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박은주의 ‘세계의 컬렉터’] 팀 사이어 

작가와의 우정을 수집하다 

BBC 라디오 기자였던 팀 사이어(Tim Sayer)의 직업은 그가 좋아하는 취미, 독서의 범위를 더욱 넓게 해주고 더 깊게 이끌어주었을 뿐 아니라, 매우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제공해주었으며 그를 예술로 인도해주었다. 팀은 예술에 대한 관심이 한층 깊어지면서 수집가였던 친구들의 격려에 힘입어 갤러리와 아티스트 스튜디오 방문을 이어가게 됐다.

▎작고한 영국 세라믹 작가 에윈 헨더슨(Ewen Henderson)은 팀과 절친한 친구였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 서슴지 않고 헨더슨의 작품을 품에 안았다. / Photo Eunju Park Copyright Tim Sayer
컬렉터들은 나눔이라는 열정을 타고난 사람들일까? 혹은 컬렉션을 하면서 그 즐거움을 더욱 만끽하게 되는가? 런던에 있는 팀 사이어의 집에는 대문 양쪽 벽에 설치 작품이 걸려 있었다. 영국 작가 알란 터너(Alan Turner)의 작품으로 서퍽(Suffolk) 해안가에서 발견한 조개, 노끈, 플라스틱 뚜껑 등 다양한 오브제로 만들어졌다. 집 밖, 대문 옆에 설치된 두 작품은 예술에 대한 사랑을 공유하려는 팀의 사명감을 충분히 전달한다. 집 안에 들어가보니 거실과 부엌, 응접실 벽과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 아랫부분, 목욕탕, 화장실에까지 빼곡하게 판화, 드로잉, 페인팅, 사진, 조각, 세라믹, 아프리카 조각과 골동품들이 벽과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책이 그의 소장품들과 함께 조화롭게 정리되어 있다. 한눈에 봐도 연구와 애정을 동반한 50년의 컬렉션이란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팀은 1945년 런던 남서쪽 테딩턴에서 태어났다. 1972년에 사망한 아버지는 평생 병을 앓았기에 어머니가 가장 역할을 해가면서 팀을 길렀다. 아트 컬렉터가 될 배경은 전혀 없었다. 런던에 사는 보통 아이들과 같이 음악 감상, 스포츠를 즐겼던 청소년 시절, 유달리 호기심 많은 이 소년은 독서에 매료됐다. 책은 그를 늘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해주었다. 여유 없는 생활 속에서도 쌈짓돈이 생기면 우선 책부터 샀다. 서점도 대형 서점에서부터 고서점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둘러보았다. 1962년, 팀이 17세 때 발길을 향한 곳은 리치먼드에 있는 고서점이었다. 이곳에서 17~19세기의 프린트 포트폴리오 183점을 50펜스에 구입했고 그의 첫 수집품은 평생 컬렉션의 길에 들어서는 첫 단추가 됐다. 그러나 컬렉터가 되기 위해서는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8세에 학교를 그만둔 그가 BBC에서 새로운 경력을 쌓게 된 것은 평소 그가 즐겼던 독서와 끝없는 호기심 덕분이었다. 2015년 은퇴한 팀은 BBC를 떠난 것을 기쁘게 생각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의 동향을 전하는 소식들을 빠짐없이 추적하고 있다.


▎문 윗부분 여자 누드 드로잉: 앤서니 카로 by Sir Anthony Caro 아래 여인의 초상 드로잉: Katsura Funakoshi. Photo Eunju Park, Copyright Tim Sayer
팀은 1982년부터 북런던 이즐링턴에 있는 이 집에 살고 있다. 이즐링턴의 하이버리 지역은 아직도 집 앞에 우유와 물을 배달해주는 시골 같은 여유로움을 지닌 곳이다. 게다가 여러 대륙에서 온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팀을 매혹하기에 충분한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팀의 컬렉션이 늘어나고 팀과 부인 앤마리 노턴(Annemarie Norton)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가구와 살림 때문에 공간은 더욱 부족해졌다. 다행히도 아래층에 살던 이웃이 2012년에 집을 팔면서 어머니가 남긴 유산으로 아래층을 구입해 주택 전체를 하나로 통일할 수 있었다. 부엌을 지나면 작은 정원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데 정원에 들어서면 너무도 고요해서 런던이라는 도시에 있는 현실을 망각하게 해준다. 팀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책을 읽으며 보낸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사랑하는 열 살짜리 오리엔탈 갈색 고양이, ‘오티’가 늘 함께했다.

이런 배경으로 아트 컬렉션을 시작한 팀은 평생 투자 목적으로 작품을 구입하지 않았고 갤러리스트가 되려고 한 적도 없다. 예술가들과의 만남을 매우 소중히 했던 팀에게는 마치 한 점 한 점이 작가와의 우정을 상징하는 소장품이 됐다. 팀은 평생 작품 구입 과정에서 손에 넣은 모든 자료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그가 700점이 넘는 작품의 작가 이름은 물론이고 언제, 어느 갤러리에서, 얼마에 구입했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데 이 자료들은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달리 생존 작가들의 작품만 사려 했던 그의 강한 주관 때문에 리처드 유릭(Richard Eurich)이 사망한 후작은 유화 작품 ‘더 블랙 애플(The Black Apple)’을 판매한 적이 있었다. 그는 곧 후회했고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팀은 2017년에 이 작품의 이미지를 페이스북에 올렸고 이틀 뒤에 팀이 잊어버렸던 소장자를 찾아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됐다. 당장 재구입하기 어려웠지만 소장자의 재정적인 문제로 2018년 7월 팀은 그 작품을 집으로 찾아올 수 있었다.


▎침대 위 중앙의 흰 페인팅 작품: Bob Britten. Photo Eunju Park Copyright Tim Sayer
부인 앤마리는 암스테르담 국립발레단에서 수학한 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입단해서 10년 동안 무용수로 활동했다. 1986년 런던에 돌아와 같은 해 말, 팀을 만났다. 그녀는 항상 의상 제작에 관심이 많았고 런던패션대학에서 2년 과정을 마쳤다. 그녀는 현재 오페라, 발레, 연극 및 뮤지컬을 위한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 특별한 의상을 직접 재단해서 만들고 있다.

앤마리는 부부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던 단 몇 점을 제외하고는 팀의 과도한 수집 열정을 전적으로 지원해주었다. 팀이 작품을 사고 싶다는 희망으로 작가에게 작품을 빌려서 집에 가져왔을 때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던 앤마리는 작품을 걸지 않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래리 푼스(Larry Poons)의 작은 유화를 가지고 왔을 때도 앤마리는 끔찍하다고 생각했고 작품에 등을 돌리고 앉았다.


▎팀 사이어와 그의 아내 앤마리 노턴 Copyright The Hepworth Wakefield
그들은 평생 차를 사본 적이 없으며 휴가도 일생 동안 단 몇 번뿐이었다. 그들의 지출 대부분은 아트 컬렉션에 쓰였다. 팀은 지나치지 않았나 자문한다. 불필요한 지출과 해외여행을 줄여가며 구입한 작품들은 아프리카 조각부터 알렉산더 콜더, 앤서니 카로, 프루넬라 크러프, 소니아 들로네), 샘 프랜시스, 나움 가보, 데이비드 호크니, 솔 르윗, 헨리 무어, 데이비드 내시, 폴 내시, 파블로 피카소, 브리지트 라일리 등 현대미술 작가들에까지 이르렀다. 초기 구상작품으로 시작된 소장품들은 점차 추상으로 바뀌어갔다. 팀이 마지막으로 구입한 작품은 샘 프랜시스의 석판화 작품이다. 화려한 색과 삶의 역동적인 구성을 나타내는 이 작품에서 팀은 늘 생동하는 에너지를 느낀다. 동시에 팀은 여전히 인물화에도 매력을 느끼고 있다.


▎Kenneth Martin, Chance, Order, Change 14, Milton Park B, 1981 Copyright The Hepworth 1 Wakefield
훌륭한 전시를 관람하고 정기적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방문하는 것은 팀과 앤마리의 일상이다. 2015년 7월 난생처음 방문한 헵워스 웨이크필드(The Hepworth Wakefield) 갤러리의 오프닝 전시는 앤서니 카로 전시였다. 이때 부근에 있는 요크셔 조각공원도 방문했다. 처음 보는 건축물은 마치 조각 작품과 같았고 두 사람은 건축물과 컬렉션에 흠뻑 도취됐다. 형제도 자녀도 없었던 그들은 즉시 이곳이야말로 그들의 소장품들을 위한 훌륭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팀과 앤마리는 갤러리 디렉터 사이먼 월리스에게 유증을 제안했고 사이먼은 몇 주 뒤 하이버리를 방문했다. 집을 둘러본 사이먼은 30분 만에 유증을 받기로 결정했다. 방대한 도서들과 다른 콘텐트들, 주택까지 함께 유증이 이루어지는 장엄한 순간이었다.

사실 헵워스 웨이크필드 갤러리는 그들이 꿈꾸던 갤러리였다. 이미 예술품이 넘치는 런던이 아니었고 입장료가 없으며 건축물 자체가 예술 작품이었다. 게다가 박물관 스태프들과 지역 주민들은 매우 친절했다. 팀과 앤마리는 자신들의 소장품들이 이곳에서 전시되어 대중이 즐기길 바랐다. 그들은 예술품들을 은행에서 보관하는 투자물로 여기고 구매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국립 갤러리에 기증하거나 유증하는 일은 미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드문 일이다. 그러나 가능하다. 팀과 앤마리의 유증은 독립 회원제 영국 자선단체인 아트펀드에 의해 운영된다. 아트펀드는 국가를 위한 예술 작품 인수를 돕기 위해 기금을 모은다. 팀과 앤마리는 자신들의 결정이 다른 수집가들에게 같은 꿈을 고무시키길 희망하고 있으며 박물관과 도서관의 활동을 지원하는 영국 예술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하여 그 희망을 달성하려 노력하고 있다.


▎The Hepworth Wakefield, Photo ⓒIwan Baan Copyright the Hepworth Wakefield
팀과 앤마리의 컬렉션 스토리는 뉴욕의 컬렉터 커플, 허브와 도로시 보겔의 이야기와 비교할 수 있다. 보겔 부부는 평생 동안 우체국 야간 직원과 도서관 서기로 일하며 받은 겸손한 월급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이후 미국의 가장 중요한 예술품들, 특히 미니멀 아트와 개념미술 작품들을 반세기 이상 수집해 미국 50개 주에 각각 50점을 기증했다. 팀은 보겔 부부를 매우 존경한다.

2017년에 헵워스 웨이크필드 갤러리에서 팀의 소장품 100점이 전시됐고 그중 래리 푼스의 작품을 포함해 52점은 갤러리가 영구 소장하고 있다. 남은 700여 점이 집 안에 있을 동안 팀은 집을 방문하는 이벤트를 정기적으로 갤러리와 기획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8년 7월 로열아카데미에서는 그의 집 방문 이벤트로 예술 애호가들과 컬렉터들이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팀은 반세기에 걸친 자신의 컬렉션 노하우를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① 작가, 갤러리스트와 교류하라.

② 마음과 영혼을 따라 작품을 선택해라. 투자를 목적으로 컬렉션하지 마라.

③ 작품의 예술적, 경제적 가치를 알기 위해 스스로 연구하라. 그러면 실질적 가치보다 과장된 가격인지 판단할 수 있다.

④ 필요하다면 갤러리에 할인과 더불어 다달이 나누어 낼 수 있도록 요청하기를 주저하지 마라. 팀은 25년 전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을 구입하면서 10번에 나누어 지불했다. 이렇게 구입한 작품들을 단 한 번도 판매를 고려한 적이 없다.



▎Stephen Lewis, 102, 1988, Painted Steel Copyright the Hepworth Wakefield
2017년, 팀은 Queen’s Birthday Honors 목록에 예술 및 자선사업에 기여한 대영 제국 회원(MBE)으로 임명됐다. 예술에 대한 그의 큰 공헌을 인정받은 것이다. 팀과 앤마리는 자신들이 사망한 후 소장품 대부분이 헵워스 웨이크필드 갤러리에서 전시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갤러리의 제한적인 지출을 원인으로 모든 소장품이 전시될지는 의문이다. 팀은 “‘우리의 새로운 날개(Tim and Annemarie Sayer wing)’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갤러리에 돈을 투자할 의향이 없다면, 세계에서 가장 숨이 막힐 듯 훌륭한 갤러리 중 하나인 이곳에 가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적어도 독서를 좋아하고 수집을 향한 열정을 키운 청년, 의상 제작에서 새로운 경력을 쌓은 발레리나는 각각의 작품 옆에 있는 캡션으로 영구히 기억될 것이다.

지리적으로 요크셔 조각공원, 리즈아트갤러리, 헨리무어인 스티튜트와 가까이 있는 헵워스 웨이크필드 갤러리는 2011년에 개관했다.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작품으로 웨이크필드 출생 조각가 바버라 헵워스 이름에서 유래했다. 바버라 헵워스 가족은 석고 및 알루미늄 작업 모델 44개를 이곳에 기증했다. 헵워스 웨이크필드 갤러리는 10개 사다리꼴 블록으로 구성된 구조다. 상층 갤러리는 큰 창문에서 자연채광이 들어오도록 디자인되어 주변 전망을 작품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건물 외관은 영국에서 최초로 개발된 자체 압축 착색 콘크리트로 장식됐는데 건축가는 갤러리의 조각적 외관을 강조하기 위해 이 재료를 선택했다고 한다. 건축물의 탁월한 외관은 콜더강의 물에 그대로 비추어진다.

팀과 앤마리 사이어의 유증(Tim and Annemarie Sayer Bequest)

헵워스 웨이크필드 갤러리는 개관 5주 만에 관람객 15만 명을 유치했고 개관 1년 후 영국건축가협회(Royal Institute of British Architects)에 의해 2012년 지역 건축물로 선정됐다. 2013년 야심적이고 혁신적인 학습 프로그램으로 클로어 러닝 어워드(Clore Learning Award)를 수상했다. 2017년 ‘올해의 아트펀드 뮤지엄’으로 지명됐는데 가장 큰 공헌은 팀과 앤마리의 유증이었다. 2016년 헵워스상은 헬렌 마르텐에게 수여되었으며 작년에는 세리스 윈 에번스가 수상했다. 현재 요크셔 국제 조각 행사는 리즈의 헨리무어인스티튜트, 리즈시티 아트갤러리, 요크셔 조각공원 및 헵워스 웨이크필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1908호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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