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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오너家의 희비 

 

조득진 기자
‘한국 50대 부자’ 순위에서 대기업 오너 일가의 비중은 조금씩 줄고 있다. 슈퍼리치의 재산은 기업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위에 든 부자들의 재산은 크게 늘었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과 감담회를 위해 청와대에 모인 기업인들. 왼쪽부터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문 대통령, 허창수 GS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황창규 KT 회장.
포브스코리아가 ‘한국 50대 부자’를 조사·선정하기 시작한 2005년은 대기업 오너 일가가 단연 강세를 보였다. 50명 가운데 39명이 대기업 오너 일가 소속이었다. 삼성 오너 일가가 가장 막강했다. 10위권 안에만 이건희(1위), 이재용(2위), 이명희(4위), 홍라희(9위), 정재은(10위) 등 무려 5명이 포진했다. 이 외에도 현대, LG, SK, 롯데 등 대기업 오너 일가가 상위권에 다수 자리하며 한국에서 대기업의 영향력을 한눈에 보여줬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기업의 분할과 산업 환경의 변화를 겪으며 상당수의 오너 일가가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올해 한국의 50대 부자를 보면 대기업 오너 일가는 28명이다. 범삼성가를 보면 2005년 10명(20%)이었지만 올해는 7명(14%)이 슈퍼리치 순위에 들었다. 범현대가와 범LG가는 각각 8명에서 올해 3명으로 줄었고, 4명이 순위에 올랐던 범롯데가도 2명으로 줄었다.

기업의 흥망성쇠에 따라 순위에서 사라진 슈퍼리치도 많다.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2005년 당시 8위),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13위), 박문덕 하이트맥주 회장(15위), 허창수 GS그룹 회장(22위), 최진민 귀뚜라미보일러 회장(25위), 정몽진 KCC 회장(26위), 허정수 GS네오텍 회장(27위), 문규영 아주산업 회장(34위),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38위), 김상헌 동서 회장(40위),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42위), 설윤석 대한전선 장남(47위) 등이 대표적이다.

외환위기 거치며 주력사업 발굴


슈퍼리치의 재산은 기업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한다. 특히 외환위기가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수익성과 내실보다 무리한 외형 키우기, 매출에 집중하던 당시 한국 기업들을 한 방에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과 20년이 흐른 2018년의 30대 그룹 현황을 보면 차이가 극명하다. 1998년 한국의 30대 그룹 가운데 19곳이 현재 해체되거나 3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63%가 물갈이된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은 당시 보고서에서 “전반적인 공급 과잉과 생산성 저하로 한계기업의 퇴출과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우는 삼성을 제치고 재계 서열 2위에 오른 지 1년 만인 1999년 8월,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그룹 해체의 길을 걸었다. 당시 11개 계열사는 회사가 통째로 팔리거나 사업 부문별로 분할 매각됐다. 아직까지 대우 이름을 단 기업들로는 대우건설이 새로운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고, 대우조선해양은 방만한 경영과 글로벌 업황 부진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쌍용(1998년 재계 순위 7위), 동아(10위), 고합(17위), 진로(22위), 동양(23위), 해태(24위) 등 11개 그룹이 사라졌고 한라·한솔·코오롱·동국제강 등은 20년 세월 속에 각종 부침을 겪으며 3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반면 삼성·LG·효성 등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덩치를 키웠다. 삼성은 외환위기 당시 사내 재무팀이 경영 상태를 진단한 뒤 ‘이익이 되는지’를 기준으로 주력사업을 전자·금융·무역 등 3~4개로 압축했고 나머지 계열사는 과감히 정리했다. 20년 전 51조원이었던 삼성의 자산 총액은 현재 7배가 넘는 363조원으로 늘어났다. 당시 재계 1위였던 현대그룹은 ‘왕자의 난’ 등을 거치면서 9개 그룹으로 분할됐다. 현대그룹은 그룹 규모가 크게 줄어든 반면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은 30대 그룹에 이름을 올렸다.

LG도 GS·LS 등이 계열 분리로 떨어져 나갔지만 전자·디스플레이·화학 등 핵심 업종에 집중해 4위를 유지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11위였던 롯데는 20년 만에 재계 순위 5위에 올라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지난 20년 사이 포스코·KT·신세계·미래에셋·한국투자금융 등 15곳이 새롭게 30대 그룹에 편입됐다. 1997년 4월 삼성에서 분리된 신세계와 CJ는 매출 성장과 인수·합병 등을 통한 사업 확장으로 덩치를 키우면서 30대 그룹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뼈를 깎는 자구책으로 살아남은 대기업들은 주력업종을 중심으로 시장 경쟁력을 키웠다. 2017년 결산 기준 매출 순위 100대 기업을 보면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사업 영역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삼성은 삼성전자(1위), 삼성디스플레이(9위), 삼성생명(11위), 삼성물산(14위), 삼성화재(26위), 삼성SDS(68위), 삼성중공업(74위), 삼성전기(86위), 삼성SDI(95위) 등 9개사가 매출 100대 기업에 들었다. 전자와 금융이 주력임을 알 수 있다.

현대차는 현대차(2위), 기아차(6위), 현대모비스(8위), 현대제철(30위), 현대건설(36위), 현대글로비스(39위), 현대위아(77위), 현대엔지니어링(97위) 등 8개 사다. 자동차산업의 수직계열화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SK는 SK하이닉스(13위), SK에너지(15위),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17위), SK텔레콤(35위), SK네트웍스(45위), SK종합화학(59위), SK건설(79위), SK인천석유화학(80위), SK가스(89위) 등 9개사가 순위에 올랐다. 반도체·에너지·통신의 3각 체제다. LG는 LG전자(3위), LG디스플레이(16위), LG화학(20위), LG상사(50위), LG유플러스(53위), LG이노텍(76위), 서브원(85위), LG생활건강(96위) 등 8개사다. 역시 전자와 화학, 통신이 주력사업이다.

주가 변동에 삼성가 방긋, 롯데가 울상


기업의 성과는 그대로 주가에 반영됐다. 삼성전자 주가가 폭등하면서 지분 3.88%를 갖고 있는 이건희 회장의 주식가치는 2005년 1조9398억원에서 올해 22조523억원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같은 기간 1조6445억원에서 8조4570억원으로,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와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도 2201억원에서 각각 2조1945억원과 2조340억원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삼성 오너 일가의 재산은 2005년 4조원에서 크게 늘어 올해 35조원에 육박했다.

신세계 오너 일가의 재산도 크게 늘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2005년 1조1313억원에서 올해 2조4086억원으로, 정용진 부회장은 같은 기간 3825억원에서 1조 5950억원으로 늘었다. 신세계그룹은 유통·식품 분야의 경쟁사인 롯데·CJ 등이 오너리스크로 휘청거리는 사이에 복합쇼핑몰(스타필드하남·코엑스·고양) 등 신규 매장 오픈, 자체브랜드사업(노브랜드), 소주사업(이마트) 등 여러 분야에서 규모의 확대를 이뤄내고 있다.

반면 롯데그룹 일가는 형제간 경영권 불화,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불매운동 등 잇따른 악재가 주가에 반영되면서 재산이 늘지 못했다. 올해 30위에 오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재산은 1조2739억원으로 2005년 1조261억원(당시 5위)과도 큰 차이가 없다. 신동주 에스디제이 회장도 올해 재산이 1조1990억원으로 2005년 9643억원(당시 6위)과 차이는 크지 않다.

[박스기사] 대기업 오너가 3·4세로 세대교체 - 창업가·2세대의 도전·기업가정신 갖춰야


재계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5대 그룹의 경우 사실상 3세 또는 4세 경영진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의 장남 구광모(41) LG전자 상무가 지주회사인 LG의 등기이사로 선임되면서 LG가의 4세대 경영자인 구 상무로의 경영권 승계가 공식화됐다. 구 전 회장으로부터 지분승계 절차가 완료되면 또 한 명의 40대 총수가 탄생하게 된다.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은 3세대 경영인 이재용(51) 부회장에게로 승계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2014년 급성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누운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이 부회장이 그룹 경영을 이끌어 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5월 30년 만에 이 회장에서 이 부회장으로 삼성그룹의 동일인(총수)을 변경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다른 그룹에 비해 공식적인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세대교체 작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됐다. 공식적으로는 정몽구 회장이 아직 경영을 총괄하고 있지만 외아들인 정의선(49) 부회장이 대외 활동을 전담하며 경영 보폭을 넓혀가는 중이다. 최근 추진 중인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방안도 궁극적으로는 정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다.

5대 그룹 외에도 세대교체 분위기가 한창이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51) 회장이 지난해 초 회장직을 물려받으며 3세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6) 한화큐셀 전무는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인 태양광 사업을 총괄하며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정몽준 전 현대중공업 회장의 큰아들 정기선(37) 부사장은 지난해 11월 단행된 인사에서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까지 맡아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많다. 혁신과 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워런 버핏은 “2020년 올림픽 선수를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자녀 중 나이 많은 순으로 선발하는 셈”이라며 경영권 승계를 비꼬기도 했다. 경영 전면에 나선 이들에겐 도전정신과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 오늘의 한국을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만든 창업가 1세대와 그들의 기업을 물려받아 이끈 2~3세들처럼 말이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201807호 (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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