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Home>포브스>Management

손부한 세일즈포스 코리아 대표 

한 발 앞선 통찰과 혁신 

노유선 기자
설립 13년 만에 CRM 업계 최강자인 SAP를 제치고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른 세일즈포스. 반짝스타에 그치지 않고 혁신을 거듭한 결과, 지난해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25%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세계적인 성공’에 이은 ‘지속적인 성장’의 비결은 무엇일까. 손부한 세일즈포스 코리아 대표의 통찰에 힌트가 담겨 있다. “세상의 변화보다 한 발 앞선 기업은 성장하고, 변화에 발맞춰 나간 기업은 그나마 성장하지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기업은 도태하고 맙니다.”

▎지난 2월 신뢰경영 평가기관 GPTW 코리아는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CEO’로 손부한 세일즈포스 코리아 대표를 선정했다. 손 대표의 수평적 소통방식이 임직원의 신뢰로 이어졌다는 평이다.
1999년 설립된 세일즈포스는 글로벌 고객관계관리(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이하 CRM) 업계에 혜성과도 같은 존재였다. 라이선스 기반 CRM 소프트웨어가 주류였던 시대에 세일즈포스는 최초로 SaaS(Software as a Service) 형태의 클라우드 CRM 솔루션을 선보였다. 기업이 세일즈포스 솔루션을 이용하면 값비싼 소프트웨어를 구매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이용해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저장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여러 기능 중 필요한 서비스만 고르는 커스터마이징도 가능하다.

글로벌 CRM 시장 판도는 빠르게 재편되기 시작했다. 세일즈포스는 2012년 독일 CRM 기업 SAP를 밀어내고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뒤 2020년에는 시가총액 1790억 달러를 기록하며 원조 CRM 기업 오라클의 시가총액(1760억 달러)을 넘어섰다. 오라클은 세일즈포스 등장에 앞서 기업용 소프트웨어로 글로벌 시장을 제패했던 기업이다. 세일즈포스가 업력 40년 이상인 오라클의 시가총액을 추월하자 비로소 CRM 업계는 클라우드 시대를 이끌어낸 세일즈포스의 저력을 인정했다.

현재 세일즈포스 고객사는 전 세계에서 15만 곳에 달한다. 구글과 페이스북, 버버리, 로레알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세일즈포스 솔루션을 이용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지난해 세일즈포스는 글로벌 CRM 시장점유율 23.8%를 기록하며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SAP(5.4%)와의 격차는 전년보다 더 벌어졌다. 오라클의 해가 저물어갔듯이 세일즈포스는 언제까지 업계 최강자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손부한 세일즈포스 코리아 대표(59)는 “시대 변화보다 한 발 앞서 혁신한 기업은 다음에 올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며 “세일즈포스는 시대 변화를 내다보고 이보다 먼저 혁신하는 통찰력을 가진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엔데믹 시대에 접어든 전 세계는 근무 형태의 다양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의 가속화, MZ세대의 등장, ESG 경영 열풍 등 여러 변화를 동시에 겪고 있다. 이 같은 혼란 속에서 기업이 어떻게 통찰력을 얻고 혁신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지 손 대표의 의견을 들어봤다.

지속적인 혁신을 통한 성장


약 36년간 HP코리아, 액센츄어컨설팅, SAP코리아 등 글로벌기업에서 활약해왔다. 전 세계 수많은 고객사의 흥망성쇠를 지켜봤을 텐데,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새로운 기술이든 사회 변화든 혁신에 개방적인 기업이 지속가능하다고 본다. 반면 변화에 소극적인 기업은 결국 도태한다. 지금 당장 우수한 비즈니스 모델과 견고한 시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성과가 오래 간다는 보장은 없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조금 더 유지될 수는 있겠지만 20~30년을 넘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업들은 대체로 혁신이 가져올 성과를 확신하지 못한다. 변화에 대한 저항감만 있을 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우리 기업은 지금도 잘하고 있다. 그런데 더 잘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들을 변화로 이끌기 위해 어떻게 설득했나.

더 잘하고 싶다면, 더 성장하고 싶다면 성과에 기준점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처음부터 장기적인 관점에서 거대한 성과를 기대하면 혁신은 멈추고 만다. 우선 혁신의 크기가 작아도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봐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혁신에 도전할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이 성공을 낳는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두되 단기 목표를 세세하게 마련하면 작은 목표 달성만으로도 조직 전반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컨설팅 업계에서는 이를 ‘퀵윈(Quick Win)’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내 3개월 정도 새로운 CRM 솔루션을 도입해보는 것이다. 단기간에 작게나마 성과를 거둔다면 혁신에 가속도가 붙는다. 2~3년 안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겠다는 큰 그림은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기업에 필요한 혁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디지털전환을 꼽을 수 있다. 잠재적 고객의 변화에 맞게 고객관리 전략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고령화에 따라 인구가 줄면서 잠재적 고객도 덩달아 감소하고 있다. 매출 감소는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많은 기업이 시장은 계속 커진다고 착각하고 있다. 잠재적 고객을 재정의해 고객관리 전략을 재편해야 한다. 해외로 나가 고객군을 늘릴 것인지 아니면 국내 기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일 것인지 택해야 한다. 둘 다 하면 좋겠지만 둘 중에 하나라도 실행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려면 CRM 측면에서 디지털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잠재적 고객을 늘리려면 수많은 고객 데이터를 관리해야 하고, 기존 고객의충성도를 높이려면 지금보다 정교한 고객관리가 필요하다. 두 경우 모두 기존 기술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고객 감동을 넘어 고객 성공으로

CRM 솔루션에는 어떠한 디지털전환이 필요한가. 구체적으로 기업 성장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 설명해달라.

AI 기술을 도입하면 기업이 다른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험사가 보험 영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종류의 보험상품을 숙지하고 고객과 상담하면서 적합한 상품을 머릿속에서 찾아내야 한다. 베테랑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AI 기술이 결합된 CRM 솔루션을 이용하면 신입직원도 5년 차 직원만큼 성과를 낼 수 있다. 고객상담 내용을 음성에서 문자로 변환한 뒤 이를 바탕으로 AI가 고객 니즈를 분석한다. AI는 분석 결과를 토대로 보험사가 고객에게 어떤 제안을 하면 좋을지 안내한다. 그러면 보험사는 빠르고 정확한 상담 덕분에 여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확보한 시간에 더 많은 고객을 찾아다니거나 시장을 넓힐 수도 있고 또 다른 서비스를 구상해 비즈니스 라인을 늘릴 수도 있다. 이처럼 디지털 혁신은 기업이 성장을 위해 다양한 방향을 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주목해야 할 CRM 트렌드가 있다면.

‘고객 맞춤형 초개인화 서비스’가 CRM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고 본다. 잠재적 고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모든 기업이 해외로 나갈 수는 없다. 기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선 차별화된 경험을 고객에게 선사해야 한다. 영업이든 마케팅이든 판매든 고객과의 접점이 있는 모든 단계에서 고객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흩어져 있는 고객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면 빅데이터가 형성된다. AI의 빅테이터 분석 결과를 토대로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일관되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넷플릭스의 ‘고객 맞춤형 상품 제안’이 대표적이다. 넷플릭스는 고객이 로그인할 때마다 취향에 맞을 법한 영상을 여러 개 추천해준다. 누적된 검색·클릭 데이터와 회원가입 시 수집한 개인정보 등을 통합해 고객의 특성과 선호를 분석했기 때문이다.

고객 경험 차별화에 실패한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고객 데이터를 통합하지 못하면 차별화는 커녕 기본적인 마케팅조차 실패하게 된다. 마케팅 단계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와 영업 단계의 서비스가 일관되지 못하면 고객에게 나쁜 경험을 주는 셈이다. 예를 들어 전날 한 기업의 서비스센터에 전화해 제품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는데 다음 날 같은 제품에 대한 마케팅 프로모션이 문자로 날라온다면 고객은 불쾌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고객 경험이자 가장 실패한 마케팅이라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기업은 고객의 서비스 만족도가 올라갈 때까지 마케팅을 멈춰야 한다. 최소한 화를 돋우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제품 판매, 마케팅, 서비스 등 모든 영역에서 나오는 고객 정보를 통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CRM 솔루션 도입 외에 고객관리에 효과적인 다른 방안이 있다면.

플렉스 문화에 주목하면 무엇이 고객관리에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있다. 요즘 소비자들은 특정 기업이나 브랜드를 선택할 때 제품·서비스만큼 ESG 경영을 위한 기업의 활동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세일즈포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의 ESG 경영이 사회공헌에 기여하는 정도가 소비자의 브랜드 선택과 브랜드 로열티 증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신의 가치관이나 관심사가 반영된 제품을 구매하고 이를 과시하고자 하는 플렉스 문화와 연결돼 있다. 그렇다 해서 ESG 활동을 브랜딩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브랜드를 구축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기업의 ESG 활동에 따른 소비자의 반응은 생각 외로 즉각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ESG 활동은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를 높여준다.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커지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업무에 만족할수록 기업은 더 크게 성장한다. 고객을 외부고객과 내부고객으로 나눈다면 직원은 내부고객이라 할 수 있다.

세일즈포스 코리아 대표 취임 후 3년이 흘렀다. CRM 측면에서 한국 기업만의 특징이 있는지 궁금하다.

디지털 격차가 크다는 점이다. 디지털 혁신 강도에 따라 기업을 세 그룹으로 구분한다면, 첫 번째로 디지털 혁신 문화가 태생적으로 내재된 기업,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 그룹이 있다. 쿠팡, 네이버, 카카오 등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로는 비록 디지털 네이티브는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디지털전환을 이뤄내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을 들 수 있다. 반면에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 기업이 세 번째 그룹에 속한다.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룹의 격차가 현저히 벌어졌다는 것이다.

세 번째 그룹에 남기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글로벌 시대에 한국 기업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응했으면 한다. 시대 변화에 발맞춰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기업도 많지만 좀처럼 변화에 뒤따라오지 못하는 기업들이 있어 안타깝다. 과거에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 저렴한 가격에 팔면 수익이 증가하고 기업이 성장했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고객에게 제품을 더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안, 고객을 더 감동시킬 수 있는 전략, 고객 만족을 위해 추가할 수 있는 서비스 등을 고민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세일즈포스가 고객사의 비즈니스가 성공할 수 있도록 CRM 솔루션을 고도화하듯이, 고객 감동을 넘어 고객 성공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 손부한 대표는···
1986년 서울대 조선해양공학 학사
1986년 대우해양조선 R&D 엔지니어
1991년 HP Korea 삼성 ERP 프로젝트 리더
1995년 액센츄어 PI & SAP 도입 컨설턴트
2000년 i2 테크놀로지 코리아 영업총괄 부사장
2007년 HP Korea SW영업 총괄
2008년 SAP Korea 영업 총괄 부사장
2014년 아카마이 코리아 대표
2019년 ~ 현재 세일즈포스 코리아 대표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사진 김경빈 기자

202210호 (2022.09.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