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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대륙아주 기업승계센터장 

“명문장수기업 육성에 디딤돌 놓겠다” 

법무법인 대륙아주 기업승계센터장이라는 명함을 들고 이승철 전 전경련 상근 부회장이 돌아왔다. 전경련에서만 28년을 일한 그가 새롭게 부여잡은 화두는 지혜로운 기업승계를 통한 명문장수기업 육성이다. 단순한 지분상속이 아니라 재무와 역량, 사업 등을 온전히 후계자에게 물려주는 진정한 의미의 기업승계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28년간 몸담았던 전경련을 떠난 이승철 센터장은 그동안 쌓아온 경영 노하우를 기업승계 컨설팅으로 풀어낼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더 나아가 우리 재계가 한 단계 뛰어오르기 위한 시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역설적으로 기업의 재무구조가 선진화됐어요. 2003년에는 소위 ‘차떼기’ 사건을 계기로 정치자금법이 재정되면서 기업의 입지가 좀 더 자유로워졌죠. 지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겪어야 했던 혼란이 컸던 만큼 우리 기업이 정치권력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작동했죠.”

국민이 믿고 뽑은 대통령의 국정농단은 2017년 초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재계와 정치권력의 유착도 그중 하나였다. 이승철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도 논란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수십 차례 검찰조사에서 매번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지난 2년간의 정치적 소요에 대해선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그는 “비로소 사회와 경제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며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이뤄지기 전인 2017년 2월, 이 전 부회장은 평생을 몸담았던 전경련을 떠났다. 1년여간 재충전 시간을 보낸 그의 앞엔 전경련이라는 낯익은 이름 대신 법무법인 대륙아주기업승계센터장이라는 명함이 새로 놓여 있었다.

전경련을 떠난 후 언론 인터뷰는 처음입니다. 그간 근황이 궁금합니다.

1년 정도 재충전하며 자유롭게 지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대륙아주의 제안을 받고 새 출발선에 섰습니다. 기업승계센터를 새로 꾸리던 차에, 변호사 중심의 법률 조직보다는 기업 출신이 필요하다는 제안에 맘이 움직였죠. 경제 어젠다 수립이나 국가적 정책 연구는 전경련에서 충분히 경험했어요. 그동안 쌓아온 기업경영 노하우를 전파하는 것이 사회를 위한 봉사의 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대륙아주 기업승계센터에 대해 소개해주시죠.

기업의 경영권 승계는 단순히 지분 상속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재무와 역량, 사업 등 세 파트를 온전히 후계자에게 물려줘야 비로소 기업승계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세 가지 핵심 부문을 중심으로 M&A, 구조조정, 경영권 분쟁, 노무, 세무 등 분야별 최고 전문가 16명을 사내외서 모셨습니다.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4대 그룹의 구조본 기획팀과 재무팀 출신 전문가들도 대륙아주 기업승계센터와 함께할 것입니다.

로펌이 기업승계 컨설팅에 뛰어든 배경은 무엇입니까?

우리 재계의 경영 능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입니다. 다만 생산과 연구개발, 마케팅, 홍보 같은 전통적 매니지먼트에 국한된 면이 커요. 전경련에서 일하며 보니 가장 준비가 안 되고 미흡한 부문이 기업승계더군요.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2인자, 즉 구조 본부장들에게 ‘승계 작업이 잘돼가냐’고 물어보면 대다수가 “하는 게 없다”고 말합니다. “감히 승계에 관한 말을 오너에게 꺼내기 어렵다”는 거예요.

그 정도로 준비가 부족한가요?

전경련에서만 28년을 일했으니, 오너 1~3세까지 두루 만나볼 기회가 많았어요. 기업승계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느냐고 물어보면 “준비할 게 뭐 있나, 회사에서 일하며 경영 수업 받으면 되지”라는 대답이 적지 않았습니다. 대개 후계자가 물려받을 회사의 여러 사업 부문을 거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건 경영자를 만드는 거지 승계 작업은 아닙니다.

기업의 승계 작업이 미흡한 이유가 뭘까요?

한국 경제는 압축 고도성장으로 정의할 수 있어요. 짧은 기간에 수많은 기업이 생기고 사라졌죠.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 수없는 위기를 겪으면서 지속가능경영 같은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다음이 상속증여세 때문입니다. 보통 상속하면 자산의 3분의 2가 세금으로 사라집니다. 그러다 보니 승계 작업은 온통 재무 설계뿐이에요. 즉, 기업의 역량이나 사업구조 같은 중장기적 계획이 없어요. 마지막으로 롤 모델이 없습니다. 기업의 역사가 짧아서죠. 참고할 만한 연구나 서적, 논문도 없어요. 과거 이건희 회장은 지속가능경영에 대해 자문하기 위해 해외 석학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국내에는 이런 작업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에요. 창업 1세는 창업주라 승계를 해본 적이 없고, 2세는 받기만 했죠. 3세도 경험이 없기는 마찬가지고요.

부의 대물림 넘어 능력을 대물림


최근 불거지는 오너 리스크도 승계 작업이 미진해서일까요?

맞습니다. 승계 플랜이 없는 기업이 대부분이에요. 오직 지배구조에 한정돼 있죠. 기업을 성장시킨 역량에 관한 승계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오너 리스크가 커지는 이유죠. 오너 CEO들에게 “사회적 네트워크도 승계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으면 99%가 “그런 것도 물려주느냐”고 되물어요.

기업승계 비즈니스에서 로펌의 강점이 어떻게 발휘될까요?

기업들, 특히 오너들이 내부 비밀을 공유하는 유일한 집단이 바로 로펌입니다. 개인은 물론 가문 전체를 포함한 깊은 얘기를 나눠야 하죠. 로펌은 이미 민·형사 사건, 가족 간 분쟁, 총수의 개인 사건에 관여하면서 그 집안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요.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죠. 회계법인이나 컨설팅업체는 접근하기 어려운, 로펌만의 강점입니다. 자산관리는 금융사, 재무구조나 승계는 회계법인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모두 종합컨설팅을 표방하죠. 하지만 실제로는 80~90%가 재무승계에 치우쳐 있어요. 대륙아주 기업승계센터는 재무승계를 기본으로, 기존에 없던 경영 역량, 후계자 교육, 네트워크 등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까지 승계하는 콘셉트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재무승계는 후계자에게 엄청난 법적 위험을 안길 수 있기 때문이죠. 부의 대물림을 넘어 능력을 대물림하자는 것이 기존 비즈니스와 차이점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요?

일례로 기업승계진단키트를 개발해 올가을에 선보입니다. 병원에서 건강진단으로 조기에 질병을 발견해 완치하듯이, 진단키트를 활용해 승계 준비를 체계적으로 체크하는 방법이죠. 딜로이트안진에서 인사관리(HR) 전문가로 활동한 김승진 변호사가 개발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지속성장이 가능한 승계 작업을 정량화해서 기업마다 레벨을 체크하고, 이에 맞게 부족한 점을 보충하는 솔루션을 병행할 겁니다. 여기에 로펌 특유의 프라이빗한 미팅을 가미해 기업별, 가문별 특성에 맞는 커스터마이징에 나설 계획입니다.

역량 승계라는 말이 바로 와닿지는 않는데요.

제가 관찰한 1세대는 대개 육식동물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2세는 잡식, 3세는 대부분 초식 성향이 강하죠. 2~3세를 바라보는 창업주는 ‘언젠가는 잡아먹힐 것’이라는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강인한 리더십을 역량 설계의 핵심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다음은 가족관계 컨설팅입니다. 카리스마를 지닌 CEO가 있어도 가족관리가 망가져 기업 자체가 파탄 나는 경우가 많아요. CEO가 살아 있으면 가풍도 유지됩니다. 문제는 사망 후죠. 창업주는 자신의 사망 이후에도 가족 간 갈등이 없을 거라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후계자에게 절대로 가문 관리에 대한 짐을 맡기면 안 되는데, 대충 해놓고 가시는 분이 대부분인 실정이에요. 특히 형제간 후계자 구도를 명확히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큰 폭탄이 됩니다. 예컨대 1명에게 물려줄 건지, 그룹을 분리할 건지, 분리는 업종 특성에 따라 나눌지 등 명확한 방향을 정해야 해요. 나머지 소외된 가족들에게도 충분한 보상을 해서 가문의 컨센서스를 만들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자산의 승계입니다. 평판관리, 네트워크, 사회성 같은 것으로 승계가 가장 어려운 부문이죠. 대개 3세들은 어릴 때부터 “나서지 마라, 튀지 마라, 말하지 마라” 같은 말을 듣고 자랍니다. 그들끼리 모여서 밥 먹고 술 먹으며 노는 게 네트워크의 대부분이에요.

과거와 달라진 경영환경으로 고민하는 2~3세도 많습니다.

창업주나 기존 경영진 때문에 고민을 호소하는 2~3세가 의외로 많습니다. 아버지는 무섭고, 가신들은 자신을 무시한다는 거죠. 자기보다 많이 알고 있으니, 웬만한 이야기를 해서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들은 무조건 아버지 말을 듣고 적을 뿐입니다. 창업주는 투자와 성공이 인생의 전부입니다. 반면 젊은 세대는 사회적 만족감, 기업가정신, 자기만족 같은 밸류를 중시해요. 단순히 월급 많이 주는 회사가 좋은 회사도 아니고, 그런 기업문화로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창업주의 기업가정신을 물려받을 1순위가 후계자여야 합니다. 기업의 가치를 구성원에게 전파할 수 있는 정신적 지도자가 돼야 해요. 그게 바로 리더십이죠.

가업을 물려줄 창업주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후계자에게) 네가 알아서 잘해보라”는 식이 최악입니다. 창업주가 살아 있을 때 후계자를 케어해야 합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e삼성에 실패했어요. 전 그게 경영승계의 일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하면 아들의 성과지만, 실패하면 아버지가 지고 가는 것이죠. 나에게 충성한 경영진이 자식에게도 충성하리라고 낙관하는 것도 금물입니다. 이들 사이에는 대략 30년의 나이 차가 존재해요. 오너와 전문경영인은 생각 자체가 다릅니다. 후계자를 서포트할 수 있는 경영진을 미리 짜놓아야 합니다. 믿고 있던 이들이 오히려 후계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아요.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이원근 객원기자

201909호 (201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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