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창우 한국파파존스 회장은 타고난 미식가이자 미술 애호가다. 그의 섬세한 미각과 까다로운 입맛, 투명한 운영 방식, 예술에서 터득한 경영 철학이 한데 모여 ‘한국파파존스’라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의 작품 활동은 현재진행형이다.
▎서창우 한국파파존스 회장은 2세 경영인이지만 가업 대신 외식업의 길을 택했다. |
|
국내 피자 프랜차이즈 시장에 지각변동이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장을 주름잡았던 도미노피자와 피자헛의 양강 구도가 깨지는 모양새다. 국내시장에서 매출액 상위 2위를 고수하던 한국피자헛은 지난해 12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2022년 1020억원이었던 매출액이 2023년 869억원으로 급감하는 등 한국피자헛은 실적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올해 말 한국피자헛 대신 매출액 2위로 점쳐지는 곳은 한국파파존스다. 한국파파존스는 이미 영업이익 측면에서 국내 2위다. 2023년 기준 국내 피자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상위 5개 업체인 한국도미노피자(청오디피케이), 한국피자헛, 한국파파존스, 피자알볼로(알볼로 F&C), 미스터피자 중 영업이익을 낸 곳은 도미노피자와 한국파파존스 두 곳뿐이다. 물론 한국도미노피자와 한국파파존스의 매출액 격차는 상당하다. 2023년 한국도미노피자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2095억원, 51억원이었지만 동 기간 한국파파존스의 매출액은 681억원으로 한국도미노피자의 3분의 1 수준이었다.매출액을 상당 부분 끌어올리는 일이 한국파파존스의 당면 과제이지만 서창우(66) 한국파파존스 회장은 서두르지 않는 모습이다. 한국파파존스는 현재 226개인 점포(가맹점+음식점+피자트럭)를 2034년까지 365개로 늘릴 계획이다. 속도감 있는 성장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서 회장은 “무리하게 운영하지 않아도 파파존스 피자의 맛을 인정하는 소비자는 매년 늘어날 것”이라며 “맛에 자신 있기 때문에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사뭇 여유롭게 말했다.서 회장의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는 ‘미(美)’다. 미식가를 자처하는 그는 사업 아이템으로 외식업을 택할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전 세계 지역별 치즈의 미묘한 차이와 화력에 따라 달라지는 도(dough)의 맛, 신선한 재료가 선사하는 맛의 깊이 등을 연구하는 일이 여전히 즐겁다”며 “피자 프랜차이즈 사업에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또 미술 애호가인 서 회장은 예술 작품에서 경영 인사이트를 얻곤 한다. 그는 “박선미 화가의 작품 [합창]을 보면 각기 다른 모습의 앵무새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그 목소리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자아내듯이, 회사의 여러 구성원이 조화롭게 일할 때 회사가 올바르게 성장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한국파파존스도 서 회장에게는 예술 작품이나 다름없다. 그가 자신의 미적 감각과 경영 철학을 융합해 운영하는 곳이 한국파파존스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피자 프랜차이즈의 흥망성쇠에도 불구하고 한국파파존스는 서 회장의 세심함과 꼼꼼함 덕분에 약 23년간 존속할 수 있었다. 지난 1월 3일 서 회장이 파파존스라는 작품을 만들어낸 과정과 현재 구상 중인 새로운 작품 세계 등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 강남에 있는 한국파파존스 본사를 찾았다. 어떤 질문이든 시원시원하게 답하는 그에게서 자신감과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가업 대신 적성 따라 외식업 택해
▎서창우 회장은 박선미 화가의 작품 [합창]에서 경영 인사이트를 얻었다고 말했다. |
|
서 회장은 2세 경영인이다. 학창 시절 부친인 서병식 전 동남갈포공업 회장의 경영방식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미국 마이애미대학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이후 1986년부터 1997년까지 동남갈포공업 경영 일선에서 부친을 도왔다. 하지만 서 회장은 그때만 해도 경영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가업을 잇지 않고 2002년 한국파파존스의 문을 열었다. 그는 “동남갈포공업의 주된 수익원은 해외 수출이었다”며 “아버지께선 외국 바이어들과 자주 만나며 가족적이고 끈끈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나 역시 정에 기반한 비즈니스 노하우를 물려받았지만 결코 아버지를 따라갈 순 없었다”고 덧붙였다. B2B(기업 간 거래) 사업이 성향에 맞지 않았다는 그의 고백이 이어졌다.“B2B 사업은 한정된 거래처를 대상으로 하지만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는 다양한 소비자를 상대하죠. 수많은 소비자를 사로잡아야 하는 B2C가 더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늘 같은 바이어를 상대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에게서 신뢰를 축적해가는 과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음식을 좋아하는 데다 특히 치즈에 조예가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피자 프랜차이즈업에 눈길이 갔습니다. 적성에 맞는 업종을 운영해야 경영상 리스크가 적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2002년 서 회장은 피제이아이코리아(옛 한국파파존스)를 설립한 뒤 이듬해 7월 서울 압구정동에 한국파파존스 1호점을 오픈했다. 아시아 지역에 개점한 파파존스 매장으로는 압구정점이 최초였다. 이후 서 회장은 대치동과 도곡동, 청담동 등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매장을 늘려나갔다. 경영 상황이 안정 궤도에 오르자 수도권에 이어 전국권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했다. 하지만 공격적인 경영 방식은 지양했다. 2020년까지 한국파파존스 매장은 200곳을 넘지 않았다. 이는 서 회장의 까다로운 입맛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서 회장에게는 미식가가 설립한 업체인 만큼 한국파파존스가 맛으로 승부해 밀려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는 “한국파파존스는 언제 어느 점포에서든 일관된 맛과 높은 품질을 선보여야 한다”며 “전국 각지의 매장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위해선 점포 수 확대를 후순위에 둘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최상급 치즈와 토마토 페이스트를 공수해오고 채소를 비롯한 재료도 가장 신선한 상태만 고집합니다. 새로 산 재료는 당일 폐기가 원칙이고요. 글로벌 파파존스 슬로건인 ‘BETTER INGREDIENTS, BETTER PIZZA(더 좋은 재료, 더 맛있는 피자)’라는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모든 매장을 동시에 관리하는 전산시스템도 도입했습니다. 한국파파존스가 전국 226개 매장 어디서든 일관된 맛을 선사하는 이유입니다.”또 서 회장은 열이 피자의 맛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고 봤다. 그는 “타사 피자와 한국파파존스 피자를 한 시간만 상온에 놔둔 뒤 먹어보면 미세한 차이를 알 수 있다”며 “한국파파존스 피자는 한두 시간이 지나도 비위에 거슬리는 냄새가 나지 않을 정도로 높은 퀄리티를 유지한다”고 자신했다.“도(dough) 품질도 맛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맛있는 도를 만들어내는 온도가 있는데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피자에서 냄새가 나요. 다만 전국 모든 매장의 조리 온도를 균일하게 컨트롤할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문제는 피자 품질에 집중하다 보니 남는 재료가 골칫거리였다. 서 회장은 “모든 재료는 당일 손질, 당일 폐기가 원칙이고 냉동 치즈는 아무리 아까워도 재사용하지 않는다. 도가 남으면 전부 구워서 버린다”며 “몇몇 매장에서는 남은 식재료로 미니 사이즈 피자를 만들어 불우한 이웃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나눔 아이디어가 가맹점들의 반발을 샀다는 것이 서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가맹점이 늘어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했던 이유”라며 “가맹점에 강요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나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맹점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술 애호가로서의 삶한국파파존스 본사 사무실은 마치 갤러리와 같았다. 서 회장은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예술품을 하나씩 수집했다고 한다. 미술 애호가였던 부친의 영향도 컸다. 서 회장은 부친이 물려준 작품과 자신의 수집품을 사무실 곳곳에 걸어두었다. 자신이 직접 그린 ‘기행 그림’도 있다.“아버지께서 미술품을 사랑하셨듯 어머니께서도 그림에 애정을 쏟으셨어요. 아마추어지만 상당한 수준의 동양화를 그리셨습니다. 이러한 가정 환경에서 커왔기에 제가 예술에 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어요. 하지만 대학 입학 때는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미술을 포기하고 경영학을 택했죠. 아쉬움을 달래고자 미국 마이애미대학에서 MBA를 마친 뒤 1년간 ‘일반 미술강의’를 듣기도 했습니다.”그의 집무실에 들어가면 한쪽 벽에 김창열 화백의 작품 [물방울]이 걸려 있다. 서 회장은 “자신만의 영롱한 물방울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김창열 화백을 존경한다”고 했다. 이뿐 아니라 서 회장은 이반 화백의 작품 [팽창력]과 앵무새 그림으로 유명한 박선미 화가의 여러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사단법인 현대미술관회에서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단순히 미술품을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가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기 위해서다. 현대미술관회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발전을 위해 1978년 뜻있는 미술 애호가들이 세운 비영리단체(NPO)다. 역대 회장으로는 민병도 전 한국은행 총재와 홍라희 전 리움 관장, 이성낙 가천대학교 명예총장 등이 있다.인터뷰 말미, 서 회장에게 한국파파존스의 청사진을 물었다. 그는 “더 오래, 더 깊이 있는 맛으로 ‘롱런하는 회사’를 꿈꾼다”며 “소비자에게 사랑받기 위해 조급해하거나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에서 누구나 피자를 떠올리면 단박에 ‘한국파파존스’가 생각나는 때”가 올 것으로 확신했다.천천히 간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서 회장은 “전국 전산시스템을 고도화해 디지털전환을 완성하고 전산시스템에 축적된 고객 빅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겠다”고 말했다. 또 “올해는 높은 환율로 원자잿값이 상승할 전망이라 어려움이 적지 않겠지만 결코 품질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의 말을 남겼다.-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