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과 마카오 최고 부자로 꼽혀마카오는 전통적으로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 마카오 반도와 그 남쪽의 타이파섬과 더 남쪽의 콜로아느섬이다. 마카오 당국은 1960년~90년대에 타이파섬과 콜로아느섬 사이의 좁은 바다를 매립하는 간척사업을 벌여 5.2㎢ 면적의 부동산을 확보했다. 이 땅에는 콜로아느와 타이파를 합성한 코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마카오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초대형 복합 리조트가 줄줄이 들어섰다. 카지노에 호텔과 전시·회의·오락·관광 시설을 결합한 신개념 관광단지다. 바로 이곳이 마카오의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구역이다.이 도시의 최고 부자는 올해 97세인 스탠리 호(何鸿燊: 중국어로 허홍셴, 광둥어로 호훙산) 명예회장이다. 홍콩 출신으로 마카오와 홍콩 모두에 적을 두고 있으며, 이 두 도시 모두에서 부자 1위에 올랐던 인물이다.호 명예회장은 마카오의 카지노 업자다. 이 부자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52층짜리 그랜드 리스보아 호텔을 소유하고 있다. 횃불 모양의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한 이 호텔은 2008년 12월 영업을 시작했으며 430개 객실을 보유한다. 호텔보다 먼저 2007년 2월 개장한 호텔 카지노는 게임 테이블 800개와 슬롯머신 100개를 운영한다. 호 명예회장은 카지노 도시 마카오에서 그랜드 리스보아 호텔 카지노를 포함해 모두 19개 카지노를 운영한다.도박 도시 마카오의 역사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르투갈 정부는 1850년대부터 자치 식민지였던 마카오에 도박을 합법화했다. 그때부터 마카오는 ‘전 세계 도박 수도’, ‘동방의 몬테카를로(모나코의 이탈리아어식 표현)’로 불렸다. 도박 관광은 마카오 재정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1962년부터 호 명예회장에게 독점권을 부여해 안정적으로 수입을 챙기던 포르투갈 총독부는 1999년 마카오의 주권을 중국에 넘기고 떠났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회귀하자 포르투갈도 그 뒤를 따른 셈이다. 마카오를 차지한 중국은 그 3년 뒤인 2002년 독점권을 폐지했다. 그 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샌즈 그룹을 비롯한 전 세계 카지노 리조트 업체가 마카오에 대거 투자했다.호 명예회장은 오늘날 마카오의 번영을 지탱하는 카지노 산업에 1962년 뛰어들었다.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이다. 당시 마카오 총독부는 현지 유력 기업인인 호 명예회장에게 카지노 독점권을 부여했다. 한 기업인에게 독점권을 준 것은 세수를 얻기도, 관리하기도 편리했기 때문이었다. 총독부 입장에서는 여러 사람에게 허가를 내주면 관리도 어렵고 세금이 샐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면에 어떤 거래나 계약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호 명예회장은 총독부의 신뢰를 얻어 안정적으로 카지노를 운영했다. 호 명예회장의 독점은 1999년 마카오가 중국의 일부로 회귀한 지 3년 만인 2002년에 끝났다. 사업을 시작한 지 40년 만이다. 그동안 호 명예회장은 별 잡음 없이 사업을 이끌었다. 보통 내공으론 힘든 일이다. 총독부가 그에게 특혜를 준 것은 그가 신뢰를 심어줬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2세 경영체제에 들어가호 명예회장은 마카오에서 카지노 사업을 시작한 1962년 설립한 STDM(The Sociedade de Turismo e Diversoes de Macau)의 소유주로 현재까지 군림하고 있다. 이 회사가 마카오 도박장을 독점하던 40년 동안 호 명예회장은 ‘도박의 대부’, ‘도박왕’으로 불리며 마카오 경제를 호령했다. STDM은 도박 독점이 깨진 뒤에도 여전히 마카오를 지배했다.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것은 40년간의 카지노 독점이 아니라 그 이후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는 이 도시에서 영업하는 30개 카지노 가운데 16개를 운영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부동산 개발, 교통시설 운영 등 다양한 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로서 중화권과 아시아권은 물론 호주에도 진출했다. 그가 카지노 독점으로만 돈을 번 관변 경영인이 아니라, 실제로 다양한 산업을 보는 눈이 있으며 과감하게 투자하는 결단력이 있음을 보여줬다.실제로 호 명예회장은 마카오와 홍콩에 엄청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카지노는 물론 관광·해운·항공·부동산 임대·금융 등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마카오 취업인구의 4분의 1이 그가 주는 급료를 받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마카오에선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자랑한다. 아울러 중국 본토는 물론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와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동티모르와 모잠비크에도 투자하고 있다. 북한에도 일부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끈다. 1971년까지 마카오와 홍콩에서 묵인됐던 중혼을 통해 부인 4명을 동시에 두고 17명이 넘는 자녀를 낳았다.호 명예회장은 이미 2세 경영체제에 들어갔다. 자신의 재산을 분할해 딸인 팬시 카탈리나 호(何超瓊, 중국어 허차오춍, 광둥어 호추킹, 56)에겐 노른자위인 MGM 마카오를 넘기고 STDM을 비롯한 다양한 지주회사의 이사직도 함께 맡겼다.MGM 마카오는 마카오 중심부에 있는 35층짜리 MGM 그랜드 마카오 건물에 600개 호텔 객실과 카지노를 운영한다. 이 업체는 팬시 호와 미국 MGM 리조트 인터내셔널이 50대50으로 지분을 각기 보유, 운영하고 있다. MGM 리조트 인터내셔널은 미국 네바다주 페러다이스에 본사를 둔 카지노 리조트 운영회사로, 카지노 호텔 체인 중에서는 시저스 엔터테인먼트에 이어 세계 2위다. 2002년 MGM 그랜드와 미라지 리조트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미국의 거대 자본을 끌어들임으로써 재정은 물론 정치적인 안위도 보장받으려고 한 셈이다.포브스는 지난 3월 세계 부자 순위를 매기면서 팬시 호의 재산을 53억 달러로 평가해 세계 365위에 올려놓았다. 팬시 호의 사업은 부친의 대명사인 카지노 산업에 머물지 않는다. 홍콩과 마카오의 부동산 개발 회사로 그의 부친이 창업했던 선택 홀딩스도 운영한다. 이 회사는 두 도시를 잇는 페리 회사와 여러 호텔도 함께 관리한다. 팬시 호는 명실상부한 스탠리 호 그룹의 상속녀가 될 전망이다.호 명예회장은 넷째 부인인 안젤라 렁(梁安琪: 중국어 량안치, 광둥어 렁온케이, 57)에게는 지주회사인 STDM의 이사직을 맡겼다. 안젤라 렁은 마카오 특별행정구 입법원 의원도 맡고 있다. 중국 광둥(廣東)성 포산(佛山)시 싼수이(三水)구 출신으로, 40년 차이가 나는 호 명예회장의 댄스 강사로 일하다 1986년 결혼했다. 호 명예회장과 사이에 4자녀를 두었다. 안젤라 렁은 2017년 11월 영국 런던에 2억5000만 파운드의 고가 부동산을 매입하면서 뉴스 메이커가 됐다. 씀씀이가 헤픈 게 아니라 부동산 투자를 위해서다. 렁은 남편에게 받은 재산을 부동산에 투자해 2017년 기준으로 미화 41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1962년 STDM 설립 후 카지노 사업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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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로렌스 호 ‘시티 오브 드림스’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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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샌즈 그룹과 치열한 경쟁 중2009년 6월 1일 코타이에 문을 연 ‘시티 오브 드림스’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우선 1400개 객실을 갖춘 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CoD’ 또는 ‘CoD 마카오’라는 애칭을 불리는 이 시설은 하드록 카페를 포함한 하드록 호텔 1개 타워, 크라운 타워 호텔 1개 타워, 그랜드 하얏트 호텔 2개 타워 등 모두 4개 타워로 이뤄졌다. 47층짜리 호화 아파트 블록이 근처에 세워질 예정이다. CoD의 3개 층은 복합 리조트 시설이다. 메가카지노와 200개 쇼핑 시설, 호텔 고객용 시설로 이뤄졌다. 카지노 게임장 시설은 3만9000㎡ 면적에 450개 게임 테이블, 1514개 슬롯 머신, 20개 식당, 그리고 마카오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바를 포함한 다양한 오락 및 휴식 시설로 이뤄졌다. CoD가 특히 자랑하는 시설은 1만6500㎡에 이르는 쇼핑 공간이다. 대형극장 2개와 아쿠아리움, 워터쇼 시설도 갖췄다.단순히 공간 면적으로 승부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함께 이 공간에 머무는 인간의 편리함·안락함을 추구함으로써 더 많은 고객을 모으겠다는 전략이다. 이로써 에덜슨 회장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불사르고 있다. 스탠리 호는 아들 로렌스를 통해 자신의 DNA와 경영 스타일을 21세기에 되살리고 있다.
※ 채인택은…중앙일보 피플위크앤 에디터와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국제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역사와 과학기술, 혁신적인 인물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