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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 30세 미만 30인 2024] (1) ART 

 

정소나·노유선 기자

K크로스오버의 개척자 | 김수인(29) 국악인


지난해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팬텀싱어4]에서 최종 3위는 크로스오버 음악 팀 ‘크레즐(CREZL)’에게 돌아갔다. 국악인과 바리톤 성악가, 뮤지컬배우, 아이돌가수가 뭉쳐 ‘K크로스오버’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자 신선하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멤버들은 장르만의 고유한 편견을 깨고 조화롭게 융합하며 K크로스오버의 색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특히 김수인(29) 국립극장 창극단원은 ‘국악인 같지 않은 국악인’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소리꾼이라면 응당 판소리를 불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미국 팝 가수 찰리 푸스(Charlie Puth)의 ‘Dangerously’를 열창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가곡 ‘나 하나 꽃 피어’의 서정적 멜로디를 잘 살려내 다재다능하다는 평가 일색이었다. 지난 2월 14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빌딩에서 만난 김 단원은 크레즐 활동에 대해 “국악과 다른 장르의 협업이 이렇게 시너지효과가 날 줄 몰랐다”며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 단원은 만 4세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판소리를 시작했다. 어머니 김선이 판소리 명창(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 남도판소리 보유자)의 영향이 컸다. 김 단원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판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며 “그야말로 소리 속에서 살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변성기가 찾아와 6년간 판소리를 멀리하게 됐다. 그는 “판소리를 고집하다간 오히려 목이 상하겠다 싶어서 소리 연습을 쉬는 기간에는 무용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 기간 덕분에 제가 춤과 연기에도 흥미를 느낀다는 걸 깨달았어요. 창극(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 전통 음악극)은 제 적성에 너무나도 잘 맞는 장르였죠. 대학 때부터 국립극장 창극단(이하 국립창극단)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판소리와 무용, 연기는 물론, 한 발 더 나아가 가야금까지 골고루 공부했어요. 그렇게 계속 달려온 결과, 대학 4학년 때 꿈을 이뤘죠.”

이후에도 김 단원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해나갔다. 2022년에는 임방울국악제에서 판소리 부문 일반부 장원을 차지했다. 국내 최대 국악제로 꼽히는 임방울국악제는 국악 신인의 등용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김 단원은 이미 2013년 고등학생 시절 학생부 장원으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국립창극단에서는 [나무, 물고기, 달]과 [춘향], [리어], [베니스의 상인들] 등에서 주조연을 맡았다. 특히 지난해 말 국립극장 연말기획공연 [세종의 노래: 월인천강지곡]에서 세종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 창극단원으로서 그의 입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창극의 매력을 묻자 김 단원은 “새로운 대본을 받을 때마다 극의 성격에 맞게 독창적으로 창법을 구사하는 과정이 즐겁다”며 “어떤 극은 한의 정서를 짙게 깔아야 하고 또 다른 극은 국악의 색을 다소 줄여 신선한 기법을 구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음악의 결이 달라지는데 이러한 미묘한 차이는 창극만이 가지는 매력이다”라고 덧붙였다.

어머니 김선이 명창과의 비교에 부담을 느끼진 않을까. 김 단원은 ‘국악의 대중화’와 ‘국악의 글로벌화’를 명확하게 구분했다. 그는 “창극 [리어]는 외국 작품을 한국의 정서로 표현해내 관객에게 색다른 매력을 선사했다”며 “현재까지 국악계가 대중화에 집중해왔다면 이제는 글로벌화에 시선을 돌릴 때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음악에 경계를 둬선 안 된다”며 “국악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다른 장르와 협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국악의 색이 진하게 들어간 크로스오버 장르로 국악의 글로벌화에 기여하고 싶다”며 “본업인 창극 소리꾼을 놓지 않으면서도 어떤 음악 장르든 찰떡같이 소화해내는 음악인이 되겠다”고 밝혔다. 이어 “창극에도 찰떡이고 크로스오버에도 찰떡인 음악인으로 불리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독보적인 존재감의 K오트쿠튀르 | 박소희(27) 미스 소희(MISS SOHEE) 대표 ·패션 디자이너


▎ 사진:박소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소희가 이끄는 미스 소희는 런던에 기반을 둔 여성복 브랜드다. 섬세한 디테일과 독특한 디자인, 조화로운 실루엣으로 입는 사람의 우아함을 극대화하는 드레스가 대표 아이템이다.

2020년 그가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 대학의 졸업을 앞두었을 때, 코로나로 인해 졸업 패션쇼가 취소되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자신의 SNS에 올린 졸업 작품이 러브 매거진 표지를 장식하며 셀리브리티들의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됐다.

카디 비, 벨라 하디드, 비욘세, 나오미 캠벨, 블랙핑크, 판빙빙 등 셀러브리티부터 미국 부통령 카밀라 해리스까지 특별한 순간들을 위해 맞춤 의상을 제작하며 유명해졌다. 또 멧갈라, 칸느, 오스카 등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시상식을 위한 셀리브리티들의 룩을 만들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영국 공작의 유서 깊은 성에서 패션 어워드 상을 수상했다. 또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초청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한국 패션계를 대표해 초청받기도 했다.

어린 시절 꿈꾸던 드레스를 만들어보고 싶어 시작한 디자인은 아틀리에의 장인들과 함께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한 끝에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전통 문양이나 민화 등에서 영감을 받은 자수를 수놓아 한국인으로서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작업도 빼놓지 않는다.

“한국적인 요소를 고급화하여 디올이나 샤넬 같은 프랑스의 패션 하우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3년 전 홀로 온라인을 기반으로 시작한 미스 소희는 할리우드 톱 스타들과 아랍 국가의 왕족을 비롯한 전 세계의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해 요즘 가장 핫한 브랜드로 성장했다. 가까운 미래에 런던, 파리, 서울에 종합예술이 어우러진 부티 크 설립을 꿈꾸며 그는 오늘도 기대와 설렘으로 옷을 만들고 있다.

세계를 사로잡은 카리스마 워킹 | 배윤영(26) 패션모델


▎ 사진:배윤영
갸름한 얼굴과 가늘고 긴 눈매에 도톰한 입술까지, 동양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패션모델 배윤영. 작고 신비로운 얼굴은 가느다란 몸매, 긴 팔다리와 완벽한 비율을 만들어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의 뮬란’이라는 애칭과 함께 전 세계 캣워크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지난 2014년, 서울패션위크 무대에서 10대 나이로 데뷔와 동시에 국내 주요 패션쇼와 매거진을 섭렵하며 단숨에 모델계의 신성으로 주목받았다. 2016년 F/W 프라다 광고 캠페인으로 해외 커리어를 시작해, 이듬해 S/S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프라다 컬렉션의 ‘익스클루시브’ 모델로 해외 무대에 정식 데뷔했다.

이후 샤넬, 버버리, 펜디, 발렌티노, 디올 등 수많은 패션쇼와 브랜드 캠페인에 등장했다. 2019년에는 모델즈 닷컴이 선정한 ‘톱 모델 50’에 이름을 올렸고, 아시안 모델 최초로 영국 보그 커버를 장식하며 세계적인 톱 모델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2023 슈퍼 모델 선발대회’ MC로 발탁돼 완벽한 드레스 자태와 안정적인 진행으로 호평을 받으며 모델테이너로의 활약을 예고했다.

오랜 해외 활동으로 힘든 순간도 많았고, 외로움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멈추지 않고 끈기 있게 계속 도전한 덕분에 지금의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해외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모델 다음 스텝으로 또 다른 방법으로 글로벌한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어떤 장르가 될지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없어 먼 이야기 같지만,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끈기’와 ‘노력’이 함께한다면 어떤 분야든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모델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남의 불행을 바라면서 자신의 행복을 찾지 않을 것’,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항상 존중할 것’. 언제나 이 두 가지 소신을 지키며 활동한다는 그의 새로운 도전이 성공으로 결실 맺길 기대해본다.

냉정과 열정을 오가는 고결한 울림 | 예수아(23) 피아니스트


▎ 사진:예수아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국제 콩쿠르를 휩쓸며 세계 무대에서 한국 클래식 음악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피아니스트 예수아는 일찌감치 세계적인 권위의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재능을 인정받은 K클래식의 차세대 주자다.

9세에 금호영재독주회로 데뷔한 예수아는 2015년 15세 나이로 영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2016년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국제청소년피아노콩쿠르 우승, 2021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 2위 등 주요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했다. 2023년에는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차이코프스키 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4위를 차지했고, 이후 초청을 받아 세계적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마린스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며칠 전에는 독일 하노버국립음악대학 석사과정을 마무리하는 졸업 연주를 마쳤다. 연주를 감상한 스승 아리에 바르디는 ‘듣는 사람들의 감정을 깊이 자극하고, 다른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진정성 있는 음악’이라고 극찬했다. 아리에 바르디의 말처럼 그의 연주는 뛰어난 통찰력과 풍부한 감정 표현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어린 나이에 내로라하는 국제 콩쿠르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뛰어난 성과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무대에 오를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더 좋은 연주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연주했다”며 겸손하게 답했다. 그동안 콩쿠르를 준비하며 느꼈던 경쟁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만의 음악을 펼쳐 보이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다.

“한국에서의 연주가 차례로 계획돼 있는데, 무대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메시지가 있는 연주, 오랫동안 마음으로 기억되는 연주로 청중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평범한 일상, 비범한 의미 | 이희조(29) 미술가


▎ 사진:이희조
이희조(29) 작가는 홍익대 판화과 졸업 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런던예술대학교(University of the Arts London)에서 회화(painting) 석사과정을 마쳤다. 국내에 이름을 알린 건 2018년 국내 최대 청년 미술 축제인 ‘아시아프(ASYAAF)’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아시아프는 신진 작가의 등용문으로 꼽힌다. 이후 2022년 이 작가는 ‘브리즈 아트페어(BREEZE Art Fair)’에서 New Prize Winner로 선정돼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해외 활동도 활발하다. 지난해 런던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와 프랑스 파리 조폐국(Monnaie de Paris)에서 열린 아트페어에 참여했으며 일본 교토에서 개인전을 성황리에 마친 바 있다.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면서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이 작가는 “메를로퐁티의 이론 중, ‘나는 내가 보는 것들로 이뤄진 존재이자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이루는 장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며 “내 작품 역시 ‘내가 누구인지’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커피잔이나 노트, 펜 등 일상 속 사소한 물건 모두가 나를 구성한다”며 “반복된 일상이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듯이 작품 속 대상도 반복적인 붓 터치로 완성된다”고 덧붙였다.

그의 작품 속 수많은 점과 선은 일상 속 모든 순간을 치환해 표현한 것이다. 이 작가는 “하나의 면이 완성될 때까지 수많은 점과 선을 쌓아 올리는 것은 현재를 오롯이 느끼겠다는 나만의 의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가로서 그의 꿈은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일이다. 그는 “작품에 그려진 평범한 순간의 소중함에 고개를 끄덕이는 누군가가 있다면 무척 보람찰 것”이라며 “작품을 매개로 그들의 일상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추천
간호섭(패션 디렉터· 의상학 박사)
송대섭(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안호상(세종문화회관 사장)
정승우(유중문화재단 이사장)
조희창(음악평론가)

- 정소나·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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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호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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