특파원 하면 그만이고, G20도 지금은 사람들이 기억도 못하고, 아리랑TV도 제 뒤로는 조금 그렇고.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끝까지 남거든요. 제가 가진 생각이나 그런 것이 고스란히 담긴….

세 딸의 엄마시죠. 딸들도 영어 잘하나요.

큰 딸은 잘해요. 대학원 석사논문을 쓰고 있어요. 외국여행은 가봤지만 어려서 미국에 오래 가본 적은 없어요.

어려서 영어교육을 어떻게 시켰나요.

거의 안 시켰어요. 원더랜드 다니다가 거기서 스펠링 가르쳐줄 때 싫다고 해서 그만뒀고, 중학교 때 영어 학원 다닌 정도예요.

남편도 외신기자 출신의 대학교수인데, 영어 잘하는 부모의 유전자가 전해진 걸까요. 영어비디오 같은 것은 활용 안했나요.

어렸을 때 많이 틀어줬죠. 인어공주도 수십 번 보고, 책도 많이 보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집에서 영어 거의 안 씁니다.

방법 몇 가지만 나열해 주세요.

우선 영어를 어렵다고 생각하게 한 적이 없어요. 미국 드라마, 미국 팝송, 랩 있잖아요. 제가 시킨 것은 아닌데, 큰애를 보면 노래가사를 프린트해서 외우더라고요. 미국 드라마 볼 때 TV 밑에 포스트잇을 붙여요. 자막을 안 보려고. 자막 보려면 떼어서 보고 다시 붙이고 그랬어요.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 됐으면


딸들이 어떤 인생을 살면 좋겠어요.

선한 인생.

밖에 일 안하고 집안에서 좀 편히 살기를 바라지 않나요.

세 딸이 다 다른데, 무엇을 하며 살든 간에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하거나 세상을 좀 더 낫게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여성으로서 성공적인 사회생활이 쉽지 않았을텐데.

정신없이 하루하루 바쁘게 산 적이 많았어요. 세 아이를 다 모유로 키웠는데, 제가 아내로서 할 일은 다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2000년 무렵 어느날, 청와대 본관의 여자화장실 한쪽 칸에 앉아 모유를 짜기도 했어요. 모유를 짜서 냉장 주머니에 넣어놓지 않으면 다음날 아이가 굶거든요. 2002년 대통령 선거 전날 시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빈소를 지키다 나와서 방송 리포트하고 다시 빈소에 가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내 일을 소홀히 했으면 ‘너는 바깥일만 하냐’고 했을 텐데, 그런 소리 안 나오게 하고 싶었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대통령이 당선되며 외신의 관심이 컸었는데,

그 때 외신은 노무현대통령 당선을 레프트(좌파) 등장으로 바라보았죠. 한·미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에 따라 북한과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노무현대통령 당선은 관심이 높은 뉴스였습니다.

5년이 지나고 나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보도경향은 어땠나요.

당선 초기에 생각했던 것보다 실제 정책이 나올 때는 김대중대통령 정책의 연속선상에 있었기에 북한에 대한 정책은 생각보다 그렇게 큰 차이나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보다 미선이효순이 사건 때문에 시끄러웠죠.

미선이효순이 사건을 미국인들은 어떻게 보았나요.

어쨌든 간에 두 소녀가 죽은 사건이잖아요,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거죠. 그러나 너무나 크게 확대된 것은 이상하게 생각하죠. 이명박정부 때 광우병쇠고기 파동도 마찬가지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 왜 그렇게 됐을까 이해가 안가는 거죠.

외신기자로서의 자신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한국인이란 것. 외국 사람이 한국 상황을 파악하는 속도와 한국 사람이 파악하는 속도가 차이 나죠. CNN같이 속도전을 하는 방송에선 더 그래요. 한국의 생방송을 보면서 CNN 생방송을 한 적도 있어요.

약점은?

그것도 한국인이란 것. CNN은 외국인의 경우 매년 재계약을 해요. 재계약할 때 ‘당신의 기사는 정확하고 사실에 근거한 것은 좋다. 그러나 외국 사람이 당신처럼 한국 상황을 아는 것처럼 전제하고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하곤 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황우석 보도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김일성 사망 보도겠죠.

그렇기도 한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황우석 박사 보도예요. 그렇게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했던 기사는 없었던 것 같아요. 한 없이 올라갔다가 금방 땅으로 떨어지는.

각종 음모론이 나돌았죠.

제가 황우석 관련 기사를 쓰던 초기부터 CNN 본사의 의학PD나 기자는 황우석 박사를 의심하는 목소리를 냈어요. 저는 한국에서 황우석이나 주변 사람을 인터뷰하다 보니, CNN 본사 사람들과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티격태격했어요.

황우석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CNN 본사에선 황우석의 성과를 의심했다는 겁니까.

네. 본사의 의학PD, 기자와 제가 건강한 긴장관계였다고 할까요. 제가 그들을 반박하기 위해 더 열심히 취재하고 다녔는데,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아요.

기자생활 중 후회되는 일은?

CNN을 좀 더 일찍 떠나고 싶었어요. 북한기사가 많다보니 같은 말이 되풀이되고 특별히 나아지지도 않는 거예요. CNN 생활 12년이 지나면서부터 그랬어요. 그때부터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사과정 시작하고, 이화여대 강의도 시작하고 그랬어요. 보완을 하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계속 있었으니까 그 이후의 일이 전개됐겠죠.(웃음)

한국 언론과 미국 언론을 경험에 비춰 비교해본다면.

어려운 질문이에요. 사회적 역할이 좀 다른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정보제공이라는 역할보다는 선도, 교육, 뭔가를 좀 더 낫게 하고 고치는 기능이 언론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역사적으로 그랬으니까. 미국에서는 철저히 사실보도, 정보전달이 출발이었어요. 사실을 조금 틀리게 얘기하면 그 언론사의 생명이 죽는 걸로 생각하죠. 한국은 잘못된 길로 인도했다면 비판을 받고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제 자리를 잡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미디어정책 관련 일을 하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내 인생에서 영어란?

황금열쇠. 제가 젊은이들 대상으로 특강할 때 하는 말이 있어요. 영어는 평생 가는 황금열쇠이고, 누구든 그 열쇠를 쥐고 있어야 원하는 문을 연다. 그리고 독서는 마법의 양탄자다. 가고자하는 모든 곳에 데려다 준다. 이 두 가지를 잊지 말라고 해요.

배영대 - 2014~15년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문화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서강대에서 동양철학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604호 (201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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