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의 규제 기조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 중심인 우리나라 제조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혹독한 수요 정체기를 겪고 있는 배터리 관련 업종의 시름이 어느 때보다 깊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 ESS(Energy Storage System·에너지저장시스템) 업계는 해외 진출로 어려움을 돌파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ESS 전문 기업인 인투알도 그렇다.
▎ESS 전문 기업인 인투알의 백은기 대표는 각국의 무역과 통상 정책, 환율 변동, 에너지 정책 변화 등에 기민하게 움직이다. 여러 국가의 정책상 장기적으로 ESS 산업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계산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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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는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송전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장치로,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강화하는 세계적 추세에서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대용량 배터리처럼 전력 효율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전력을 저장해뒀다가 전력 수요가 많을 때 공급해준다. 에너지저장시스템은 먼 거리를 송전해야 하거나 대규모 정전을 회피하고자 분산형전원 시스템을 채용한다. 또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신재생에너지의 전기 품질을 개선하기 위한 필수 장치로 응용한다. ESS는 전기를 저장하는 기술이 발달하여 충전 용량과 속도가 크게 개선됐고 대용량 전지가 상용화되고 있어 비상 발전기나 무정전전원장치(UPS)를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주목받았으며, 전기산업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된다.지난해 11월 한국배터리산업협회가 발표한 주요국 ESS 정책에 따르면, 미국은 2020년 12월 ‘에너지 저장 그랜드 챌린지 로드맵(Energy Storage Grand Challenge Rodmap)’으로 캘리포니아, 오리건, 매사추세츠, 뉴욕, 뉴저지 등 8개 주에 ESS 장비 설치 의무화를 선포했다. 또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도입 후 투자세액공제(ITC; Investment Tax Credit)를 통해 ESS 설치 투자비 세액공제 비용과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IRA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친환경 에너지와 전기차 산업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법안으로, 대규모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원을 포함한다.중국은 2021년 ‘신에너지저장시설 저장 촉진에 관한 지도의견’, 2022년 ‘14.5 신에너지저장산업 발전 시행 방안’을 발표하며 2025년 ESS 설비 규모를 30GW 이상 확대하고 ESS 산업 규모화 단계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이로써 중국은 전력 시스템 비용 30%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일찌감치 ESS의 중요성을 깨달은 일본은 2021년 ‘6차 에너지기본계획 초안’과 2022년 ‘배터리산업전략’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ESS에서 생산한 전력 24GWh를 보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우리나라는 2023년 ‘에너지스토리지 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해 글로벌 ESS 시장에서 35%까지 시장점유율을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의 지원 정책에 따라 2023~2028년 5년 동안 약 3700GW의 신재생에너지를 가동할 예정이다. 차세대 신사업으로 ESS 시장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대기업이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ESS는 기회인가, 위기인가2002년에 창립한 인투알은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등 해외시장까지 접수한 차세대 ESS 에너지 전문 기업이다. 초창기에는 네트워크, 통신기기 장비로 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관리할 수 있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랙(Rack, 배터리 셀과 팩을 장착하는 외부구조) 제조업체로 변신을 꾀한 이후 캐비닛 랙, 항온항습 랙, ESS 배터리 랙 등을 개발·제조·생산·판매하는 LG에너지솔루션 협력사로 안착했다. 인투알은 배터리를 제외하고 보관하는 랙, 배터리가 화재를 관리하는 소방 설비, 전기 설비, 공정 설비, 배터리 온도 유지, 배터리를 보호하는 특수 컨테이너(인클로저 하우징) 등을 제작한다. 국내 최초로 고강도 알루미늄 구조의 내진 랙을 개발하며 ESS 시장을 선도하는 한편, 성능 평가를 통해 업계에서 인정받았다.백은기 인투알 대표는 국내에서 ESS 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에서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것을 보고 한국 정부 기관에서 “통신 장비나 방송 설비, 이동통신 설비들을 내진 제품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소개한다.ESS는 전력변환장치(PCS; Power Conditioning System), 배터리관리장치(BMS; Battery Managementt System), 전력관리장치(PMS, Power Management System), 배터리로 구성된다. 전력변환장치는 직류(DC)를 교류(AC)로, 교류를 직류로 변환해준다. 배터리관리장치는 배터리의 충전과 방전 상태를 확인하고 배터리 성능을 관리·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고, 전력관리장치는 원하는 출력을 조절한다. 전력이 필요할 때 계통 발전설비나 전기부하장치에 고주파 함유량이 적은 양질의 교류전력으로 다시 변환해 공급한다.최근 들어 배터리 에너지밀도가 높아지면서 ESS업계에서는 전력변환장치도 고용량이면서 사이즈는 작은 제품을 구현하는 것이 경쟁력의 관건으로 떠올랐다. 특히 기존에 널리 쓰인 납축전지 대신 최근에는 대용량이면서 충방전 속도까지 빠른 리튬이온 배터리가 주목받고 있다. 인투알은 미국, 일본 등 해외시장 개척은 물론 국내에서도 김포 본사 외에도 순천 공장을 확대하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인투알은 순천시와 투자 협약을 맺고 율촌산업단지에 LG에너지솔루션의 B-LINK(배터리 보관용 특수 컨테이너 외함) 공장을 설립해 미국, 유럽, 일본 등으로 수출량을 늘릴 계획이다. 순천시 관계자는 “2023년 인투알과 투자액 175억원, 고용인원 100명 규모의 투자 협약을 체결해 순천시의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1000억 기업, 로드맵을 세워야백 대표는 국내에 안주하기보다는 해외 전시 등을 보면서 직원들과 함께 공부하는 CEO다. 매일 로드맵을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로드맵에 따라 실행하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벤처기업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를 꼽으라면 ‘도전 정신’, ‘트렌드 파악’, ‘전문성’을 말하고 싶습니다. ESS 시장에 도전하게 된 계기도, 암흑과 같은 시장을 돌파하고자 한 수 앞을 내다봤기 때문입니다. 일련의 노력 끝에 벤처기업협회로부터 ‘2023 벤처천억기업’으로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한 분야의 전문성을 키워 선택과 집중을 하다 보면 머지않은 시간에 글로벌에서도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인투알은 각국의 무역과 통상 정책, 환율 변동, 에너지 정책 변화 등에 기민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수출 의존도가 큰 기업이다. 백 대표는 “ESS 시장은 저렴한 원자재나 인건비로 경쟁하는 중국 기업이나 저렴한 관세 등으로 우위에 선 미국 기업들과 패권 전쟁을 해야 하는 레드오션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전문성을 가지고 경쟁한다면 가능성은 있다”고 강조했다.하지만 여전히 ESS 시장의 리스크는 존재한다. 국내에서는 ESS 화재 사고로 인한 대책으로 안전규제를 강화하고,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 하향, 요금 할인 등 지원을 축소했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도 수출 규제와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강화해 에너지 전환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또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기·Chasm)으로 ESS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몰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ESS 시장에 대해 누군가는 전기차 캐즘 혹한기를 버텨내기 위한 일종의 피난처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정부에서 가열하게 추진해온 정부 정책사업이 줄어들면서 죽은 시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백은기 대표는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가 지난해 11월 개최한 ‘ESS 산업활성화 간담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국내 ESS 산업은 보조금 지원, 금융지원, 투자세액공제 등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한때 글로벌 1위를 달성하는 등 성과를 거뒀지만 이후 발생한 화재 사고와 지원 정책 종료로 성장 둔화가 장기화하면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없이 벤처기업의 성장은 없어또다시 시장에서 ESS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정부가 이 산업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업계 의견을 청취해 ESS 보급 확대를 위해 융자, 세제 지원, 보조금 등을 통해 수용가용 ESS 설비 지원 확대와 ESS 산업 생태계 복원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 미국에서는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 등 주정부가 기후·환경 정책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인투알은 장기적으로 ESS 산업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계산으로 해외 진출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올 1월 미국 시장에 법인을 설립했고 2027년까지 현지에 제조 자동화 공장을 설립해 3~4%대인 영업이익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미국 외에도 2년 전부터 일본에서 조인트벤처를 추진 중이다.“국토 대부분이 섬인 일본은 ESS의 필요성을 체감하는 나라입니다. 일본은 주요 섬마다 ESS 설비를 갖추거나 ESS를 공급하는 친환경 선박 등 새로운 형태의 이동수단 ESS 동력체계를 마련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또 지진 등으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성장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일본 시장을 돌파하고자 합니다.”벤처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여러 어려움에 맞닥뜨리곤 한다. 백 대표는 “우리나라가 전통적인 제조 강국이었음에도 국내보다 저렴한 자재나 인건비 등으로 제조 강국의 타이틀을 뺏긴 지 오래”라고 아쉬워했다. 또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이 성장하려면 지원이나 규제 해제가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하는데, 정부가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하거나 지원이 미흡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현재 ESS 시장 전망이 그리 밝은 것은 아니나, 과거 여러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우리 기업은 한 걸음 더 성장했습니다. 현재 직면한 여러 위기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노력해 기회로 만들면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정부도 벤처기업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정책으로 벤처기업의 기틀을 마련해주길 기대해봅니다.”- 여경미 기자 yeo.kyeongmi@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