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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사모펀드] 국내 사모펀드 리더들 

‘은둔의 투자자’에서 ‘게임 체인저’로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사모펀드(PEF)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지난 10년간 PEF 시장을 이끌어온 리더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과거 ‘은둔의 투자자’로 불렸지만 최근엔 시장 판도를 흔드는 ‘게임 체인저’로 나섰다. 하버드대·골드만삭스 출신들이 눈에 띈다.
사모펀드(PEF) 업계는 자본시장에서 전쟁터로 비유된다. 수조원대 자금이 기업 인수합병(M&A)에 동원되고, 정보와 보안 유지는 첩보전을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경영개선 성과가 좋아 투자금 대비 두세 배 차익을 남기기도 하지만 빈손으로 나와야 하는 상황도 적지 않다. 지난 10여 년 동안 PEF 업계를 리드해온 이들에게 “산전수전은 물론이고 공중전까지 치른 인물들”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2009년 자본시장법이 시행되자 국내엔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기업이 속속 등장했다. 그해에만 110개가 인가를 받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식과 채권 가격의 동반 급락 탓에 투자처를 잃은 기관투자가들이 PDF에 주목하면서 시장이 성장했다. 척박했던 국내 PEF 시장이 대형화되고 금융업계에서 성장 잠재력이 가장 큰 분야가 되기까지는 외국계 대학 출신의 활약이 있었다.

국내 PEF업계를 주름잡는 외국계 학맥은 단연 하버드 경영대학원이다. 아시아 상위권 PEF운용사를 이끄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 임유철 H&Q코리아 대표, 송상현 KTB프라이빗에 쿼티 대표가 모두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IB업계 관계자는 “국내 사모펀드는 해외파를 선호한다. 청소년기부터 미국 내 주류사회 경험이 있어 인맥이 남다르고 이미 선진국의 투자기법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PEF 주류는 하버드대·골드만삭스 출신

국내 PEF 리더들은 주로 골드만삭스에서 실력을 쌓았다. 골드만삭스가 ‘사모펀드 사관학교’로 불리는 이유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안상균 앵커에쿼티파트너스 대표, 김수민 유니슨캐피탈 대표, 이상호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 대표 등이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또 TPG(텍사스퍼시픽그룹)의 이승준 전무, 유니슨캐피탈의 신선화 전무도 이곳 출신이다.

IB업계에 따르면 골드만삭스 한국지사에서는 최근 2년간 10여 명이 PEF 운용사로 옮겼다. 모두 M&A를 담당하던 부서 출신이다. 시작은 골드만삭스 입사 15년 만인 2017년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 대표로 간 최동석 전 골드만삭스 공동대표였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전역에 포진한 골드만삭스로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출신의 토종 사모펀드 대표들이 경쟁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한상원 한앰컴퍼니 대표 | 제조, 레저 이어 금융권도 속속 접수 - 1971년생. 예일대-하버드대 MBA-모건스탠리PE 한국대표 겸 아시아총괄 최고투자책임자(CIO)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사위로, 모건스탠리PE 아시아총괄 최고투자책임자(CIO) 등을 거쳤다. 모건스탠리PE 한국대표 당시 쌍용(현 GS글로벌), 현대로템 등 주요 딜을 주도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20년간 소니코리아를 이끈 윤여을 회장과 손잡고 2010년 한앤컴퍼니를 만들어 현재 업계 2위에 올려놓았다.

한앤컴퍼니는 설립 1년 만인 2011년 80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펀드를 조성했으며 설립 5년 만에 운용자산 3조원을 돌파하는 ‘슈퍼루키’의 모습을 보였다. 한앤컴퍼니는 1호 펀드로 대한시멘트, 쌍용양회, 코아비스 등의 인수에 나섰다. 투자 종목도 시멘트·해운·자동차 부품 등 굴뚝산업을 중심으로 진행해 업계의 허를 찌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대표의 전략은 ‘집중투자’와 ‘장기투자’로 요약된다. 한 대표는 비슷한 업종의 기업들을 인수해 시너지를 내고 기업과 산업의 가치를 모두 끌어올린다. 한앤컴퍼니는 2014년 한진해운으로부터 벌크선사업부를 인수하면서 에이치라인해운을 출범한 데 이어 지난해 SK해운도 인수했다. 이에 앞서 웅진식품을 인수한 뒤에도 웅진식품의 시장가치를 높이기 위해 대영식품, 동부팜가야 등도 사들였다.

최근에는 해외 대기업까지 투자 대상에 포함해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한 대표는 2014년 인수한 자동차 부품사 한온시스템을 키우기 위해 세계 3위인 마그나인터내셔널의 유압과 제어사업 부문을 약 1조4000억원에 사들였다. 이 역시 기존 인수 기업의 가치를 키우기 위한 전략으로, “국내 PEF업계에 이정표가 되는 딜”이라는 호평이 따랐다. 지난 5월 롯데카드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최근 조세 포탈 논란이 일어나면서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정장근 JKL파트너스 대표 | 스튜어드십 코드 최초 도입한 ‘3인 체제’ PEF


최근 롯데손해보험 인수전 승자로 선정된 JKL파트너스는 KPMG 삼정회계법인에서 근무했던 30세 안팎의 회계사 3명이 2001년 7월 설립한 회사다. 현재의 정장근 대표, 강민균 부사장, 이은상 부사장으로 회사명도 이들의 성을 따서 지었다.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로 출발했던 회사가 현재의 사모펀드 운용사로 자리를 잡은 것은 2008년부터다. JKL파트너스는 GS ITM, 팬오션, 두얼, IS, 팜스코 등 22개 기업에 펀드 자금을 출자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2015년 팬오션을 1조원가량에 하림그룹과 공동 인수하며 주목받았고 2년 만에 투자금 1700억원을 회수했다.

JKL파트너스는 1조원 미만의 중견·중소형 딜에 집중하고 있다. 특정 파트너의 ‘원톱’ 체제로 흘러가는 다른 운용사와 달리 세 파트너 간에 분업이 잘돼 있다는 평가다. 특히 JKL파트너스는 가치중심적 투자 행보를 보이며 시장의 신뢰를 얻고 있다. 투자가치를 뛰어넘어 주주·기업 가치를 중시한다. 2017년에는 국내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다. 당시 “외부에 보여주기 위해 도입한 것이 아니라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업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며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대표 | ‘아시아 1위 펀드’ 이끄는 냉철한 승부사 - 1963년생. 하버포드 칼리지-하버드 경영대학원- 골드만삭스-칼라일그룹


김병주 회장이 2005년 세운 MBK파트너스는 전통적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강자로 꼽힌다. 2006년 현대캐피탈과 손잡고 HK저축은행을 인수한 이후 한미캐피탈, 코웨이, 홈플러스, 오렌지라이프 등 굵직한 투자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뿐 아니라 중국·일본·대만 등 MBK파트너스가 투자한 30여 개 기업의 전체 기업가치는 360억 달러(43조원), 고용인원은 34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투자 규모로 아시아 1위 PEF다.

김 회장은 1999년 미국의 세계적 사모펀드인 칼라일의 한국 대표를 맡아 한미은행을 인수, 약 7000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매각하는 데 성공하며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2005년 칼라일에서 근무하던 아시아계 동료들을 이끌고 MBK파트너스를 창립했다.

김 회장은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넷째 사위다. 기업명 MBK는 자신의 영문 이름인 ‘마이클 병주 김’의 이니셜을 딴 것이다.

김 회장은 대체로 경기 흐름을 덜 타는 내수기업 가운데 안정적 수익을 내는 소비재기업을 사들인다. 소비재기업의 현금 창출력이 좋다는 점에서 대부분 사모펀드가 비슷한 전략을 쓰고 있지만 MBK파트너스에는 김 회장의 추진력이 더해졌다. 그의 별명은 ‘냉철한 승부사’다. 회사의 가치를 파악한 뒤 가치를 더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하면 깊이 고민하지 않고 회사를 인수한다. 인수가격이 7조원으로 국내 인수합병 역사상 최대 규모인 홈플러스 인수 건도 그의 추진력에서 나왔다.

MBK파트너스는 최근 넷마블, 텐센트 등과 손잡고 넥슨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넥슨 매각가가는 10조원 이상으로 추산돼 거래가 이뤄지면 국내 인수합병 사상 최대 거래액을 새로 쓰게 된다. 지난해 오렌지라이프와 코웨이를 각각 팔아 4조원을 웃도는 자금을 회수한 만큼 사용할 실탄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송인준 IMM PE 대표 | ‘토종 사모펀드 자존심’의 밀착경영 - 1965년생. 서울대 경영학과·경영대학원-안진회계법인-IMM파트너스


IMM PE는 업계에서 토종 사모펀드의 자존심으로 불린다.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와 달리 국내자본 비중이 높고 순수 국내파 출신의 송인준 대표가 설립했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공인회계사 출신이다. 1991년 글로벌 회계법인 아더앤더슨에서 인수합병(M&A) 자문을 하며 딜 감각을 익혔다. 이후 한국종합금융·CKD창업투자(벤처캐피털)·IMM파트너스(CRC)·IMM인베스트먼트를 거쳐 2006년 IMM PE를 설립했다. 다양한 경험과 탄탄한 인맥이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평가다.

송 대표는 1000억~1조원 규모의 중형 기업 M&A에 주력한다. 지금까지 캐프, 한독, 할리스, 현대LNG해운, 대한전선, 태림포장, 에이블씨엔씨 등의 지분을 인수했다. 특히 IMM PE는 인력 감축 없이 밀착 경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는 전략으로 유명하다. 2010년 600억원을 들여 인수한 자동차 와이퍼 업체 캐프는 2013년 김영호 IMM PE 부사장이 대표를 맡은 뒤 실적 지표가 눈에 띄게 개선되어 2017년 10월 매각에 성공했다. 2013년 인수한 할리스커피도 김유진 IMM PE 이사가 대표로 취임한 뒤 실적이 가파르게 좋아지고 있다. 2017년 4월 인수한 화장품회사 에이블씨엔씨(브랜드 미샤)에도 이해준 IMM PE 부사장을 대표로 올려 경영 개선 작업을 시작했다.

임석정 SJL파트너스 회장 | 압도적인 네트워크와 탁월한 해결책 - 1960년생. 고려대 경제학과-조지워싱턴대 MBA-뉴욕 살로먼브라더스증권 부사장-JP모간 한국 대표-한국CVC캐피탈파트너스 회장


임석정 대표는 지난해 2월 영국계 PEF인 CVC캐피탈에서 독립하자마자 셀트리온그룹의 지주회사인 셀트리온홀딩스에 2000억원을 투자하는 거래를 성사시켜 SJL파트너스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임 회장은 한국 바이오시밀러 신화의 주역인 셀트리온홀딩스의 2대 주주로 올라서고 셀트리온그룹은 국내 최고의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를 파트너로 끌어들여 숙원 사업인 해외 바이오 기업 인수를 가시화한 거래였다.

지난해 9월에는 PEF가 국내 대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해외 대기업을 사들이는 첫 사례를 만들어냈다. 건축자재 전문기업 KCC와 반도체 원료·장비를 생산하는 원익그룹과 손잡고 세계 3대 실리콘 및 석영·세라믹 제조업체인 미국 모멘티브퍼포먼스머티리얼을 인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모멘티브 인수금액은 3조3700억원으로 지난해 국내 최대 M&A 거래로 기록됐다. 모멘티브 인수는 “PEF가 거래 기회를 찾아 성사시키면 기업이 인수 회사를 경영하는 이상적인 SI(전략적투자자)와 FI(재무적투자자)의 결합 구조”라는 평가를 받았다. 주목받는 거래를 잇따라 성사시키면서 임 회장의 SJL파트너스는 출범 1년도 안 돼 1조원이 넘는 운용자산(AUM)을 운영하는 대형 PEF로 발돋움했다.

임 회장은 국내 IB업계 1세대 대표 주자다. 그는 지난 1995년 직원 2명에 불과했던 JP모간 서울지점을 증권, 은행, 투자자문 등 3개 법인으로 키운 뒤 2015년 영국계 사모펀드 CVC를 거쳐 올 초 SJL파트너스를 차려 홀로서기에 나섰다. 홀로서기에 나선 지 1년도 채 안 된 상황에서 KCC 컨소시엄과 미국 모멘티브 인수, 셀트리온홀딩스 투자 등 굵직굵직한 거래의 중심에 그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새삼 임 회장의 존재감이 부각됐다.

임 회장의 강점으로는 압도적인 네트워크와 탁월한 해결책이 꼽힌다. IB 거래에서 핵심 요소는 단연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만 놓고 보면 국내에서 임 회장을 능가할 IB 뱅커는 없다는 평가다.

201906호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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