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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혁신을 일군 아시아의 기업인(9) 레이쥔 샤오미 회장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지난해 판매 부진으로 고전했던 샤오미가 올해 들어 글로벌 실적이 급등하고 있다. 샤오미의 2대 급소로 불려온 ‘품질’과 ‘유통망’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효과로 보인다.

▎샤오미의 레이쥔 최고경영자.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小米)의 레이쥔(雷軍·48) 최고경영자(CEO)가 글로벌 경영인으로 도약하고 있다. 레이 회장은 내년 전 세계에서 1억 대의 휴대전화를 팔겠다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중국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스마트폰 1위 자리를 굳혀온 샤오미는 인도와 러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를 비롯한 해외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사실 샤오미는 지난해 판매 부진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아무래도 샤오미는 고급 브랜드 이미지보다 가격 대비 성능이 괜찮다는 평가로 버텨온 측면이 있다. 인터넷 판매 등으로 유통비용을 절감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고객들의 눈길을 끌자는 전략을 펴온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글로벌 고객의 입맛을 제대로 맞추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분석돼왔다.

애플의 디자인·기술·전략 아이디어 적극 연구


▎1. 샤오미 본사에 설치한 미끄럼틀. 직원들은 퇴근 시간에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며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 2. 좁쌀죽을 함께 먹으며 성공 의지를 다졌던 레이쥔(중앙)과 초기 멤버들.
하지만 이런 분석을 비웃기라도 하듯 올해 들어 샤오미의 글로벌 실적이 급등하고 있다. 올해 2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은 2316만 대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샤오미의 2대 급소로 불려온 ‘품질’과 ‘유통망’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효과로 보인다.

게다가 샤오미의 ‘글로벌’은 삼성전자가 애플과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세련된 디자인에 효율적인 유통망을 가동하는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을 배제하고 있다. 그 대신 중국과 경제나 상품 유통, 서비스 수준이 비슷한 인도와 러시아 시장에서 글로벌 판매를 강화해왔다. 고객의 호주머니 수준과 기대 서비스 수준이 비슷한 만큼 중국에서 시도했던 마케팅 방식으로 승부를 겨뤄도 꿀릴 게 없는 시장이다. 호주머니가 비교적 얇은 고객들은 오히려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샤오미를 더욱 선호할 수 있는 시장이다.

샤오미는 과거 한국이나 미국 IT기업들이 ‘짝퉁 애플’이라며 얕잡아 보던 업체다. 레이쥔은 스티브 잡스의 경영 스타일을 철저하게 연구한 전문가로 알려졌다. 특히 신제품 소개 행사 때마다 직접 등장해 잡스가 하는 방식 그대로 따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검은색 청바지와 터틀넥이라는 복장은 물론 프레젠테이션 하는 방식도 흡사하다. 말을 하는 방식, 질문을 받는 방법,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그대로 따라 한다. 잡스를 철저히 모방함으로써 그를 따라잡겠다는 것이다. 중국 매스컴은 물론 샤오미폰 사용자들도 그를 ‘중국의 스티브 잡스’라고 부른다. 샤오미를 ‘중국의 애플’로 부르는 사용자도 상당수다. 샤오미폰이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유지하면서 레이쥔은 단순하게 스티브 잡스의 겉모습만 따라 하는 게 아니라 그의 집념, 추진력, 철저한 시장 분석과 미래에 대한 혜안까지 갖춘 아시아의 유망 경영인으로 새롭게 평가 받고 있다.

제품에서도 그런 경향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숨어서 흉내 내지 않고 아예 대놓고 베끼는 그를 보고 얼굴이 두껍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가 내놓은 값싸고 성능도 나쁘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는 평가가 달랐다. 소비자는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그가 이런 일을 벌인 이유는 일단 ‘따라 하기’라도 잘해야 미래에 ‘따라 잡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른바 ‘창조적 모방’의 전략이다. 이 전략은 주효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리처드 탈러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가 내놓은 ‘넛지효과(Nudge Effect)’와도 일맥상통한다. 예로 남성 소변기의 정중앙에 파리를 한 마리 그려두면 이용자들은 그곳을 조준하는 경향이 있어 옆으로 흘리는 일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등을 떠미는 방식이 아니라 넌지시 옆구리를 슬쩍 찔러 소비자 스스로 판단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 넛지 마케팅이다. 넛지 마케팅 등은 이처럼 심리학의 프리즘을 통해 경제활동을 살폈기 때문에 상당 기간 경제학계에서 이단아였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히 경제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해석이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레이쥔은 애플을 대놓고 흉내 냄으로써 소비자를 상대로 중국식 넛지 마케팅을 한 셈이다. 기업 대표가 잡스처럼 차려입고 행동까지 흉내 내면서 품질이나 기술도 애플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준 것이다. 상품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불어넣은 것이다. 거기에 가격은 그보다 훨씬 싸니 소비자들이 혹할 수밖에 없다. 샤오미는 혹한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시장을 확대해왔다. 넛지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행동을 이끌어왔다.

샤오미의 정식 명칭은 ‘베이징 샤오미 테크 유한책임 공사’다. 중국어로 ‘北京小米科技有限责任公司’, 영어로 ‘Beijing Xiaomi Technology Co. Ltd’다. 레이 회장은 샤오미 테크의 창업자이며 CEO를 맡고 있는 것은 물론 과거 자신이 대표이사를 지낸 중국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의 하나인 킹소프트(金山軟件有限公司)의 이사회 의장도 맡고 있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2016년 11월 중국 내 기술 기반산업 부자 순위에서 레이 회장의 재산을 미화 84억 달러로 추산하고 그를 이 분야 7위에 올렸다. 중국 전체로는 15위다. 레이 회장의 재산은 2015년에는 132억 달러였다. 샤오미의 성공이 가져다준 재산이다.

레이 회장은 중국에선 샤오미 성공 이전부터 이름난 벤처 경영인이다. 1999년, 2000년, 2002년에 걸쳐 중국 청년보 등 여러 미디어가 뽑은 ‘중국 IT업 10대 풍운인물’에 올랐다. 2003년에는 중국 베이징의 실리콘밸리인 중관촌(中關村)의 우수 경영자로 뽑히기도 했다. 2013년 3월에는 미국 포춘지가 뽑은 ‘비즈니스 룰을 바꾸는 11의 개척자’에 중국인으로 유일하게 들었다.

레이쥔은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샨타오(仙桃)시에서 태어나 우한(武漢)대에서 전산공학을 전공했다. 어디에 취직할까나 고민하던 공대생인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그는 대학 재학 중 실리콘밸리의 창업자 이야기를 모아놓은 『파이어 인 더 밸리(Fire In the Valley)』라는 책을 읽고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 그 영향으로 그는 IT벤처기업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그는 벤처기업을 창업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했다.

1992년 23세의 나이에 중국 IT업체로, 소프트웨어 개발로 유명한 킹소프트(金山軟件有限公司)에 입사했다. 이 회사는 1994년 베이징에 자회사를 세우고 개발과 영업을 분리했다. 엔지니어와 영업맨의 장점을 각각 발휘해보라는 취지였다.

개발은 남부 광둥성(廣東省) 주하이(珠海)의 주하이 킹소프트(珠海金山軟件有限公司)가, 영업은 베이징의 베이징 킹소프트(北京金山软件有限公司)가 각각 맡았다. 킹소프트는 1996년 첫 게임소프트웨어인 ‘중관촌 계시록’을 발표했고 이듬해에는 롤플레이 게임인 ‘검협정록’을 내놨다. 이어 사전소프트웨어인 ‘금산사패’를 발매하면서 최고 인기 사전으로 떠올랐다. 중국어를 배우는 한국인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모바일 사전으로 진화해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킹소프트는 여세를 몰아 윈도즈95에 대응할 WPS97이라는 프로그램까지 발표했다. 그러자 1998년 중국의 거대 컴퓨터 업체인 레노보그룹이 거액을 투자했다. 능력을 인정받은 레이쥔은 입사 6년 만인 1998년 8월 이 회사의 총경리(대표이사)에 올랐으며 2007년까지 자리를 유지했다. 2007년 홍콩증시에 상장해 중견기업으로 완전히 인정받으면서 그해 12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레이쥔은 2011년 7월 킹소프트 주식의 10.3%를 취득해 최대 주주가 됐으며 창업자 겸 회장을 퇴진시키고 자신이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중국 1위 스마트폰 제조업체 부상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킹소프트의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생각은 다른 데 있었다. 창업이었다. 그는 2008년 12월 유시웹(UCWeb Inc)이라는 인터넷 기업의 회장을 맡았다. 모바일 브라우저 제조가 주업으로 중국과 인도에서 모바일 브라우저, 검색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다. 이 업체가 개발해 내놓은 UC브라우저라는 제품은 2014년 3월 현재 사용자가 5억 명에 이른다. 중국 시장 점유율도 65.5%에 이른다. 이 회사는 지난 6월 알리바바와 합작으로 중국 시장에 모바일 전용 검색엔진을 제공하는 션마(Shenma Inc)를 설립했다. 이 업체는 지난 7월 알리바바 그룹에 흡수됐는데 이 거래는 중국 최대 인터넷 인수합병으로 기록된다. 이 업체는 알리바바 그룹의 모바일 관련 비즈니스의 엔진을 맡았다.

킹소프트의 성공도, UCWeb의 성공도 그의 벤처인생에선 서막에 불과했다. 그의 인생 대전환점은 샤오미 테크를 창업한 2010년 4월 6일로 기록된다. 2010년 4월 레이쥔은 구글차이나, 모토롤라 베이징연구센터, 베이징과기대 공업설계학부의 교수, 킹소프트의 전 대표 등 초기 멤버 10여 명을 끌어들여 샤오미 테크의 문을 열었다. 그는 6개월 동안 중국 전역을 돌며 창업 멤버를 모았다. 그는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라는 말로 지금이 샤오미를 창업할 기회임을 역설했다.

잘나가는 소프트웨어업체 대표이사 출신인 그가 41세의 나이에 창업에 나선 것은 그 자체로 화제였다. 중국에서도 IT벤처 창업은 주로 20대 초반에 하는 일이다. 40세가 넘은 나이에 창업하는 일은 드물다. 그럼에도 레이 회장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젊은이처럼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베이징 정보기술(IT) 클러스터 중관춘(中關村)에 둥지를 틀었다. 베이징 북서부 하이디옌(海淀)구에 자리한 중관촌은 입주 기업 2만여 개. 연간 매출 4200억 달러(430조5000억원), 해외에서 U턴한 창업자만 2만여 명,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 3000개, 벤처 투자 규모가 중국 전체 벤처 투자의 3분의 2가 넘는 6조원 이상인 중국 최대의 벤처 클러스터다. 1980년대 초 전자상가 거리에서 시작한 중관춘은 관련 IT기업이 모여들면서 영역이 갈수록 확장돼 이제는 75㎢(약 2269만 평) 면적의 거대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다. 세계 1위 PC기업 레노보와 ‘중국판 구글’이라는 바이두, 칭화대(靑華大), 칭화사이언스파크(靑華科技園), 베이징대, 창업거리(innoway), 레전드캐피털, 중국 최대 창업인큐베이터 창신공장(創新工場ㆍinnovaiton works) 등이 줄지어 입주해 있다. 샤오미를 창업한 레이쥔도 여기에 자리 잡았다.

회사 이름 샤오미(小米)는 레이쥔이 제안했다. 좁쌀이라는 뜻의 중국어와 같은 이 이름은 사실 좁쌀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샤오(小)는 ‘한 알의 작은 곡식알이 높은 산만큼 위대하다’라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따 왔다고 한다. 비록 완벽함을 갖추지 못하고 작은 일에서 시작하지만 꿈은 크다는 의미다. 미(米)는 모바일 인터넷(Mobile Internet)과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의 두음을 따왔다고 한다.

레이 회장의 샤오미는 수많은 자회사를 만들어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 흐름을 뒤집는 가치 전복의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 있다. ZMI에서 내놓은 파워뱅크(외장배터리)는 말 그대로 홈런을 쳐왔다. 같은 곳에서 출시한 휴대용 충전케이블도 마찬가지다. 1More Design에서 발매한 피스턴(Piston) 이어폰은 샤오미폰과 어우러지는 짝으로 중국에서 각광받고 있다. 충미(Chungmi)는 아이디어 멀티 탭을 내놓고 소비자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라칼라(Lakala)에서 내놓은 모바일 결제 액세서리는 중국 젊은이의 필수품이 되고 있다. 안츠(Ants)의 웹캠은 깜찍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다. 가치전복의 경영을 추구해온 레 회장이 아시아 경제에 어떤 새로운 경영 흐름을 몰고 올지 주목된다.

※ 채인택은… 중앙일보 피플위크앤 에디터와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국제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역사와 과학기술, 혁신적인 인물에 관심이 많다.

201711호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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