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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이순신’ 정기룡 장군 고장, 35km 감나무 가로수 우와! 

독자와 함께한 여행 | 누에·곶감·쌀이 하얀 삼백의 고장, 상주 

글 하춘도 월간중앙 객원기자 [iceu@paran.com] 사진 이상신
신라 통일 후 신문왕은 구주를 설치하였는데 왕성의 동북쪽인 당은포 방면을 상주, 남쪽을 양주, 서쪽을 강주라고 했다. 신문왕 7년(687)에 일선주를 파하고 사벌주를 설치했고, 경덕왕 16년(757)에 사벌주를 상주로 개명했으니 현재의 (고을 이름) 상주라는 지명이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상주 지명의 역사는 1300년을 훌쩍 뛰어넘는데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지명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상주는 땅이 넓고 토지가 비옥해 쌀·곶감·누에·오이·한우 등의 산물이 풍부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여유롭다. 아자개 쌀은 대통령상을 받았을 정도로 품질이 좋아 상주 사람들은 고장 산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학문은 어떠한가? 불천위 우복 정경세 선생은 퇴계와 서애 선생의 학맥을 이어받아 조선시대 최고의 감찰기관이었던 사헌부의 수장인 대사헌과 홍문관·예문관의 대제학을 역임했다. 상주 사람은 청렴과 기상이 남다른 우복선생의 기상과 청렴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또한 뛰어난 무인이 있어 누란의 위기였던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켰다. 바로 정기룡 장군이다. 장군은 용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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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호 (201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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