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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생각을 위한 작은 책들(8) 

아타르 & 피터 시스 『새들의 회의』 

김환영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수피 이슬람은 수많은 신학서와 문학서를 생산했다. 그중 백미는 12세기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 파리드 우딘 아타르가 쓴 『새들의 회의』다. 4500행이 넘는 우화시다.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들을 이끌 왕을 찾기 위해 떠나는 새들 이야기다.

신(神)과 인간의 관계는,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하고도 어려운 문제다. 어떤 이들은 신이 없다고 한다(우리 자신이 인간이기에 ‘인간은 없다’고 하는 이들은 없다). 어떤 이들은 신의 존재 유무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일부는 ‘신이 있건 없건 깨달은 인간은 신보다 위대하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인간이 신이요, 신이 곧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이들은 신과 인간은 별도의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신인합일(神人合一)이나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가능성을 꿈꾼다.

조선왕국에서 일종의 ‘국가종교’였던 유교, 서양과 동양이 우리나라에서 만났을 때 탄생한 천도교는 공통적으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을 말한다. 유교에서, 천인합일은 “하늘과 사람이 하나라는 말”이다. 천도교에서는 “한울님과 사람은 하나라는 말”이다. 이 ‘하나다’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자신들을 이끌 왕을 찾기 위해 떠나는 새들 이야기

이 ‘하나’의 문제는 세계 3대 유일신 신앙인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서도 다룬다. 특히 이 세 종교에서 파생한 신비주의는 유교나 천도교와 유사한,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슬람의 수피(Sufi)가 좋은 실례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수피에 대해 이렇게 나온다.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자. 금욕과 고행을 중시하고 청빈한 생활을 이상으로 하였으며, 알라와의 합일 경험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한때 이슬람 정통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몰리기도 하였다.”

‘신인합일’ 주장으로 한때 이단으로 몰렸지만, 수피 이슬람은 수많은 신학서와 문학서를 생산했다. 그중 백미는 12세기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 파리드 우딘 아타르가 쓴 『새들의 회의』(1177)다.

4500행이 넘는 우화시다.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들을 이끌 왕을 찾기 위해 떠나는 새들 이야기다. 수천 마리가 여정에 참가했는데 많이 죽었다. 중도 포기한 새도 많았다. 목적지인 산 정상에 있는 호수에 도달한 새는 30마리에 불과했다.

이 책의 국문판은 1991년 8월 1일 예하 출판사에서 류시화 번역으로 출판됐지만 아쉽게도 절판됐다. 출판 이후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다. 도서관이나 헌책방 말고는 이 책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

대신 영문판, 예컨대 펭귄클래식에서 출판한 아타르의 『새들의 회의(The Conference of the Birds)』(1984, 2011)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좀 길다. 262페이지다. 대안은 삽화가이자 어린이 책 작가인 피터 시스(Peter Sis)가 아타르의 작품을 재해석한 펭귄프레스판(2011) 『새들의 회의』다. 특이하게도 이 책은 페이지 번호가 없다. 세어 보니 140여 페이지다. 글보다 그림이 더 많다는 느낌이다.

피터 시스의 『새들의 회의』는 아타르의 원저의 원의(原意)를 손상하지 않고 압축했다. 글도 좋지만, 그림이 예술이다. 한 문장 한 문장 고심했다는 게 전달된다. 피터시스의 그림에는 글 못지않게 중요하고 재미있는 정보가 담겼다.

피터 시스가 재해석한 『새들의 회의』의 핵심 주인공은 후포(Hoopoe)다. 우리말로는 후투티, 오디새다. 머리에 관모(冠毛)가나 있고 부리가 긴 새다. 후포는 『새들의 회의』에서 지도자 역할을 수행한다.

모세를 연상시키는 주인공 후포


▎사진:피프티퍼센트노멀
어쩌면 우리 역사에서 후포와 가장 가까운 인물은 고구려 시조 고주몽, 즉 동명성왕(東明聖王, 기원전 58~19)이다. 주몽은 부여를 떠나 고구려라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 때 망설임이나 저항과 마주했을 것이다.

호포는 또 유대교·그리스도교 『성경』의 모세를 연상시킨다.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떠나야 한다는 모세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떠난 다음에도 이집트에 미련이 남아, 우리 비표준어로 ‘궁시렁궁시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몽과 모세는 친숙한 고장을 뒤로하고 무리를 이끌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났다.

『새들의 회의』의 문학적 모티브도 같다.

피터 시스가 재해석한 아타르의 『새들의 회의』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전 세계 새들이 모여서 회의를 개최했다. 새들의 유엔총회라고나 할까. 후포가 개회사를 한다. 회의를 개최한 목적은 세상의 무질서, 불만 등 온갖 문제를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뭔가 행동이 필요하다는 후포의 주장에 새들이 수긍한다.

후포는 “나는 모든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왕을 안다”고 주장하며 “그를 찾아 떠나자”고 한다.

후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 새가 이의를 제기한다. “이 왕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How do we know this king exists)?”

호포는 좀 빈약한 근거를 댄다(훌륭한 지도자라고 해서 항상 완벽한 근거나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 그의 깃털을 그린 그림이 있다”며 “그는 우리가 그로부터 떨어져 있는 만큼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다”는 뭔가 좀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한다(이 말은 책의 결론을 암시하는 문학적 장치다).

후포는 또 새들의 왕의 이름이 시모르그(Simorgh)이며 그는 ‘카프(Kaf)’라는 산에 산다고 주장한다. 시모르그는 서양의 불사조(피닉스·phoenix)에 해당하는 전설적인 새다.

후포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지만, 새들은 직감적으로 힘든 여정이 될 것을 알기에 주저한다. 상당수 새가 나름 편안하게 살고 있어서다.

새들은 ‘떠남’의 결과로 낯선 환경에서 고생하는 게 싫다. 의구심도 있고 공포도 있다. 그래서 새들은 떠나지 않을 이유를 주절주절한다. 예컨대 오리는 “나는 물 위에 떠 있는 게 행복하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다”라고 말한다. 나이팅게일은 “나는 사랑을 위해 산다. 내 장미와 나는 하나다. 어떻게 내가 내 장미를 떠날 것인가?”라고 묻는다.

원작자 아타르, 약방 경영했던 페르시아 사람


▎1. 21세기에 맞게 원저를 재해석한 피터 시스 / 2. ‘새들의 왕’ 시모르그 / 사진:포앤드식스티, 스미소니언 박물관 제공
모험이 두려워 남을 새는 남고, 리스크(risk)에도 불구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희구하는 새는 떠난다. 그 새들은 이륙한다. 대장정이 시작된다.

일단 후포를 믿고 통 크게 따라나섰지만, 후포가 새들의 신뢰를 온전히 확보한 것은 아니다. 불만은 계속 나온다. 중간중간 후포는 그가 이끄는 무리들을 ‘제압’해야 한다.

위기가 닥치면 후포는 사랑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사랑이라는 명분 앞에서는 사람, 새, 존재들이 ‘약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후포는 “사랑은 어려운 것을 사랑한다(Love loves difficult things)”며 새들을 달랜다.

‘새들의 주몽’, ‘새들의 모세’라 할 수 있는 후포는, 새들을 이끌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과 산맥을 넘는다. 그 과정에서 새들은 이것을 깨닫는다. “7개 대양은 빗방울이다…(The seven oceans are drops of rain…).”

후포를 믿지 못하는 새들은 속속 비행 편대에서 이탈한다. 후포를 믿는 새들은 7개 계곡(valley)을 하나씩 하나씩 넘는다. 계곡은 깨우침(enlightenment)을 얻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을 상징한다.

그들이 넘은 첫 번째 계곡의 이름은 탐구(Quest)다. 두 번째 계곡은 사랑(Love), 세 번째 계곡은 이해(Understanding), 네 번째 계곡은 ‘거리를 둠(Detachment)’, 다섯 번째는 통합(Unity), 여섯 번째는 놀라움(Amazement), 마지막 일곱 번째는 사망(Death)이다.

지도자로서 후포는 새들에게 모든 집착(obsessions), 권력, ‘소중한 모든 것’을 버리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후포의 강요가 버거운, 각자의 집착을 버릴 수 없는 어떤 새들은 계속 떠난다.

예컨대 세 번째 계곡인 ‘이해’에서 이렇게 항의하는 새도 있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 이해의 계곡에서는 이해가 없다.”

무작정·맹목적이건 어떤 합리적인 이유에서건 후포를 신뢰한 새들은 카프(Kaf)산에 드디어 도달한다. 카프산은, 환웅이 풍백·우사·운사와 3천 무리를 거느리고 내려온 태백산(太白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로 치면 올림포스산, 유대교·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모세가 신을 만났다는 시나이산이다.

어떤 불타는 목마름 때문에 여정을 계속한 새들은 드디어 그들이 너무나 보고 싶었던 새들의 왕을 만난다.

새들의 신, 새들의 왕인 그를 만나고 보니… 시모르그 왕은 마지막까지 인내심으로 그곳에 찾아간 자기 자신들이었다.

아타르의『새들의 회의』를 재해석한 피커 시스는 1949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삽화가, 작가, 영화 제작자다. 중요한 상을 아주 많이 받았다.

원작자인 아타르는 이슬람교, 그중에서도 수피 신앙에 충실했던 페르시아 사람이다. 니샤푸르에서 태어나 원래는 약방을 경영했다는 아타르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확실한 것은 아타르가 그가 살던 시대의 ‘표준적인 사고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박해를 받았으며,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귀양살이를 했다. 그가 몽골군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수피 이슬람 입장에서 신인합일을 주장하는 이 책을 21세기 버전에서 세속적으로 재해석할 수도 있다.

우선, 새들처럼 미지의 세계로 떠나려면, 나는 누구인가,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고 답을 얻어야 한다.

내가 진짜로 바라는 것은 뭘까. 돈·권력·명예? 부모 형제, 부모 자식 간의 화합? 사람마다 답이 다르다. 남이 제시한 질문과 답을 추종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과 맞는 질문과 답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알고 집중한 결과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오프라 윈프리가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2008년 6월 15일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Oprah Winfrey’s speech at Stanford’s Commencement ceremony Sunday, June 15, 2008)에서 “내가 들어본 최고의 칭찬 중 하나는 한 기자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그 기자는 윈프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정말 바뀌지 않았군요. 당신은 그저 더 당신답게 되었군요(You really haven’t changed. You’ve just become more of yourself).”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파악한 다음에는, 자신의 바람을 가로막는 요인들이 어떤 게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두 번째 질문은, ‘내가 바라는 것을 얻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목표에 매진하는 데 내가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다.

세 번째 질문은 ‘당신은 멘토가 있는가’다.『새들의 회의』에서 멘토는 후포다. 당신을 이끄는 멘토십(mentorship) 담당자가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하려면 좋은 책을 최소한 세 권은 읽어야 한다. 그 세 권이 당신의 멘토다.

네 번째 질문은 ‘당신은 어느 단계까지와 있는가’다. 우리는 단계적으로 발전한다.

끝까지 한번 가보겠다는 사람에게는 ‘믿음’도 필요하다. 믿음의 대상은 불법(佛法)일 수도 있고 신(神)일 수도 있고 천명(天命)일 수도 있다.

아타르의 인식을 확장한다면, 우리는 신성(神聖)과 인성(人性), 불성(佛性)과 인성(人性)이 불이(不二)라는 것을 깨달을 때 상당히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우리네 인생을 행복을 향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 김환영은…지식전문기자. 지은 책으로『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가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석사, 정치학 박사)에서공부했다.

201807호 (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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