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쩍 뛰어올라 피아노 건반에 착지한다. 눈을 가린 채 손에 돌을 쥐고 피아노를 친다. 피아노를 활활 불태우기도 한다. 이런 위험을 무릅쓴 퍼포먼스는 어쩌면 그의 음악 인생에 대한 상징 아닐까. 서울예고와 서울대 작곡과라는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결코 뻔한 길을 가지 않았다. 실험하는 음악가, 박창수(56) 더하우스콘서트 대표다.
▎2001년 중고로 구입해 하우스콘서트 1회부터 썼다는 1978년 뉴욕산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지금도 노장투혼을 발휘 중이다. / 사진:더하우스콘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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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연희동 자택에서 시작한 ‘하우스콘서트(이하 하콘)’는 이제 그의 다른 이름이 됐다. 상업화의 극치인 대학로 한복판에 아이러니하게 자리한 ‘예술가의 집’, 100명 남짓 수용 가능한 작은 공간이지만 정경화, 손열음, 김선욱, 조성진 같은 유명 연주자가 기꺼이 찾아오는 ‘명품’ 콘서트다.코로나19로 상반기 수많은 공연이 취소된 와중에도 하콘은 멈추지 않았다. 7월에는 대학로에서 한 달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공연하는 ‘줄라이 페스티벌’까지 강행한다. “석 달간 무관중 생중계로 유지했고, 5월부터 관객을 50명으로 제한해 받고 있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제가 진행했는데, 좀 지치네요. 20주년 되는 시점에 물러날까 해요.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도 되겠죠.”그를 만난 건 하콘이 763회를 맞은 6월 15일이었다. 피아니스트 이민정의 독주회로 꾸며진 이날, 이 ‘방구석’ 콘서트에 모여든 관객들은 마스크를 쓰고 마룻바닥에 앉아 피아노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꼈다. “연주를 작은 공간에서 들어야 몸으로 떨림이 오거든요. 경험 못 해본 사람은 몰라요. 예술의전당에서 조성진이 연주를 해도 라디오 소리랑 차이가 없죠. 제가 하콘을 시작하고 비슷한 공연이 많이 생긴 게 그런 이유예요. 사람들이 정말 좋은 소리를 알게 된 거죠. 이처럼 제대로 된 문화를 제시했다는 뿌듯함은 있습니다.”창문 너머로 점점 빨갛게 짙어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전해오던 슈만과 브람스의 진동이 예사롭지 않다 싶은 순간, 피아노 건반 하나가 부러지는 사고가 났다. 1회부터 하콘을 지켜온 1978년산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순간접착제로 응급처치를 받고 부상투혼(?)을 발휘해야 했다. 겉보기부터 측은하게 생채기가 잔뜩 난 피아노여서인지, 그 짠한 울림이 온기로 다가왔다. 코로나 시대에 공연을 강행하는 이유란 이런 걸까.“예술이란 실제 행하는 자와 청자의 교감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거든요. 좀 힘들더라도 명맥을 유지하는 행위들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제 BTS가 유튜브 콘서트로 250억을 벌었다던데, 클래식 연주자들의 온라인 콘서트는 죄다 무료잖아요. 그 차이가 너무 비정상적으로 크지 않나요. 마치 대중예술이 전부인 것처럼 돼버린 현상은 염려돼요.”
그는 작심한 것 같았다. 묻기도 전에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차이를 강조하며 열변을 토했다. 순수예술의 소중함을 모르고 대중문화에 지배당하는 한국인의 문화적 수준이 동남아보다 못하다는 개탄이었다. “대중예술은 빨리 소비되어야 하니 음악적으로 단순화된 구조를 취할 수밖에 없어요. 클래식이나 순수예술은 작가마다 구조가 다르니 일반 대중이 바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오래 곱씹어야 하죠. 지금 우리는 너무들 대중예술에 함몰돼 있어요. 단순한 구조와 논리에 익숙해지니 생각을 안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사회가 가벼워져 우르르 쏠려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지난해 11월 열린 24시간 24번의 릴레이 공연 [Why should? Why shouldn’t?] 중에서 / 사진:더하우스콘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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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국 클래식 공연장엔 젊은 관객 비중이 높은데요.김선욱이 리즈 콩쿠르 우승 전에 하콘에 왔을 때는 관객이 25명이었는데 우승 후 저희 집에 300명이 왔어요.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니 주도적으로 문화를 이끌어가는 사회의 힘이 약하잖아요. 선진국 젊은이들은 클래식이 소중하다는 걸 인식하는데, 우리는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차이를 알려고도 하지 않아요. 순수예술이 오랜 시간 닦여져야 대중예술도 발전하는 것이거든요. 어떤 사람은 조용필이 나중에 바흐가 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만약 바흐가 없었다면 조용필도 달라졌을 거예요. 바흐의 음악적 구조로 발전해서 조용필까지 온 거니까요. 대중예술을 폄훼하냐고요? 천만에요. 저 투애니원 노래도 좋아합니다.(웃음) 대중음악은 즐기고 싶을 때 즐기면 되는데, 한국에 클래식 향유자가 너무 적다는 거예요. 클래식 대중화는 불가능하지만 지금보다는 좀 더 예술에 대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 늘었으면 해요. 하콘을 하는 이유죠.
엄청난 사명감이 느껴집니다.난 클래식인들이 잘되는 문제엔 관심 없어요. 국민 의식수준이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거죠. 강남에 싸이 말춤 동상이 있잖아요. 우리 국격을 높여서 세워졌다는데, 그걸 국격으로 생각하는 게 딱 우리 수준이죠. 싸이가 나오기 전에 필리핀에도 글로벌 히트한 가수가 있었거든요. 그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굉장히 특별하게 보잖아요. 그러다 보니 젊은 아이들이 연예인이 한마디 하면 철학적이라고 감탄하죠. 우리가 존경할 사람이 그렇게 없나요. 사실 대중예술을 정치인들이 이용하고 있어서 그래요. 거기에 비판적인 시각이 너무 없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유명 연주자들이 바쁜 와중에도 하콘에 기꺼이 참여한다던데요.연주자들은 자기를 제대로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호흡하고 싶어 하니까요. 조성진이나 김선욱은 하콘에 15살에 처음 왔어요. 남들이 그들을 모를 때부터 우리가 인정했고, 음악 얘기 나누면서 신뢰도 쌓였죠. 최근에 연주자들이 유튜브 공연을 많이 하지만 행복해하는 사람을 못 봤어요. 교감의 문제거든요. 카메라 놓고 연주한다고 행복하지 않아요. 청중이 반응하는 게 보여야 연주자도 만족스럽죠. 하콘이 그런 분위기를 이어왔다는 것에 대한 믿음으로 동참해주는 것이겠죠.
클래식과 대중음악은 구조의 차이
▎2018년 제614회 하우스콘서트 중에서 / 사진:2018년 제614회 하우스콘서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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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획자이기 이전에 피아니스트다. 아니, 피아니스트 이전에 작곡가다. 촬영을 위해 피아노 앞에 선 카리스마가 ‘베토벤 클라쓰’다 싶은데, 웬걸 실제로 왼쪽 귀가 안 들린단다. “10년 전부터 특별한 원인 없이 점점 퇴화됐어요. 초기엔 왼쪽 오른쪽 음정이 다르게 들려서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아예 안 들리니 편하네요. 작곡이나 연주에도 문제없어요. 베토벤이 귀먹고 어떻게 작곡했냐고 하지만,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작곡가는 당연히 상상으로 다 들을 수 있으니까요.”여섯 살 때부터 혼자 작곡을 했고, 피아노도 독학한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여덟 살 때 학원에서 딱 한 달 바이엘을 배웠을 뿐, 서울예고와 서울대를 거치면서 한 번도 레슨을 받지 않았단다. “예고에 들어가 첫 실기시험에서 피아노와 작곡 둘 다 꼴찌를 했어요. 2학년 어느 날 눈이 떠지더군요. 그 후로 작곡은 1등을 놓치지 않았고, 피아노도 상위권을 유지했죠. 다른 아이들 치는 걸 보면서 음악의 구조를 터득한 거죠. 내가 테크닉이 훌륭한 사람은 아니에요. 혼자서 했으니 정통 테크닉은 아닌 거죠. 남이 흉내낼 수 없는 개성,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확장해서 예술화하는 실험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악보만 봐도 음악이 들린다”는 그는 정작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무대에서 작곡을 하는 즉흥연주를 한다. 댄서나 다른 연주자와 협업할 때도 즉흥으로 호흡을 맞춘다. ‘즉흥’이라고 대충하는 건 아니다. 순간적으로 소리의 구조를 쌓아가야 하기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라면서도 즉흥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중 2 때부터 즉흥을 했는데, 팔자 같아요. 내 행위는 배설이라 표현해왔는데, 배설은 안 하면 죽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되는 거죠.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덩어리를 만들고 싶은 욕구 때문에 즉흥을 합니다. 지금까지의 관습과 다른 나만의 새로운 걸 하고픈 욕구 외엔 원하는 게 없어요. 순수예술이 그런 거예요. 다른 사람이 좋아하길 바란다면 대중예술을 하겠죠.”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박창수의 프리 뮤직’ 콘서트 중에서 / 사진:더하우스콘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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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에 점프는 왜 하나요.운동은 싫어하는데 운동신경은 좋거든요.(웃음) 사람들의 기본 인식을 깨트리고 싶은 거죠. 예전에 독일에서 공연을 하는데 내 스타일을 계속 따라 하는 연주자가 있더군요. 나를 약 올리나 싶어서 그를 떨궈버리려고 해봤는데, 역시 못 따라 하더군요.(웃음) 그 이후 가끔 합니다. 백남준 특별전에서도 했고…. 그의 영향을 받았냐고요? 존 케이지와 백남준을 존경하기는 해요. 내가 고 2 때 피아노 현을 튕기는 연주법을 개발하고 음악사적 발견이라며 기뻐했는데 알고 보니 이미 30년 전에 존 케이지가 했더군요.(웃음) 백남준은 외국 잡지에 실린 ‘TV부처’ 사진 한 장에 충격을 받았어요. 이런 걸 예술화한 사람이 있다니, 그럼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도 가능한 거네? 그래서 반가웠죠.
현대음악은 소리 실험인가요.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40년 전만 해도 쇼스타코비치, 말러가 현대음악이었어요. 지금은 사람들 귀에 익숙해졌죠. 그들의 패턴이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내고 알려지면서 사람들 귀를 점점 열리게 한 거고, 베토벤도 마찬가지예요. 말러가 40년 전과 지금의 위치가 다르듯이 요즘 작곡가들도 나만의 세계를 만들겠다고 작곡하는 거죠. 그중에 뛰어난 한두 명만 살아남을 텐데, 버려질 사람들 것까지 들으려니 어렵게 느껴지는 거예요. 베토벤이 그 당시 사랑받는 곡을 만들었다면 지금까지 남을 수 없었을 겁니다.
아름답고 듣기 좋은 곡은 현대음악이 될 수 없나요.아름다움의 개념이 다른 거죠. 실제로 철판 위에 돌 하나 올려놓은 것도 예술이 되는데, ‘이게 뭐지?’ 생각하는 시점에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태교할 때 클래식을 들으라고 하는 건 클래식의 무수한 구조가 잠재적으로 아이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에요. 음역이 넓은 만큼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거죠. 그런 게 예술이 가진 힘인데, 세월호 참사나 전 대통령 서거 때 공연을 취소하라고 하는 건 상식 밖이에요. 정치·철학·종교·예술은 예부터 하나의 큰 덩어리로 존재해왔는데, 왜 우리는 예술을 유흥처럼 가볍게 다루나요.
장사익 선생은 “박창수의 음악은 깊은 산속 샘물 같아서 많은 사람이 못 마신다”고 했는데, 못 마시는 물이 무슨 소용인가요.내 음악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수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지만, 소중한 건 소중한 대로 가치를 존중받으면 좋겠어요. 요즘엔 순수예술 쪽 사람들도 자꾸 쇼잉을 하는데, 진지한 것은 진지한 대로 놔둬야 해요. 이럴 거면 국어책에 고전명작도 필요 없죠.〈부부의 세계〉대본으로 국어 공부하면 되잖아요.(웃음)〈부부의 세계〉는 한 번 보면 알지만, 고전명작은 읽어보고 생각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죠. 어느 것이 사람 뇌를 좋게 활성화할까요?”
“진지한 건 진지한 대로 존재했으면”
▎왼쪽 귀의 청력을 잃었지만 작곡이나 연주에 아무 문제도 없다. 이미 경험한 소리가 상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 사진:김경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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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찐’ 예술가가 지난해 처음으로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열정적인 연주 마지막 순간 뒤로 튕겨 나가 바닥에 뻗어버린 엔딩이 화제였지만, 그는 “초대권 없이 객석을 채웠다”는 것을 화제 삼고 싶어 했다. “예술의전당을 선망해서 입성한 건 아니고, 극장 관계자들을 계몽하고 싶었달까요. 우리 공연장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 예술의전당인데, 리사이틀홀 공연은 거의 100% 초대권으로 운영되거든요. 이건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관료는 좀 적어져도 연주자가 개런티를 가져갈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콘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금과 티켓 수입만으로 운영된다. 최근 몇 년간 계속된 SBS문화재단의 후원 외에는 기업 후원과도 거리가 멀다. 매년 5000만~1억원씩 발생하는 적자를 사재를 털어 메우고 있기에 ‘박창수는 돈이 많다’는 오해도 받지만, 사실은 집 한 채 없이 산다. “지금도 반월세로 살고 있는데, 그걸 올려 달래서 8월에 이사 가야 해요. 기업 후원이요? 어떤 회사에서 1억2000만원을 지원할 수 있다길래 가봤더니, 자기네 행사장 대관료가 400만원인데 자기네 행사 때마다 30번 와서 풍악을 울리면 1억2000만원을 지원하는 셈이라는 겁니다. 우리 수준이 아직 이 정도예요. 자연스럽게 스폰서가 생길수 있는 수준이라면 굳이 내가 하콘을 할 필요도 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하콘이 그 수준을 1%만이라도 올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죠.”
▎예술의전당 콘서트 마지막 순간 뒤로 튕겨 나가 바닥에 뻗어버려 화제가 됐다. / 사진:더하우스콘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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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주현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 백일장과 사생대회를 휩쓸던 영광의 기억을 품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살아왔다. 2010년부터 중앙SUNDAY에서 공연을 중심으로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을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전달하고자 부단히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