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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포브스코리아 휴브리스 포럼] 지상중계(3) 권력의 심리학: 권력, 자유 그리고 오만 

권력을 가질수록 위기의식은 무뎌진다 

리더의 오만함은 개인의 문제일까 아니면 상황의 문제일까. 이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정은경 교수는 리더의 오만함이 개인의 특성보다 개인이 놓인 상황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진단했다. 권력을 가진 리더가 오만해지는 상황을 분석해봤다.

▎7월 11일 오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진행된 '제2회 포브스코리아 오만 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는 정은경 교수.
스티브 잡스는 권력과 오만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잡스는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적이고 훌륭한 혁신 기업가다. 그러나 함께 일한 동료들로부터 인간적인 리더로 평가받지는 않았다. 부하직원이 낸 아이디어를 ‘쓰레기 같다’며 집어던지는 등 소위 ‘갑질’을 서슴지 않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많은 사람이 잡스를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기억한다. 이는 잡스의 행동을 개인적인 요인에 기인해 판단한 결과다. 그러나 만약 잡스가 애플이라는 거대 조직을 이끄는 최고경영책임자(CEO)가 아니라 슈퍼마켓 사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즉, 리더의 오만함은 개인의 특성으로만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맞물려 복잡하게 나타난다.

둘 이상이 모이면 발생하는 권력 다툼

영국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1938년에 출간한 저서 『권력(Power)』에서 “물리학의 기본 개념이 에너지이듯이, 사회과학의 기본 개념은 권력이다”라고 설명했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는 권력욕, 사회 혁신, 개혁 등 ‘힘’이라는 요인을 빼고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파워’란 본인이 가진 자원을 사용해 다른 사람의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개인의 상대적인 능력을 말한다. 이는 즉, 둘 이상이 모이면 반드시 힘의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두 명 이상의 관계에서 권력은 상대적인 요소가 되고 상황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다. 부모 자식 관계를 예로 들어보자. 부모는 아이의 상태를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불러온 아동학대 문제도 이 같은 권력의 관점에서 보면 쉽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여 년 이상 권력 연구에 매진해온 미국 UC버클리 대학교 대커 켈트너(Dacher Keltner) 교수가 2003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파워풀(powerful)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보상(rewards)에 민감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approach) 경향이 있다. 반면, 그렇지 않은(파워리스, powerless) 사람은 보상보다 위협에 민감하기 때문에 행동하기보다 억제하는 성향, 즉 나서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 또 파워풀한 사람은 힘 또는 권력을 갖게 되면 내적 욕구에 충실한 상태가 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파워풀한 사람은 내적 욕구를 충실하게 따르기 때문에 배고플 때 밥을 더 많이 먹고, 맛있는 것만 골라 먹는 특징이 두드러졌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추론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파워풀한 사람의 특징이다. 권력을 가질수록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지고, 자신의 기질과 태도, 신념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아울러 파워풀한 사람들은 훨씬 더 목표지향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목표를 세우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하는 능력이 파워리스한 사람보다 강력하다.

주변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

우리는 평소 자신의 욕구와 소속된 환경의 욕구를 조절하며 살아간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끊임없이 타인을 관찰하고 환경을 모니터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권력을 갖게 되면 이 같은 환경적인 억압에서 벗어나게 된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애덤 갈린스키(Adam Galinsky)는 “권력(power)은 외부적인 영향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정의한 바 있다. 즉, 권력을 가질수록 외부 요인에서 해방되면서 자신의 욕구에 집중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소비할 수 있는 에너지와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 권력자들은 이 제한된 에너지를 외부보다 내부로 돌린다. 그러면서 점차 주변 환경을 간과하게 된다. 그 결과 권력자를 둘러싼 환경에는 서서히 리스크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권력자는 이를 쉽게 감지하지 못한다. 주변 환경을 모니터링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로열티를 대체로 높게 평가하고, 자신이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는 더 큰 리스크를 부르는 토대가 된다. 즉, 인간이 권력을 갖게 되면 외부 환경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연스레 내적 욕구에 집중하게 되면서 외부 리스크를 간과하게 되는데, 자신이 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면서 더 큰 위험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권력자는 본인이 가진 권력이 불안정할수록 주변과의 경쟁심리에 휩싸인다. 원칙을 지키기보다는 성과주의 노선을 추구하게 되고, 이는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윤리적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에도 리스크를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디젤게이트 사태를 초래한 폴크스바겐 그룹 내 권력 다툼도 이 같은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폴크스바겐을 창업한 포르셰 가문과 사위인 피에히 가문은 이사회 의사결정 권한을 독점하며 수십 년간 권력 다툼을 벌여왔다. 폴크스바겐과 포르셰를 세운 고(故) 페르디난트 포르셰 회장의 친손자인 볼프강 포르셰와 외손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일화는 유명하다. 피에히는 치열한 경영권 쟁탈전 끝에 1993년 폴크스바겐 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지만, 포르셰는 호시탐탐 경영권을 노렸고 2005년 몸집이 훨씬 큰 폴크스바겐 그룹을 상대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면서 4년여간 경영권 다툼을 이어갔다. 2008년 도래한 금융위기로 포르셰가 반대로 폴크스바겐에 인수합병되면서 사태는 마무리됐지만, 다시 그룹을 장악한 피에히 체제하에서 배기가스 조작이 시작됐다. 경영권이 또다시 흔들리지 않도록 실적에만 골몰한 결과, 환경 규제 등을 등한시한 것이다. 2015년 디젤게이트 사태가 터진 후, 폴크스바겐의 한 고위 관계자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오너들이 경영권 장악에 눈이 멀어 환경 규정 준수보다 실적 향상만 좇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권력자의 오만, 경영 위기 차원에서 접근하라


이런 악순환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권력자가 내적 욕구에 집중하면서 주변 환경을 경시하기 시작할 때 ‘알람’을 울려야 한다. 기업에서 중요한 인수합병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많은 검증 작업을 거치듯이, 경영진(권력자)의 오만 문제도 개인의 도덕성에 맡겨두는 게 아니라 종합적으로 검토해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오만해지는 과정은 상당히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이도 권력과 중요한 상호관계에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보다 어리거나 아래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게 되면서 대인관계에서 위험 요소가 높아진다. 그러나 이는 현대사회의 흐름에 역주행하는 행위다. 예전에 힘이 없었던 ‘파워리스’들의 집단 파워가 이젠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현시대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매체다. 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누구나 다양한 루트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권력자들을 감시하고 오만해진 리더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데 새로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정은경 강원대학교 교수(심리학과)·정리=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

※ 정은경은… 연세대에서 임상심리학 석사과정, 산업 및 조직심리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친 뒤 강원대학교 심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양대학교 신경정신과 임상심리 레지던트, 마인드프리즘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으며 국토교통부, 도로교통공단 등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08호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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