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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으로 빛 본 이재현 회장의 ‘문화보국’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 100년 만의 영광이자, 콧대 높은 서구의 문화적 우월감을 넘어선 쾌거다. 이번 수상은 [기생충]을 비롯해 한국 영화의 글로벌 투자·배급에 앞장서온 CJ의 문화사업이 거둔 성과이기도 하다.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이재현 CJ 회장이 문화사업에 기울여온 열정이 새삼 조명 받고 있다. / 사진 : CJ
“[기생충]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독특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예술가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CJ엔터테인먼트에 감사드린다.”

제72회 칸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이 5월 25일 영화제 폐막식에서 밝힌 수상 소감이다. [기생충]은 작품 본연의 예술적 완성도를 통해 한국 영화의 수준을 전 세계에 알린 수작이다. 더불어 상업적 측면에서도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성과를 올릴 기세다. 수상 기세를 몰아 192개국에 선판매되면서다. 이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가 세웠던 역대 최고 해외판매 기록(176개국)을 넘어선 규모다. [기생충]은 이미 국내에서도 ‘N차’ 관람 열풍을 일으키며 메가히트의 상징인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영화 '기생충' 쾌거… 숨은 1등 공신 CJ


▎‘KCON 2018 LA’는 역대 최단 시간 티켓 판매 기록을 올렸다. 사진은 엠카운트다운 콘서트 전경. / 사진 : CJ
한편으로 국내 영화업계에선 지난 1995년 할리우드의 신생 스튜디오였던 드림웍스에 투자하면서 시작된 CJ의 문화사업이 25년 만에 괄목할 만한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CJ는 1997년 영화 [인샬라]로 투자·배급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지금까지 한국 영화 320여 편을 투자·배급해왔다. 역대 칸영화제에만 총 10편을 진출시키는 등 한국 영화를 세계 시장에 알리는 데 CJ가 누구보다 앞장서왔다는 데 이견이 없다.

CJ는 봉준호 감독과도 [살인의 추억], [마더], [설국열차]에 이어 [기생충]까지 그의 필모그래피 중 굵직한 작품들을 함께해왔다. 특히 40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갔던 설국열차는 기획 단계부터 전 세계 상영을 염두에 두었던 작품이다.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출연진에 이름을 올리면서 한국 영화의 가능성을 널리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업계에선 CJ의 전격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어려웠을 글로벌 프로젝트로 보고 있다.

CJ는 [설국열차] 같은 대형 글로벌 프로젝트를 발판 삼아 해외 시장 진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단순히 한국 영화의 해외 배급뿐 아니라, 현지 배우를 캐스팅해 현지 언어로 제작하는 해외 로컬 영화 제작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지난 2014년 한국에서 개봉했던 [수상한 그녀]는 중국, 베트남, 일본,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버전으로 제작된 후 개봉해 큰 성과를 거뒀다. 현재 미국 제작사와 손잡고 영어와 스페인어 버전도 제작 중이다.

영화 [기생충]이 거둔 쾌거에 대해 영화업계는 이재현 CJ 회장의 역할에 새삼 주목하고 있다. CJ는 그동안 다양한 콘텐트로 주류 문화시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연이어 내고 있는데, 이는 문화사업에 대한 이 회장의 확고한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CJ그룹은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직후인 1995년 미국의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사 드림웍스 설립에 3억 달러를 투자했다. 영화를 통한 첫 문화사업 진출이었다. 당시 30대 젊은 경영인이었던 이 회장은 전통적인 내수 식품회사인 제일제당을 토대로 사업 다각화를 구상 중이었고, 문화사업은 핵심 관심사였다. 식품과 전혀 관련이 없을뿐더러, 3억 달러는 당시 제일제당 연간 매출의 20%가 넘는 큰 규모였기 때문에 경영진의 반대도 거셌다. 그러나 이 회장은 ‘문화가 미래’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투자를 강행했고, 그 결정은 오늘날의 결실로 돌아왔다. 이후 CJ는 오랜 적자와 불확실성을 무릅쓰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만 7조5000억원 이상을 투자해왔다.

이 회장이 이처럼 문화사업에 강한 집념을 보이는 이유는 할아버지인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평소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이병철 선대 회장은 사업으로 나라를 일으킨다는 ‘사업보국’의 이념과 함께 “문화 없이는 나라도 없다”며 문화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CJ는 문화사업의 초석이 된 드림웍스를 시작으로 1998년에는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를 개관했다. CJ가 영화산업에 진출한 이후 한국 영화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1999년 3000억원 정도였던 한국 영화 시장은 지난해 세계 5위 수준인 16억달러(약 1조9000억원)까지 커졌으며, 할리우드 영화에 한참 밀렸던 한국 영화 점유율 역시 8년 연속 50%를 웃돌고 있다.

영화에 이어 1990년대 후반 케이블 방송 사업에 진출한 CJ는 이 분야에서도 꾸준한 투자를 이어왔다. CJ는 기존에 제작된 인기 프로그램을 재방영하던 당시 관행에서 벗어나 직접 콘텐트 제작에 나섰다.

문화사업을 향한 이 회장의 행보가 항상 순탄했던 건 아니다. 공교롭게도 CJ가 문화사업에 뛰어든 시기에 IMF 외환 위기가 찾아왔다. 국가적 재난 속에 기업이 적자 사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영화사업에 진출했던 삼성그룹과 대우그룹이 모두 철수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계속된 투자에도 성과는 더뎠다. 영화와 음악, 드라마, 뮤지컬 등 각 부문이 CJ E&M으로 통합된 2011년 이후 실적 추이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2013년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3.4%로 매우 낮은 편인데, 이마저도 게임사업 부문이 영업이익 667억원을 올렸기에 가능했다. 음악사업 부문은 1500억원의 손실을 입었었다. 게임사업이 넷마블로 분할된 2014년에는 아예 적자로 돌아섰다. 문화사업에 첫발을 디딘 1995년부터 2014년까지 약 20년간 적자를 면치 못한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CJ가 제작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은 문화콘텐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보다 정치권의 이념 논쟁에 휘말리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과감한 투자가 실패로 돌아온 경우도 많았다. 2011년 개봉한 영화 [마이웨이]는 중국, 독일, 러시아 등 해외 로케이션을 진행하며 제작비 300억원을 투자한 대작이었다. 그러나 손익분기점 500만 명에 훨씬 못 미치는 200만 명만 극장으로 모았다. 한국 최초의 3D 액션 블록버스터로 기대를 모았던 [7광구]는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뼈아픈 지적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쌓인 역량은 최근 CJ ENM이 콘텐트의 화수분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한 자양분이 되었다. [슈퍼스타K]를 시작으로 [응답하라 1998], [도깨비], [윤식당] 등 대표 콘텐트들이 연이어 탄생하기 시작했으며, 176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명량]은 개봉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대 관객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년 적자 벗어나며 문화의 저력 드러내


▎지난 201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KCON 2018 LA’에서 관람객들이 국내 중소기업의 K뷰티 제품을 시연해보고 있다. / 사진 : CJ
이 회장은 최근 “CJ의 궁긍적 지향점은 글로벌 넘버원 생활문화기업”이라며 이를 위해 도전하자는 주문을 자주 내놓고 있다. 이는 2030년에 3개 이상 사업에서 글로벌 1위가 되자는 CJ그룹의 ‘월드베스트 CJ’ 목표와도 맞닿아 있다.

CJ가 글로벌 넘버원 생활문화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전 세계인이 K라이프스타일과 K콘텐트에 빠져들어야 한다. CJ가 25년간 문화사업을 지속한 이유도 생활 습관 및 취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문화라는 확신 때문이다.

세계인이 한국 문화에 빠지게 한다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 같은 목표는 곳곳에서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비비고 만두는 이미 미국 시장 점유율 1위로 매년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메이저 냉동업체인 슈완스를 인수해 성장 속도가 더 빨라질 전망이다. CGV가 독자 개발한 오감체험영화관 4DX 역시 60개 국 이상에 진출했으며, 3면스크린을 갖춘 스크린X는 17개국 이상에 수출했다.

문화사업은 단순히 제품을 팔아 이익을 얻는 제조업과 달리 타 산업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폭제 역할도 한다. 세계 최대의 한류 축제인 ‘케이콘(KCON)’ 현장에서는 문화 한류가 경제 한류로 확장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한국 연예인과 문화에 대한 관심은 한국 제품과 음식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대되고 나아가 한국 산업 전반으로 경제효과가 확산되고 있다.

정작 CJ가 KCON 개최에서 얻는 수익은 겨우 적자를 면하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매년 규모를 키워 개최하는 까닭은 문화가 가진 힘 때문이다. 문화산업이 미래 먹거리 산업이라는 확신과 이를 통해 국가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확대하겠다는 의지 아래 KCON은 글로벌 무대에 한류를 실어 나르는 최대 페스티벌로 성장했다는 평가다.

[박스기사] 케이팝부터 매니지먼트, 뮤지컬까지 - 글로벌 주류 문화시장 진입한 CJ의 문화 콘텐트


▎‘KCON 2018 LA’ 행사장에서 케이팝 노래에 맞춰 커버 댄스에 나선 한류 팬들. / 사진 : CJ
CJ는 비단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뮤지컬, 음악 등 다양한 콘텐트 부문에서 글로벌 주류 문화 시장에 진입하는 성과를 속속 내고 있다.

지난 201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최초로 개최된 세계 최대의 한류 축제 KCON은 이후 일본, 유럽, 중동, 동남아, 남미 등으로 활동 영토를 넓혀가며 올해 누적 관객 10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특히 올해는 ‘KCON 2019 NY’이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세계적 랜드마크인 메디슨스퀘어 가든에서 처음 열릴 예정이다. 글로벌 최대 팝 시장인 미국, 그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장’이라는 별칭을 가진 장소에 케이팝이 울려 퍼진다는 것은 한류가 더는 마니아 일부만의 문화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증표다. 아울러 ‘KCON 2019 LA’도 개최일이 4일로 확대되고, ‘KCON 2019 THAILAND’는 규모를 2배로 늘리는 등 역대 최대 규모로 한류 팬들의 성원에 보답할 계획이다.

CJ는 한류 축제의 장을 마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 아이돌 그룹 만들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2016년부터 연습생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을 진행해오면서 ‘워너원’과 ‘I.O.I’ 등 인기 아이돌 그룹을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일본 현역 아이돌 그룹인 AKB48과 합작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아이즈원’이 탄생했으며, 데뷔 초기부터 국내와 일본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세 그룹 모두 국내를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CJ ENM은 케이팝 레이블로서도 역량을 검증 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3월에는 CJ ENM과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합작법인인 ‘빌리프랩’을 설립하고 제2의 방탄소년단을 탄생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새로 탄생할 글로벌 남자 아이돌 그룹은 2020년 데뷔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양사의 국내외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한류 확장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CJ ENM이 [킹키부츠], [보디가드]에 이어 세 번째로 글로벌 공동 제작에 참여한 뮤지컬 [물랑루즈]도 오는 6월 28일 브로드웨이 프리뷰 개막을 앞두고 있다. CJ ENM은 지난 10년간 뮤지컬의 본고장인 브로드웨이와 웨스트 엔드에서 쌓아온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물랑루즈]의 작품 개발 초기부터 투자 제안을 받았다. 이를 통해 한국 단독 공연권을 선점했을 뿐 아니라 미국 투어 공연 및 영국, 호주, 캐나다 등에서도 공동제작 권리를 보유하게 된다.

201907호 (201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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