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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호 현대아산 관광경협본부장 

“현대아산은 남북경협 재개· 확대의 가교” 

조득진 기자
남북경협은 ‘재개→내실화 →확대’의 로드맵이 예상된다. 유일한 남북경협 기업인 현대아산의 역할이 주목되는 가운데 20년 동안 남북경협사업의 실무를 맡아온 백천호 관광경협본부장을 만났다.

▎백천호 현대아산 관광경협본부장은 20년 동안 남북경협사업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는 “임직원 모두 평정심을 유지하며 담담한 마음으로 구체적인 사업 재개 준비사항을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경협에 거는 기대가 폭발적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남북이 협력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날 수 있을 것”이라며 “여러 시나리오를 갖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 안팎에선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노동과 자원·토지가 결합하면 한반도 전체에 경제부흥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북한 리스크 축소 효과 등도 기대한다. 눈에 보이는 숫자보다는 무형의 가치가 크다는 얘기다.

남북경협 재개 분위기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역시 현대아산이다. 30년 전 정주영 명예회장의 첫 방북 이후 금강산·개성관광, 개성공단 가동 등 대북사업의 유일한 창구 역할을 해왔다. 비록 2008년 금강산관광 중단,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남북 정상이 “11년 전으로 돌아가자”고 약속하면서 대북사업 재개와 주요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사업권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5월 17일 서울 연지동 현대그룹 사옥에서 만난 백천호 현대아산 관광경협본부장(이사)은 “지난 10년 동안 구조조정 등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오면서도 우리는 ‘분명히 재개된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며 “분위기에 들뜨지 않고 그동안 점검해온 매뉴얼대로 차분하고 담담하게 경협 재개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아산의 남북경협 실무자다. 1992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1998년 금강산관광 시작 전 대북사업단에 합류했다. 이후 고성사무소장, 개성사업소장 등 8년 동안 북한 땅에서 근무했고, 현재 현대아산의 경영지원 본부장과 관광경협본부장을 겸직하고 있다.

금강산관광 재개 준비 3개월이면 충분해


백 본부장은 “북측과의 신뢰관계는 지난 어려운 시기를 거쳐 지금도 잘 유지되고 있다”며 “우리에겐 대북협상·기획·개발·운영 등 남북경협만의 특수성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사업 노하우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룹과 별도로 현대아산도 대표이사를 팀장으로 30명 규모의 ‘남북경협재개준비 TFT’를 구성해 조직 정비와 세부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남북경협에서 현대아산의 경쟁력은

‘신뢰와 경험’이다. 정 명예회장 때부터 북측과 신뢰관계를 유지해왔고, 20년 남북경협사업의 경험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북한의 대외 경제협력을 담당하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소통이 가능하다. 북측은 정 명예회장, 정몽헌 회장 기일마다 빠짐없이 추모의 뜻을 전해오고 있으며, 개성공단 가동 중단 이전까지만 해도 정몽헌 회장 금강산 추모행사와 금강산관광 기념행사를 거른 적이 없다.

당장 진행할 수 있는 남북경협사업은

지금으로선 어떤 사업이 먼저 재개될 것이라고 예단하기보다는 추진 가능한 모든 사업을 철저히 준비한 후 대내외 사업 환경 변화와 변수를 고려해 적정한 사업부터 추진할 계획이다. 굳이 꼽자면 금강산관광·개성관광·개성공단은 정상적으로 진행되다가 중단된 사업이어서 시설물 개보수 등 준비를 거치면 재개할 수 있다. 특히 개성관광은 당일 일정에 버스 이동이라 언제든 운영이 가능하다. 금강산관광도 3개월가량 준비하면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백 본부장의 말처럼 남북경협에서 당장 효과가 나타날 분야는 관광산업이다. 관광업계에 따르면 금강산과 개성 관광 규모는 연간 최소 3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현재 1단계 개발에 멈춰 있는 이 사업이 2단계 개발까지 확장되면 주변 관광 5개 지구(내금강, 통천, 시중호, 동정호, 원산) 개발도 곧 착수할 수 있게 된다. 개마고원이나 백두산 등에 이르는 교통 인프라 정비, 호텔 등 건설 사업까지 장기적으로 내다보는 경제효과는 수천조 규모에 달한다. 현대아산이 투자 대가로 얻어낸 개발 사업권의 유효기간은 30~50년이다.

개성공단 재개와 확대도 주목된다. 현대아산은 지난 2003년 통일부로부터 개성공단 2단계·3단계 공단조성 사업부지를 포함해 6600만㎡(약 2000만 평)에 대한 개발권과 사업권 승인을 받았다. 개성공단 재개가 이뤄지고 규모가 확대될 때 북한 경제에서 나타나는 경화수입(임금+기업소득세)과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2단계 개발이 진행되면 현대아산과 한국토지공사가 관리하게 되는데 북한이 개성공단을 시장경제 학습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북측과 맺은 독점사업권 여전히 유효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대북제재와 상관없이 남북 이산가족상봉 등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 관광지구에 아침이 밝는 모습
재계에서는 현대아산이 2000년 8월 북한과 ‘경제협력 사업권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고 확보한 7대 독점사업권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정몽헌 회장은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발전시설 등 전력사업, 유무선 통신사업, 경의선 등 남북 철도사업, 통천비행장 건설사업, 임진강 유역 댐 건설사업, 금강산 수자원 이용 사업, 백두산 등 명승지 관광사업 등 SOC 사업권을 독점으로 확보했다. 현대아산이 남북경협 재개의 최우선 수혜기업으로 꼽히는 이유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른바 ‘7대 대북사업 독점권’에 대해 사업권 획득 이후 18년간 실질적으로 진행된 사업이 없어 권한이 유효할지 미지수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투자 여력이 있는 기업들이 이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경협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7대 대북사업 독점권’의 유효성은

7대 사업권은 당시 협상에 나선 당사자들의 위상과 협약의 강도를 볼 때 의심의 여지없이 유효하다. 이 포괄 합의서를 근거로 개성공단이 건설됐고 금강산관광도 내금강관광으로 확대됐으며 2007년엔 원산관광 계획까지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악재가 생기면서 중지된 것뿐이다. 2000년 당시 현대그룹 외에 어느 기업이 정치적 상황을 이기고, 그 많은 대가를 지불하면서 사업권에 도전했는가. 현대가 우선적으로 선도한 것이고, 그래서 북측도 우리에게 사업권을 준 것이다.

현대그룹의 투자 여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7개 SOC 사업 합의서에는 ‘현대가 사업을 주도하되 필요한 자금은 남측은 물론 제3국 정부 및 단체, 특정기금, 국제기구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조달한다’고 명시돼 있다. 정몽헌 회장은 생전에 ‘남북경협사업은 현대만의 사업이 아닌 국가와 민족의 사업’이라고 강조하셨다. 현 회장도 회의 주재 때마다 늘 강조하신다.

국내 기업과 협업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렇다. 개성공단 1단계 조성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금강산 골프장 건설은 에머슨퍼시픽과 진행했다. 이런 식으로 협력, 컨소시엄으로 진행하면 대북사업의 중요한 기회를 외국 자본이나 기업에 뺏기지 않고 남한 기업의 몫으로 확대할 수 있다. 현대아산의 사업권은 우리나라 기업과 국민의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독점사업권 보호가 중요하다. 종전선언, 평화 무드가 조성되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 등지의 자본이 대거 몰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노하우와 지식, 공격적 투자자들이 북한에 스며들 것”이라며 민간 투자 독려 의지를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그룹이 북측의 사업권을 매개로 한국의 기업과 투자를 북에 유치하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백 본부장은 “북한 땅에서 일어나는 사업에서 남측이 주도권을 갖도록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재계 안팎 여론도 대부분 같다. 남북경협의 길을 닦은 현대그룹의 사업권을 존중해주어야 경협의 속도가 빨라지고 사업 범위도 커진다는 의견이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SOC 사업권을 쟁점화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어리석은 일이다. 기존의 것을 재개하고 내실화해 경협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런 차원에서 정부도 기업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서 이 부분을 명확히 해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옛 경협의 실패를 교훈 삼아 민과 관이 선제적으로 경협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협력은 기본적으로 기업인들이 주축이 돼야 한다”며 “기업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불확실성으로, 이를 없애기 위해 남북, 북미가 잘 조율해 일방의 선언으로 경협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사전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2월 10일 자로 가동이 중단된 개성공단의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 출경 게이트가 굳게 닫혀 있다.
[박스기사] 북한 관광·서비스산업 현황 - GDP 2위(31.1%) 서비스업 성장 가속도


전문가들은 남북경협에서 당장 속도를 낼 수 있는 분야로 관광산업과 함께 서비스업을 꼽는다. 북한 경제의 시장화 속도가 빠르고,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이 3월 펴낸 보고서 ‘북한의 서비스 산업’을 보면 민간이 주도하는 서비스 산업은 북한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 유지돼온 중화학공업 등 제조업 중심 성장 모델 붕괴 이후 서비스 산업이 북한 경제 회복과 성장을 주도하는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북한 산업구조를 살펴보면 2016년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서비스업은 31.1%를 차지했다. 광공업(33.2%)에 이어 두 번째로 컸다.

보고서는 개발도상국에서 경제성장 초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서비스업인데 북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영 제조업 기업의 가동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서비스 산업이 많은 노동자에게 일자리와 소득 창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16년에 통일연구원이 발행한 보고서 ‘북한 전국 시장 정보: 공식시장 현황을 중심으로’를 보면 전국 400여 개 종합시장 종사자는 매대를 기준으로 100만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 산업의 발달은 북한 내 전반적인 투자를 증대시키는 역할을 했다. 1990년 대 이후 북한 당국은 한정된 재원을 군수부문이나 발전소 등 전략적인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대신 상점이나 식당, 버스·택시회사 등을 개인의 투자와 운영에 맡기는 분위기다. 정부 재정 투입 없이 전국 상점 시설이 현대화되고 상품 수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해외산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경제에서 시장화가 진전되고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 커지고 있는 만큼 인프라나 제조업 중심 남북경협론에서 벗어나 서비스 산업에서의 경제협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초기에는 상업·유통 분야에서 소규모 협력사업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종합시장 등 집단적인 상업시설의 현대화 지원, 도시 지역 소액 금융사업(micro credit)을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된다. 이후 대형 유통이나 통신,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 부문으로 협력을 확대할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남북경협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유통부문 경제협력이 제조업 분야 남북경협 사업 여건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806호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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