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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열 LS 회장 

한 달에 지구 반 바퀴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최근 한 달 동안 2만1000㎞를 비행기로 날며 글로벌 현장경영에 집중했다. 정체된 그룹 매출을 해외시장에서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해외 수주 소식도 연이어 들린다.

▎재계에선 “구자열 회장은 소탈한 성격과 저돌적인 추진력을 갖추었다”고 평가한다. / LS그룹 제공
‘한 달 사이에 지구 반 바퀴 비행’. 최근 구자열(63) LS그룹 회장의 글로벌 현장경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구 회장은 4월 초부터 5월 초까지 일본·독일·이란 등 3개국을 횡단하며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났다. 도시 간 직선거리만 2만1000㎞. 실제 비행거리는 지구 한 바퀴(약 4만㎞)의 절반이 넘는 거리다. 글로벌 경기침체 극복의 해답을 해외시장에서 찾겠다는 전략을 몸소 실천한 것.

4월 초 일본 방문 길엔 LS니꼬동제련 공동 출자사인 JX니폰 마이닝&메탈의 오오이 사장 등과 만나 협력 관계를 다지는 한편, 향후 동광석 등 원료 구매의 시너지 창출 방안을 협의했다. 이어 미쓰비시자동차, 후루카와전기 본사, 히타치금속 등을 차례로 찾아 자동차용 전장부품, 전선 분야에서 기술적·사업적 협력 범위 확장을 논의했다. 일본 방문 이후 잠시 귀국했던 구 회장은 4월 말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산업 분야 세계 최대 규모 전시회 ‘메세’를 찾았다. 특히 그는 운동화를 신은 채 LS산전을 비롯해 지멘스·슈나이더·미쓰비시 등의 전시관을 방문하는 열정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독일 일정을 마친 후 곧바로 경제사절단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이란행 비행기를 탔다. 지난 2월 이란을 방문한 데 이어 세 달 만에 다시 찾은 것이다. 구 회장은 현장에서 “전력·통신 인프라와 전력기기시스템·트랙터·사출기 등 우리가 가진 기술적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이란에서 일어날 본격적인 수주에 대비해 결제 방식이나 현지 네트워크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경영에서 성장 해법 찾아


지구 반 바퀴 현장경영의 핵심은 지속되는 경기 침체를 탈출할 해법 모색이다. 구 회장은 평소 “국내 사업 중심으로는 장기 성장에 한계가 있기에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해외에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발굴해야 한다”며 “인력·제품·서비스, 그리고 사업전략에서도 경쟁력을 글로벌 선도기업의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려 변화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글로벌 현장경영의 성과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LS전선은 올해 초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약 1억 달러 규모의 해저케이블을, 덴마크에서는 5500만 달러 규모의 초고압 전력케이블을 수주했다. 지난해 5월 이라크에서 가스절연개폐장치(GIS) 변전소 프로젝트를 1억4700만 달러에 수주했던 LS산전 역시 올해 113억엔 규모의 일본 태양광 발전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해외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이 덕분에 2012년 최대치를 기록한 후 하락세였던 그룹의 매출은 최근 반전 분위기다. LS전선은 1분기에 매출 8086억원, 영업이익 287억원을 냈다. 지난해 1분기보다 매출은 17%가량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18% 늘어 수익성이 개선됐다. LS산전도 1분기에 매출 5008억원, 영업이익 349억원을 내면서 지난해 1분기보다 영업이익이 두 배로 늘었다. 농기계인 트랙터 사업과 자동차 부품사업을 기반으로 실적이 상승하고 있는 LS엠트론은 1분기에 매출 5440억원, 영업이익 410억원을 내며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15%, 160% 늘었다.

2008년 북미 최대 전선회사 수페리어에식스(SPSX)를 인수한 후 수년 동안 적자를 보였던 LS아이앤디도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160억원에서 올해 -7억원으로 줄면서 턴어라운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밝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LS의 주력 자회사들이 지난해보다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력시장이 아닌 비주력시장에서 수주에 성공하고 있어 올해 수주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용기 현대증권 연구원은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확보하면서 올해 LS그룹의 지주회사 LS는 영업이익을 지난해보다 73%가량 늘린 4730억원을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 흐름 미리 읽고 선제적 투자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4월 26일(현지시각) 독일 하노버 메세를 참관하며 지멘스 부스를 방문해 통합전력관리 및 통합자동화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
LS의 실적 반등에 대해 업계에서는 “시장의 흐름을 빠르고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한 구 회장의 리더십이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해저케이블·초고압전력케이블 시장이 열릴 것을 예상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한 것, 유럽 기업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수페리어에식스를 인수한 것 등을 말한다. 당시엔 시장에서 말들이 많았지만 그 선택과 집중의 결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LG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구 회장은 1980년 LG상사 뉴욕지사를 시작으로 동남아 지역 본부장, LG투자증권 국제부문 총괄임원 등을 역임했다. 젊은 시절부터 글로벌 마인드를 기를 수 있었던 배경이다. 2004년 LS전선 부회장, 2008년 LS전선·LS엠트론·LS니꼬동제련 회장을 거친 그는 2013년 LS그룹 회장에 올랐다. LS전선 CEO 시절엔 중국·인도·말레이시아·베트남 등에 진출해 생산법인을 설립했고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에도 판매법인을 세워 시장을 적극 공략했다. 구 회장의 이 같은 공격적인 경영은 LS전선이 글로벌 톱3 종합 전선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2008년 슈페리어에식스 인수와 2009년 해저케이블 제작시설 구축은 구 회장이 발휘한 ‘선제적 투자’의 백미다. 2008년 당시 국내 전선 시장은 LS전선과 대한전선이 양분하고 있었다. 포화상태인 국내 시장에 벗어나 중국·베트남·인도에 진출한 LS전선은 유럽시장 상륙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프리즈미안, 넥상스 등 글로벌 기업이 선점해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당시 LS전선을 이끌던 구 회장은 ‘우회로’를 택했다. 유럽 곳곳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던 북미 최대 전선회사이자 세계 1위 권선(변압기 등의 전자장치에 감는 피복 절연전선) 업체였던 수페리어에식스(SPSX)를 1조2000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공정을 바꾸면 경쟁력이 있겠다 싶었다. LS전선은 세계 전선업계 10위에서 단숨에 3위에 오르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인수 비용은 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게다가 유럽의 초고압케이블 시장이 움츠러들면서 매출도 기대를 밑돌았다. 구 회장은 지난해까지 구조조정을 ‘쎄게’ 진행했다. 불필요한 사업영역은 팔거나 포기하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만 집중한 것이다. 그 결과 수페리어에식스의 모기업인 LS아이앤디의 매출은 올해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1분기 성적이 흑자는 아니지만 적자 폭을 상당히 많이 줄여 올해 턴어라운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6대 육성사업으로 그룹 역량 집중


▎LS전선 동해사업장 엔지니어들이 카타르 석유공사에 납품할 해저케이블 완제품을 살피고 있다.
2009년 구 회장이 강원도 동해시에 해저케이블 생산 설비시설을 지었을 때도 시장에선 코웃음을 쳤다. 단 한 건의 수주도 없이 공장 먼저 짓고 나섰기 때문이다. 바다 속 땅 위에 까는 광케이블과 달리 해저케이블은 바닷속 땅에 매설하는 고급 기술이라 기존 사업성과가 없으면 진입할 수 없는 시장으로 여겼던 시대였다. 이 시장 역시 프리즈미안과 넥상스가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 회장은 7만5000평 규모의 공장을 완공해 먼저 일반 케이블을 생산했다. 2년 후 한국전력에서 제주~진도 간 설치된 넥상스의 해저케이블 교체 공사를 진행했고, 이는 LS전선의 첫 해저케이블 프로젝트가 됐다.

당시 해저케이블 공사에 ‘초보’라서 예상보다 많은 비용을 지출하면서 2012년 LS전선은 사상 첫 적자를 냈다. 하지만 선도적 투자는 최근 빛을 보고 있다. 올 들어 미국과 캐나다에서 1억 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주한 것. 그룹 관계자는 “미국과 캐나다의 해저케이블이 교체 시기가 도래하면서 그렇잖아도 고부가가치인 해저케이블의 부가가치가 훨씬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구 회장이 ‘시장의 흐름을 먼저 읽고 방향타를 잡은 것’이 성공하고 있다는 말이다.

지난해 9월 구 회장은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졌다. LS그룹의 미래를 이끌 6대 핵심 육성사업을 발표한 것이다. 6대 핵심 육성산업은 초고압케이블·해저케이블·전력기기·전력시스템·트랙터·전자부품 사업이다. 구 회장은 “6대 핵심 육성사업도 기술경쟁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단순히 따라가는 R&D가 아니라 스피드 업을 통해 가치 창출을 리드하는 역할을 해 달라”고 임직원들에게 주문했다.

LS그룹은 향후 사업 범위를 확장하기보다는 주력 산업에 그룹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LS엠트론이 6대 육성사업 중 하나인 트랙터에 주력하기 위해 자동차 전장부품 계열사인 대성전기공업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박스기사] LS그룹의 특징은 ‘사촌경영’ - 사촌 형제간 바통 체인지


LS그룹은 고 구인회 LG 창업자의 넷째 동생인 고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과 다섯째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 여섯째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이 지난 2003년 LG그룹으로부터 분가하며 탄생했다. 산업용 전기, 전자 및 소재, 에너지 분야에 전념하고 있는데 지난해 말 기준 재계 13위다. LS전선·LS산전·LS니꼬동제련·LS엠트론·가온전선·E1·예스코 등이 주요 계열사다.

LS그룹은 ‘사촌경영’으로 유명하다. 고 구태회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홍 전 회장은 회장직을 맡은 지 10년 만인 2012년 사촌동생인 구자열 현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구자열 회장은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현재 LS는 구자열 회장 등 2세들이 주력 계열사 회장직을 맡고 있다. 구자용 LS네트웍스 회장, 구자균 LS산전 회장이 구자열 회장의 친동생이고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자은 LS엠트론 부회장은 사촌지간이다. 구본규 LS산전 전무, 구본혁 LS니코동제련 전무 등 4명의 3세들도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LS 일가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사촌 7명이 참여하는 ‘7인회’다. 원래 8인회였는데 2014년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이 별세하면서 자연스럽게 7인회가 됐다. 이들은 매달 첫째 주 금요일에 모여서 주요 경영 현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607호 (201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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