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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석 연세의료원 디지털헬스실장 

AI를 사용하는 의사가 그렇지 않은 의사를 대체한다 

신윤애 기자
병원에서 추진하는 디지털전환은 한마디로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다. 디지털 기술은 현재 의료업계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인 데다 이전보다 더 효율적·효과적으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밤낮없이 돌아가는 의료 현장에서는 디지털전환을 어떻게 이뤄내고 있을까. 또 어떤 기술을 어디에 활용하고 있을까. 선진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도입한 연세의료원의 디지털전환 책임자 임준석 디지털헬스실장에게 그 답을 들었다.

▎2020년부터 연세의료원의 디지털전환을 맡고 있는 임준석 디지털헬스실장. 디지털 기술을 도입해 의료서비스는 물론 질병의 예방, 진단, 치료의 질을 높이는 일에 힘쓰고 있다. / 사진:연세의료원
“병원의 디지털전환을 책임지게 된 후로 매일같이 되뇌는 말이 있습니다. ‘병원은 IT 기업이 아니다’는 것이죠.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진단·치료에 안전한 최신 기술의 빠른 적용이 중요하지만 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그 기술이 얼마나 앞서 있는지보다 현장에 도입되어서 실제 도움을 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피치 못할 공백을 메우고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으니까요. 그게 병원이 디지털전환을 시작한 애초의 목적이기도 하고요.”

지난 1월 1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에 있는 연세의료원에서 만난 임준석 디지털헬스실장이 병원이 추구하는 디지털전환의 방향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병원은 절대로 시스템이 다운되면 안 된다”며 “돌다리를 두드리듯 늘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병원은 보수적이기로 손꼽히는 집단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엄격한 프로세스가 정립돼 있고, 임직원 모두가 이를 철저하게 지킨다. 개인정보 또한 민감도가 매우 높아 개인정보보호법이나 각종 의료 관련 규제에 단단히 묶여 있다. 한마디로 변화를 시도하기에 각종 악조건은 다 갖춘 셈이다.

그럼에도 2020년 즈음 국내 병원업계에 디지털전환이라는 새 바람이 불어왔다. 인구 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 사태, 건강과 의료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운 코로나 팬데믹이 트리거 포인트가 됐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의료계가 지향하는 맞춤의료와 정밀의료를 높은 수준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도 디지털 기술이 꼭 필요했을 터다. 병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관련 조직을 꾸리고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정부도 같은 니즈로 병원들의 디지털전환을 돕기로 했다. 스마트병원 선도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지원사업으로 2020년부터 2025년까지 6년간 매년 30억~60억원씩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연세의료원은 대형 병원 중에서도 한 발 앞서 디지털전환에 나선 병원이다. 약 7~8년 전부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소소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하더니 2020년 본격적으로 그 돛을 올렸다. 디지털전환의 첨병으로 삼을 조직인 ‘디지털헬스실’을 꾸렸고, 신촌 연세의료원 부지에 디지털헬스센터(Digital Health Center, DHC)를 설립했다. DHC는 연세의료원 의료 빅데이터와 ICT 기술을 결합하여 개방형 혁신 플랫폼을 구축해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자유롭고 안전하게 연구하고 활용할 수 있는 개방형 공간을 제공한다. 현재 DHC에는 디지털 트렌드를 선도하는 업체, 교원 창업 업체 등 산업, 학술, 연구, 병원 분야의 다양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직원 100여 명이 근무하는 디지털헬스실의 중심에는 영상의학과 교수이자 디지털헬스실장인 임준석 실장이 있다. 2020년 디지털헬스실장으로 부임한 그는 4년째 전체 업무량의 90%를 디지털전환에 쏟아붓고 있다. 기간계 시스템 운영 지원, 데이터서비스 제공, 의료원 미래 전략 수립 등 여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병원의 디지털전환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라는 임 실장과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병원의 디지털전환은 어떤 의미인가.

정밀하고 안전한 진료를 하는 것. 그리고 의료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함으로써 의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사소한 정보까지 수집하고 분석해 의료진의 판단을 도울 수 있고, 수많은 의료 데이터는 약, 치료제, 치료법 등을 개발하는 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된다.

기업에 비해 병원의 디지털전환은 더 큰 부침이 예상된다.

한 서적에 적힌 ‘디지털전환을 시도하는 기업 중 20%가 엄청난 투자를 했음에도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통계가 기억에 남는다. 증거가 충분한 행위만 해야 하는 병원에서는 더욱 해내기 어려운 일이라는 얘기로 해석했다. 하지만 디지털전환은 이제 병원의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가 됐다. 효율성, 생산성, 안정성을 높이고 환자 경험까지 향상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의료 현장에 맞는 전략과 방향성을 고민했고, 나는 그것을 ‘연결성 강화’와 ‘현장의 니즈’라고 정립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결국 진료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것 아닌가. 코로나19를 겪으며 절실히 느꼈다. 당시 비대면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료진을 서로 연결하기 위해 통합메신저를 도입했었다. 혼선이 있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오히려 이전과 다른 장점들이 보이더라. 의사와 간호사가 개인 스마트폰을 활용해 신속하게 환자 정보를 교환했고 긴급 처방 시스템이 구현돼 전산이 다운되는 위급 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었다. (의사는 처방명을 직접 입력하지 않고 드롭다운 형태로 받아쓰는 게 일반적이어서 위급 시 수기로 작성해야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처방명 오류를 피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 항상 ‘연결’돼 있어 업무가 더욱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처리된다고 평가했다. 현장의 니즈도 우리에겐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디지털전환을 한다고 무조건 신기술을 도입할 게 아니라 현장에 활용할 수 있는지,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과거에 실패로 끝났던 몇몇 사례를 돌아보고 얻은 교훈이다.

잘 안 된 사례가 뭔가.

7~8년 전쯤 환자 전용 앱을 제작했다. 내비게이션 기능을 접목해 환자들이 병원에서 헤매지 않도록 만든 것이었다. 당시엔 기술적으로 세련된 앱이었는데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우선 비콘(특정 위치의 정보 전달을 위해 사용되는 장치)의 성능에 문제가 있어 국소적인 위치 정보가 잘 전송되지 못했고, 아프고 고령인 환자들은 앱을 사용하는 걸 무척 힘들어했다. 결국 기술로 앞서 나가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현재 디지털 기술이 잘 활용되는 분야는.


▎ 사진:연세의료원
우리는 일찌감치 데이터 관련 정비를 해왔다. ‘데이터 저장’과 ‘데이터 활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한다. 대표적인 데이터가 바이오 시그널 데이터와 유전체 데이터다. 바이오 시그널 중 혈압을 예로 들면, 지금까지는 환자의 혈압이 오르거나 떨어지면 차트에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 결과만 적어두었다면 현재는 혈압을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저장해 너무 높거나 낮을 경우 의료진에게 곧장 알람이 가도록 시스템화했다. 유전체 데이터는 암 환자에게 유용하다. 항암제는 유전체 검사를 통해 해당 약이 잘 들을지 여부를 체크한다. 만약 유전체와 맞지 않아 과거에 치료하지 못한 환자가 있었다면 수년 후 그 사람에게 맞는 신약이 개발됐을 때 데이터를 열람해 연락을 취해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최초 수술 시 진행했던 조직검사의 데이터를 저장해두면 추후 재발했을 때 그 데이터를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재발하면 조직검사가 쉽지 않기 때문에 소중한 기록이다. 지금까지는 유전체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저장하거나 잘 활용하지 못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보안 이슈 해결이 중요할 것 같다.

반도체가 우리의 먹거리로 유망했듯이 요즘은 의료 데이터가 미래 먹거리로 꼽힌다. 따라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형태로 적극적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산업적인 시각이 있는 반면 너무 민감한 개인정보이므로 유사시 굉장한 프라이버시 침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제도적인 시각이 있다. 두 의견 다 일리가 있다. 아직 완벽한 해결책은 없는 상황이지만 우선 우리는 가명 데이터를 사용해 보안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 이름, 나이, 진료일 등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활용 전에 모두 제거한다. 또 데이터활용심의위원회(DRB)에서 데이터 활용의 적정성, 개인정보·민감정보 포함 여부, 데이터 외부 반출 여부 등을 심의한다.

보안 때문에 프라이빗 클라우드와 퍼블릭 클라우드를 병행하는 것인가.

맞다. 개인정보 이슈가 생길 수 있는 데이터는 프라이빗 클라우드에 올리고, 연구를 위한 인공지능 리소스 등 다양한 솔루션을 활용해야 할 때는 최대한 가명화해 퍼블릭 클라우드에서 진행한다. 퍼블릭 클라우드는 AWS를 사용하고 있다.

AWS와 많은 작업을 하고 있는데.

AWS는 분석 솔루션이 다양하다.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올려두면 개인 연구자의 니즈에 맞는 분석 솔루션을 띄울 수가 있어 다양한 옵션을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퍼블릭이라고 하면 보안이 취약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는데 매우 폐쇄적인 환경에서 데이터를 관리하므로 안전하다. 최근 데이터 레이크로 구성된 ‘의료빅데이터플랫폼’을 AWS 기반으로 개발했다. 연세의료원의 디지털 헬스 데이터 서비스 센터와 AWS 파트너사인 메가존클라우드가 협력하여 개발한 의료빅데이터플랫폼은 AWS에 구축된 가상 연구 환경으로, 연구 민첩성, 데이터 유출 차단, 연구 비용 절감 및 비용 투명성 제고, 연구자원 탄력적 가동, 공동연구 환경 지원 등이 핵심 장점이다. 더불어 데이터 레이크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방식이어서 기존에 분산돼 있던 데이터를 통합·연계해 허가받은 연구진에게 신속하고 안전한 공동연구 환경을 제공한다. 이를 활용해 연세의료원 연구진은 암과 같은 질병의 진단 기록과 치료 방법을 포함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 환자의 유전정보, 환경조건, 진단 결과 등을 교차 확인함으로써 질병을 진단·치료·예방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디지털헬스센터에 대한 소개도 해달라.

디지털헬스센터는 행정 조직인 디지털헬스실과 연구 조직인 디지털헬스케어혁신연구소(IIDH)가 함께하는 개방형 혁신의 장이다. IIDH는 단순히 연구자가 입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개방형 산학연병이 협업하는 공간이다. 예를 들면 국책과제를 통해 개발된 ICT 솔루션을 기간계 시스템을 이용하여 고도화하거나 내재화하는 연구, 기업이나 타 대학과 공동으로 개발한 디지털 서비스를 의료원 내에서 실증하는 연구를 지원하는 창구 역할을 수행한다. 더불어 신기술인 AI, 플랫폼, 메타버스, 디지털치료제 등 관련 사업단을 만들어 국책과제를 수주하고 같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메타버스는 어떻게 활용하는가.

3년 전만 해도 메타버스가 핫한 기술이었지만 현재로선 의료 영역에서는 활용도가 낮은 형편이다.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관련 AI 기술들이 충분한 성숙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수술 전 혹은 수술 중 외과의사에게 정확한 가이드를 줄 수 있는 시뮬레이션을 메타버스 형식으로 구현하는 서비스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은 빠르게 변화한다.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대응하면 결국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진료와 연구 두 분야에서 다른 스탠스로 접근한다. 진료 영역에서는 당장 현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중심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반대로 연구 분야에서는 보수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환자의 진료와 직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지난해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거버넌스’ 3개년 로드맵을 세웠다. 올해 계획을 알려달라.

올해는 ‘의료빅데이터플랫폼 구축 2단계’를 추진한다. 차세대 디지털 의료영상 정보시스템(PACS), 디지털 병리 데이터, 유전체 분석 데이터 등을 추가해 연구자가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범위를 확장할 계획이다. 생성형 AI 활용도 고민 중이다. 카카오헬스케어와 연세의료원이 합작한 회사인 ‘파이디지털헬스케어’에서 LLM(거대언어모델)을 이용해 의료진이 신속하게 환자의 병력을 파악하고 어려운 의학용어 대신에 쉬운 말로 환자의 이해를 돕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장기 입원 환자는 상당한 분량의 병력이 있기 마련인데, 이를 LLM이 정확하고 빠르게 요약해주어 의료진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 가장 큰 고민은.

비용과 EMR(전자의무기록)이다. 디지털전환은 ‘돈 먹는 하마’라고 할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든다. 최신 기술을 접목할 수 있고 병원의 workflow를 향상할 수 있는 차세대 EMR의 구축을 검토했는데 예상 비용이 연세의료원 산하병원 전체를 대상으로 2000억원가량 나오더라. 현재 버전의 EMR은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지만, 의료진이 눈 감고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UI에 익숙하다는 장점이 있다. 거액의 비용을 들인다고 해도 사용자가 낯선 시스템을 무조건 반겨줄 리가 없어 고민이 크다. 또 인공지능의 최근 발전 속도를 보면 구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차세대 EMR이 완성되었을 때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형태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서 시기적인 부분도 고민이다.

앞으로 의료 현장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결국 사람을 바꾸는 건 전산이라고 생각한다. 또 의료진이나 병원 운영인력의 행동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건 디지털 인프라라고 생각한다. 시스템이 바뀌고 UI가 바뀌면 과거의 방법을 바꾸기 싫어하는 사람이어도 그에 맞게 적응하기 마련이다. 각종 디지털 기술로 병원의 모습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의료진을 대체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수년 전 인공지능의 개념을 만들고 발전시킨 한 교수님이 ‘영상의학과 발전된 인공지능 기술이 그 직능을 대체할 것이기에 전공의 수련을 중단해야 한다’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현재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증가하는 기존 업무 외에도 인공지능을 이용한 새로운 역할이 계속 늘어나는 과정에 있다. AI를 사용하는 의사가 그렇지 않은 의사를 대체한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또 의학과 공학 양쪽의 통합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재 양성에 힘을 기울이면 양 분야에서 새로운 발전 영역이 계속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202402호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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