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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업가정신을 찾아서 (5) 대산 신용호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바꾼 퍼스트 무버 

포브스코리아 특별취재팀·자료 협조 한국경영사학회, 교보생명, (사)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
포브스코리아가 한국경영사학회(회장 차동옥)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찾아서’의 다섯 번째는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는 보험업계의 퍼스트 무버로서 그의 기업가 정신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올해 8월은 대산의 탄생 99년이자 교보생명의 창사 58년이기도 하다. 교보생명은 포브스코리아의 이번 기획과 관련해 대산의 기업가정신과 관련한 자료를 제공해 도왔다.

▎대산 신용호는 한국 보험업계에 큰 획을 그은 퍼스트 무버이자 인간적으로는 개인에게 닥친 고난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이겨낸 승리자이기도 했다.
서울 도심의 한복판, 종로1가 1번지에는 23층 교보생명 본사 건물이 우뚝 서 있다. 빌딩의 외벽에 펼쳐진 일상의 삶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가로 20미터, 세로 8미터의 대형 글판이 눈에 쏙 들어온다. ‘구부러진 길이 좋다. 들꽃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는 싯귀다. 이준관 시인의 ‘구부러진 길’이라는 그 싯귀가 앞만 보고 가지 말고 쉬어가라며 지나가는 이의 마음을 붙잡는다. 교보생명은 1991년부터 광화문글판을 달기 시작했다. 이제는 광화문 광장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광화문글판이 될 정도로 세월과 함께 광화문을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

교보생명 글판을 뒤로 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면 빌딩의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나온다. 하루 평균 4만 명이 방문한다는 교보문고다. 넒은 매장 안에 들어서면 길이 11.5미터의 대형 나무책상 두 개를 가득 채우고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는 남녀노소 책벌레들의 모습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교보문고는 숨막히는 도심의 번잡함에서 해방되는 소도(蘇塗)와도 같다. 대한민국이 다 아는 교보생명과 교보문고를 만든 창립자가 바로 대산(大山) 신용호(1917~2003) 선생이다. 기업의 이윤추구는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대산의 평생의 신념이 만들어낸 걸작이 바로 교보생명 빌딩과 교보문고다. 대산은 교보문고를 설립하면서 “남녀노소, 부자, 가난한 자 상관없이 그 누구라도 언제든지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을 평생 일념으로 삼았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대산의 명언은 너무도 유명하다. 광화문글판 역시 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대산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대산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기업가였기에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지녔던 것일까.

배움에 대한 열망을 성공의 발판으로


▎2016년 광화문글판 여름편. 광화문 글판은 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대산 신용호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대산 신용호는 한국 보험업계에 큰 획을 그은 퍼스트 무버다. 인간적으로는 개인에게 닥친 고난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이겨낸 승리자이기도 했다. 대산은 한평생을 보험사업으로 일관하면서도 인간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일깨워주는 일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던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였다. 또한 문화경영과 사회공헌의 중요성을 일찍 알고 실천한 창의적 경영자였다. 포브스코리아가 대산을 한국 기업가정신의 표상으로 탐구하는 이유다.


기업가정신은 창의적 도전과 사업보국, 사회적 책임정신을 생명으로 한다. 대산에게서는 특히 도전정신이 돋보인다. 대산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성공의 기반으로 만든 사람이다. 교육보험을 창안하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서점을 차린 대산은 정작 어린시절에는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대산은 1917년 8월 11일 월출산 기슭인 전남 영암의 가난한 집안에서 부친 신예범과 모친 유매순의 여섯자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폐병 등 잦은 병치레 때문에 학교를 가지 못했다가 친구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에 입학하려 했지만 나이가 많고 정원이 다 찼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공부할 기회를 놓친 그는 절망하지 않고 학교에 가지 않고도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간다. 대산은 17세부터 독학을 결심하고 혼자서 ‘1000일 독서’를 작정했다. 그렇게 3년 동안 도서관이나 친구, 하숙생들에게 빌린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말 그대로 수불석권(手不釋卷)이었다. 대산은 책에서 만난 수많은 주인공 중에 특히 헬렌 켈러와 카네기를 존경했다. 그 자신이 건강 때문에 진학이 좌절됐기에 헬렌 켈러를 통해 도전정신을 배우고 되새겼다. 제도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세계 최대 철강회사를 일군 앤드류 카네기는 대산에게 사업가의 꿈을 심어주었다. 대산은 생전에 ‘학력(學歷)’이라는 말보다는 ‘학력(學力)’을 자주 인용했는데, 학교를 다닌 경력이 아니라 배움의 힘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강조한 그 말도 이같은 어린 시절의 환경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성실경영과 자기개발 정신이 핵심적 리더십


▎1958년 8월 7일 개업식 때 비전을 제시하는 교보생명 신용호 창립자. “저는 25년 이내에 세계적인 회사로 만들고, 가장 좋은 땅에 좋은 사옥을 짓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철강왕 카네기 같은 큰 사업가가 되겠다며 1936년 20세의 나이로 만주의 다롄으로 건너간 대산은 그곳에서 이육사를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다렌 중학교에서 시인 이육사에게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동참하면서 그의 꿈은 이제 동포를 구하는 민족자본가로 바뀌게 된다. 그는 24살에 베이징에 ‘북일공사’라는 곡물 회사를 설립, 미곡장사로 독립운동 자금을 대면서 때로는 일제의 추적을 피해 도피생활을 하기도 했다. 대산의 인생에서 국민교육 진흥과 사업보국의 기업가정신이 형성된 시기다.

1946년 5월 귀국한 대산은 해방 후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극심한 혼란을 지켜보면서 국민교육 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임을 절감하게 된다. 특히 6·25전쟁을 겪으면서 굶주린 아이들을 방치하지 않고 가르쳐야만 국가의 미래도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그가 교육보험을 구상하게 된 이유다. 당시 대산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가질 수 있도록 보험이란 제도를 교육에 도입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자녀가 진학하면 보험료를 모두 돌려받는 방법을 통해 어려운 가정에서도 학생들이 진학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보험 구상을 구체화시키게 된다.

대산은 이러한 구상에 따라 1958년 8월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을 설립이념으로 대한교육보험주식회사(교보생명보험의 전신)를 설립한다.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그가 내놓은 교육보험 상품은 1960~70년대 한국인 특유의 교육열과 맞물려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교보생명의 ‘진학보험’은 전쟁 후의 궁핍한 한국 사회에 연간 10만여 명의 입학금과 학자금을 마련하게 해주었다. 교육보험 혜택을 받은 수많은 학생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해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성장했고, 학부모들이 맡긴 보험금은 ‘민족자본’이 되어, 도로, 항만 등 국가 기간산업 구축에 이용됐다. ‘민족자본가가 되라’는 이육사의 바람을 대산이 현실로 이루어낸 것이다.

대산은 이후 1980년 국내 첫 건강보험인 암보험 개발, 보험사 재무건전성 지표인 책임 준비금 최초 적립 등 보험업의 여러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다. 대산은 보험사 경영자로서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1980년대 석유파동으로 인한 경기침체, 20%대의 시중금리가 한자리수로 급격히 낮아져 역마진의 위험에 노출되는 경영환경에서도 줄곧 흑자를 냈다. 인재양성에 주력하면서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한다”는 현장 중심의 경영철학을 임직원과 공유하며 이룬 성과였다. 기업의 성공은 부를 축적하기보다는 사람을 축적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대산은 특히 인재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대산이 1987년에 충남 천안에 세운 계성원(교보생명 연수원)은 대산의 고귀한 뜻이 담겨진 인재 양성의 요람이다. 식당에 있는 놋쇠그릇 하나도 대산이 직원들을 위해 손수 고른 것으로 알려진다.

대산의 이같은 경영성과와 인재양성에 대한 특별한 노력은 오늘의 교보생명이 국내 굴지의 생명보험사로 성장하는 토대가 됐다. 한국 보험업계 발전에 밑거름이 된 것은 물론이다. 대산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3년 세계보험총회에서 ‘보험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 보험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세계보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어 ‘보험의 큰 스승’으로 불리게 됐다.

대산은 창조적이며 개척자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로 인정받아 1996년 6월, 한국경영사학회가 수여하는 한국 최고의 ‘창업대상’을 수상했다. 한국경영사학회 회장을 지낸 김성수 경희대학교 명예교수에 따르면, 당시 대산은 창업대상을 받은 후 “근면, 성실, 인내, 봉사, 희생 및 자기계발 정신이 나의 핵심적 리더십이다. 그 가운데서도 성실경영주의는 오늘의 교보생명을 성장시킨 원동력이 되었다”며 성실경영을 교보생명의 사훈으로 정한 까닭을 심사위원들에게 설명했다. 대산은 아울러 “기업을 하는 목적은 사회적 책임이며, 그것은 기업의 사회봉사 및 사회공헌, 기업의 고객이익 최우선으로 나타난다”고 말해 당시 경영학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창안한 퍼스트 무버


▎1983년 6월 세계보험협회로부터 ‘보험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보험대상’을 수상한 신용호 창립자. 신용호 창립자는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창안하고 세계보험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이 상을 받았다. / 신창재(왼쪽) 교보생명 회장이 세계보험협회 (IIS) 연차총회에 참석해 ‘신용호 세계보험학술대상’을 수여하고 있다.
성실경영으로 교보생명을 탄탄한 반석위에 올려놓은 대산은 2000년, 아들인 신창재(63)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었다. 교보생명은 이후 착실하게 성장해 2004년 금융업계 최초로 5년 연속 ‘고객만족경영대상’을 수상하며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다. 2008년에는 한국보험사 중 유일하게 미국 무디스로부터 A2 등급을, 2013년에는 영국 피치로 부터 한국 생보사 최초로 A+ 등급을 획득했다. 2009년에는 ‘아시아 최고 생명보험사’로, 2012년에는 아시아 최고 보험경영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 7월에는 생명보험업계 최초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생명보험업계를 선도해가고 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세계보험협회(IIS)에서 신용호 창립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신용호 세계보험학술대상’시상을 위해 매년 세계보험협회 연차총회 때 참석하는 등 부친의 기업가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보험업계로 보자면 대산은 교육과 보험이라는 재화를 접목한 최초의 교육보험 창시자이다. 중요한 것은, 대산이 생각하는 경영과 창업의 본질 가치는 이윤창출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대산은 특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발명가적 개척정신’의 소유자였던 그는 오래 전부터 한국 최고의 서점 개설을 준비해왔다. 특히 일본 도쿄 기노쿠니야(紀伊國屋)나 산세이도(三省當) 서점보다 더 크고 좋은 서점을 만들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키워왔다. 대산은 마침내 1980년 광화문 1번지에 교보생명 사옥을 완공하고 1981년 지하 1층에 단일층 면적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교보문고를 개장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금싸라기 같은 땅에 상가를 지어야 하지 않느냐?”는 임직원들의 주장에 대산은 “서울 한복판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점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고집을 꺽지 않았다. “우리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자란 아이들이 사업가가 되고, 선생님이 되고,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나아가 노벨상을 타는 사람이 나오지 말란 법이 있습니까?”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교보서점을 밀어붙였다. ‘책을 통한 교육문화 공간 마련’은 대산이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애국심을 바탕으로 국민교육진흥을 구현하고, 독서인구의 저변확대와 청소년을 위한 문화공간의 창출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대산은 매일같이 교보문고 매장을 돌며 영업직원들이 지켜야 할 5가지 지침을 마련해 실천하도록 했다.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쓸 것, 책을 한 곳에 오래 서서 읽는 것을 절대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책을 이것저것 빼보기만 하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 주지 말 것, 책을 앉아서 노트에 베끼더라도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책을 훔쳐 가더라도 도둑 취급하여 절대 망신주지 말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 좋은 말로 타이를 것. 이 5대 지침은 지금도 교보문고의 운영방침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교보문고 설립이 대산이 기업의 이익을 사회 환원하는 방법으로 강력하게 추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멋을 알고 창의력이 넘쳤던 따뜻한 기업가


▎1994년 6월 세계적인 건축거장 마리오 보타와 서울 강남 교보타워 설계를 의논하고 있는 신용호 창립자. 대산의 의견을 반영해 설계도를 17번 수정했다.
대산은 멋을 알고 감성적이며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런 취향과 성격이 늘 그의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게 만들었다. 대산은 늘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생각은 곧 교보빌딩 주위를 지나는 서울시민 전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겠다는 고귀한 뜻으로 이어졌다. 앞서 살펴보았지만 그 결과가 지금 교보생명 빌딩에 걸려 있는 광화문글판이다. “매사에 따뜻한, 땀내 나는 잔정을 베풀어라. 그럼 (상대방이) 오래 있게 된다.” 대산이 영업대책회의를 할때면 종종 했던 말이라고 한다. 대산은 진정으로 가슴이 따뜻한 기업가였다.

그 자신이 책벌레이자 문학 애호가였던 대산은 우리 문학의 세계화와 문화창달을 위해 또 한번 큰 결심을 한다. 바로 대산문화재단의 설립이다. 대산문화재단은 1993년 대산문학상을 제정한다. 시(시조), 소설, 희곡, 평론, 번역 부문에 걸쳐 총상금이 1억 7천만원으로 문학상 중 가장 큰 액수였다. 대산문화재단은 대산의 타고난 문학적인 감수성 덕분에 출범할 수 있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도 평소 “아버지는 시조나 시 등을 낭송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면서 대산의 타고난 감수성을 언급한 바 있다.

대산은 문학인들을 만나면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을 염원했다. “길이 없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숨막히며/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역사이다…” 대산이 애송했던 시인 고은의 시‘길’이다. 대산의 전기 제목도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이다. 교보문고에는 노벨상을 기다리는 대산의 염원이 담겨 있다. 교보문고의 지하층 출입구에 지금도 노벨상 수상자들의 초상화가 줄줄이 걸려있는 이유다.

대산은 건축에 대한 안목이 뛰어났다. 건축에 관한 한 대산은 양보없는 뚝심과 추진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정부가 ‘광화문 사옥 5개층을 잘라내라’고 지시하자 “나부터 잘라라”라는 편지를 청와대에 보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교보생명 광화문 사옥은 지하 4층 지상 23층으로 완공된다. 대산이 말년에 심혈을 기울여 완공한 교보생명 서초동 사옥(교보타워)은 스위스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건물로 유명하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박물관과 스위스 통합은행 건물 등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다. 하지만 이런 거장도 대산으로부터 무려 17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서초동 사옥의 ‘곰삭은 붉은색’ 타일은 대산이 직접 고른 것으로 알려진다. 눈과 비, 햇빛 등 여러 환경에서도 가장 어울리는 색을 만들기 위해 수백 번의 시험제작을 거쳐 현재의 색깔이 탄생했다. 교보타워에 축구장 넓이 2배에 달하는 교보문고 강남점 개장을 앞둔 2001년, 대산은 암으로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교보문고 강남점 개점을 정말 두 눈으로 꼭 보고 싶었던 대산은 강한 의지로 준공식을 넘긴 2003년 9월 끝내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86세였다.

사회적 책임과 투명경영의 모범보인 선구자


▎대산 신용호는 국민교육진흥이라는 창립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누구나 책을 만날 수 있는 교보문고를 설립했다. 현재 교보문고 안에 들어서면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는 남녀노소 책벌레들의 모습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이처럼 대산이 평생의 삶을 통해 보여준 기업가정신의 핵심은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을 통한 사회적 책임정신이었다. 3개의 공익재단을 통한 공익사업도 교보문고 못지 않은 사회적 책임정신의 실천 사례다. 대산은 농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농업과 농촌의 발전, 인류복지 증진을 목표로 하는 대산농촌재단을 1991년에 세워 농업기술 발전을 지원했다. 또한 교육에 대한 지원사업을 전개하는 교보교육재단도 설립했다. 3개 공익재단을 통한 공익사업은 대산이 세상을 떠난 지금도 교보생명을 대표하는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교보생명의 사회공익적 지원사업은 대산의 유지를 잇는데 그치지 않고 2002년 12월 창단한 ‘교보다솜이 사회봉사단’등으로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문간병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솜이재단’, 은퇴노인을 숲 해설가로 양성해 생태체험교육을 제공하는 ‘숲자라미’등 사회적기업을 통해 교보생명의 전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봉사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공익적 활동을 해온 교보생명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교보생명은 지난 2월 18일 ‘2016 투명경영대상’ 시상식에서 ‘가장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을 펼친 기업’으로 선정돼 대상을 수상했다. 제조업 분야 기업이 아닌 금융업계에서 대상을 받은 것은 교보생명이 처음이었다. 심사위원장으로부터 “교보생명은 CEO의 투명경영 의지를 바탕으로 투명경영 기업문화가 견고하게 뿌리내린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상에는 거저와 비밀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대산의 신조는 이처럼 교보생명의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의 밑거름이 됐다.

광화문 글판들 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희망을 주고 애송됐던 시가 있다. 2012년 봄에 걸렸던 나태주시인의 ‘풀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대산 신용호도 우리 시대의 기업인과 경영자들이 자세히 탐구해보고 오래 연구해봐야 할 기업가다. 내년은 대산 신용호 탄생 100년을 맞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의 우리가 그의 끝없는 도전과 창조의 인생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 포브스코리아 특별취재팀·자료 협조 한국경영사학회, 교보생명, (사)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

201608호 (201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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