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세계 3대 옥션 필립스의 한국 상륙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크리스티·소더비와 함께 세계 3대 옥션으로 불리는 경매회사 필립스가 한국에 진출한다. 내년 상반기 한국 사무소 오픈을 앞두고 11월 26일 홍콩 경매 첫 프리뷰(경매 전 전시)도 한국으로 정했다. 조나단 크로켓(38) 필립스 옥션 아시아 부회장을 10월 27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 시티 전시장에서 만났다.

▎조나단 크로켓 필립스 옥션 아시아 부회장이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 시티에 위치한 프리뷰 전시 장 입구를 들어서고 있다. 세계 3대 경매회사로 꼽히는 필립스는 내년 한국 사무소를 열 예정이다.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한국 콜렉터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시장 규모가 작은 데 비해 다양하고 뛰어난 작품이 많아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220년 역사의 필립스 회사가 아시아에 진출한 건 늦은 감도 있어요. 역동적인 한국 미술 시장에 진입해 매우 기쁘죠.“

조나단 크로켓(39) 부회장이 안내한 파라다이스 호텔 프리뷰 전시장에는 11월 26일 홍콩경매 출품작 중 주요 작품 17점이 전시돼 있었다. 그는 “조지 바셀리츠, 조지 콘도, 세실리 브라운 등 서양 전후 현대미술 작품과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요시토모 나라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검증된 작품들이 고르게 출품됐다”며 경매 특징을 설명했다.

한국 작품으로는 모노하 이론을 통해 일본 현대미술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이우환, ‘단색화’의 대표 작가 정상화, ‘물방울 화가’ 김창열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디자인 분야로는 한국 도예가 박영숙의 백자 항아리가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50년간 한국적 추상표현주의로 손꼽히는 화가 오수환의 작품도 홍콩 경매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이들의 낙찰 기대 금액만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한다.

현재 전세계 미술시장은 무섭게 성장 중이다. 미술품 거래 규모만 약 63조원에 달한다.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부동산이나 금융이 아닌 미술품으로 투자하는 ‘아트테크(아트+재테크)’도 활기를 띤다. 경매시장의 인기에 대해 크로켓 부회장은 “갤러리는 작가 발굴이라는 중요한 역할로 전시를 기획하고 신인부터 지원해 시장에 들어갈 수 있게 한다면 2차 시장으로 경매에 나올 땐 더 성숙한 기록을 거쳐 검증된 작품들이라 투자자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미술 경매시장의 특징은 대중성이다. 크로켓 부회장은 “관객들에게 가격 등이 온라인으로 모두 공개된다”며 “이 때문에 필립스와 같은 옥션 회사는 미술 시장의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떠오른 강자는 아시아다. 그동안 뉴욕과 런던이 경매 양대 산맥을 이루어 왔지만 2000년대 중반 중국 미술이 급성장하자 경매회사들은 차츰 홍콩을 시작으로 아시아 시장 진출을 꾀했다. 필립스도 2016년 11월 홍콩에서 첫 경매를 시작해 올해 11월 세 번째 정기 경매를 맞았다.

한국 경매 시장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한국미술시장정보시스템에 의하면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 거래 금액은 지난해 약 1680억원으로 20년 전에 비해 560배 성장했다. 필립스의 첫 한국 프리뷰가 본격적인 아시아 시장 공략으로 해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필립스는 1796년 해리 필립스(Harry Phillips) 에 의해 설립됐다.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고미술을 포함해 미술 전반을 다룬다면, 런던에 본사를 둔 필립스는 현대미술과 시계, 가구, 보석,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 미술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공고히 해왔다.

크로켓 부회장의 한국 방문은 처음이 아니다. 홍콩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를 둔 그는 10대였던 1997년 중국을 방문하면서 아시아 문화에 푹 빠졌다. “유럽에서 못 느꼈던 아시아만의 분위기와 열정, 에너지가 좋았다”는 그는 예술산업으로 발을 디뎠다. 영국 크리스티를 시작으로 소더비를 지나 필립스까지 세계 3대 옥션 회사를 모두 거치며 현재 필립스 옥션 부회장까지 올랐다.

작품부터 콜렉터 성향이 ‘국제적’으로 변한 것은 경매 시장의 큰 변화다. 트렌드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미술 작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심도가 다양하게 표출된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같은 작가의 전시가 열렸을 때 유명하지 않았던 작가 작품이 갑자기 인기를 얻는 역동성도 있다. 프리뷰에 전시된 일본 작가 야요이 쿠사마 작품 가격 인덱스는 지난 5년 새 5배가량 상승했다고 한다.

국가에 국한하지 않는 경매 트렌드


▎ YAYOI KUSAMA, [High Heel],1981. acrylic on canvas 15.8x22.7㎝. (5 15/16x9 in.) Estimate US$ 103,000~154,000/ 사진:필립스 제공
그는 “이제 한국인이라고 한국 작가의 작품을 고르는 시대는 지났다”며 “팝아트 콜렉터가 고전 페인팅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스라엘 예루살렘 박물관에서 중국 작가의 작품 전시를 하는 등 미술 시장에서의 취향도 다변화됐다”고 전했다.

세계 미술 시장의 규모는 현대미술이 자리를 잡으면서 확대됐다. 현대미술 시장은 2013년 7월에서 2014년 7월까지 경매 실적이 약 15억 유로(약 1조8700억2000만원)로 기록을 갱신했다. 크로켓 부회장은 중국과 한국의 현대미술 차이점도 지적했다. “중국 현대미술은 수천 년의 역사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숨겨진 의미를 갖는 작품이 많고, 한국 작품은 개인적이고 정체성이 개성 있게 섞여 매우 다릅니다. 그러나 현대미술로 올수록 작가의 국적보다 개체성이 중요해지는 추세죠.”


▎ G EORGE CONDO, [Young Girl with Blue Dress], 2007. oil on canvas 127x106.5㎝. (50x41 7/8 in.) Estimate US$ 384,000 ~641,000/ 사진:필립스 제공
미술 시장의 대중화에 기여한 건 바로 온라인 경매다. 디지털화 추세로 경매 시장도 접근성이 용이해지면서 문턱을 낮췄다. 현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참여할 수 있어서 경매 초보나 젊은 세대들에게 반응이 좋다.

디지털 트렌드를 반영한 주요 작품으로 크로켓 부사장은 를 꼽았다. 일본의 세계적인 디지털 아트 그룹 팀랩이 만든 작품이다. 그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작품 도록까지 뒤적이며 열띤 설명을 이어갔다. 4개의 TV스크린을 타고 폭포가 흘러내리는 형상을 표현한 설치형 작품으로 경매에 나가는 건 소프트웨어다. 크로켓 부회장은 “디지털 작품이 최초로 경매에 나왔다”며 “3D로 폭포가 흐르는 듯한 웅장한 가상공간을 구현해 낸 테크놀로지가 결합 된 예술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어 “직접 보면 너무 아름다워서 입이 벌어질 것”이라며 “반드시 홍콩에 직접 와서 봐야 한다”며 웃었다. 낙찰 기대 금액은 최고 122,000달러다.

퍼포먼스로 자리 잡은 경매시장


▎teamLab, [Universe of Water Particles], 2013. Estimate US$ 83,300~122,000
작품의 가치를 매기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작품의 가치를 경매 기대 금액으로 보기 때문이다. 출품되는 작품은 경매회사의 기초적인 검증 작업을 거친다. 필립스는 아티스트의 명성뿐 아니라 작품에 사용된 재료가 뭔지, 이전 콜렉션 기록, 사이즈, 환경 등을 반영해 가격을 산정한다. 특히 유명한 콜렉터가 소장한 기록이 있거나 박물관 전시 여부는 가점에 반영되는 주요 항목이다. 크로켓 부회장은 “최근 경매 트렌드까지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기 때문에 안목보다 오랜 경험이 필요하다”며 “마켓 동향을 잘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종 가격을 낙찰하기까지 뜨거운 흥정이 오가는 경매는 이제 하나의 퍼포먼스로 자리 잡았다. 온라인과 전화 경매가 발달했음에도 현장에 오는 사람이 많은 건 이 때문이다. 그는 2009년부터 10년 가까이 경매사로 진행하고 있다. 경매사는 경매장의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이끌어 가면서 온라인, 폰, 현장 피켓까지 다 보면서 순간적인 판단을 요하는 어려운 직업이다.

“가끔 1초의 정적이 1분 같은 박진감 넘치는 현장”이라고 설명한 크로켓 부회장은 “비딩(bidding)을 고민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나와 거래자만 쳐다보는데 그 순간 긴장감이 확 고조된다”고 묘사했다.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그는 오히려 여유롭게 묻는다. “만약 고객이 비딩을 고민하면 고객이나 옆자리 배우자나 ‘정말? 멈추실 건가요? 확실해요?’라며 물으면서 현장에 활기를 더합니다.”

한국을 거친 프리뷰 전시품은 싱가포르·타이페이를 거쳐 11월 26일 홍콩 경매에서 최종 낙찰을 한다. 조나단 크로켓 부회장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아시아 예술 경매 시장은 최근 10년간 세계 예술 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큼 무궁무진한 시장입니다. 필립스의 아시아 진출은 이제 시작입니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1712호 (2017.11.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