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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근 효성전기 회장 

은근과 끈기로 일군 혁신 50년 

장진원 기자
효성전기는 1973년 창업 이래 모터 제조 한 우물을 파왔다. 창업 초부터 세계 무대로 발을 내디딘 끝에 세계 최고 수준의 모터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했다. 정진근 회장은 지난 50년 세월을 ‘은근과 끈기’로 이뤄낸 혁신의 과정이라 표현했다.

▎정진근 회장이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블로어(Blower) 모터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패럿(F)’은 전기용량을 나타내는 국제단위다. 전자기학, 전기 화학 분야에서 이름을 남긴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1791~1867)의 이름에서 따왔다. 패러데이는 전자기장의 기본 개념을 정립하고 전자기 유도, 반자성 현상, 전기 분해 원리까지 발견한 위대한 과학자다. 오늘날 전자기학·전기 화학 분야에서 그의 업적을 뻬놓고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하다.

패러데이는 자신의 연구와 발견을 학문적·이론적 영역에만 가두지 않았다. 1821년, 수은에 도선을 담가 금속 막대와 전선이 회전하는 장치를 만드는 데 성공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전기 ‘모터’의 원형이다. 문명의 절정을 향해 달음질치는 지금, 모터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산업 현장의 온갖 기계, 로봇, 선풍기·에어컨·냉장고·세탁기 같은 가전제품, 전기자동차, 심지어 손가락만한 크기의 장난감차에 이르기까지, 모터는 전기(電氣)를 인류 문명의 전기(轉機)로 바꿔낸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에서 탄생한 모터는 기계 문명의 총아나 다름없었다. 이 위대한 발명의 수혜를 입은 서구는 혁명을 완성해 나갔고, 근현대 기계 문명의 주도권도 틀어잡을 수 있게 됐다. 아시아에선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그러했다. 오늘날까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럽과 일본의 글로벌기업들이 모터 산업의 헤게모니를 거머쥔 역사적 배경이다.

부산 기장군에 자리 잡은 효성전기는 글로벌 모터산업의 메기 같은 존재다. 1973년 창업 이래 블로어(Blower) 모터를 축으로 소형 모터 개발과 생산이라는 한 우물을 파왔다. 블로어 모터는 주로 자동차 에어컨·히터에 들어가는 공조용 모터를 말한다. 효성전기는 전 세계 블로어 모터 부문에서 최고 경쟁력을 갖췄다. 지난 2021년에는 글로벌 블로어 모터 시장에서 자체 추산 결과 약 20% 점유율을 넘어서 세계 2위에 올라섰다. 독일 B사를 3위로 밀어낸 결과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본 D사는 토요타 계열사다. 일본 D사가 연 1000만 개에 달하는 자체 캡티브마켓(captive market)을 보유한 것과 감안하면, 웬만한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을 고객사로 둔 효성전기의 저력을 짐작할 수 있다. 정진근 효성전기 회장은 “D사를 따라잡아 1등 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현재 효성전기는 자동차·에어컨 시스템용 블로어 모터를 비롯해, 조향장치용 EPS 모터, 브레이크 시스템용 ABS 모터 등 다양한 자동차용 모터를 생산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부산에 자리한 중견기업이 글로벌 공룡들과 경쟁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그들을 압도하는 성과를 내놓는 셈이다. 정 회장은 “경쟁자들에겐 우리가 좀 골치 아픈 존재일 것”이라며 웃었다.

글로벌 최고 블로어 모터 경쟁력


▎무향실에 들어선 정진근 회장. 모터 본연의 소음을 잡기 위한 시험 공간이다.
효성전기의 출발은 지난 1973년이다. 북 치는 토끼나 미니카에 들어가는 완구용 모터 제조가 시작이었다. 정진근 회장의 부친인 고(故) 정태옥 사장은 제면(솜)과 타일을 만들던 제조업체 CEO였다. 미래 사업을 고민하던 차에 1977년 들어 당시 완구 모터를 제조하던 삼영전기를 인수했고, 사명을 효성전기로 바꿨다. 모터와 맺은 첫 연이다. 정 회장이 부친의 뜻에 따라 효성전기에 입사한 건 인수 후 몇 달 지나지 않아서였다. 고등학교·대학교를 서울에서 나왔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얼마 안 있어 “내려오는 게 좋겠다”는 부친의 말을 들었고, 고민 끝에 부산행 편도 열차표를 끊었다.

“기아자동차 영업본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브리샤 모델이 택시기사들에게 인기였는데, 현대자동차에서 포니가 나오면서 전세가 역전됐죠. 그 바람에 온갖 택시회사를 돌면서 아군(브리샤)을 포섭하고 적군(포니)을 끌어오기 바빴어요.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는 사실 고심했습니다. 부친의 불같은 성격도 걱정됐고, 나 혼자 서울에서 멋지게 성공하겠다는 맘도 컸거든요. 하지만 모터는 아버지도 저도 처음 겪는 분야였어요. 도전해보자는 맘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인수 당시 효성전기는 북 치는 인형이나 미니카 등에 들어가는 완구용 모터 생산이 전부였다. 모터에 대해 아무 지식과 정보가 없는 상황은 정 회장이나 인수를 주도한 부친 정태옥 사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국내 다른 모터사 제조사들이라고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완구가 아니면 전기면도기, 헤어드라이어 모터가 당시 한국 모터 기술의 최대치였다.

“작은 장난감 모터에 부품이 몇 개나 들어갈 거 같습니까? 24개입니다. 1977년 당시 모터 하나에 150원을 받았는데, 받는 돈에 비해 품이 너무 많이 들었어요. 홍콩의 존슨, 일본 마부치 같은 글로벌기업들이 이미 시장을 장악한 상태에서 우린 너무 작은 존재였죠.”

제면과 타일에서 벗어나 ‘미래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비전에 비해 현실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완구회사에 다니던 친구의 도움을 받아 구매 자료를 받아봤는데, 효성전기의 원재료비가 수입단가만도 못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경쟁은커녕 따라갈 수조차 없는 격차였다.

“북 치는 토끼로는 최대치까지 가봐야 중소기업에 그칠 게 빤했어요. 모터의 꿈을 이걸로 끝낼 순 없다고 결심했죠. 그렇게 다음 아이템으로 찾은 게 헤어드라이어용 모터, 진공청소기에 들어가는 AC(교류) 모터, 커피자동판매기용 모터였습니다. 커피와 프림을 모터에 달린 프로펠러가 저어주는 건데, 당시 삼성전자와 자동판매기 직원들이 ‘몇 회전이 제일 맛이 좋은가’를 두고 연구하던 웃지 못할 기억이 떠오릅니다.”

완구를 넘어 가전 분야에서 경쟁력을 쌓아가자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리기 시작했다. 자동차 시장 진출이다. 만도기계에서 자동차 공조용 블로어 모터 개발을 의뢰한 게 시작이었다. 1982년 들어 드디어 양산에 성공한 제품을 ‘봉고’ 승합차 모델용으로 납품했다. 일본산 샘플을 구해 이리 뜯고 저리 뜯으며 밤낮을 지새운 성과였다.

“영업과장 시절이었어요. 하루는 품질과장이 신문지에 뭘 싸온 거예요. ‘오늘부터 불량품이 나오면 이걸로 다 깨부수겠다’며 씩씩대더군요. 신문지 안에 든 해머를 들어 보이면서요. ‘품질을 맞춰도 납기 못 맞추면 죽는 건 똑같다’며 겨우 진정시킨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블로어 모터 시장에 본격 진출했어요. 봉고에서 승용차로, 나중에는 국내 모든 자동차 회사들의 블로어 모터를 우리가 도맡게 됐죠.”

1970년대 국내 제조업 생태계가 으레 그랬듯, 정 회장 역시 일본 제품 카피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비슷한 제품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만들어도, 품질의 기준이 되는 진동과 소음의 벽을 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덜덜거리는 진동, 골치 아픈 소음의 원인은 부품의 정밀도 차이였다. 정 회장은 “모터 케이스 하나 만드는데 공차(기계부품 제작 시 설계상 정해진 치수에 대해 허용되는 범위의 오차)가 10배 이상 났다”며 당시 겪은 어려움을 회고했다.

“우리 제품의 공차가 0.1이라면 일본은 100분의 1을 맞췄어요. 이미 부품 만드는 능력이 10배 넘게 차이 났던 거죠. 그걸 극복하려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일본 제품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깎고 또 깎았어요. 공정 하나하나를 수정해 들어간 겁니다. 그렇게 불량률을 조금씩 줄여갔어요. 은근과 끈기가 아니면 못할 일입니다.”

부품 국산화도 포기할 수 없었다. 특히 핵심 부품인 코어(core)의 원재료 규소강판은 전량 일본산을 들여 썼다. 마그넷도 그랬다. 국내 유일 제철사인 포항제철은 아직 규소강판을 만들 역량이 없었다. 정 회장은 “한 개 두 개 부품 국산화에 성공할 때마다 뛸 듯이 기뻤다”며 “1986년 일본과 합작해 정류자(commutator, 전기를 흘려주는 부품) 국산화에 성공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고 돌아봤다.

완구용 모터에서 가전제품으로, 블로어 모터 개발로 승합차에서 승용차용 제품 개발에 성공한 정 회장이 눈을 돌린 건 수출이었다. 창업 초기부터 기술 개발과 동시에 글로벌 시장 진출만이 장기 성장과 생존의 명운을 가른다고 봤기 때문이다. 헤어드라이어에 들어가는 AC모터 대신 자동차에 들어가는 DC(직류) 모터를 1986년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홍콩 수출이 품질 문제로 꺾이는 쓴맛을 보기도 했다. 이를 악문 정 회장은 1995년부터 무조건 해외로 나간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내 자동차 1차 벤더에 붙어서 납품을 늘려봤자 200억원이 최대치라는 계산이 서더군요. 이래서야 기업할 맛이 나겠나 싶었습니다. 1995년 사장에 취임한 직후 직원들에게 ‘무조건 밖으로 나갈 테니 그리 알라’고 큰소리쳤죠. 그때부터 해외 모터 관련 전시회를 이 잡듯 찾아다녔습니다.”

세계 시장을 정복한 진돗개전략


꿈에 그리던 첫 수출은 1997년 들어 이뤄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의 호주 자회사인 GM홀덴에 효성전기의 이름을 새긴 블로어 모터를 처음으로 납품했다. 정 회장은 “지금은 힘깨나 쓴다는 자동차 회사들이 모두 우리 제품을 쓴다”며 상전벽해를 자랑했다.

수출은 곧 세계 무대에서의 경쟁을 의미한다. 지금이야 국내 완성차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를 누빈다지만, 1990년대 말만 해도 모터나 완성차나 할 것 없이 변방 취급을 받기란 매한가지였다. 1997년 들어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파고 속에 경쟁력 있는 국내 기업들이 헐값에 외국에 팔려나갔다. 한라그룹이 부도를 맞으면서 모터 사업부가 보쉬에 인수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초가 되자 효성전기의 경쟁사도 어느덧 쟁쟁한 글로벌기업으로 바뀌었다. 아시아의 작은 회사가 넘어서기엔 너무 큰 파도가 눈앞에 들이닥쳤다.

“2000년 들어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직원들에게 ‘한판 붙자, 우리가 질 이유가 없다’고 장담했어요. ‘보쉬는 책임자가 기껏해야 라인 담당이지만, 우린 사장이다, 결재 올리면 오늘 끝난다. 누가 이기겠느냐’며 사기를 올렸습니다. 직원들이 잘 따라와 줬죠.”

정 회장의 전략은 적중했다. 글로벌기업 입장에선 후발 주자의 선전이라고 해봐야 라인 하나 손해 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효성전기는 ‘블로어 모터 아니면 죽는다’는 결기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부가가치가 큰 특정 분야에 힘을 쏟는 대형사와 달리, 정 회장은 블로어 모터 부문에서만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맞섰다. 대형사 입장에선 수익성이 작은 사업 부문은 과감히 정리하는 게 오히려 경쟁력을 올리는 수순이기도 했다. 현재 효성전기의 블로어 DC 모터 부문은 국내를 넘어 중국, 멕시코, 인도 등에서 이미 글로벌 대형사들을 넘어섰다. 세계 모터 시장에서 블로어만큼은 효성전기를 따라올 경쟁자가 없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연결 기준 2000년 237억원이었던 매출은 2010년 1380억원, 2019년 3084억원, 2023년은 4500억원 달성이 예상될 정도로 급증했다.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이 60%에 달한다.

세계 무대에서 얻은 성과를 자랑하던 정 회장은 “작은 기업이 글로벌에서 경쟁할 방법은 ‘진돗개작전’뿐”이라고 말했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진돗개에 빗댄 말이다. 1997년 GM홀덴 수출에 성공한 이후, 블로어모터 부문에서 효성전기가 글로벌기업으로 올라선 것 역시 물면 놓치 않은 한국의 근성 덕이었다.

“미국 GM 본사에서 호출이 떨어졌습니다. 세계에서 모터 좀 한다는 회사는 죄다 불러들였어요. 연구개발에 힘을 쏟아 모터 부품 50개를 30개로 줄인 터였는데,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그걸 내세운 끝에 일본 기업과 우리가 최종 납품사로 선정됐습니다. GM의 글로벌 협력사들에는 ‘일본 기업과 효성전기 모터 둘 중 하나만 쓰라’는 업무명령이 떨어졌죠.”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와 공식 파트너가 됐다는 기쁨은 잠시였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이 유럽과 북미 협력사들은 너나없이 일본 제품만 찾았다. 하지만 곧 반전이 일어났다. 협력사들의 제품 개발 요청에 일본 업체는 콧대를 높이며 난색을 표했다. 하는 수 없이 효성전기를 찾은 바이어들은 “뭐든 된다, 무조건 한다”는 답을 들었고, 결국 전 세계 GM발 물량의 80%가 효성전기에 몰렸다.

위기에서 찾은 신사업 기회


진돗개작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1999년 미국의 세계적인 자동차부품사인 델파이(Delphi) 납품도 그랬다. 처음으로 델파이 직수출에 나섰다지만, 연간 450만 대에 달하는 블로어 모터 생산량 중 효성전기에 배당된 건 16만 대에 불과했다.

“순수한 기술로만 승부 보는 건 어차피 어렵다. 경쟁사보다 코스트(비용)는 무조건 1달러 낮게 들어간다, 대신 스피드와 서비스로 이긴다는 전략을 짰죠. 불량이 나면 경쟁사는 원인 분석에만 한 달이 걸렸어요. 우린 바로 납품사로 들어가며 며칠 만에 해결해냈죠. 1년 뒤쯤 글로벌 B사가 납품가를 개당 1달러씩 올리겠다고 선언하더군요. 졸지에 우리와 2달러 차이가 난 거예요. 얼마 후 델파이에서 ‘너희 120만 개 가능하겠냐’는 문의가 왔습니다. ‘네, 합니다! 무조건 합니다!’ 당장 수출 전용공장 하나를 증설해 납기를 맞췄습니다.”

2002년이 되자 델파이가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는 블로어 모터 450만 개 중 300만 개 이상이 효성전기로 몰렸다. 고객의 니즈를 누구보다 빠르게 해결하고, 한번 잡은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는 진돗개의 승리였다. 정 회장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초기 수출 기업의 해외 진출 전략을 조언했다.

“경쟁사들은 이미 글로벌 전략 지역에 생산시설, 즉 공장을 갖춘 경우가 많아요. 고객사도 꼭 공장 유무를 확인하는데, 중소기업 입장에선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죠. 기술자를 상근으로 파견하는 것도 좋지만, 현지에 웨어하우스(창고)부터 마련해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전략을 어필하는 게 좋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충분한 수량을 현지에 보관해 공급하는 개념이죠. 그러다 물량이 충분히 확보되면 공장을 짓겠다고 설득하면 됩니다. 효성전기도 미국에 웨어하우스부터 준비했어요. 그런 다음 중국과 인도, 슬로바키아와 독일에 해외 공장을 갖췄죠.”

현재 효성전기는 주력인 블로어 모터를 비롯해 EPS 모터, ABS 모터 분야에서 각각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EPS 모터는 파워스티어링휠이 작동할 수 있게 하는 핵심 부품이다. 정 회장은 “한 손으로 멋지게 핸들을 돌리는 게 우리 모터 덕분”이라고 말했다. ABS 모터 역시 제동(브레이크) 시스템 작동에 없어서는 안될 부품이다. 최근에는 트럭과 농기계 등에 사용하는 대형 모터인 E-PTO(Electric-Power Take Off) 생산에도 나섰다.

이밖에도 전기·수소 등 다양한 미래 에너지원에 걸맞는 e-모빌리티 시스템(전기차, 수소차 및 드론, UAM, 전기수소를 활용한 선박·항공·국방 등 모빌리티 전반에 활용되는 제품들)에 적용 가능한 제품들을 개발·출시하고 있다.

E-PTO는 덤프트럭의 적재함을 들어 올리는 시스템으로 이해하면 쉽다. 내연기관 차량의 경우 적재함 구동 역시 엔진의 힘을 빌린다. 반면 최근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전기차로 급속히 옮겨가면서, 운행용 배터리만으로는 적재함 구동이 어려워졌다. 보조배터리와 모터의 힘을 빌려 적재함을 운용하는 새로운 개념에서 탄생한 제품이 바로 E-PTO다. 3년 전부터 현대자동차와 공동개발에 나섰고 2023년 비로소 양산에 성공했다.

소형 모터에 주력했던 효성전기가 E-PTO 개발에 나선 건 단순한 사업 확장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종합 스마트모빌리티 회사’로 발전하겠다는 정 회장의 미래 전략의 일환이다. 특히 전기차 시대의 개화는 자동차용 모터가 주력인 효성전기에 새로운 기회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 정 회장은 “IMF 위기 때는 납품처가 부도를 맞아서, 2007년 금융위기 때는 키코(KIKO) 사태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면서 “두 번의 위기가 자금 때문이었다면, 코로나 팬데믹은 정보의 부재로 완전한 패닉을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의지는 팬데믹을 또 한 번 전화위복의 발판으로 만들어줬다.

“전 세계가 셧다운되니 어디서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빠졌어요. 그야말로 카오스였죠. 고민 끝에 2020년 7월 결단을 내렸습니다. R&D 인력 70명을 절반으로 뚝 나눈 다음 한쪽은 기존 연구를 이어가고, 다른 한쪽은 ‘지금부터 전기차·수소차 관련해 하고 싶은 연구를 다 해보라’고 지시했습니다. 뭐라도 했다는 마음에 가슴이 벅차더군요.”

혼란을 딛고 일어선 건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원들은 저마다 새 과제를 받아들고 농기구, 특장차, 선박, 건설기계, 방산 업체들을 무작정 찾아다녔다. 마침 전기와 수소가 차세대 동력원으로 떠오르면서 이들 기업 역시 기존과 다른 모터를 찾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새 제품 개발 의뢰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 회장도 “모든 걸 다 해보라”는 지침을 다시 내렸다. 당장 필요한 건 ‘정독이 아닌 다독’이라는 판단이었다. 이윽고 팬데믹이 잦아들면서 효성전기의 신사업도 중심축을 잡아갔다. 결국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 덕에 회사의 미래 비전은 훨씬 선명해졌다.

현장에서 먼저 움직이는 CEO가 되라

종합 스마트모빌리티라는 미래 비전은 전기차·수소차·자율주행차 같은 미래형 자동차를 타깃으로 구체화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인수·합병도 적극적이다. 2019년 독일의 인쇄회로기판(PCB) 업체 지분을 사들였고, 2022년에는 철도차량과 전기차 제어 기술을 보유한 브이씨텍을 약 140억원에 인수했다. 최근에는 배터리 패키징 회사 인수도 추진 중이다. 공조 블로어 모터에서 시작해 모터 제어기술과 에너지 분야까지 발을 넓히겠다는 야심 찬 비전이다.

“신사업에 들어갈 모터는 기존과 달리 대형 제품이 많습니다. 회로와 인버터가 메인 모터를 제어하는 핵심 시스템인지라, 언젠가부터 우리가 인버터 회사에 끌려다니는 입장이 되더군요. 모터 제어에 필수인 PCB 업체를 독일과 51대49 지분으로 인수했고, 철도차량과 전기차용 인버터 기술을 보유한 브이씨텍도 추가로 인수했습니다. 각 분야를 발전시켜 시너지를 내면 모터 전반의 모듈화를 우리 자체 역량으로 이뤄낼 수 있습니다. 모터 산업의 수직계열화죠.”

효성전기의 미래 사업 전략 바탕에는 정 회장 특유의 ‘선순환론’이 깔려 있다. 무조건 1등을 고집하기보다 전략적 유연함을 앞세운 그만의 경영 철학이다. 스스로도 인고의 노력으로 글로벌기업들을 넘어섰듯이, 효성전기 역시 언제든 후발 주자의 추격을 받는다는 게 정 회장의 지론이다. 정 회장은 “경쟁자가 따라오면 우리는 또 다른 분야로 넘어가야 한다”며 “그게 산업의 라이프사이클이자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설명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선제적 투자다.

“사람이든 기술이든 설비든 남보다 앞선 투자를 끈기 있게 이어가야 합니다. 어떤 분야든 20년쯤 지나면 잘하는 이와 아닌 이가 구분되고, 30년 지나면 잘하는 업체 가운데서도 등위가 매겨집니다. 후발주자의 추격으로 경쟁력을 잃어 주저앉는 대신, 따라오기 힘든 새 영역을 먼저 개척하고, 기존 사업은 경쟁자에게 물려주는 게 제가 말하는 선순환의 요체죠.”

지난해 7월 효성전기는 부산시와 500억원 규모의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ABS 모터가 주력인 상하이공장 규모를 줄이고, 대신 본사가 자리한 부산 기장에서 주력 품목인 블로어 모터 생산에 전념할 방침이다. 정 회장은 “부산을 명실상부한 전 세계 블로어 모터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드러냈다.

“기존 공장에선 R&D와 신제품 생산을, 새 공장에선 블로어 모터만 생산할 계획입니다. 명실공히 블로어 모터의 메카가 될 겁니다. 블로어 모터에 대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장이 서면, 그만큼 앞다퉈 우리를 찾는 손들도 늘지 않을까요. 올 상반기에 착공해 늦어도 내년 하반기에는 완공할 예정입니다. 갈수록 제조 기반이 약해지는 부울경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리란 기대가 큽니다.”

인터뷰 말미, 경영 원칙을 묻는 질문에 정 회장은 “새해가 밝자마자 인도 공장을 둘러봤다”며 “항상 직접 뛰는 CEO가 돼야 한다”고 답했다. 인도에서 새 제품, 생산성, 연간 사업계획 등을 점검하며 이틀간 워크숍을 연정 회장은 “미안한 말로 고문 좀 하고 온 셈”이라며 멋쩍어했다.

“코로나 전에는 6시 반에 출근해 1시간 반 동안 탁구치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팬데믹 후 탁구장 문이 닫히니 할 일이 없잖아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침마다 소독기 2개를 들고선 화장실, 탈의실, 공장 등 구석구석을 소독합니다. 회장이 나오니 사장과 공장장도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오죠. 그러면서 라인을 점검하는 겁니다. CEO가 현장에서 멀어지는 순간 위기가 찾아옵니다. 누구보다 먼저 실천하는 게 윗사람의 덕목이죠.”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402호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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