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작가 윤고은의 취재파일 | 숨죽인 어른들에게 십대들이 묻다 

‘복종의 강요’ 이제 싫거든요 

글 윤고은 사진 전민규 월간중앙 기자
협동보다 경쟁, 도전보다 순종을 강요하는 어른 세대를 나무라듯 거리에서 아이들이 말했다. “시간이 흘러 사회가 이 일을 잊어도 우리는 잊지 말자.”

▎안산시 문화의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세월호 탑승자들의 무사기원과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있다.



배 안에서 오갔던 아이들의 대화가 속속 공개될 때마다 작년에 만났던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한 아이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오늘 전쟁이 나더라도 4교시는 끝난 후여야 한다”는 거였다. 이유를 묻자 아이는 “오늘 점심 메뉴가 치즈돈까스거든요”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도 치즈돈까스라면 지구 멸망도 충분히 지연시킬 법한 이유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까르르 웃던 그 아이들처럼, 공개된 동영상 속의 아이들도 천진했다. 그 천진함을 접할 때마다 남겨진 어른들은 죄인이 된다. 이 사회의 어른들이 ‘살신성인’이란 말을, ‘공생’이란 말을 문자로 알고 있다면, 배 안의 아이들은 몸소 행했다. 과연 누가 진짜 어른인가.

참사 이후 세월호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운 교실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어른들은 마치 공범이 된 눈으로 그 교실 내부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그런 어른들에게 아이들이 먼저 말을 건다. 여기 작가와 기자, 정치가와 화가를 꿈꾸는 10대들이 어른들을 향해 문을 두드린다.

“지금 이 사회가 조금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돈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소수의 의견이 다수에 의해 묵인되기도 하며, 협동보다는 경쟁을 교육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을 마냥 비난하기만 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겠지요.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가 바꿔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진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양정은, 동국대부속여자고등학교 2학년)

“SNS 활동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팔로우해놓은 여러 언론의 뉴스 헤드라인을 자주 접합니다. 시사 관련기사를 자주 봅니다. 단연 요즘엔 세월호 사건 관련기사입니다. 제가 원하는 삶은 창작을 하며 여유롭게 사는 삶입니다. 아직 이렇다 할 장래희망은 없고, 평생 확실한 장래희망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직업에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활동을 하며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제 오랜 꿈입니다.”(조아정, 안양예술고등학교 1학년)

“대한민국 청소년의회의 청소년 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4 유테카 엑스포 서포터즈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두 눈은 세상의 모든 일을 볼 수 없으며 지극히 한정된 공간 속에 있는데,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의 일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언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투명한 잣대로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는 기자가 될 것입니다.”(하유영, 대구동부고등학교 2학년)

“뉴스를 챙겨보고, 성향이 서로 다른 신문 두 개를 함께 읽습니다. 주로 사회 분야에 대한 기사를 챙겨보는 편입니다. 청소년 기자단 활동을 통해 꿈을 이룬 후의 삶을 미리 체험해보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매달 기사를 두 편 올리는데 그러기 위해서 매달 화젯거리에 대해 생각하고 그에 대한 견해를 정리해보면서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약자를 도울 수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장해송, 숭덕여자고등학교 2학년)

“대한민국 청소년의회 제6대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부산광역시 청소년참여위원회, 청소년특별회의 위원으로 좀 더 효과적인 청소년 정책이 만들어지도록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스펙을 위해 이런 사회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의 많은 또래 친구와 교류하면서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다방면으로 사회참여활동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소통의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항상 낮은 자세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이광주, 부일외국어고등학교 3학년)

“평범한 여고생으로 10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 무기력하지는 않아요. 언젠가 후회하고 싶지는 않기에 소소하게 도전을 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청소년의회의 청소년기자단으로 5개월째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년 말 학교 게시판에서 모집 공고를 보고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제 꿈은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제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로써 사회에 기여할 생각입니다.”(신채은, 인명여자고등학교 3학년)

세월호 사건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

어른들의 세계가 수직적으로 움직인다면 청소년들의 세계는 수평적으로 퍼진다. 어떤 명령과 복종의 구조라기보다는 옆으로 퍼져서 차라리 같이 물들어버리는 형태에 가깝다. 단지 어려서가 아니라, 미래의 어른이 될 새 세대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새 세대는 과거의 세대보다 소통하는 데 재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빠르기까지 하다. 신문이며 TV가 뉴스를 정리해서 내보내기 이전에, 이미 SNS를 타고 소식은 퍼진다. 아이들은 빠르게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듣고 또 거리로 나가 한번도 본 적 없는, 그러나 언젠가 만날 수도 있었을 아이들의 영정사진 앞에 국화를 올린다. 그 아이들에게 묻는다. 세월호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즐겨보던 TV 방송이나 일부 웹툰이 몇 주간 휴재를 결정했고, 수학여행이나 체육대회 같은 학교 행사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으며, 고속버스 관련 회사에 다니고 계시던 아버지의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저는 특별한 사고의 위험이 없음에도 취소되는 학교 행사들 때문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고,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반 친구 하나는 노란 리본 배지를 만들어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분향소에 가지 못하더라도 우리끼리 추모하자는 뜻으로 말입니다. 카카오톡 친구들의 사진 또한 점점 노란 리본으로 채워졌습니다.”(양정은)

“제 일상생활은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지만 제 생각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세월호 사건 전에는 위기 불감증, 무능력한 정부와 같은 말들을 그저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사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제는 옳은 말이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직접 거리로 나가는 청소년들을 보면 그들이 또래 희생자들을 대신해 억울함을 호소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희생자들과 비슷한 또래의 청소년들이 무능한 정부와 책임감 없는 어른들이 판을 치는 세상을 비난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모습은 어느 누가 하는 요청보다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안에 없었을 뿐, 무능한 정부, 그리고 무책임한 어른들과 함께 커가야 하는 것은 청소년이기 때문입니다. 시위를 하는 그들을 보면서 가만히 있는 제 자신이 자주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조아정)

“이번에 대구 두류공원에 있는 분향소에 다녀오면서 수많은 사람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학생들의 침묵시위나 촛불시위 등을 보면서 저 또한 참여하고 싶었지만 학생이라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하지 못한 것에 상당히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들의 용기와 사랑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청소년으로서 사회참여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수동적으로 어른이 하라는 대로, 정하는 대로 따라야 할 것입니까.”(하유영)

“정말 사실이 맞는 건지 하루 종일 뉴스만 쳐다보고, 학교에서도 집중을 못하고, 못난 사람들 때문에 희생된 친구들의 목숨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이 사건 이전에는 그래도 언론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100% 그대로 사실을 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국민들에게 진실된 사실만을 전달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언론 왜곡과 탄압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가 여실히 드러남에 따라 제 꿈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기자가 되어 약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진실된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장해송)

“처음에는 고3이기에, 나의 가족이 아니기에 애써 외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외면하면 할수록 차가운 바다 속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친구들에게 죄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청소년들은 또래친구가 희생을 당했다는 거에 대해서 더욱더 안타까워하면서 분향소를 찾았을 겁니다. 정부의 사고수습 미흡, 선장 및 승무원들의 무책임적인 자세로 인하여 모두 분노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이렇게 부당한 사회현실에 대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격스럽기도 했습니다.”(이광주)

“사건 이후 요즘에는 부모님께 표현도 많이 하고 말을 예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희생된 친구들을 생각하며 더 열심히 공부합니다. 친구들의 몫까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여러 사회 문제를 보며 자라나는 우리 세대가 세상의 부조리한 면과 맞서 싸우고 그른 것은 바꿔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국가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지고 무엇을 믿어야 할지(어른의 말도, 언론도) 살짝 혼란스럽지만 더욱 의지적으로 변한 상태입니다. 친구와 분향소에 가서 조문을 하고 왔습니다. 또래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청소년의 사회참여는 우리의 미래가 될 이 사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이기에 좋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만큼 우리 사회의 불안한 구조를 청소년들도 인식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채은)


▎안산 올림픽공원에 마련된 임시합동분향소에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추모의 글을 남기고 있다.



세월호 때문만이 아니다

이 시대의 청소년들을 말할 때 패딩점퍼의 서열 따위나 떠올린다면, 청소년들은 단지 오락가락한 교육제도나 TV 속 스타에만 민감하게 반응할 거라고 본다면, 정말 요즘 10대를 ‘띄엄띄엄’ 본 거다. 교실의 아이들은 어떤 어른들보다도 더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세월호가 온 국민의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은 지금, 아이들은 세월호가 가라앉은 바닥에 이미 다른 사건들도 아주 익숙한 방식으로 침몰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이게 처음이 아니잖아요, 왜 매번 똑같은 인재를 만드나요’라고 외치는 그들은 어른들의 안이함과 무능, 그리고 이기적인 행태에 일침을 가한다.

“사소한 일 하나부터 잘못되기 시작해 그 문제들이 모여 큰 문제점을 만들고 결국 큰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것”(장해송)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은 이미 수많은 재난을 지나왔다. 각자가 기억 속에 있는 이 사회의 재난에 대해 말해달라고 묻자, “이 사회의 재난은 지금”(신채은)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예로 들며,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정부와 그런 정부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지금, 바로 지금이 재난 한 복판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제가 생각하는 이 사회의 재난이란, 피할 수 있고 계속 예견되었던 사고였음에도 무시하고 결국 근본적으로는 돈 때문에 많은 사람이 다친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건을 악용하거나 책임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것도 재난입니다.”(양정은)

“저는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이 가장 생각이 났습니다. 일단 제가 지금 대구에 살고 있기도 하고 부모님을 따라 추모식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슬픈 분위기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의 선장이 혼자 도망간 것이 대구 지하철 사건의 기관사가 자신만 혼자 빠져나온 것과 매우 흡사했는데, 사실 이러한 리더의 무책임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백성들을 뒤로한 채 의주까지 부리나케 도망가던 선조, 병자호란 때 한양의 수비는 세자에게 맡긴 채 남한산성으로 도망가 숨은 인조, 6·25 전쟁 당시 혼자 피란을 간 이승만 대통령, 삼풍백화점 붕괴 위험을 알았으면서도 영업을 강행해놓고 먼저 대피한 이준 회장 등 부끄러운 리더들 때문에 결국 희생당하는 건 우리 국민들뿐이니, 정말 유감스럽습니다.”(하유영)

“저는 고(故) 최진실과 그녀 주위 여러 사람의 잇따른 자살을 우리 사회의 참사로 기억합니다. 악성 댓글로 인한 여러 연예인들의 자살은 그 무엇보다 끔찍한 일인 것 같습니다. 네티즌들의 루머 생성력과 마녀사냥, 그리고 몰아가기 능력을 가장 심각한 재난이라고 생각합니다.”(조아정)

“매일 참사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에 빠져 자신의 자식을 돌보지 않아 아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일, 배우자의 보험금을 받기 위해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일,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등장하는 성폭행 범죄 등 사회에서는 매일 너무도 많은 재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체 이 많은 재앙의 출발점은 어딘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또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하는 건지 이 사회는 이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아니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방치해두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장해송)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은 학교폭력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몇 년 전부터 학교폭력에 관한 문제는 크게 대두되고 있었는데 정부나 지역사회에서 조금만 더 학교현장의 실상을 알고 관련 대책을 수립했다면 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최근에는 진주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학교폭력이 일어나 두 명이 사망하였다고 보도가 되는 것으로 보아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좀 더 효과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이광주)

“중학교 가사실습 시간에 선생님께서 다치는 학생이 나올 경우 무조건 그 조는 0점을 주시겠다고 엄포를 놓으셨습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다치지 말고 조심해라’라는 뜻이셨겠지만 당시 저로서는 그 말이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저는 최대한 조심해서 요리했으나 결국 우려했던 대로 칼에 깊숙이 베이고 말았습니다. 아팠지만 다친 저 때문에 조원들이 다같이 0점을 맞을 수도 있다니, 걱정이 되어 그 손으로 끝까지 과일을 썰었습니다. 당시 제가 가야 할 곳은 보건실이었는데 말이죠. 한국 사회도 이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양정은)

십대들에게 한국이란, 웰컴 투 입시지옥

그렇다면 십대 청소년으로 살아가기에 한국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한국의 놀라운 역사, 그리고 한류열풍에 대해 아이들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내가 살아가는 공간’으로 볼 때, 또 ‘내가 살아갈 공간’으로 볼 때, 한국의 첫인상은 그런 매력적인 부분들이 아닌 듯 보인다. 한국이 살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입시스트레스가 성장의 통과의례처럼 당연하게 통하는 현실 때문이다.

“우리나라 학생들과 외국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한 실험이 있습니다. 외국 학생들은 각자 앞의 시험지가 있음에도 서로 얘기하며 의견을 모아 풀었고 우리나라 학생들은 상대방이 보지 못하게 가리며 각자 문제를 풀었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협동보다는 경쟁을 배웠다는 사례입니다. 더는 내 옆의 친구가 경쟁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에 나가고 위급상황이 되면 우리는 서로 협동하고 머리를 맞대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또한, 그럴 수 있도록 어렸을 때부터 경쟁을 가르치는 교육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양정은)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친구와 제대로 놀아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얼마 되지 않고 노는 와중에도 ‘지금 다른 아이들은 공부하고 있겠지’ 하는 걱정에 독서실로 발걸음을 돌리는 일이 허다합니다. 정말 하루하루를 미래에 대한 긴장과 불안의 연속으로 살아가며 꿈을 꿀 시간도 없이 오로지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공부만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1년만 더 참으면 된다고 말씀하시지만 어른이 돼도 끝나지 않을 경쟁이란 제도 때문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하유영)

“대부분의 어른이 길을 정해두고, 그 길과 다른 선택을 하는 청소년들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청소년들이 나서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별로 귀담아듣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어른들의 말도 잘 들어주지 않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어 이 사회에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져 있는 상황입니다. 단지 청소년들이 행복하고 웃으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환경을 제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장해송)

“진로 고민을 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많은 제도가 있지만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청소년들은 꿈보다도 성적을 강조하는 입시현실을 마주해야 합니다. 학교현장도 인성교육, 체험활동보단 입시위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청소년헌장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건전한 모임을 만들고 올바른 신념에 따라 활동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로 사회에서는 청소년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학생들을 대표하는 학생자치회 역시 선생님의 지도하에 운영이 되며 모든 활동은 학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교외에서 열리는 청소년 사회참여 활동에 참여하려고 하면 ‘어차피 입시에 반영되지도 않을 건데 왜 하는데?’ 식으로 반문하여 청소년들의 사회참여를 입시를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이광주)

“10대 청소년으로 살아가기에 한국의 좋은 부분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꼭 한번 찾아보고 싶습니다. 안 좋은 부분은 미래에 대한 압박감입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어른이 많기 때문에, 그로부터 오는 압박감이 심합니다.”(조아정)

“어른들도 방황하고 고민하는 나라인데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인상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냥 이 나라가 거대한 세월호이다. 배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여차하면 배를 버리고 달아날 채비가 되어 있는데도, 배에 탄 사람들은 배가 흔들리고 뒤집혀도 그들의 말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저는 이 말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청소년은 이 거대한 세월호의 탑승객 중에서도 가장 힘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장해송)


▎임시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어른들에게 소통을, 그리고 기억을

그러나 입시지옥 속에서도 청소년들은 남겨진 어른들을 걱정한다. 교실에 멀쩡하게 앉아 있다는 것이 죄스럽게 여겨진다고 했다. 청소년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미 세월호 사건으로 받은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처가 더욱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남은 우리가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사실에 모두 동의하고 있었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어른들의 자리 교체”(조아정), “국가 차원의 제대로 된 안전점검과 교육, 그리고 위급상황 시 사용할 수 있는 생존교육”(양정은), “모든 국민이 위기 대응 매뉴얼을 항상 숙지하여 자신의 생명은 자기가 지킬 수 있도록 해야”(하유영) 한다는 의견, 그리고 “이럴수록 말과 행동에 신중을 기해서 유가족을 더 힘들게 하지 말고, 생사를 걸고 구조작업을 펼치는 잠수부들을 격려해야 한다”(이광주)는 답도 있었다. 또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희생자들을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장해송)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결론은 같았다. “시간이 흘러 사회가 이 일을 잊어도 우리는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들이 다시 말한다. 어른들에게.

“요즘 언론에 노출되는 청소년들을 보면 정말 답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생각 없이 사는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은 극히 일부분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저를 비롯한 여러 청소년은 아직 판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론에 자주 휩쓸리기도 하고 의견 존중을 하는 배려와 이해도 많이 부족합니다. 이런 점들은 어른들이 소수를 무시하고 배척할 때 더욱 악화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소수를 존중하는 어른들을 보고 싶습니다.”(조아정)

“매일 뉴스를 보며 느끼는 것이지만 어른들은 왜 그렇게 사람들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거짓말의 발명>은 코미디 영화였지만 거짓말과 위선 때문에 진실이 부재한 현재 우리 사회를 역설적으로 풍자하는 것 같았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처음으로 거짓말을 발명한 주인공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돈 빌리기’였습니다. 저희에게 정직을 가르치기 전에 어른이 먼저 모범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어른들은 항상 우리들에게 ‘넌 몰라도 돼’, ‘공부나 해’ 이런 말을 반복하시는데, 저희에게도 들을 권리와 말할 권리를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른들의 사회’라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세대 간의 소통입니다.”(하유영)

“어른들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아 일하는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말에 책임지지 못하고 공약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못해 사퇴하는 일을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됩니다. 어른이 되었을 때 저 역시 그와 같이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집니다. 이번 사건 역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졌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라고 생각합니다.”(장해송)

“어른들은 두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해서는 안 될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면서 어른들은 그러한 행동을 청소년들에게 보여주시곤 합니다. 언행일치된 모습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흔히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어려서 못한다는 식으로 단정 짓곤 합니다.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이 사회에 주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그 모습을 든든하게 응원해주시고 좀 더 안전하고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과 끼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신다면 이 나라의 청소년들의 좀 더 건전한 가치관을 가지지 않을까요?”(이광주)

“우리가 그렇게 무기력하지 않다는 것만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무기력함은 세상과 자신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제가 꿈꾸는 사회는 ‘UBUNTU(우분투)’ 정신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어느 인류학자가 아프리카의 한 부족 아이들에게 게임을 제안했습니다. 누구든 저 과일바구니까지 먼저 뛰어간 사람에게 바구니 속의 과일을 모두 주겠노라 한 것이지요. 인류학자의 말이 전달되자마자 아이들은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은 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바구니에 다다르자 모두 함께 둘러앉아 나누어 먹었습니다. 인류학자가 아이들에게 일등에게 과일을 몽땅 주려 했는데 왜 손 잡고 함께 달렸느냐고 물어보자 아이들의 입에서 UBUNTU라는 단어가 합창하듯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가 덧붙입니다. ‘나머지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 있나요?’ UBUNTU는 아프리카 코사어로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신채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가? 책상이 단지 책을 놓는 공간만이 아니라, 딛고 올라서는 발언대일 수도 있다는 걸 그 영화는 알려준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청소년들은 천진난만하면서도 당찬, 아직 지치지 않은 미래의 어른들이었다. 그렇게 가능성 충만한 시기의 10대들에게 우리 사회는 오로지 책을 놓는 책상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어른들이 달리고 달려서 겨우 도달한 자리, 먼저 와 있던 누군가의 등을 툭 쳤을 때 돌아본 이가 이 시대의 아이들일지도 모른다. 천진한 표정, 그러나 어른들보다 훨씬 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춘 그런 표정으로 말이다.

201406호 (2014.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