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물드는 것, 스며드는 것, 퍼져나가는 것과 음악 

한 CF에서 아이유가 석양 속에서 질문한다. “음악이 뭘까요?” 산울림의 김창완이 답한다. “서서히 물드는 것.” 음악은 어떤 의미에서 물드는 것이 맞다. 세상에는 물드는 것이 많다.

▎록그룹 메이햄(Mayhem)의 2008년 공연 모습. 1980~90년대의 과격한 모습에 비해서 많이 순화된 모습이다. / 사진:위키피디아
물든다고 하면 우선 액체를 떠올릴 수 있다. 어떤 사상이나 분위기에 물들 수도 있다. 나쁜 사상에 노출되어 나쁘게 물들었다거나, 또래 집단의 나쁜 분위기에 휩쓸려 물들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좋은 사상에 물들 수도 있다. 염색이 되거나 오염이 될 때도 물든다고 한다. 비가 많이 온 후 집 안에 습기가 스며들 때를 상상해보자. ‘스며들다’라는 동사에는 ‘속으로 배어들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 상황도 물드는 것과 유사하다. 공기 중 습기가 퍼지는 것과 물드는 것, 스며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같다. 습기는 액체지만, 그것의 물 성분은 소량이고 가벼워서 공중에서 기체처럼 움직인다. 액체가 스미고 물든다면 기체는 퍼져나간다.

밀폐된 방 끝자락에서 누군가가 담배를 피운다. 담배 연기는 방 한구석에 모여 있다가 시간이 지나며 방 전체로 퍼진다. 담배 연기가 방 전체에 균일하게 퍼질 확률은 매우 높고, 계속 한구석에 모여 있을 확률은 매우 낮다. 균일하게 퍼진 담배 연기가 다시 방 한구석으로 모이게 될 확률은 더 낮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자 물리학이 알려주는 바다. 담배 연기 입자를 코로나 바이러스로 대체해보자. 역시 퍼질 확률이 높다. 퍼진 바이러스로 인해 공기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그 가능성을 인정했다. 이것은 튀어나온 감염자의 침이 곧바로 다른 이의 입이나 코로 들어가 발생하는 비말감염과 다르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하고, 바이러스 보유자는 그 방에서 나가야 한다. 나가지 못한다면 방 가운데에 뭔가를 설치해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모두 마스크를 써야 한다.

뜨거운 커피가 담긴 컵에 각설탕을 넣으면 녹아서 커피 안에 퍼진다. 스푼으로 젓지 않아도 이 현상은 발생한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우유 한 스푼도 마찬가지다. 각설탕과 우유는 뜨거운 커피와 만나면 섞이게 마련이고, 이 성분들은 컵의 어느 한구석에 불균등하게 밀집되지 않고 균등하게 퍼진다. 물리학자들은 균등하게 퍼진 상태를 무질서한 상태로 보며, 높은 엔트로피 상태라고 한다. 엔트로피는 어떤 계(system)의 무질서 정도를 가리킨다. 이 우주에서 모든 계는 궁극적으로 무질서해지는 경향이 있다. 엔트로피 법칙이다. 우리가 늙어가는 것은 우리 신체가 필연적으로 무질서 상태에 도달한다는 의미다. 탱탱한 피부는 축 처지게 되고, 좌우대칭으로 보이던 두 눈은 묘하게 비대칭적이 된다. 개체로서 생명의 엔트로피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 끝은 죽음이다. 엔트로피가 낮은 질서 상태로서의 건강한 생명은 담배 연기가 방 한구석에 몰려 있는 것만큼이나 물리적으로 있을 법하지 않은 현상이다.

그래서 생명은 이 우주 속 기적이다. 물리학에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성싶은 사건, 일어날 확률이 무척 낮은 사건이다. (모든 물질은 존재의 매 단계에서 확률의 지배를 받는다.) 방 안에 골고루 퍼진 담배 연기가 다시 방 안 특정 공간에 모이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이 무척 낮을 뿐이다. 그런 낮은 확률의 사건이 일어나려면 영겁의 시간이 필요하다. 방 안에 퍼진 기체가 모두 1㎤의 구역에 다시 모이려면 지금까지 우주가 존재해왔던 시간, 즉 137억 년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사건을 푸앵카레 회(재)귀(Poincare recurrence)라고 부른다. 생명 역시 일어날 확률이 무척 낮은 사건인데, 어쩌다 발생했다. (모든 원자가 적절하게 배열되어 자기 복제가 가능한 분자가 만들어질 확률은 주사위를 36번 던져서 모두 6이 나올 확률(약 1/1028)과 비슷하다. 장구한 우주적 시간을 고려하면 이렇게 작은 확률, 즉 기적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마커스 드 사토이,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최초의 생명은 단순한 분자였지만, 인간이나 코끼리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속성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자기 증식 혹은 복제의 지향이다. 바이러스에는 죄가 없다. 우리가 누군가에 끌려 관계를 맺고 자식을 낳는 것이 죄가 아닌 것처럼. 지구를 밀폐된 방으로 생각해보자.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한 인간의 조상이 모든 대륙과 섬에 퍼져나가는 것은 방 안에서 담배 연기가 퍼져나가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모차르트 음악은 문화적 자기복제


▎독일 천문학자 케플러의 저서 『세계의 조화』 중 한 쪽.
생명이 등장하기 전 이 지구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어땠을까. 피아노의 영롱한 소리는 인간이 등장하기 전의 지구에서 들을 수 없었다. 인간이 내는 악기 소리는 바람이 내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와 다르다. 지구 자체가 내는 소리는 또 어떨까. 오래전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피타고라스는 태양계의 여러 행성이 어떤 음악을 낸다고 하면서, 그것을 듣는 이는 자신과 같은 현인들뿐이라고 말했다. 피타고라스는 음악에 수학적으로 접근하여 훗날의 예술적 서양음악의 수학적 초석을 만들었지만, 사이비 종교의 교주 같은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그가 제안한 ‘천체의 음악(music of the spheres)’이라는 관념은 이후 중세시대의 기독교 신학자들과 근대 초의 과학자들에게 전달되어 더욱 발전되었는데, 어쨌든 그들이 생각하는 행성의 음악은 조화로운 것(harmony)이었다. 하지만 이런 관념은 실제와 다르다. 오늘날 천체물리학자들이 들려주는 지구나 기타 행성의 소리는 그리 조화롭지도, 음악적이지도 않다. 인간의 편향된 관점에서 내린 평가일지 모르나, 그것은 일종의 소음이다.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인간이 만든 악기가 내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생명이 있을 법하지 않은 기적적 현상이라고 했다. 단순한 생명이 진화하여 인간과 같은 지능적 존재가 된 것도 그런 현상이다. 인간이 악기를 만들어낸 것도 확률이 무척 낮은 사건이다. 최초의 조악한 악기가 정교함의 수준을 계속 높여 피아노 같은 악기가 되어 영롱한 소리를 들려준다. 가히 우주적 기적이다. 그런 소리의 음향학적·물리학적 특성을 따져보면 고도의 질서가 엿보인다. 자연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은 소리이다. 그런 영롱한 소리 하나도 기적인데, 그런 소리들이 모여 화음을 이루고, 특수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창작되는 일은 또 얼마나 높은 수준의 기적인가.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신이 인류에게 선사한 선물일 수도 있겠지만, 억겁의 우주 속 아주 낮은 확률의 사건일 수 있다. 엔트로피 법칙이 그 안에서 작동한 영겁의 세월은 수억 년 전의 공룡을 죽게 만들고 그 뼈조차 먼지로 흩날리게 하지만, 천재를 만들 아주 작은 확률을 기어코 성사시키고야 마는 주사위 게임의 시간일 수도 있다. 그것도 우주 차원에서 진행되는 게임.

모차르트와 베토벤, 쇼팽의 음악은 이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것들은 인간의 두뇌에서 두뇌로 전달되는, 문화적 자기 복제자다. 그것들의 뇌 속 증식과 복제를 돕는 환경은 과거에는 LP와 카세트테이프였다가 1980년대 초반에는 CD였고, 최근에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안에 저장되는 파일이다. 세월이 더 흐르면 중국과 인도, 아프리카와 아마존의 오지에서 피아노 치는 소년 소녀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연주하는 [엘리제를 위하여]와 함께. 이런 음악이나 신, 환생, 사후세계, 민주주의와 같은 관념들, ‘안물안궁(안 물었고, 안 궁금하다는 뜻의 은어)’이나 ‘핵노잼(매우 재미가 없다는 의미의 은어)’과 같은 유행어, ‘라면 먹고 갈래요?’와 같이 구애의 수단으로 기능하는 영화 속 대사, 인종차별적 제스처, 특정한 머리 스타일, 조리법 등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가는 모든 문화적인 것을 영국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밈(meme)’이라고 명명했다. 이것은 자기 증식하여 복제되고 전파되는 유전자의 영어 단어 ‘gene’과 발음이 유사한 신조어다. 도킨스는 원래 모방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 단어를 이용하여 미멤(mimeme)이라는 단어를 만들었고 간단히 밈이라고 줄였다.

전파 일로에 있는 바이러스는 퍼짐을 막아야 한다. 한때 구소련의 관료들은 음악을 비롯한 문화예술 중에서 부르주아적 가치를 표현한 것들이 있고, 인민의 건전한 사상적 발전을 위해 그것들의 전파가 차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술에 대한 검열 정책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작동했다. 이런 정책의 입안자들은 예술이 퍼져나가고 스며드는 것임을 분명히 인지한 셈이다. 분명 건강해 보이지 않는 음악이 있다. 1970년대 후반 헤비메탈에서 파생된 스래시메탈이나 데스메탈, 익스트림메탈, 블랙메탈 중 일부는 매우 반사회적인 과격한 가사와 선율을 보여준다. 블랙메탈 음악가들은 특히 악명 높은 반사회적 범죄를 저질렀다. 주로 노르웨이 등 북유럽에서 인기가 있었던 이 장르의 음악가들은 교회를 방화하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여자를 강간하거나 심하게 폭행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 악마 숭배 의식은 다반사고 죽은 까마귀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공연 직전에 그것을 꺼내 냄새를 맡았던 록그룹 리더도 있었다. 1991년 메이헴의 보컬 데드(Dead)는 “콧속에 죽음의 냄새를 넣은 상태에서 노래하기 위해” 이런 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자살했다. 2002년 광주의 모 고등학생은 데스메탈에 깊이 빠져 있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살했다. 경찰은 데스메탈에 심취한 것을 원인으로 추정했다. 이 장르들은 다행히(?) 2000년대 들어 인기를 많이 잃었고, 2010년대에 와서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당시 미국과 유럽의 정부는 어떤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속 방호벽이 작동할 것은 알았을까. 병적 음악에 대한 사회적 항체가 생긴 것일까. 이 우주에는 퍼져나가는 것이 있다면 그 퍼짐을 막는 것도 있다. 막아야만 하는 것이 있고 굳이 막지 않아도 막히는 것이 있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010호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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