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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장기전 되자 加藤淸正, 일본식 성을 쌓다 

이덕일의 산성기행 | 서생포왜성과 울산왜성
조선 + 명 6만 연합군도 못 뚫어… 사명당이 화전협상 위해 방문하기도 

임진왜란 당시인 1597년 조명연합군 6만 명이 가토 기요마사가 축성한 소규모의 울산왜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부산포와 서생포에 있던 왜군의 지원을 받은 울산왜성은 끝내 함락되지 않았다. 해자와 다층구조, 예각의 진입로 등을 갖춘 왜성은 특히 농성전에서 뛰어난 기능을 발휘했다. 왜성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서생포왜성과 울산왜성을 한걸음에 다녀왔다.
일본에 조선식 산성이 있는 것처럼, 한국에도 일본의 왜성(倭城)이 남아 있다. 대마도의 가네다노키(金田城·금전성)는 백제가 멸망한 후 일본으로 퇴각한 백제 유민이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예상하고 쌓은 성이다. 그들은 대마도에 1차 방어선, 이키시마(壹岐島)에 2차 방어선, 최후로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 다자이후(太宰府)에 오노조(大野城·대야성), 사가(佐賀)현에 기이조(基肄城·기이성) 같은 조선성을 쌓아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해 전 국토를 유린하고 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서자 남해안 곳곳에 왜성을 축조하고 장기전에 돌입했다. 이때 일본이 동·남해안에 쌓은 것이 왜성이다. 이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걸쳐 남해안에 연하여 수십 개의 왜성을 쌓았다. 그렇게 쌓은 왜성이 본성 12곳과 지성(支城) 6곳을 이르렀으며, 정유재란 때 또다시 8개의 성을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서생포왜성·부산진왜성(지성으로 자성대)·가덕도왜성·안골포왜성·웅천포왜성·울산왜성·고성왜성·사천왜성·순천왜성 등이 그것이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울산에 남아 있는 서생포왜성과 도산성 또는 증성으로 불리는 울산왜성이다. 이번 울산의 왜성 답사는 일행 가운데 처음 접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새로운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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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호 (201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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