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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는 1월호에 이어 벤처 1000억 기업을 인터뷰했다. 이번 취재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이 기업들은 모두 처음으로 매출 1000억원을 달성했고, 글로벌 진출에 집중하는 기업이라는 점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클루커스, 팬엔터테인먼트, 인투알 등 세 기업의 업종은 제각각이었지만,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기와 얼어붙은 국내 내수시장의 돌파구로 글로벌 진출을 꼽았다는 게 공통점이었다.
클라우드 전문기업인 클루커스의 홍성완 대표는 “클라우드나 AI를 빠르게 적용한 선진국에서 기술의 후발주자가 되는 것보다 동남아시아 등 틈새시장 공략이 적절하다”며 “모든 국가가 우리의 시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클루커스는 진출 국가에 지사를 설립하거나 조인트벤처 형태로 회사를 운영하며 해외시장을 공략 중이다. ESS 전문기업인 인투알도 글로벌 진출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자동차 배터리 등 기존 경쟁업체가 아닌 기업들이 ESS 사업에 공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고, 여러 국가 정책 역시 ESS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글로벌 진출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평가다.
콘텐트 산업은 문화산업이라 제조업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팬엔터테인먼트 역시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기에 1000억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박영석 팬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글로벌 OTT의 인기 덕분에 국내 팬덤뿐만 아니라 글로벌 팬덤까지 공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전 세계 어디서든 OTT로 한국 콘텐트를 소비할 있고 한류스타의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콘텐트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돼 투자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N콘텐츠 매거진 2024’에 따르면 “국내 팬덤과 해외 팬덤 간 정서적 차이가 있지만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한 작품도 OTT로 방영된 이후에 해외에서는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다”고 분석했다.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팝업스토어나 팬미팅이 개최되면서 국내 배우의 글로벌 투어도 더는 눈에 띌 만한 뉴스가 아닌 시대다.
트럼프 2기 리스크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다만 해외시장 진출에 제동을 거는 몇 가지 악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자국 중심 공급망 구축 등 최근 새롭게 등장한 수출 규제는 해외시장 공략을 가로막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우리 벤처기업들도 이에 대한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벤처기업협회가 조사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정책 변화가 벤처기업 경영 환경에 미치는 영향(지난해 12월 4일부터 11일까지 벤처기업 400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벤처기업 가운데 52.3%(‘매우 부정적이다’ 9.8%와 ‘부정적이다’ 42.5%)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가 ‘경영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응답자 60% 이상이 ‘무역 및 통상 정책(65.2%)과 환율 변동(62.2%)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꼽았다. 이 결과에서 보듯이 원자재 가격 상승과 관세로 인한 제품 가격 등은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 된다.
당사자인 벤처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하려면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필요한 정부지원으로는 금융과 환율 리스크 관리(51.5%), 대체시장 발굴과 판로 개척 등 ‘수출 지원(49.0%)’에 대한 요구 순이었다. 중소기업 전문 민간 연구기관인 재단법인 파이터치연구원의 라정주 원장(경제학 박사)은 “경영 리스크가 커질수록 기업들은 성장을 지향하기보다 정부 지원이 가능한 중소기업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분석했다. 지난 1월 12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중견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회귀한 기업 수는 2022년(217개)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574개라는 점도 이것을 뒷받침해준다고 볼 수 있다. 중견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회귀하려는 이유에 대해 라 원장은 “벤처 1000억 기업은 매출 규모로 보면 대부분 초기 중견기업에 해당한다”며 “중소기업일 때 누리던 금융혜택, 세금감면, 판로 보장 등 지원 혜택이 많이 줄어들어 기업 입장에서는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중소기업기본법 제2조』에 따르면 수출 규모별 성장 사다리를 구축하고자 수출액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구분하고, 매출액 규모에 따라 자부담을 차등 지원한다. 라 원장은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은 벤처기업을 활성화하고자 기업 규모에 따른 지원 제도보다 혁신성, 성장성 같은 기준에 중점을 둔 성장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에서도 벤처기업 같은 혁신기업을 성장시키고자 규모 의존 지원을 지양하려고 하지만, 기존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 여경미 기자 yeo.kyeongm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