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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 전직 국정원장·3차장들의 친정 향한 작심토로 

“정보 모르는 軍 출신 중용하면 국정원 망친다” 

MB정부 원세훈 원장시절 인사·조직 파행이 지금의 사태 불러…정보는 수집·분석·판단력 필요한 전문분야로 훈련된 인력 필요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원 국정감사가 열린 지난해 11월 14일 국정원 현관에서 국정원 간부들이 국회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국정원은 만신창이가 된 조직을 다시 추슬러야 할 위기를 맞고 있다.



<월간중앙>은 최근의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 과거 정권에서 국정원장 또는 대공·북한담당 3차장으로 일했던 고위 인사들을 만나 국가정보기관이 나아가야 할 길을 자문했다. 대부분 후배 직원들의 사기를 위축시키고 마음에 상처를 줄 우려가 있다며 거절했지만 그중 일부는 익명을 전제로 국정원 조직의 파행 원인과 문제점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했다.

4월 14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정보원 증거조작과 관련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대공수사·대테러·방첩 분야를 맡고 있는 서 전 차장은 “(증거조작은) 실무진에서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진행한 사안이지만 지휘책임을 진 사람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국민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남은 직원들과 국정원은 더 이상 흔들림 없이 국민의 안위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서 전 2차장은 경찰 출신으로 서울경찰청 정보관리부장 등 정보관련 요직을 거친 정보통이었다. 국정원 차장은 정무직 차관급으로 각 차장 간 역할분담은 변동되기도 하지만 1차장은 주로 해외·대북분석, 2차장은 국내정보 수집 및 분석·대공수사, 3차장은 대북공작과 과학·산업·방첩 업무를 담당한다. 현재의 남재준 국정원장 체제에서는 국정원 출신인 한기범 1차장, 군인 출신인 김규석 3차장이 맡고 있다.

서 전 차장은 대공수사국을 관할했는데, 검찰 수사로 자신의 부하 직원인 3급 대공수사팀장이 불구속 기소되고, 문서조작을 주도한 4급 대공수사과장이 구속 기소되자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이다. 서 전 차장의 사표가 즉시 수리된 것은 이번 문서조작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가 더 이상의 국정원 고위직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쉽게 말해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는 현 남재준 국정원장 체제가 유임된 것이다.

간첩사건 증거조작 사태가 국정원장이 아닌 2차장이 사퇴하는 선에서 매듭을 짓자 국정원 안팎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서 전 차장의 사표가 수리된 날, 전직 국정원 인사 A씨가 기자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대뜸 “2차장만 사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과거 국정원 대공수사국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이번 사건으로 중국에서 활동하던 요원들의 신원이 공개되고 대북 휴민트가 붕괴됐다. 왜 2차장만 사표를 쓰느냐? 그럴 거면 해외담당인 1차장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재준 원장도 문제삼았다. “국정원 조직 체계상세부적인 문서조작의 실체는 몰랐다고 해도 대공수사국의 주요 업무인 간첩사건에 대해 보고받지 않았을 리 없는데 남 원장의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장, 1차장도 책임 있다”

기자의 기억에 국정원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한 국정원장은 멀쩡하게 자리를 지키고 차장이 대신 옷을 벗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4년 전인 2010년 12월, 국회에서 ‘연평도 포격’의 파편이 국정원을 향하면서 당시 김남수 국정원 3차장이 전격 사퇴한다.

연평도 포격사건은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30분경, 북한이 서해 연평도의 우리 해병대 기지와 민간인 마을에 포탄 100여 발을 발사해 해병대원 2명이 사망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다. 군인이 아닌 일반 국민이 2명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하면서 휴전협정 이래 민간을 상대로 한 가장 큰 규모의 군사 공격을 당한 큰 사건이었다. 당연히 사태의 책임을 두고 북한의 도발징후를 예측하지 못한 정보기관과 군에 대한 책임추궁이 이어졌다.

그해 12월 1일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에서 김남수 3차장은 “북한의 서해 5도에 대한 대규모 공격 가능성에 대해 국방부에 정보를 알렸느냐”는 정보위원의 질문에 “이미 8월에 북한의 서해도발 지시를 감청해 확인했고, 청와대와 군에도 알렸다”라고 말했다. 당시 그 자리에는 원세훈 국정원장도 앉아 있었다.

국정원이 보고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화살은 청와대와 국방부에 쏟아졌다. 하지만 이후 정보보고 라인의 혼선을 두고 국정원과 군 정보기관의 책임공방이 벌어졌고, 힘겨루기로 흘렀다. 시간이 갈수록 국정원의 부실한 북한정보 능력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결국 국정원의 김남수 3차장이 국정원장을 대신해 옷을 벗었다.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은 취임 이후 잇따른 조직개편과 인사 난맥상으로 국정원 정보력의 약화를 초래하고도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깊다는 이유로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그는 박근혜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2013년 3월에야 옷을 벗었다. 정보 분야와 무관한 인사가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최고정보기관의 수장으로 임명됐다가 정보 부실만 초래하는 비슷한 사례가 4년 만에 되풀이된 것이다.

A씨처럼 국가의 안위를 위해 평생을 정보기관에 헌신했다가 물러난 국정원 인사들은 같은 악습이 반복되는 데 대해 몸담았던 조직의 특성상 입을 다물고 있지만 참담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또 다른 전직 국정원 간부 B씨도 기자에게 “이번 사태는 ‘원세훈 체제의 부정적 유산’이다”고 말했다. B씨는 “원세훈 원장은 행정을 하는 사람이지 정보 전문가가 아니었다. 원 원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무려 4년 동안 국정원장으로 있으면서 조직을 다 망쳐놓았다”고 말했다.

과거 정보기관에서 차장을 지낸 한 인사는 신문에 이런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국정원 원장들이 새로 부임하면 자신이 경험한 다른 관료조직에서 통용 되던 인사방식을 적용하려 든다. 정보기관 인사는 임무형 인사이어야 한다. 기능별 영역별로 임무를 우선시하고 그 임무를 달성하는데 필수적이라면 한자리에 10년 이상도 놓아두어야 한다. 이런 정보기관 인사의 특수한 인사 잣대를 무시하고 또 공정을 우선시한다고 인사기록에만 의지하다 보면 고만고만한 모범생과 제너럴리스트만 남는다. 거기다 정치가 개입하고 지역 고질병까지 겹치면 인사는 엉망이 된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의 정보력 약화는 원세훈 원장 시절의 유산이라는 지적이다.



정보력 약화는 원세훈 원장의 유산

B 씨에 따르면, 이 같은 우려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 바로 원세훈 전 원장이었다. 원 원장 시절에 국정원이 조직과 인사의 난맥상을 보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9년 2월 취임한 원세훈 원장은 정기 인사철이 아닌데도 수시로 직원의 보직을 바꿨다. 무원칙 인사, 줄 세우기 인사가 만연하면서 국정원의 정보관·조정관들이 자신의 전문성과 관련 없는 부서로 배치되는 경우가 잦았다. 원 원장은 또 조직의 성과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연공서열을 무시하는 ‘팀제’를 도입해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그 이후 국정원 정보관들 사이에서 “인사할 때 정보능력보다는 정권 충성도를 우선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올 정도였다. 원세훈 원장은 조직도 대폭 개편했다. 1차장(해외), 2차장(국내), 3차장(대북)의 기존 틀을 깨고 1차장이 해외와 대북정보 수집 및 분석을, 2차장은 국내정보수집 및 분석과 대공수사에 전념토록 해 국정원 요원들의 전문성 약화를 불러왔다.

B 씨에 따르면, 원세훈 원장은 애초부터 북한·대공 분야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북정보를 전공한 사람들에 따르면, 북한·대공 분야는 정치·군사적으로 북한을 잘 아는 북한전문가들이 중요한 정책결정 라인에 꼭 있어야 한다. 북한문제를 잘 아는 대북전문가란 단순히 정보수집을 잘한다는 것뿐 아니라 “북한과 접촉해본 노하우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전문가가 국정원 대북 부서의 결정 라인에 있어야 북한의 다양한 정보, 북한 당국자의 발언 하나를 놓고도 세밀한 분석과 검증,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원 원장은 대규모 인적 쇄신을 단행해 대북정보 전문요원의 수를 크게 줄였다. 자연히 수집되는 정보량도 줄었다.

대북 휴민트(Humint, 인적정보)가 깊이 있게 구축되지 못하면서 국정원은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을 이틀 뒤에야 알았을 정도로 정보능력이 부실해졌다.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이 이뤄진 뒤 북한체제를 과시하기 위해 남한을 도발하는 연평도 포격의 징후가 이미 8월에 있었는데도 위험성에 구체적으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4개월 뒤인 11월에 날벼락을 맞았다. 조직 내에 이런 일들이 누적되면서 국정원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고, 급기야 국정원 요원들이 지휘부에 성과를 보여주려고 국내정치에 개입하다 지난 대선 때 국정원 댓글사건까지 터져 만신창이가 됐다는 것이 B씨의 진단이다.

<분단국의 국가정보>라는 책을 쓴 국정원 출신 인사 C씨에 따르면, 대북정보와 공작분야는 초보 정보관이 사명감과 애국심, 열정만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얻을 수 없는 전문 분야다. 대북정보 수집 기법에 능통하고 해당 정보 목표에 대해 정통한 정보관 육성이 핵심 업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기 공작보다는 장기 공작을 통해 다양하고 광범위한 정보망을 구축해야 한다. C씨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었다.

20세기 최고정보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구 동독의 정보기관 슈타지(STASI)의 공작책임자로 ‘얼굴 없는 사나이’(the man without a face)로 불리는 마르쿠스 볼프(Markus Wolf)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33년간 대서독 정보공작을 지휘했는데, 그중 서독 빌리 브란트 수상의 측근 보좌관으로 암약한 동독의 스파이 귄터 기욤(Gunther Guillaume)이 최고의 비밀요원이었다.

귄터 기욤은 1956년 서독으로 위장 망명한 뒤 사민당의 초급 당원부터 시작해 1970년 총리실에 근무할 때까지 무려 15년간을 잠복해 있었다. 1970년부터 1974년 체포될 때까지는 서독의 최고 기밀을 수집·보고했다. 당시 슈타지는 귄터 기욤을 밀파하고 15년간 임무부여 없이 서독에 정착하는 것을 지원했다고 한다. 그만큼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정보원들 사이에 ‘스파이의 교과서’라 불리는 2차대전 기간 중 일본에서 암약한 소련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Richard Sorge)는 1920년 소련 정보기관에 의해 스파이로 선발됐다. 이후 독일 나치당에 가입하고 독일 신문기자로 입사하는 등 철저한 신분세탁과 위장을 거친 후에 영국·중국 등지를 거쳐 13년 뒤인 1933년에야 독일 신문기자 신분으로 일본에 입국했다.

그는 1941년 체포될 때까지 33명의 정보망과 160여 명의 협조자를 구축해 일본의 소련 침공 계획을 포기하게 하는 결정적인 첩보를 수집해 모스크바에 보고하게 된다. 과거에 한국에 남파된 북한 공작원들도 공작원으로 선발된 후 10년 넘게 각종 훈련과 남한화 교육을 받았다고 자백할 정도로 정보·공작 분야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C씨는 “정보 분야는 정권이 바뀌거나 지휘관이 바뀐다고 해서 조직이 흔들리거나 성과에 조급해서는 안 된다. 국정원 지휘부가 임기 내에 무슨 성과를 내려고 해서도 안 되고, 그 성과가 승진이나 보직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되는 전문분야다. 그런 조직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직원들도 일반 행정기관과 같은 직급체제를 두지 않는다. 승진에 급급하다 보면 성과를 서두르거나 승진 누락자, 승진 예정자 등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필요 없는 보직을 부여해 조직의 불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이는 전임 원세훈 원장이 실수한 바로 그 대목을 지적한 것이다. 현 남재준 국정원장도 새겨들을 만한 조언이다.

<월간중앙>이 만난 전직 국정원 간부들은 이번 문서조작 사건을 되짚어보면 국정원이 원세훈 국정원장 시절의 전철을 고스란히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정보기관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인사가 국정원을 장악하고, 국정원 조직을 지휘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전직 국정원 간부들은 국정원이 차라리 유우성 씨를 설득해 우리 측 협조자로 만들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우성은 회유해서 활용할 대상”

기자가 만난 또 다른 전직 국정원 간부 D씨는 이번 사건의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지난 대선 때 국정원 댓글사건의 후유증을 돌파하기 위해 국정원 셀프개혁안을 내놓았다. 국내정치 개입으로 물의를 빚은 국내 파트를 축소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국내 파트의 정보요원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이 국민의 뇌리에 강한 존립 근거를 남기려면 간첩사건이 가장 적당하다. 이번 사건은 무리하게 간첩사건의 증거를 만들어내려다 도리어 국정원이 당한 케이스다.”

그는 그 근거로 국정원이 상식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질타했다. 그는 “간첩혐의를 받고 있던 유씨를 감옥에 잡아 넣으려고 하기보다는 회유했어야 한다. 유씨를 설득해서 설득해서 자주 북한을 다녀오게 해야 했다. 북한 정보를 빼내는 우리 협조원으로 활용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조직이 축소될 위기에 빠진 대공수사국이 ‘한 건’하려고 유씨를 재판정에 세우는 무리수를 두다 결국은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이 C씨의 진단이었다. 학계 출신으로 국정원에서 간부를 지낸 한 인사도 “유씨를 수사한 팀들이 공작조들이었다면 충분히 회유가 가능했을 것이다. 1년 동안 감청하며 감시한 다음에 회유하면 가능할 일이다. 그렇게 일을 이끌어갔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기자가 만난 전직 국정원 인사인 B씨에 따르면, 이번 문서조작 사건은 국정원의 대북공작 능력의 부실함을 여실히 드러낸, 우리나라 정보능력의 바닥을 드러낸 부끄러운 사건이다. 우선 정보업무의 미숙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는 특히 출입국 기록을 위조한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이해하기 힘든 사항이라고 했다. “출입국 기록은 시간이 가면 밝혀질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위조하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정보활동의 기본을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B씨는 또 “유씨를 간첩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국정원 협조자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며 “중국에 거주하는 협조자를 국내로 송환하여 검찰에 데려다 주는 공작은 세계 어느 나라 정보기관의 정보활동에도 없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국정원이 스스로 휴민트를 노출하는 우를 범함으로써 애써 구축했던 기존 휴민트 망도 가동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B씨도 이런 ‘헛발질’의 이유가 앞서 D씨의 주장처럼 대공부서의 과도한 경쟁 심리에서 비롯됐다고 보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요원들이 모두 국내 파트의 국정원 대공수사국 직원으로 국정원 내 해외공작 업무보다는 주로 대북수사에 종사한 요원이라는 것. 대공수사 요원들은 간첩혐의를 입증하려는 수사에 맞추기 때문에 회유공작을 통해 ‘가치 있게 활용’하는 공작관의 태도와는 아주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B씨의 주장이었다.

물론 기자가 만난 전직 국정원 인사들 가운데는 대북 정보 활동 자체의 어려움을 고려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었다. 정보공작은 원래 실패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정보관(공작관)은 정보원(협조자, 공작원)을 활용하여 정보수집이나 공작을 하는데, 정보원을 철저히 조사하고 테스트해 활용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실제는 협조자가 배신하거나 왜곡된 정보를 가져오는 경우가 흔하다. 정보전문가들은 그 같은 대표사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 헤밍웨이를 거론한다.

헤밍웨이는 2차대전 중 미국의 해군정보부의 쿠바 주재 미국 대사를 수차례 찾아가 쿠바의 파시스트들이 독일의 잠수함과 접선하는 것을 찾아내는 정보원이 되겠다고 자청해 미국 국무부 정보국의 정보원이 됐다고 한다. 그는 공작자금을 받아서 낚싯배를 구입하고는 밀수업자와 포주, 창녀, 건달, 도박꾼 등 26명을 싣고 떠났지만 실제로는 낚시와 음주파티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공작금만 탕진하고 만다. 이후 미국 FBI의 조사로 이 같은 사기행각이 밝혀졌다. 헤밍웨이는 이때의 낚시 경험을 바탕으로 <노인과 바다>를 저술했다고 하니 천하의 미국 국무부도 크게 당한 셈이다.


▎남재준(앞줄 가운데) 국가정보원장은 유임됐지만 또다시 내부개혁의 위기에 직면해있다. 뒤줄 왼쪽에서 셋째가 서천호 2차장으로 지난 4월 14일 사퇴했다.



정보전문가가 국정원 수장 맡아야

<월간중앙>과 만난 전직 국정원 인사들은 결론적으로 정보에 문외한인 인사가 정보기관 수장을 맡는 것이 국정원을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고 보면 국정원에 쓰나미를 몰고 온 두 사람, 원세훈 전 원장은 행정관료 출신이고, 남재준 현 원장은 군인 출신이다. 두 사람 모두 정보 분야와는 거리가 멀다.

전직 국정원 인사 D씨는 “국정원은 국가 안위를 위해 국가정보를 총괄하는 기관이다. 애국심 같은 뜨거운 가슴도 필요하지만 오히려 차가운 머리 쪽이 맞다. 국정원의 모든 정보는 군과 경찰, 검찰 쪽 정보가 서로 집적되고 분석돼 국가안위를 위한 정보로 재가공해서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정보전문가가 수장을 맡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전직 국정원 인사들은 특히 전문성이 필요한 대북·대공 라인은 군 출신보다 국정원 내부에서 꼭 발탁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은 현역 육군 소장인 이종명 합참 민군심리전부장을 3차장에 기용하는 무리수를 뒀다. 현역군인이 대북공작과 과학·산업·방첩 업무를 맡는 제3차장에 내정된 것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국정원으로 체제가 바뀐 1998년 이후 그때가 처음이었다. 2011년 1월 ‘아덴만 여명’ 작전 때 군사작전지원 실무 총책임을 맡았던 이종명 3차장은 당시 대북공작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왔지만 군정보 쪽이어서 공작을 중요시하는 국정원 정보인력들과 융합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전직 국정원 인사 D씨는 “상명하복이 몸에 밴 전투병과 군 출신은 세밀한 정보 분야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전투에 능한 군 출신과 공작에 능한 국정원 출신 요원이 왜 다른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간첩을 잡는다고 하자. 군 출신들은 충성심과 애국심에 불타서 간첩은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잡으면 또 자백을 받아야 한다. 수사기관으로 따지면 다혈질의 경찰서 형사와 비슷하다. 정보 쪽 사람들은 다르다. 상대와 협상을 하거나 거래도 한다. 때로는 간첩인지 뻔히 알면서 풀어주기도 한다. 군 출신들은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간첩이면 잡아야지 왜 풀어주냐고 그런다. 기획수사를 중심으로 하는 검찰과 비슷하다. 그래서 검찰 출신이 종종 국정원장을 맡기도 하는 것이다.”

국정원 간부로 있다가 학계에 진출한 한 인사도 “군인 출신은 기본적으로 정보마인드가 안 된다. 적을 부술 생각을 하고 적이 내게 얼마나 필요한가를 모른다”며 비슷한 얘기를 했다.

‘대통령정보자문위원회’ 구성 필요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 간부를 지낸 F씨는 “군인들은 단순하다. 앞뒤를 재지 않고 돌진한다. 댓글사건으로 궁지에 몰리고 NLL논란이 벌어지니 국정원장이 대화록을 떡 하니 공개해버렸다. 그 판도라의 상자가 몰고 올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나. 그 세밀한 내용이 공개되면 상대방인 북한 수뇌부의 처지는 뭐가 되는가? 정보조직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국정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누설하고 말았다”고 남재준 원장을 질타했다. 애국심이나 충성심, ‘지고는 못 사는’ 군인 마인드가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측면을 지적한 것이다. 기자가 만난 전직 국정원 간부들은 또 인사권자인 대통령부터 국정원을 권력기관이 아닌 국가안위를 위한 안보 중추기관으로 인식을 확실히 전환해야 국정원이 바로선다고 지적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4월 15일, “과거 잘못된 관행을 완전히 뿌리뽑아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뼈를 깎는 개혁을 추진해나갈 것”이라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태수습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차장을 지낸 F씨는 “조직개편을 한다면 1차장 산하로 북한정보파트가 들어가는 게 맞다고 본다. 해외정보와 대북 정보를 분리하면 코디네이팅이 잘 안 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국정원의 셀프개혁안이 다시 준비되더라도 개혁을 국정원 손에만 맡기는 것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크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2차장을 지낸 이병호 울산대 초빙교수는 “미국처럼 대통령 정보자문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일찌감치 정보기관 운영에 이런 문제점이 있다고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1956년부터 대통령 정보자문위원회(PIAB, Presidential Intelligence Advisory Board)라는 견제장치를 운영하고 있다. 이 장치는 학계든, 언론계든 각계를 망라한 16명의 저명한 애국적인 초당적 인사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1년에 두 번 정도 정보기관의 운영 전반에 관한 평가를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체제다.

이 교수는 “박근혜 정부도 이 제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를 잘만 운영하면 국정원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고 조직과 인사의 안정을 기할 수 있다. 원장이 퇴임 후 검찰에 불려가는 불행한 사태도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박 대통령의 첫사랑은 삼국지의 ‘조자룡’이었다. 조자룡은 박 대통령의 인사 기준과 맞닿아 있다. 자신에게만 안테나를 향하는 변함없는 충성심과 명령복종이다. 충성심은 군인의 좋은 덕목이다. 하지만 국정원은 대통령 개인에게 충성하기 위한 권력기관이 아니라 국가안위를 위해 필요한 정보기관이다.

CIA나 모사드 등 세계의 주요 정보기관들이 국가안위를 위해 불법행위를 했다면 국민의 이해를 구할 수 있어도 권력자들의 이해관계에 휘둘려 일탈행위를 한 것은 지탄받고 처벌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월간중앙>이 만난 국정원의 전직 간부들은 복종과 충성심이 몸에 배인 군 출신에게 국정원장을 맡기는 것에 대해 여전히 우려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1405호 (201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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