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자율근무를 도입한 기업이 늘어났다. 엔데믹 시대에는 자율근무가 ‘문화’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조민희 알리콘 공동대표는 자율근무가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고 말한다. 단, 일하기 좋은 공간이 확보됐을 때만 가능하다.
▎지난 8월 16일 ‘집무실’ 왕십리점에서 만난 조민희 알리콘 공동대표는 “로켓펀치와 집무실을 연결해 온오프라인 업무 환경을 자율근무 시대에 맞게 바꾸고자 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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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처럼 삭막하지도, 카페처럼 산만하지도 않다. 세련된 디자인에 적당한 데시벨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에서 사람들이 일을 한다. 분산 오피스 브랜드 ‘집무실’의 모습이다. 2020년 워크 플랫폼 기업 ‘알리콘’은 ‘일하는 문화를 바꾸겠다’는 비전 아래 집무실을 처음 선보였다. 개인이나 기업이 시간당 비용을 지불하고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지난 8월 16일 집무실 왕십리점에서 만난 조민희 알리콘 공동대표는 “사람들이 품위 있게, 고귀함을 느끼며 일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2016년 작)에서 디자인을 참고한 집무실은 내부 곳곳이 포토존이었다.미적 요소에만 치중한 것은 아니다. 알리콘은 근무 지역에 주목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연근무가 늘어나는 등 업무환경이 빠르게 바뀌면서 모두가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퍼졌다. 조 대표는 “흩어져서 일할 수 있는 시대에는 주거지 근처에도 업무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집무실 전 지점은 사무실이 밀집한 도심이 아닌 주택가 인근에 자리해 접근성이 높고 출퇴근 시간이 단축된다”고 설명했다. 자율근무에 최적화된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발상이다.알리콘은 집무실 외에 비즈니스 소셜 플랫폼 ‘로켓펀치’도 운영한다. 2013년 스타트업 채용정보 제공업체로 시작한 로켓펀치는 현재 연간 순사용자 370만여 명이 기업뉴스와 채용정보, 투자정보 등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조 대표는 “로켓펀치와 집무실을 연결해 온오프라인 업무 환경을 바꾸고자 한다”며 “사람들이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 멋지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알리콘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집중을 돕는 음악과 향기가 있는 곳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과 조민희 알리콘 공동대표는 코로나19 엔데믹 시대에 적합한 업무 환경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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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 아이디어가 구현된 과정이 궁금하다.집 근처에 사무실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로켓펀치팀에서 나왔다. 하지만 사업화를 위해서는 공간 기능에 대한 지식과 디자인 감각이 필요했다. 2020년 공간 브랜딩 업체 ‘엔스파이어’와 합병한 이유이기도 하다. 엔스파이어팀은 이미 2017년에 ‘집무실’이라는 가상 브랜드를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이를 구체화해 2020년 9월 집무실 1호점(정동점)을 열었다. 올해 8월 초에는 7호점인 공덕점을 개점했다.
사업 성공을 확신한 건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인가.로켓펀치팀은 2015년부터 100% 원격근무를 실행해왔다. 집 근처 사무실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도 컸다. 팬데믹을 계기로 국내를 비롯해 많은 글로벌기업이 업무 환경을 혁신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율근무·원격근무를 위한 공유 오피스조차도 도심에 있어 출퇴근 시간에 큰 차이가 없다. 또 다른 대안인 카페는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집무실 같은 분산 오피스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이미 공유 오피스는 많다. 어떤 차별성이 있나.집무실도 공유 오피스 개념이지만 기존 공유 오피스와 달리 주거지 인근에 있어 출퇴근 시간을 줄여준다. 집무실 회원들을 조사한 결과, 평균 출퇴근 거리가 약 25㎞에서 6㎞로 크게 줄었다. 이용료도 합리적이다. 기존 공유 오피스들이 높은 가격대의 회원권을 제시했다면 집무실은 실사용 시간에 따라 추가 비용이 책정된다.또 소수 직원들이 관리하는 소규모 형태지만 훨씬 효율적으로 운영된다. AI(인공지능)과 IoT(사물인터넷)를 활용한 오피스 OS(운영체제) 덕분이다. 여러 지점을 365일 24시간 관리하려면 기술을 이용해 효율화하는 수밖에 없다. 전 지점에 자동화 설계를 적용해 조명, 온도, 음악을 자동으로 제어한다. QR코드 출입방식으로 공간 출입 권한을 부여하며 AI로 실시간 원격 모니터링을 실시한다.
일하기 좋은 공간을 조성하는 방법은.집무실은 시간대에 따라 조명 밝기를 조절하고 음악을 바꾼다. 낮에는 쾌적한 비즈니스 라운지처럼 운영하고, 밤에는 일몰 시각에 맞춰 공간 분위기를 전환한다. 아침에는 밝은 느낌의 비트가 나오고 점심부터는 보컬이 노래하는 음악이 깔린다. 저녁에는 재즈가 흐른다. (인터뷰 중이었던 오후 3시쯤에는 벨기에 싱어송라이터 ‘시오엔(Sioen)’이 부르는 ‘Cruisin’’이 흘러나왔다.) 화이트노이즈(백색소음)를 일부러 넣은 음악도 실험해보고 있다. 예를 들면 카페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나 철길 소리 등이다. 향기도 중요하다. 업무에 집중하기 좋은 향기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현재는 공덕점에 이러한 향기를 적용 중이며 앞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공간 형태와 구성도 업무 효율에 영향을 줄 것 같다.1인 사용자를 위한 공간 형태를 개방, 독립, 혼합 등 3가지로 구분했으며 최근에는 테이블 높이나 의자 간격 등 세부적인 측면을 연구하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사람들은 다양한 자세로 일하고 사유한다’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개념에 맞게 집무실도 여러 자세로 일하면서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공간에 주목하고 있다. 공간을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온오프라인 업무 환경을 바꾼다”
▎영화 [아가씨] 속 인테리어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집무실’ 목동점(왼쪽)과 공덕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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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입장에서 자율근무는 ‘모험’ 같다. 노하우가 있다면.앞서 말했듯이 이미 7년 전부터 100% 원격근무를 해온 로켓펀치는 ‘어떻게 해야 자율근무가 효과적인지’ 연구해왔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회사의 관리 없이 ‘알아서’ 한다. 기업 입장에서 직원들이 해야만 하는 일을 줄여주고 자율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 자율근무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만큼 동료도 성실하게 일할 것’이라는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신뢰가 깨질 경우 인력 재배치 등 조치를 취한다. 알리콘은 매년 새로운 자율근무 노하우를 발표한다. ‘사무실 없이 일 잘하는 법’, ‘자율근무 조직을 위한 취업규칙’, ‘자습지(자율근무습득지침서)’ 등이다. 참고해도 좋다.
그래도 업무 현황을 파악해야 할 텐데.기업이 자사 직원들을 집무실에 보낼 경우, 집무실이 제공하는 ‘워크 콘텐트’가 직원들의 업무 현황 파악 및 HR(인적자원)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집무실 이용자들의 비즈니스 프로필에는 워크 콘텐트가 기록된다. 일일 업무 시간과 업무 내용, 미팅 스케줄 등 워크 콘텐트가 자연스럽게 쌓이는 방식이다. 기업은 대시보드에서 직원들의 일별·월별 집무실 이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용 현황에는 출퇴근 시간과 집무실 이용 시간 등이 포함된다. 워크 콘텐트는 자율근무 시대에 유용한 데이터다.
코로나19 엔데믹 시대를 전망한다면.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직원들이 흩어져 있어도 기업 운영에 지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기업이 많아졌다. 2030년이면 전 세계 경제활동인구의 절반 정도가 유연하게 일할 것으로 본다. 최근 구글 워크스페이스가 발표한 ‘하이브리드 근무에 대한 글로벌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 이상이 하이브리드 및 유연근무가 향후 3년 내에 조직의 표준이 될 전망이다. 하이브리드는 원격근무와 본사 출퇴근을 병행하는 구조를 말한다. 글로벌컨설팅 기업 맥킨지도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기업의 임원급 100명 중 90%가량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하이브리드 워크 모델이 자리 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같이 하이브리드 업무 환경의 필요성은 확대되고 있지만 원격근무를 위한 오피스를 새로 마련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집무실 같은 분산 오피스를 찾는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확신하는 이유다.
로켓펀치와 집무실이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흩어져서 일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연결돼 다양한 정보를 교류할 수 있도록 서비스할 계획이다. 집무실 이용자들의 비즈니스 프로필을 로켓펀치에 연동하는 방식이다. 집무실 이용자들은 로켓펀치 앱에서 서로의 직무, 재직회사 등 비즈니스 프로필을 확인할 수 있으며, 채팅도 할 수 있다. 역으로 로켓펀치 회원들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공간인 집무실에서 만나 소통할 수 있다. 이같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통합 커뮤니티 플랫폼을 조성하는 중이다.
집무실의 단기 목표는.현재 집무실 7개 지점은 정동, 서울대, 석촌, 일산, 목동, 왕십리, 공덕 지역에 있다. 수요에 기반해 지점을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올 연말까지 3개 지점을 추가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10개 지점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면 총 20호점이 된다. 특히 주택가에서 3㎞ 인근에 여러 지점을 확보할 계획이다. 알리콘 자체 연구 결과, 지점과 잠재 이용자 간 이상적 거리는 3㎞ 이내였다. 3㎞ 이내 이용자의 매출 기여 비중이 48%에 달했다.
해외 진출도 모색하고 있나.해외 진출 계획은 집무실 기획 단계부터 세웠다. 현재는 아시아 지역에 주목하고 있다. 싱가포르 등 서울과 비슷한 도시 구조를 가진 국가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베트남, 필리핀 쪽에서도 협업 제의가 들어왔다. 내년이면 성과가 나타날 전망이다.
알리콘에서 ‘일’은 어떤 의미인가.알리콘의 기업가치는 ‘좋아하는 일을 해라. 그러면 평생 일할 필요가 없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일을 삶과 분리하지 않는 문화를 확산하는 것이 알리콘의 비전이다.
※ 김익환은… 노동력 위주의 제조업인 한세실업에 IT를 접목해 성과를 내고 있는 혁신 CEO다. 한세드림, 한세엠케이, FRJ 등 패션 자회사들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끌며 지난해 1조9224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갖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리=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