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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벤처붐은 다시 올 수 있을까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지난 20년간 한국 벤처 정책은 지원과 규제 사이를 오갔다. 큰 흐름으로 보면 2000년 가장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고, 2003년 벤처 거품이 일자 규제가 강화됐다. 이후 정권을 거치며 규제는 풀리고 다시 지원 정책이 늘어나는 중이다.

▎2000년 벤처붐은 1995년에 설립된 벤처기업협회가 제안하고 정부가 시행한 세계 최초의 벤처특별법(1997년 제정)과 세계 두 번째의 신시장 (emerging market)인 코스닥(1996년 설립)이 양대 견인차 역할을 했다.
“김대중 정부의 벤처육성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교해보면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과감하게 혁신해야 하는 부분을 풀지 못한 점들이 있어 아쉽습니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이 지난 11월 2일 정부가 발표한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을 평가했다. 정부의 벤처 활성화 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네 바퀴 성장론’(일자리성장,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핵심축이다. 정부의 첫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선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이 주요 주제였다. 방안에는 벤처기업 확인제도를 민간 위주로 전면 개편하고 창업기업에 부담금·세금을 낮춰주는 내용 등이 담겼다. 또 스톡옵션 비과세를 11년 만에 재도입하고 창업 초기 ‘죽음의 계곡’ 시기를 극복할 수 있게 창업도약 패키지도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 20년간 한국 벤처 정책은 지원과 규제 사이를 오갔다. 큰 흐름으로 보면 2000년 가장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고, 2003년 벤처 거품 이후 규제가 강화됐다. 노무현 정부 당시 강화된 규제는 이명박과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을 거치며 완화됐다.

우리나라 벤처 정책은 김영삼 정부 말기에 처음 등장한다. 1996년 코스닥이 설립됐고 1997년 벤처특별법 시행령이 등장한다. 당시 이를 주도했던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벤처 특별법으로 창업을 지원하고 코스닥에서 회수하는 구조”라며 “세계에서 가장 앞선 지원 모델”이라고 말했다.

정책들은 외환위기 가운데 집권한 김대중 정부에서 빛을 발한다. 김대중 정부는 위기 극복 방안으로 벤처 기업을 적극 육성하는 정책을 펼쳤다. 과감한 규제 개혁과 조세 지원이 이어졌다. 스톡옵션 제도가 처음 등장했고, 기술거래소가 열려 벤처기업의 숨통을 틔워줬다. 게임업체도 병역특례 대상 기업에 포함됐다. 벤처투자자금 회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코스닥 시장 활성화도 뒤따랐다. 벤처 생태계가 모습을 갖추며 한국을 대표하는 IT 기업이 속속 떠오르기 시작했다.

국민이 열광했던 벤처붐은 2003년 미국 IT 버블이 터지며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2000년 3월 사상 최고점인 2733.2포인트를 기록했던 코스닥은 불과 4년 만인 2004년 324 포인트로 추락한다. 코스닥 거품 시절 취임한 노무현 정부는 벤처 건전화 정책을 강화하며 시장 안정화에 주력한다. 코스닥을 코스피에 통·폐합하며 한국증권거래소 관리 기능을 높였다. 벤처 스톡옵션 제도를 폐지했고 도덕적 해이를 막는 제도를 마련했다. 벤처 업계엔 비상이 걸렸다. 2004년 가을부터 벤처협회는 정부 주요 부처와 위원회를 찾아가 ‘왜 다시 벤처인가’를 설득해 나갔다. 장기적인 내수 부진으로 실업자 문제도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결국 참여정부는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의 대안으로 벤처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2004년 12월 ‘벤처 활성화를 위한 금융·세제 지원방안’과 2005년 6월 ‘벤처 활성화 보완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2002년 벤처 건전화 정책으로 피폐해진 벤처 생태계는 부분적으로나마 다시 활력을 찾았다.

2007년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보다 융통성 있는 벤처 정책을 선보인다. 기술창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술창업 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했다. 벤처기업에 대한 정책자금 중 기술창업 기업에 대한 비중을 40%까지 늘리고, 초기에 저리로 자금을 공급하는 ‘성장공유형 대출 제도’를 도입했다. 모태펀드 규모를 늘려 벤처 업계의 운영 자금폭을 넓혀갔다. 창업에 필요한 행정적 절차도 대폭 줄여 창업 문턱을 낮췄다. 주목할 이슈도 있었다. 10년간 한시법으로 운영한 ‘벤처기업 특별조치법’을 2017년까지 10년 연장한 점이다. 기업인 출신답계 의욕적으로 벤처 활성화 정책을 이야기했지만 관련 대책을 발표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실효를 거두진 못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라는 슬로건을 내건다. 벤처 창업이 국가 경쟁력을 키운다며 적극적인 벤처 지원 정책을 이야기했다. 박근혜 정부 벤처 정책의 큰 그림은 ‘벤처자금 생태계’를 만들어 성장단계별로 순환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청년·여성 창업 정책이 쏟아져 나왔고, 성장기 벤처기업, 중소기업들이 상장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코넥스시장도 만들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창조경제센터도 전국 주요 도시에 설립했다.

문재인 정부의 벤처 정책은 2000년 당시와 가장 닮은 편이다. 코스닥 활성화를 위한 지원도 늘렸다. 엔젤 투자와 스톡옵션 감세 폭도 넓혔다. 하지만 업계에선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다. 남민우 다산 네트웍스 대표는 “벤처인증제 개편, 코스닥시장 독립, 스톡옵션 추가 완화, 신기술거래소 설립 등 벤처 생태계 복원을 위한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며 고 강조했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201712호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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