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기 아이템’을 고르고 섣부르게 창업에 나선다. 하지만 자기만족으로 고른 아이템은 백전백패다. 수많은 사람이 일으킨 데이터로 아이템을 정하는 게 훨씬 안전하다. 정규화 젤라또랩 대표도 네일의 ‘네’ 자도 몰랐지만, 빅데이터가 짚어준 ‘네일 패스트 패션’엔 확신이 있었다.
▎정규화 젤라또랩 대표는 “새로 투자 받은 자금으로 우리의 핵심 기술인 네일 디자인 빅데이터 역량을 키울 생각”이라며 “고도화된 시스템으로 글로벌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 사진:젤라또랩 |
|
유튜브에서 소녀시대 태연이 부른 ‘젤젤라또송’이 조회수 1000만 건(관련 동영상 7개 합산)을 넘어섰다. 손톱과 발톱에 붙이는 스티커 제품으로 뜬 스타트업 ‘젤라또랩’이 평소 셀프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다는 태연을 광고모델로 기용했다. 동시에 빠르게 성장 중인 셀프 네일 시장에도 이목이 쏠렸다. 종전엔 네일 숍에 가서 매니큐어를 바르고 말려야 했기에 번거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네일 스티커에 부착된 양면 테이프를 떼어낸 후 손톱에 갖다 붙이면 끝나는 스티커형 제품이 출시되면서 시장 판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네일아트’를 혼자서도 쉽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 셀프 네일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1000억원대가 넘는다. CJ올리브네트웍스가 운영하는 ‘올리브영’의 판매 자료를 봐도 셀프 네일 제품 판매량이 지난해부터 분기마다 100%씩 증가하고 있다.소녀시대 태연 광고로 확 떴던 젤라또랩도 장사가 잘됐다. 네일 스티커 ‘젤라또팩토리’는 2017년 11월 론칭 이후 1년 만에 오픈마켓, 화장품 편집숍, 자사 온라인몰 등에서 300만 개 이상 팔려 누적 매출 130억원을 돌파했다. 지금도 젤라또랩은 안정적으로 매출이 나오고 있고, 국내 업계 2위 자리도 꿰차고 있다. 초고속 성장엔 젤라또랩이 출시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젤라또앱’이 한몫했다. 지금까지 다운로드 100만 건 돌파, 디자인 누적 조회수 3억 회 이상, 누적 디자인 데이터 수 300만 장. 젤라또앱이 보유한 기록들이다. 젤라또랩을 눈여겨 본 투자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창업 초기 티몬 창업자 신현성 의장과 강준열 전 카카오 부사장이 설립한 초기 스타트업 투자사 베이스인베스트먼트가 투자했고, 지난해 9월 컴퍼니케이파트너스로부터 70억원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금 유치 이후 정규화(34) 젤라또랩 대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지난 8월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나기까지 일정이 수차례 변경됐다. 집중하던 현안이 뭔지 궁금했다.
바쁜 모양이다.정말 그랬다. 젤라또팩토리 자체 수요가 여름철이 성수기다. 수요도 폭증하지만, 고객 피드백도 함께 늘어나는 시기다. 우리가 완전한 중견기업은 아니기에 직접 챙겨서 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투자금을 유치할 때 강조한 소비자 데이터 고도화 약속을 지키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최근 투자받은 돈으로 개발자를 대거 채용하고 있다. 채용 후보자 면접도 밀려 있어 짬을 내기 어려웠다. 게다가 올해는 글로벌 진출도 성과를 내야 하기에 해외 협력자와의 계약관계도 꼼꼼하게 챙기고 있다.
▎소녀시대 태연을 모델로 기용한 젤라또팩토리 광고 영상. / 사진:젤라또랩 |
|
네일아트와 데이터 고도화, 낯선 조합이다.많은 사람이 젤라또랩을 단순히 네일 앱과 셀프 네일 브랜드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비즈니스의 본질은 빅데이터에 있다. 애초 사업을 기획할 때 네일 시장을 고려한 건 아니었다. 티몬에서 샐러리맨으로 일하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할 때 개발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페이지 ‘여자들이 사는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트가 네일 디자인이었다. 젤라또란 이름도 티몬에서 네일 디자인 검색을 위해 만든 프로그램 명이다. 데이터는 언제나 분명했고, 해석하는 능력이 성패를 갈랐다. 우리가 단순히 판단과 촉만 믿었다면 의류나 화장품 분야로 진출했을 거다.
빅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나?스마트폰 앱인 ‘젤라또앱’도 빅데이터 분석 툴이다. 고객들이 앱을 내려받고, 디자인을 조회한 행위 전체가 데이터로 남는다. 고객들이 어떤 디자인을 가장 많이 클릭하는지부터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확대하고 ‘좋아요’를 선택했는지 등을 철저히 분석한다.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꾸준히 매출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데이터분석에 있었다. 네일 스티커 ‘하또하또핏’, ‘띠부띠부팁’ 제품도 20만 명 이상이 게시한 15만 장 네일 디자인 가운데 가장 많이 검색하고 선택한 디자인을 분석해 상품화한 것이다. 나를 비롯해 직원들도 미래 사업 아이템과 방향성을 두고 함부로 단언하지 않는 이유다.
네일아트 디자인은 어떻게 모았나?발로 뛰었다. 네일아트 디자인을 모으기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들고 네일 숍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네일아티스트들이 쉽게 디자인을 내줄 리 없었다. 그래서 투자 유치에 나설 때와 똑같이 사업을 설명하고 플랫폼 취지를 설득했다. 단순히 디자인을 모아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네일아트 플랫폼 전체를 보여줬다. 당연히 디자인을 올린 네일 숍 정보를 추가해 고객이 찾을 수 있게 했다. 고객과 네일아티스트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길이었다. 지금도 네일아티스트들이 매일 올리는 네일아트 디자인만 수천 장이 넘는다.
생산기간 줄이려 업체 수백 군데 만나
▎젤라또팩토리의 프리미엄 네일 스티커. / 사진:젤라또랩 |
|
여전히 생산과 유통이 남는다.이 부분은 정말 문외한이었다. 네일 디자인은 최근 유행에 민감하게 변했다. 2주 안에 네일 스티커 생산을 완료해야 하는 이유다. 처음에 너무 쉽게 생각했다. 생산 업체가 많으니 주문만 하면 뚝딱 제품이 나올 줄 알았다. 업계에서 통상 5주에서 8주 정도 걸리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2주 안에 생산해주겠다는 업체를 찾지 못했다. 국내 업체 200군데에 더해 홍콩 박람회까지 달려가 생산해줄 업체를 찾아 나섰다. 그중에는 우리를 일회성 주문에 그칠 초짜(?)로 보거나 사기꾼으로 보는 이도 많았다.
그래도 해주겠다는 업체를 찾지 않았나?
▎발톱에 붙이는 페티용 상품. / 사진:젤라또랩 |
|
찾았다. 딱 한 군데였다. 이 업체도 해준다는 게 아니라 한번 같이해보자는 취지로 얘기한 거였다.(웃음) 우린 같이해보자는 말에 주목했다. 단순히 업체의 수고에만 기댈 수 없었다. 그래서 컨설팅 아닌 컨설팅으로 모든 제작 공정을 살펴봤고, 불 필요하게 시간이 걸리는 과정을 모두 없애자고 건의했다. 디자인, 제품 품질 검수까지 우리가 할 일은 직원을 아예 상주시켜 바로 처리했다. 생산 노하우가 없었던 우리도 공장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생산한 제품이 곧바로 팔려 나가면서 재고 걱정은커녕 되레 수요를 못 따라갈 정도였다. 욕심을 내 더 많은 물량을 생산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또 다른 데이터는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다.
이렇게 잘되는데 티몬에서 독립하는 게 쉬웠나?처음부터 잘된 건 아니었다. 2010년 대학을 졸업할 즈음 소셜커머스 스타트업에 관심이 생겼다. 무심코 관련 스타트업인 티켓몬스터(현재 티몬)에 지원했고 인턴으로 첫발을 디뎠다. 이후 지역사업그룹 지역본부장(재직 기간에 연 400억원 거래 달성), 그룹장(재직 기간에 연 1600억원 거래 달성), B2B 사업실장, 신규사업팀장 등을 거치며 구성원들과 호흡을 맞췄다. 그뿐만 아니라 회사가 제휴한 업체를 만나고 거래하면서 뷰티 시장을 속속들이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의 괴리감이 크다는 걸 알게 됐고, O2O(Online to Offline,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것) 서비스에 주목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회사 측에서 날 믿어준 것 같다. 그리고 지난해 분사하면서 나와 뜻을 같이했던 직원 12명도 자리를 옮겼다. 직원이라기보단 동료로서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줬다.
젤라또랩 같은 신규 창업이 처음은 아니라고 들었다.그렇다. 사실 2014년 티몬을 한번 뛰쳐나왔었다. 그때 차린 게 뷰티 멤버십 서비스 ‘블룸(Bloom)’이었다. 프리미엄 뷰티 서비스를 표방했다. 청담동 헤어살롱 등 기존에 온라인에서 할인받을 수 없던 뷰티 서비스를 최대 50%까지 할인해주는 앱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왔거나 연예인이 이용하는 헤어살롱, 네일 숍, 호텔 스파 등을 샅샅이 찾아다니며 제휴를 맺었다. 특히 장동건 고소영 부부 결혼식 때 소개돼 유명해진 W purify와도 제휴를 맺어 화제가 됐다. 시작한 지 1년 만에 티몬이 이 서비스를 사버렸다. 당시 티몬에서 사내벤처 팀인 신규사업실을 새로 만들었는데 그곳 실장으로 다시 합류했다.
일각에선 데이터와 디자인을 취하고, 숍 매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비슷한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린 완전체가 아니다. 이래서 빅데이터가 중요하다. 수많은 고객과 업체의 피드백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투자받은 자금으로 이런 점을 하나둘 개선하려고 한다. 물론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우린 업계 생태계가 더 원활해지도록 도울 방법을 찾기 위해 창업했다. 앞서 말했듯 상당수 고객과 숍 관계자 분들도 앱 이용에 만족하고 있으며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절대 우리 혼자 살아남을 수 없는 시장이다.
디자인, 생산, 유통까지 아우를 계획인가?그 작업도 필요하다. 대기업처럼 수직계열화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고객의 요청부터 최종 제품을 배송하는 데 이르기까지 하나하나에 관여해야 네일 스티커 시장이 더 단단해질 수 있다. 당장 생산 공장을 인수하거나 유통업체에 투자할 생각은 없다. 생산을 의뢰한 공장에 필요한 정보를 주면서 더 큰 효율성을 추구할 생각이다. 지금도 시시각각 변하는 고객 데이터를 어떻게 정량화하고 어떤 식으로 선별하고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가 우리 사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주요 계획은 뭔가?글로벌화다. 디자인, 유통, 생산을 한데 아우르는 것은 당연지사고, 이 모두를 고도화하면서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네일도 다른 뷰티 상품군만큼이나 한류 열풍 한가운데 있는 패션 아이템이라고 확신한다. 실제 지난해 태국 구글플레이 뷰티 분야 다운로드 수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태국어로 서비스하지 않았는데도 인기를 끌어 사실 좀 놀랐다. 예쁜 디자인의 네일 스티커는 국적을 불문한다고 본다. 벌써 일본, 홍콩 등지에서도 좋은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