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석공의 지혜 

진입이 쉽지 않은 니치마켓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석공의 지혜’를 빌릴 수 있겠다. 

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대표

공급이 초과된 포화 상태의 시장에서 후발업체나 후발제품이 기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진화하는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시장점유율이 낮은 기업이나 후발기업이 기존 시장에서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면서 아직 선점되지 않은 분야를 공략하여 자신의 입지를 넓혀가는 전략은 니치마켓(niche market)이라고 하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성공적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잠재욕구(unmet needs)를 찾아야 한다. 공급자 마인드가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교환가치를 가질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이 중요한 까닭이다.


기존 시장 침투 전략을 구사할 때는 반드시 독창성과 차별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진입이 쉽지 않은 니치마켓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석공의 지혜’를 빌릴 수 있겠다. 이미 경쟁이 치열한 시장은 커다란 바위나 단단한 얼음덩이와 같다. 이를 깨려고 망치나 해머로 무리한 힘을 가한다면 오히려 망치자루가 부러질 수도 있다. 뉴턴의 역학법칙에서도 이미 증명하였듯이 고체에 가하는 힘의 반작용은 지름의 제곱에 비례한다. 지름 1㎝의 망치와 10㎝의 망치로 바위나 얼음을 때렸을 때 튕겨져 나오는 반발력은 10배가 아니라 100배라는 것이다. 이때 석공은 무리하게 힘을 주기보다는 끝이 뾰족한 정을 이용하여 반작용을 최소화한다면 쉽게 깰 수가 있다. 소위 송곳전략으로 틈새시장을 찾아 쐐기를 박고 힘을 가하면 거대한 시장도 결국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 음료시장 규모는 약 670조원 수준이며, 한국 시장은 생수 포함 4조6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최근 70여 년간 아시아 시장은 거대한 글로벌 기업의 브랜드 쟁탈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유수 기업들이 앞다투어 로열티를 지급하고 국내 판권 유치에 혈안이 된 것도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다행히 20~30년 전부터 일기 시작한 ‘자국음료 만들기’ 노력으로 현재는 8%에 이르는 국산차음료 시장과 15% 수준의 생수 시장이 형성되었다. 국산 차음료와 생수가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뚫고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시장 트렌드와 소비자의 잠재욕구를 정확히 꿰뚫은 데서 찾을 수 있다. 세계적인 음료를 마실 수는 있지만 수천 년 역사 속에 담겨 있는 우리만의 마실거리 문화를 이해하고 현대화하려는 음료 메이커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땅에서 나오는 고유 작물, 생수와 같은 훌륭한 자원을 음료화한 결과다. 큰 시각으로 시장을 보되 치밀한 눈으로 틈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난공불락 같았던 세계적인 거대 음료 브랜드를 깰 수 있었던 석공의 지혜가 아닌가 싶다.

- 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대표

201806호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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