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OLED 복원 레이저 기술OLED 불량화소 복원 기술을 갖추기까지 HPK의 혁신 과정을 묻는 질문에 조 대표는 “시작은 그저 작은 부품 에이전트였다”고 말했다.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친 것도 “나이 마흔을 앞두고 내 일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계획에서 출발했다”는 회고도 이어졌다.“연구직으로 일하다가 직장 생활 말미에는 스태프 조직으로 빠졌는데, 그걸 계기로 업계를 보는 눈이 넓어졌어요. 연구사무직노조 부위원장도 맡았는데, CEO 면담이나 계열사별 기술 교류 등을 활발히 진행하면서 시야가 더 넓어졌죠. 막연히 마흔이 되기 전 내 사업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무작정 사직서를 냈는데, 1년 반 만에 수리됐습니다. 중요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실행력인 것 같아요. 사업 초기에는 돈과 사람을 잃는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그때 결단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HPK는 없었을 테죠.”창업 후 HPK가 본격적인 기술 기반 기업으로 자리 잡는 데는 상당한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LG전자에 일용직 노동력을 공급하는 단순한 사업 구조에서 시작한 회사는 이후 부품 에이전트로, 다시 부품을 구입해 모듈화하는 단계로 발전해갔다. 비약적인 성장은 창업 8년 차인 2015년 우연치 않은 기회에 찾아왔다.“당시 TV에 레이저를 투과하는 렌즈 모듈을 납품했는데, 기술적 설계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작업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LG에서 카메라 검사장비를 납품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 검사장비였는데, 수익성이 없어 제안을 받아드리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당장의 수익보다는 레퍼런스를 쌓는다는 각오로 제작·납품을 결정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 결정이 회사의 미래를 결정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죠.”2015년 일본에서 일어난 큰 지진은 당시 LG이노텍과 소니가 나누어서 납품하던 해당 검사장비를 전량 LG전자로 돌리게 만들었다. 갑자기 수요가 폭증한 LG전자 입장에선 단시간 내 폭증된 장비를 납품받을 협력사를 찾아야 했고, 검사장비를 1년에 고작 10여 대 납품하고 있던 HPK에 천금 같은 기회로 다가왔다.“갑자기 발주 물량이 300대로 늘더군요. 50억원 수준이던 한 해 매출이 300억원대로 급증했어요. 거기서 동력을 얻어 OLED 불량화소 복원 기술도 더 고도화할 수 있었습니다. 2017년 들어선 600억원대로 뛰어올랐죠.”처음엔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조 대표의 생각은 바뀌어갔다. 당장 돈이 되는 아이템에만 급급하기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가 기업 성장의 절대조건이라는 깨달음이었다.“제조업 사이클은 어느 때보다 빨라졌습니다.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거나 포기한 아이템이 미래를 먹여 살릴 효자가 될 수 있어요. 현재의 캐시카우도 중요하지만 항상 ‘넥스트 버전’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탄소섬유·음극재 소재 개발에 도전장
지역 제조업 살리기 프로젝트2020년에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 확대에도 나섰다. 알루미늄 다이캐스팅 기술 선도기업인 세아메카닉스 인수다. 세아메카닉스는 국내외 주요 기업들에 2차전지, 자동차, 전자·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다이캐스팅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올 3월에는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며 투자 여력을 끌어올렸다.“세아메카닉스가 있는 구미에 처음 갔을 때는 거의 문전박대 수준이었습니다. 매수자, 즉 HPK가 너무 작은 회사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2019년 12월 말에 다시 만났고, 1월 초에 인수합병 MOU를 맺었어요.”조 대표는 세아메카닉스 인수를 결정하면서 철저하게 기존 사업·기술과의 시너지를 고려했다. HPK의 자동화 기술, 스마트 공정 시스템을 적용하면 세아메카닉스의 기술력과 품질을 몇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예를 들어 육안으로 하던 검사를 장비로 해 정확도를 높이는 거죠. 붕어빵을 찍어내면 끝에 튀어나온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게 불량입니다. 예전에는 이걸 일일이 사람 손으로 깎았어요. 여기에도 장비를 도입했죠. 고객사도 국내외 대기업 위주로 탄탄히 잡혀 있어 과감하게 인수를 결정했습니다.”M&A 과정을 설명하던 조 대표는 국내 중소·중견기업이 닥친 승계 문제로 말머리를 돌렸다. 한국 제조업 1세대, 특히 지방에 적을 둔 제조산업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였다.“제조 1세대는 이미 투자 여력을 잃었고 사업을 지속할 의지도 꺾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식에게 물려주려 해도 힘든 일 싫다며 다 도망가죠. 팔려고 해도 제값을 받기 어려워 포기하고요. 탄탄한 기술을 보유한 제조업체가 그냥 사라지는 겁니다. 다들 천천히 죽어가고 있어요. 국가적인 문제입니다.”조 대표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니 세아메카닉스의 시장성을 본 건 맞다”면서도 “누군가는 이런 일을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수도권에 몰려 있던 투자금이 지방으로 내려가 소외된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도 조 대표가 생각하는 이번 M&A의 의미다.조 대표는 세아메카닉스 인수를 계기로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제조기업들과 지역 경제를 함께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지방 소멸을 말로만 걱정할 게 아니라 활력을 잃은 지역 제조업에 혁신을 더하는 일부터 시작하겠다는 다짐이다.“지방에서 제조업 하시는 분들을 만나보면 다들 마음속에 응어리가 맺혔어요. 제조업은 끝났다는 패배주의도 점점 강해지니 새로운 혁신은 언감생심이죠. 사장이야 그렇다 쳐도, 직원들과 딸린 식구들은 어떡합니까. 심각한 문제예요.”조 대표는 “독보적 기술은 밤낮없이 수십 년을 매달려야 하는 일”이라며 지역 제조업에 새로운 기술로 활력을 불어넣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경북을 중심으로 한 지역펀드 조성에도 나설 계획이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지만, 제조업의 근간은 끊임없는 기술 개발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