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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 

한우산업의 파수꾼 

김영문 기자
한우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1990년대 초반 소고기 수입 개방이 시작된 후 한우업계가 품질개선에 사활을 걸었고, ‘한우’는 프리미엄 식자재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경쟁력 있는 수입산 소고기 소비가 늘고, 사육환경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올해 취임한 김삼주 제10대 전국한우협회장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전국한우협회는 한우를 사육하는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단체다. 지난 4월 제10대 전국한우협회 수장이 된 김삼주 회장은 “농업·농촌을 이끄는 한우산업의 기반을 닦고, 계속 발전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 등과 함께 각종 제도와 정책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한우가 프리미엄 식자재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업계 선배들의 수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제 2세 축산인들이 한우산업의 대를 이어가고 있지만, 시장 환경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곡물값은 뛰고, 값싼 수입 소고기 소비도 늘고 있지요. 무조건 한우 가격을 높게 받자고 맡은 자리가 아닙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지난 10월 14일 서울 서소문 중앙빌딩에서 만난 김삼주(54) 제10대 전국한우협 회장은 협회장 선거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경북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전국한우협회 영주시지부장, 대구·경북도지회장, 한우자조금 대의원, 경북도 농어인단체협의회 공동대표, 경북축단협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우농가 최전선에서 있었다. 김 회장은 “한우는 세계에서 매우 오래된 토종 소 중 하나이며, 2000년 이상 한반도에 살았을 정도로 우리 민족과 함께해왔다”며 “하지만 단순히 우리 민족과 오랜 세월을 함께했다는 이미지만 내세워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달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위기감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우선 김 회장은 1990년대 초반 소고기 수입 개방 이후 한우가 프리미엄 시장에 자리 잡기까지를 설명했다. 그는 “당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소고기 시장을 내주기로 하고, 1995년 시장이 열리며 축산농가는 쑥대밭이 됐었다”며 “당시 수입산 소고기는 등급 없이 무게로 팔았는데 국내 한우업계는 맛을 차별화하자며 1993년부터 한우를 부위별로 등급을 매겼다. 그렇게 1+(원뿔), 1++(투뿔) 등급이 탄생했고, 국내 구이용 소고기 시장에서 한우는 프리미엄 소고기 시장을 장악했다”고 말했다.

USA투데이 “한우, 지구상 최고의 고기”


이런 노력 덕분인지 한우는 해외에서도 인정받는다. 지난 3월 9일 미국 일간신문 USA투데이에 ‘한우가 지구상 최고의 고기가 될 수 있는 이유. 와규나 고베(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소고기 브랜드)는 잊어라’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한우를 처음 취급하기 시작한 홍콩 레스토랑에서 일본·미국·홍콩·프랑스산 소고기와 비교해 시식한 결과도 함께 담았다. 해외 언론의 칭찬뿐만 아니라 국내 한우산업도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한우 소비가 계속해서 늘면서 소 한 마리당 가격이 1000만원을 웃돌 정도다.

하지만 국내 소고기 소비량이 늘면서 한우업계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소고기 소비량이 2000년 40만2000t에서 2019년 67만2000t으로 27만t(67.2%) 늘었지만, 이 중 한우가 차지한 비중은 12.2%(3만3000t)에 불과했다. 소고기를 찾는 소비자들이 비싼 한우보다 수입육으로 눈을 돌리면서 수입산 소고기의 한우 대체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고 한우 사육 두수를 마냥 늘릴 수도 없다. 김 회장은 “무작정 사육 두수를 늘려 공급을 늘리면 한우 가격은 떨어지겠지만, 수입에 의존하는 기타 부자재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 한우농가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값’ 한우에 등 돌리는 소비자, 원가 부담을 호소하는 한우농가들. 김 회장의 고민이 깊은 이유다. 다음은 그와 나 눈 대화다.

취임하자마자 ‘한우산업발전법’ 얘기를 꺼냈다.

한우란 이미지는 좋지만, 업계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근 많은 한우농가가 솟값이 떨어지고, 조사료와 사료는 물론 깔짚 등 부자재 가격이 오르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우협회와 축협이 출산 증가 폭을 낮추기 위해 미경산우(송아지를 출산한 경험이 없는 암소)와 경산우 비육을 지원해 각 2만 두씩 사육 두수를 줄이자며 농가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어디 딱딱 들어맞나. 가격이 오르면 사육 두수를 늘리고 싶고, 떨어지면 사룟값과 부재 비용이 부담스럽다. 정부나 지차체가 전면에 나서서 한우 수급 조절을 체계적으로 할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 얘기다.

실제도 그런 법이 필요한가.

그렇다. 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려면 더더욱 그렇다. 어떤 정부에서는 한우육성을 6차 산업이라 보고 지원하지만, 어떤 정부는 단순히 식재료 지원사업 정도로 취급한다. 한우농가 입장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속이 탈 수밖에 없다. 다시 얘기하지만 한우산업을 지키기 위해서는 관련법 제정이 시급하다. 취임 후 가장 먼저 국회로 달려간 이유다. 국회 농림축산식품 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위원들을 만나 국내 농업과 농촌에서 한우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미래 산업화를 위해 체계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담당 공무원들과도 한우산업을 지키기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 얘기를 나눴다.

“‘한우산업발전법’ 제정 시급”

한우 가격, 사룟값 등은 언제나 변하지 않나.

그렇다. 하지만 만약 한우 가격이 내리고, 사룟값만 뛰는 상황이 지속되면 어떻게 하나. 한우산업 자체가 소멸될 수 있다. 협회장으로서 앞으로의 위기를 상정하고 대응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 상황에 따라 농가에 연락을 돌려 한우 사육 두수를 조절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과거 시장 변화를 등한시하고 무턱대고 사육 두수만 늘렸다가 채산성 악화로 폐업한 한우농가가 많았다. 시대도 변했다. 길거리 집회에 나선다고 해결되는 세상도 아니다. 농가도 탄소중립, 축산환경 개선 등 사회적 책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인식하는 가격 차이가 커 보인다.

알고 있다. 하지만 특정인이 개입해서 한우 가격을 결정하는 게 아니다. 엄연히 시장가다. 우리도 충실히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르고 있다. 이런 시장가도 가끔 모순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자연스레 나오는 얘기가 ‘자급률을 높여 시장가를 지키자’는 논리인데, 2013년 한우 도축 두수가 약 96만 두나 됐고 소고기 자급률은 50%를 넘어섰다. 하지만 도매시장에서 한우 가격은 ㎏당 1만2000원으로 급락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이라는 게 참 어려운 문제다. 한우가 가진 가치와 농가의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았으면 한다.

여전히 한우 가격이 비싸다는 소비자가 많다.

유통 탓이다. 분명 농가에서는 눈물을 머금고 싸게 넘겼는데 시장에서 한우는 여전히 비싸다. 억울할 법도 한 게 중간 유통상들이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균형적 가격에 맞춰주면 좋겠지만, 영리를 취하는 입장에서 그러겠나. 예를 들어 도축한 한 마리를 유통해 버는 이익과 두 마리를 유통해 버는 이익이 같다면 유통업자는 전자를 택할 것이다. 자연스레 최종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싼 한우를 보게 된다. 물론 협회가 직접 개입해 가격을 통제할 힘은 없다. 그래서 한우농가에 영농조합법인 직판장이나 직영 한우플라자에서 여는 직판 행사를 확대하고 있다. 실제 지난 9월 한우자조금이 ‘명절한우장터’ 사이트에서 평균 소매가격 대비 최대 50% 할인해 한우를 팔았고, 우리 협회도 추석을 앞두고 대형마트 등에서 시중 가격보다 최대 25% 싸게 한우를 팔았다. 우리가 온오프라인에서 직접 운영하는 ‘대한민국이 한우 먹는 날’ 행사도 11월 1일부터 7일까지 열린다.

추석을 앞두고 청탁금지법 상향 조치가 무산됐다. 협회 입장에서 실망스러웠겠다.

그렇다. 농축산물을 뇌물과 청탁으로 인식하는 게 안타깝다. 대체 한우를 얼마나 받아야 청탁으로 보는 건지도 명확하지 않다. 추석은 농부들이 일 년 내내 구슬땀을 흘려 거둔 작품을 나눠 먹으며 조상에게 예를 갖추는 때 아닌가. 가뜩이나 코로나19로 농촌이 어려운 상황에서 농축산물을 주고받으며 정을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앞으로도 협회 차원에서 청탁금지법이 개정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

생산도 늘리고, 고급 브랜드도 지켜내는 묘수가 없을까.

장기적으로 수출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우가 수출되는 곳은 홍콩과 싱가포르가 전부다. 전 세계 축산시장에 명함을 내밀었다고 하려면 미국이나 중동 시장을 뚫어야 한다. 1990년대 수입산 소고기 때문에 걱정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수출전략을 꾀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사실 홍콩이 세계적으로 수입품 검사가 까다로운 곳이라 중국을 비롯한 대규모 프리미엄 소고기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있다. 동남아·중동 진출을 위해 할랄 인증(무슬림이 먹도록 허용한 제품)을 받는 것도 돕고 있다. 2026년이면 미국산 소고기 관세가 철폐된다. 한우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다.

한우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생산 고도화와 환경문제다. 생산 고도화는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자는 의미가 아니다. 고급화를 넘어 ‘명품’으로 도약하면서 생산·유통단계에서 많은 연구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사육 방식 고도화, 고급사료 개발, 정육 부위별 다양한 메뉴 개발 등 생산, 유통, 소비 등 전방위에 걸쳐서 디지털 혁신이 필요하다. 동시에 냄새 없는 축산, 친(親)환경·청정 축산을 이룩해야 한다. 탄소배출에서는 축산업의 기여도가 아직 1%대에 머물고 있지만, 더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선입견도 줄여나가려고 한다. 한우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환경 폐기물과 농업 부산물을 사료로 재가공해 활용한다. 배설물도 쌀과 채소 등 다른 농산물의 생장을 돕는다. 한우산업은 결코 위해산업이 아니다.

해외에서 한우를 인정한다지만, 아직 일본 와규에 밀린다는 평가가 있다.

와규는 세계 각국에서 최고급 프리미엄 소고기로 인정받고, 가격도 한우보다 훨씬 비싸다. 브랜드 가치 차원에서 한우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정부가 나서서 와규 수출을 적극 지원하지만, 한우는 홍콩·싱가포르에만 수출할 수 있고 규제도 까다로워 농가들이 힘들어한다. 사육밀도 같은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우농가는 송아지를 생산해 판매할 때까지 일시적으로 적정사육두수를 초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적정사육기준을 번식우 10㎡, 송아지 2.5㎡로 못 박아놨다.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시 한번 ‘한우산업발전법’ 제정을 강조하고 싶다. 한우농가만 배를 채우겠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한우농가는 안정적으로 한우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얘기다. 특히 중소 한우농가의 경우 한국 축산업을 압박하는 낡은 규제에 힘들어하고 있다. 한우산업이 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힘든지 농가만 탓할 게 아니다. 정부, 농협, 시장, 농가 등 한우산업을 지탱하는 모두가 함께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세 축산인들이 한우산업의 대를 이어가고, 경쟁력 있는 외부 전문가들이 산업에 유입되면 한우는 앞으로 우리가 세계 식량전쟁에 맞설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사진 신인섭기자

202111호 (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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