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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빌색 미국유제품수출협의회 대표 

“미국산 치즈로 맛의 모험을 떠나다” 

정심교 기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미국인이 있다. 바로 톰 빌색 전 미국 아이오와 주지사(1999~2007년) 및 농무부 장관(2009~2017년)이다. 이미 성공 가도를 완주한 것 같지만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2월 미국유제품수출협의회 새 수장을 맡은 것. 뜻밖에도 그가 손을 내민 대상은 치즈를 사랑하는 한국인이다. 치즈떡볶이·치즈불닭처럼 한식에 치즈를 넣어 먹는 게 익숙한 우리에게 그가 찾아왔다.

▎지난 8월 27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만난 톰 빌색 미국유제품수출협의회 대표.
그간 흔히 한국의 김치를 서양의 ‘이것’으로 비유하곤 했다. 바로 치즈다. 둘 다 발효식품이란 공통점이 있어서다. 그런데 요즘엔 치즈를 더는 ‘서양 식품’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 국민의 식탁에 친숙한 식품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국내 유제품(우유를 가공한 제품) 수요가 매년 오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는 시유(원유를 살균하고 적당한 분량으로 포장해 시중에 내놓은 우유)·발효유·치즈 같은 유제품을 총 409만1871㎏을 소비했다. 국민 1인당 79.5㎏씩 먹은 셈이다. 2008년(60.9㎏) 60㎏을 찍고, 2013년(71.3㎏) 70㎏을 넘겼으니 80㎏ 돌파는 시간문제다. 2016년 국내 유제품 시장은 6조5034억9200만원(생산액 기준, 통계청) 규모로 형성돼 있다. 국내 유제품 수요가 많아지면서 유제품 수입량도 늘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7년 유제품 수입량은 33만9434톤(12억2353만8000달러)으로 2016년 31만5246톤(9억9865만5000달러)보다 1년 새 7.6%가 늘었다.

이에 해외 유제품 업계가 한국의 수입 유제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눈독을 들이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현재 미국산 치즈의 아시아 최대 시장이 한국이라는 점에서도 미국의 적극적인 ‘대시’를 이끌어내고 있다. 톰 빌색이 이끄는 미국유제품수출협의회(U.S. Dairy Export Council, USDEC)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유제품을 세계 각국에 많이 수출할 수 있게 지원하는 기관이다. 유제품 생산업체, 생산조합, 무역 관련 기관 등 미국 내 120개사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톰 빌색 미국유제품수출협의회 대표가 지난 8월 26~29일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8월 27일 서울 새문안로에 있는 포시즌스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이번 방한 목적은 뭔가?


기존 미국산 유제품의 고객사들을 만나 유제품 소비 현황, 미국산 유제품에 바라는 점 등을 파악하려 한다. 이는 미국산 유제품의 수요를 늘리기 위한 것이다. 한국을 포함해 어느 나라에서든 현지 유제품 업계와 상생해야 한다는 철학을 고수한다. 이번 방한이 한국 유제품 시장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세계 유제품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세계적으로 치즈를 비롯한 유제품 수요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세계 인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중동·북미 중산층의 생활수준이 높아진 것도 유제품 수요를 높일 것이다. 요즘 소비자는 똑똑하다. 유제품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예전엔 유아를 위한 분유 위주였다면 이제는 노년층, 운동선수, 회복 중인 환자 등 유제품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층이 다양해졌다. 미국에서 지난 6개월간 생산량이 17% 늘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 어떤 시장인가?

미국 유제품은 멕시코·캐나다·중국에 가장 많이 수출된다. 일본은 5위, 한국은 10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장은 미국 유제품 업계에 중요한 나라다. 미국은 한국 유제품 중 치즈·파우더·락토오스(lactose)의 가장 큰 공급자고, 유청(젖을 가만히 놓아두었을 때 위에 고이는 노르스름한 물)은 네덜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유제품 업계는 버터·유청·분유 등을 중국에 41만 6000톤(5억7700만 달러), 한국엔 8만7000톤(2억8000만 달러)을 수출했다. 단순 수치로 보면 중국이 훨씬 큰 시장이지만 관세 변동이 심해 시장 예측이 불확실하다. 이에 비해 한국 유제품 시장은 안정적이며 하이밸류(고품질) 제품으로 이뤄져 있다. 그간 미국에서 생산된 유제품의 평균 15%는 해외로 수출됐다. 향후 20%까지 수출 비중을 늘리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주요 수출국인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을 주목한다. 이를 위해 한국지사에 더 투자하고 코스트코 같은 대형 유통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어 소비자가 미국산 유제품을 잘 구매하게끔 유통망을 구축할 예정이다.

발효식품은 건강과 장수의 비결로 꼽힌다. 미생물은 발효를 통해 원재료보다 유익한 물질을 만들어낸다. 우리 몸이 흡수하기 좋도록 아미노산을 분해하기도 한다. 콩이 발효하면 된장이 되듯 우유가 발효하면 치즈나 요구르트(유산균 발효유) 같은 유제품이 된다.

그렇다면 톰 빌색 대표는 발효식품에 대해 어떻게 주목할까? 그는 “발효라는 화학반응을 거쳐 음식의 식감, 영양학적 가치와 맛, 활용성이 원재료와 달라지는데 그런 이유로 식품·외식 업계에서는 발효식품을 음식에 다양하게 활용하고 싶어한다”며 “이런 수요에 맞춰 미국산 유제품을 생산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산 유제품이 좋은 이유는?

5가지로 설명하겠다. 첫째, ‘충분한 공급량’이다. 미국은 땅이 넓고 자원이 풍부하다. 다른 나라의 유제품 생산 환경과 비교해 1년 내내 품질이 균등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

둘째, ‘안전성’이다. 세계적으로 미국처럼 까다롭고 정직하게 유제품 생산 시스템을 운영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자부한다. 소비자가 믿고 소비할 수 있는 안전한 제품을 생산한다.

셋째, ‘지속 가능성’이다. 미국의 유기농법 수준은 환경에 대한 지속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 지속 가능한 농업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한다.

넷째, ‘혁신적 제품’이다. 미국산 유제품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개발한 신제품을 출시하려 노력한다. 창의적인 제품을 좋아하는 한국 소비자와 잘 어울린다. 한국인은 매운 떡볶이에 치즈를 넣어 음식을 부드럽게 만들 줄 안다. 미국 유제품 업계는 고객의 요구를 제품에 반영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다.

다섯째, ‘좋은 품질’이다. 미국산 유제품의 품질은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선 치즈 애호가들이 맛의 모험을 펼치고 있다. 중간중간에 미국산 유제품을 시도해보길 바란다. 맛의 모험에서 절정을 이뤘다는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웃음)

그는 미국 농무부 장관으로 8년간 재직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가장 오랫동안 장관직을 유지한 것으로 기록을 세웠다. 그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미국의 농업 활성화에 전력을 쏟았다. 그의 장관 시절 이야기가 궁금했다.

장관 재직 시절 대표적인 업적은 뭔가?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당시 농무부에서 맡은 임무가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중 다섯 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첫째, 농지를 더 엄격히 관리하고 농업용수를 더 잘 확보하도록 투자 유치에 힘썼다. 농업 환경부터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둘째, 미국산 농산물의 장점을 해외에 열심히 홍보해 수출을 장려했다. 그 덕분에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미국산 농산물의 수출량이 기록적으로 증가했고 농가 수입도 덩달아 높아졌다. 셋째,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치해 농촌에 일자리를 창출했다. 농부가 농촌을 떠나지 않게, 농촌에 오래 머물며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게끔 노력했다. 넷째, 질병 관리 시스템을 다졌다. 농사일을 하다 보면 농작물의 질병 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있는데 농무부는 질병 컨트롤타워로서 농가가 안정적으로 농업에 임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다섯째, 소수민족 출신의 농부가 농촌에서 차별 없이, 정의롭게 일하도록 기반을 다지는 데도 힘썼다.

장관으로 일한 경험이 새 업무에 도움되나?

아직 이점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하기엔 이르다. 그래도 큰 조직(농무부)에서 큰 예산으로 많은 직원과 일해본 경험이 그보다 작은 조직(미국유제품수출협의회)에 집중해 정책을 적극적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

1950년 12월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보육원을 거쳐 지금의 부모에게 입양됐다. 가정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교육열이 높은 양부모 덕분에 그는 뉴욕 해밀턴대에 입학해 변호사가 됐다. 불확실한 미래로 불안해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조언을 한다면?

젊은 시기를 힘들게 보내고 있다면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우선 그 장애물을 절대 혼자서 이겨내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사랑하고 신뢰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부모·형제·선생·이웃 등 적어도 한 명 이상은 있다. 그 사람에게 찾아가 어려움을 토로하고 함께 극복하길 권한다.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재 내 인생의 절친이자 내가 기대고 싶은 사람은 와이프다.(웃음) 또 다른 조언을 하자면 자신이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 2가지를 실천하기 위해선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배우는 데 힘쓰며 나를 믿어주는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성공한 삶이다. 나는 행운아다. 물론 어렸을 때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새어머니는 내게 중요한 교훈을 줬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새아버지는 비록 성공한 사업가는 아니었지만 교육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가르치겠다는 신념이 강했다. 부모님의 교육열 덕분에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고 장관까지 오를 수 있었다.

-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810호 (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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