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디지털의 미래는 아날로그’라고 말한다. 디지털이 절대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온도 36.5℃라는 것이다. 최근 LP 레코드판이 아날로그의 재평가를 이끌어내고 있다. 편리한 것보다는 진짜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LP 레코드판은 진짜가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최근 LP 레코드판이 기술과 연합해 1020세대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백희성 마장뮤직앤픽처스 실장은 10년 전부터 LP 기계를 공부하며 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서울 마장동 마장뮤직앤픽처스에서 만난 백희성 실장이 LP 기계 앞에 서 있다. / 사진:S.T.듀퐁클래식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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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만들어진 마장스튜디오. 지하철 5호선 마장역 3번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요즘은 흔치 않은 단층 건물이라 눈에도 쉽게 띄었다. LP 전성기였던 당시 마장스튜디오 근처엔 레코드 가게가 많았다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마장스튜디오 내부는 박물관처럼 세월을 간직하고 있었다. 꽤 넓은 스튜디오엔 과거의 녹음 시설과 레코드 장비, 기록들까지 갖추고 있었다.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듯 고요했다. 백희성 실장은 “스튜디오를 지을 당시 바닥을 고른 후 고운 모래를 깔고 그 위에 고무판을 덮고 시멘트를 깔았다”고 했다. 벽은 시멘트가 아닌 돌을 사용해 만들었다. 고 김광석의 노래를 녹음했던 레코드판이 놓인 책상에 송길영 부사장과 백희성 실장이 나란히 앉았다.
송길영: 공간이 멋지다. 하지만 요즘은 디지털 기기가 발달해 집 안에 스튜디오를 마련하는 경우가 많더라. 어떤 차이가 있나?
백희성: 소리와 공간은 중요한 관계다. 디지털은 스튜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잔향을 소프트웨어로 만들어내야 한다.
송길영: LP가 10년 넘게 부침이 있었다. 어떻게 버텼나?
백희성: 아날로그가 좋고 LP가 좋아서 버텼다. 이전엔 음향 엔지니어였고 10년 전부터 LP 관련 기계를 꾸준히 공부했고 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LP 기계를 사 모으고 기계를 마스터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배웠다. 이 공간 역시 1년 넘게 설득해 설비 일체를 넘겨받아 이용하고 있다. 신중현 선생님 등이 작업하던 곳이다.
송길영: 이 스튜디오가 가장 빛을 발했던 시기는 언제인가?
백희성: 1970년대다. 당시엔 레코드 공장에서 프레스를 거친 후 식지도 않은 레코드판을 전국 도매상이 줄을 서 가져갈 만큼 인기였다고 들었다.
송길영: 스튜디오와 공장, 레코드 가게가 꼭 근처에 있어야 했던 이유가 있나?
백희성: LP판을 제작하기 위한 원판이 동판이다. 알루미늄에 페인트 재질을 입히고 루비로 된 바늘로 음을 새긴다. 마스터 판, 마더 판, 스템퍼 판의 과정을 거치는데 판이 매우 예민하다. 골 하나가 머리카락보다 얇기 때문에 작은 먼지라도 소리에 영향을 끼친다. 레코드 가게가 멀리 있으면 음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세 곳이 가까이 있어야 했다.
송길영: LP 수요가 늘고 있나?
▎백희성 실장과 송길영 부사장이 마장뮤직앤픽처스 스튜디오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 사진:S.T.듀퐁클래식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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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성: 세계적인 추세기도 하고 국내도 마찬가지다. 2008년부터 매년 20~30%씩 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레코드 페어에 참석해보니 추억을 더듬어 LP를 찾는 수요도 있지만 30%가 넘는 구매자가 1020세대였다. LP는 5060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송길영: 예전처럼 밀리언 셀러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백희성: 과거만큼은 아니겠지만 기획에 따라 다른 것 같다. 60년대에 발매된 클래식 요한나 마르치 바흐 앨범은 상태 좋은 제품이 온라인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서 1500만원 정도에 판매되는데 이마저도 흔치 않다. 이 경우 3장짜리로 찍어서 판매했는데 물량이 꽤 많았는데 매진됐다.
송길영: 2000~3000장 판매해서 운영이 가능한가?
백희성: 판매량이 월 10만 장은 넘어야 한다. LP 레코드판 시장이 한정돼 있지만 프레스를 대량으로 사서 찍진 못하고. 성수동 공장에선 일 1000장가량 제작한다. 설비 늘리면 10만 장도 넘길 수 있다.
송길영: 이익이 남기 어려운 것 같은데 왜 하나?
백희성: 아무도 안 하니 오기도 생기고 또 누군가는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다. 다시 말하지만 아날로그가 좋다. ‘아날로그의 끝이 LP’라는 말에 동의하기 때문에. 아날로그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수가 늘기도 줄기도 하지만 말이다. 소니(SONY)사에서 29년 만에 LP판을 다시 만들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송길영: 레코딩 엔지니어 하시던 분들은 뭐하시나?
백희성: 대부분 직업을 바꿨더라. 기술이 발달하면서 업을 잃었다. 컴퓨터가 많은 영역을 침범했다. 클릭 몇 번으로 좋은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좋은 것은 빨리 받아들이되 불편한 건 금세 없어지는 세상 아닌가?
송길영: 여기 스튜디오 장비들은 대부분 과거 제품들인 것 같다.
백희성: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긴 하지만 대부분 수리해서 계속 사용하고 있다. 1947년에 만들어진 마이크도 수리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미국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가 자주 쓰던 모델이라고 알고 있다.
송길영: 5년 전 교보문고에 진열돼 있던 LP플레이어가 판매되기 시작하더니 지금도 꾸준히 판매된다. 향수에 대한 감수성이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드는 것 같다.
백희성: LP 소리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소리는 기쁨도 주고 슬픔도 준다.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과 공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이처럼 아날로그는 정해진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있다. 게다가 LP 레코드판 자체는 소비가 아닌 소유의 즐거움도 있으니 매력을 느끼는 것 아닐까.
송길영: 소리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음향 기기에 상당한 돈을 쓰는 사람도 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소리에 관심을 가지다 집을 팔고 나중엔 소리에 맞춰 집을 짓는다’는 말도 있다. 심지어 오디오가 잘 나오려면 전기가 좋아야 한다는 소리도 있더라.(웃음)
백희성: 그 정도로 예민하게 듣는 사람이 있나 보다. 다만 여기 스튜디오에 와서 소리가 좋다고들 하는데 사실 여기에 있는 LP플레이어 카트리지는 1만5000원짜리다. 아주 비싼 카트리지를 사용하시는 분이 깜짝 놀라더라. 소리에 대한 만족과 기호는 저마다 다른 것 같다. 난 개인적으로 좋은 소리를 들으려면 좋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송길영: 과거와 달리 LP가 매스마켓보다는 니치마켓에 적합한 느낌이다. 개인이 소장용으로 만드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주 52시간 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음악을 배우는 사람도 늘어날 테니까 말이다.
백희성: 실제로 한정판 관련 문의가 꾸준히 들어온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LP 레코드판 자체에 접목할 수 있는 디자인적 요소도 상당히 많다.
송길영: LP 레코드판은 수명이 어느 정도인가?
백희성: 500회 정도 재생하고 나면 음질이 변한다.
송길영: 과거 중구 황학동에서 백판(불법 복제 LP)을 팔았다. 하지만 음질엔 차이가 있었는데 이유가 뭔가?
백희성: 우선 원판이 없으니 세밀한 가공이 어렵다. 무엇보다 LP 레코드판은 공장 환경이 매우 중요한데 백판을 찍어내는 공장은 시설이 좋을 수 없었을 거다.
송길영: 기술이 발달돼 3D 프린터가 나왔다. LP 레코드판 생산 방식에도 변화가 있을까?
백희성: LP 레코드판이란 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PVC다. 재질 면에선 3D 프린터로 가능하겠지만 아직은 1장 생산하는데 몇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소리의 밀도에도 차이가 난다. 판을 찍어낸 후 냉각온도, 먼지 제거 등 판을 생산하는 데 다양한 작업이 추가돼야 한다.
송길영: LP 관련 산업이 주목을 받으면 후 세대를 길러내기 위한 방안도 생각해야 할 텐데.
백희성: 난 작은 것을 배우기 위해 큰 좌절을 겪었다. “굳이 이걸 왜 배우냐”며 가르쳐주지 않으려는 선배도 많았다. 하지만 난 잘 가르쳐주고 싶다. 이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송길영: 다른 사람들과 거꾸로 가고 있어 흥미롭고 또 응원하게 된다. 셔츠 소매에 새긴 ‘음악을 새기다’는 무슨 의미인가?
백희성: 난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이다. 말 그대로 음악을 판에 새기는 일을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잊지 않으려 새긴다는 의미도 있다.- 대담 송길영(Mind Miner) 진행·정리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