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빅테이터와 고도화된 알고리즘을 활용해 프라이빗 뱅커(PB)의
자산 관리를 대신하는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커질 전망이다. 특히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에게 매력적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3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 로보어드바이저가 본격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 구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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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된 지난 6월 24일. 자산운용사가 밀집한 서울 여의도 일대가 출렁였다. 한 펀드매니저는 “브렉시트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처음 소식을 듣는 순간 아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정이 없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는 달랐다. 여느 때처럼 묵묵히 시장 동향을 분석했다. 모니터에도 비상을 알리는 메시지나 신호는 없었다. 이 로보어드바이저가 운용하는 펀드를 관리하는 박제우 키움투자자산운용 ETF팀장은 “(로봇은) 설정한 위험 임계점을 넘어야 자산을 매도하는데 브렉시트 이후에 변화한 지표들이 임계점을 넘지 않아 자산 포트폴리오에 변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6월 말 잠시 마이너스로 떨어지기도 했던 이 펀드의 수익률은 곧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로보어드바이저는 로봇(robot)과 투자전문가(advisor)의 합성어다. 로봇이 빅테이터와 고도화된 알고리즘을 활용해 프라이빗 뱅커(PB)의 자산 관리를 대신하는 것을 말한다.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해 포트폴리오 관리를 한다는 점에서 이전과 차이가 크다. 국내에선 지난해 말부터 회자되기 시작하다 올 3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 본격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한 달 뒤인 4월 로봇이 굴리는 1호 공모펀드가 출시됐다. 중간 성적을 체크해보니 대박도 쪽박도 아닌 중박 수준이다. 키움투자자산운용은 지난 9월 21일 ‘키움쿼터백글로벌로보어드바이저’ 펀드의 전체 설정액이 300억원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10월 12일 현재 누적 수익률은 3%대, 3개월 수익률은 2.24%다. 브렉시트 직후 등 두 차례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7월 이후부터 회복세다. 8월에 처음 3%대로 올라서 9월 8일에는 4.43%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10월 들어서는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빅데이터를 무기로 자산을 최적 비율로 배분로보어드바이저의 가장 큰 무기는 빅데이터다. 사람이다 처리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끊임없이 학습해 자산을 최적 비율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박 팀장은 “자체 알고리즘과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이라 불리는 학습 시스템을 통해 약 2000개가 넘는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을 필터링한다”며 “정기적으로 선정된 최종 약 60~70여 개의 ETF가 자산 배분에 활용된다”고 설명했다.그렇다면 기존에 사람이 운영하던 자산 배분 펀드보다 수익률이 높을까. 지난 9월 펀드평가사 제로인이 유형과 설정액이 비슷한 펀드 8개를 골라 같은 기간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키움쿼터백글로벌로보어드바이저’는 4위를 차지했다. 4.52%를 기록한 ‘피델리티글로벌멀티에셋인컴’보다 낮지만 마이너스 수익률을 낸 ‘삼성퇴직연금POP펀드로테이션’, ‘신한BNPP퇴직연금POP펀드셀렉션’보다는 높았다. 같은 기간 이들 펀드가 속한 해외 채권혼합형, 글로벌 보수적 자산배분 펀드군의 평균 수익률은 0.61%다. 로봇이 낸 수익률(1.85%)이 평균을 웃돌았다.
▎미국의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연평균 68%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에는 2000조원 넘는 돈이 로보어드바이저에 의해 운용될 것이라는 보고서도 나왔다. /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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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은 무난하지만 안정성은 그보다 높다. 고위험·고수익 대신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라면 로보어드바이저 펀드에 가입해볼 만하다. 이현 키움운용 대표는 “이저일고(저금리, 저성장, 고령화)라는 신조어가 생긴 상황에서 중위험 중수익 상품이 각광을 받고 있다”며 “주식과 채권뿐 아니라 실물자산, 리츠, 통화, 헤지펀드까지 투자 대상을 다양화하고 시장을 전 세계로 넓힌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헀다. 자산운용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로봇의 강점이 커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30만 개에 달하는 전 세계 ETF 기초자산을 사람이 전부 분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근본적으로 사람에게 있는 욕심이나 공포가 로봇에겐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감정에 의한 판단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제로라는 의미다.로보어드바이저 펀드의 지상 과제가 ‘변동성 최소화’라는 점 역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에 출시된 로보어드바이저 공모 펀드는 2종류다. 키움이 4월에 첫 상품을 출시한 데 이어 9월 초 2호 상품인 ‘NH-아문디디셈버글로벌로보어드바이저‘가 나왔다. 두 상품 모두 미국과 국내에 상장된 ETF에 재간접 투자를 한다. 키움운용 채권혼합형의 경우 채권 관련 ETF를 전체 자산의 50% 이상 편입하는데 공격보다는 안정에 무게를 둔 때문이다. 수수료도 저렴한 편이다. 총보수가 0.76~1.26% 수준이고 환매 수수료는 없다.확실히 시장은 커질 전망이다. 현재 미국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연평균 68%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직 전체 자산관리 시장의 300분의 1 규모지만 2020년에는 2000조원 넘는 돈이 로보어드바이저에 의해 운용될 것이라는 보고서도 나왔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로보어드바이저는 사람에 비해 수수료가 낮은 자산 배분 시스템이라고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면서 “압도적인 수익률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향후 로보어드바이저의 영향력이 점증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펀드상품 역시 출시된 지 다섯 달밖에 되지 않아 수익률을 더 지켜봐야 한다. 일각에서는 올 여름 미국 증시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점을 생각해볼 때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때론 동물적인 감각이 거대 위험을 피하기도 하는데 로봇이 갑작스러운 악재에 사람만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내 금융투자 업계는 향후 4~5년간의 도입 및 정착기를 거쳐 로보어드바이저가 2021년 약 6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자문·운용을 하는 금융회사가 로보어드바이저의 자산 배분 결과를 활용해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것만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일반 투자자가 로보어드바이저에게 직접 돈을 맡기고, 로보어드바이저가 알아서 운용하는 시스템으로 바뀐다.
사람보다 반드시 좋은 성과 낸다는 보장은 없어물론 로보어드바이저가 연착륙하려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로보어드바이저에 관심을 보이는 건 고객 자산을 사람보다 더 잘 관리해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로보어드바이저가 사람보다 반드시 좋은 성과를 낸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로보어드바이저 역시 사람의 손에 의해 설계되고 만들어진다. 자본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지 않고, 그 잠재적 위험 역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로보어드바이저의 잠재 위험을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첫째, 로보어드바이저가 사람보다 일관되고 체계적인 자문을 할 순 있지만 반대로 고객에게 부적합한 의사결정을 유도할 수 있다. 둘째, 미리 만들어진 알고리즘을 악용해 고객의 이익보다 회사의 이익을 우선할 수 있다. 자문 보수는 적게 받지만 고의적으로 수수료가 비싼 금융상품에 투자하도록 추천하는 식이다. 셋째, 알고리즘의 오류나 해킹 등에 따라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넷째, 로보어드바이저 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각 로보어드바이저 간 알고리즘이 유사해질 가능성이 있다. 단기적으로 엄청난 자금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로보어드바이저가 확산할수록 이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하려는 노력이 줄어들 수 있다.어쨌든 로보어드바이저 시대의 도래는 피하기 어려운 흐름이다. 금융당국도 대응에 나섰다. 로보어드바이저 알고리즘이 적정한지, 수익률은 믿을 수 있는 지 등을 평가할 테스트베드(새로운 기술·제품·서비스의 성능 및 효과를 시험할 수 있는 시스템)를 개설하기로 한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8월 28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 기본 운영방안’을 발표했다. 로보어드바이저 포트폴리오를 금융회사가 테스트베드에 등록한 후 일정기간의 연습을 거친 뒤 안정성이 입증되면 일반 투자자를 상대로 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운영 사무를 맡은 코스콤이 접수를 받은 결과 총 34개 금융회사가 테스트베드 참여를 신청했다. 10월 중으로 서면 및 업체별 현장 방문 심사를 마무리하고 내년 4월까지 6개월 간 안정추구형, 위험중립형, 적극투자형 등 3가지로 포트폴리오로 구분해 실제 시장에서의 운용 사항을 심사할 계획이다. 진행 상황을 감안해 내년 1분기에 2차 참여신청도 받을 계획이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