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병역(兵役), 인류, 현실 

군대에선 사회적 경력 단절보다 더 귀한 인생 경험을 얻을 수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철저하게 타의에 지배되는 삶’이다. 

노성호 뿌브아르 대표

최근 병역 논쟁이 불거졌다. 손흥민 선수가 아시안게임 축구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을 면제받은 일에는 국민 대부분이 박수를 쳐주면서 똑같이 금메달을 딴 야구대표팀의 몇몇 선수에게는 조소를 보냈다. 여기서는 병역면제와 같은 사회적 이슈보다 병역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옮길까 한다.

필자는 1981년 12월 군에 입대해 약 2년 반 후 병장으로 제대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좋아졌다는 현재의 군대 경험과 많이 다를 수 있음을 밝혀둔다. 필자는 하루빨리 군대가 사라진 지구가 되어야 한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또 한반도로 시야를 좁혀도 군대가 없는 국가 시스템이 현재보다 월등하게 좋은 시스템이란 것도 인정한다. 다만 현실이 병역과 군대라는 단어를 소멸시키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젊은 시절 군대라는 폐쇄된 조직에 거의 감금 당해 2년여를 보내야 한다는 건 분명 사회적 손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보면 배울 점도 한두 개 챙길 수 있다. 여기서는 좋은 점만 살펴보기로 하자.

무엇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격언을 실천할 수 있다. 물론 제대해서 사회를 경험해보니 사회생활이 더 고생스럽고 힘들다. 그러나 군에 갈 20대 초반은 아직 사회를 잘 모를 때다. 따라서 젊어서 고생하는 걸 경험하는 곳으로 군대는 적절한 방편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 경력 단절보다 더 귀한 인생 경험을 얻을 수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철저하게 타의에 지배되는 삶’이다.

생각만 해도 숨 막히지만 어차피 폐쇄된 사회인 데다 상명하복이 살아 있는 군대에서 자신의 의지는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다. 분명 나쁜 경험이지만 넓게 보면 ‘군에 있는 모두가 같은 삶’을 산다. 이때만큼은 모두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숨을 쉰다. 타의에 지배되기에 군대 내에서는 철저하게 ‘리셋(Reset) 삶’이 시작된다.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평등한 사회를 경험하게 된다. 학력의 높고 낮음이나 개인의 사회성, 종교적 성향, 부와 가난함 등은 모두 사라지고 ‘리셋’으로 시작된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공산주의와 독재를 강제로 경험하는 시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제대 후 몇 년 지난 뒤 뒤돌아보면 ‘세상은 공평한 면도 있구나’, ‘인생도 어떤 면에서 평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우연히 생각한 것 하나. 2차 세계대전 이후 국력이 급성장한 국가를 보면 대부분 징병제를 겪은 나라였다. 일본이 그랬고 1970년대 이후에는 한국, 대만, 이스라엘이 그랬다.

군대가 없는 국가, 무기가 사라진 지구가 최선이다. 그러나 아직 인류는 전쟁이 필요 없을 만큼 진화하지 못했다. 이게 슬픈 현실이다.

- 노성호 뿌브아르 대표

201810호 (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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